Hell special! Dungeon Master RAW novel - Chapter 101
101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혼란한 얼굴을 한 아모스의 대답은 내 예상과는 조금 달랐다.
무엇 하나 확신이 없는 얼굴.
“결혼식이 끝나고 저녁 만찬까지는 기억이 나는데……. 캐네스 님과 단둘이 된 후로는 기억이 나지 않습니다.”
흐릿한 기억을 더듬어 가던 아모스는 고개를 저었다.
“급할 것 없으니, 시작부터 천천히 얘기해 봐.”
기울어진 기괴한 가면을 떨리는 눈으로 바라보던 아모스 왕자는, 자신이 정확히 기억하는 것부터 이야기를 시작했다.
그럼에도 두서없는 그의 설명은 시간 순서마저 뒤죽박죽이었고, 그야말로 의식의 흐름을 따라 이어지는 정보의 나열이었다.
그런 두서없는 조각들을 맞추는 건 결국 청자인 나의 몫이 됐다.
시간상 가장 처음이 되는 사건은 역시나 백작의 장녀, 캐네스 륑겐과의 결혼이 정해진 곳부터 시작된다.
* * *
캐네스의 나이를 듣고, 나는 그녀가 이혼을 했으리라 짐작했었다.
그러나 아모스의 이야기를 들은 지금은 그게 아니란 것을 알게 됐다.
선천적인 불구. 캐네스 륑겐은 태어날 때부터 다리를 쓸 수 없는 장애를 가지고 태어난 여자였다.
이 세계의 귀족 사회에서 장애란 부모에게도 외면 받는 무거운 짐이다.
아니, 평민이었다면 그런 장애를 가지고 태어나는 순간 부모에게 버림받았을 테니, 귀족이어서 지금까지 살아 있을 수 있었다고 생각할 수도 있겠다.
장애를 갖고 태어난 탓에 대외적인 활동에는 철저히 배제되어 갇혀 지내던 백작 영애와 왕자의 결혼.
어떻게 봐도 상식적으로는 이해가 되지 않는 혼인이 가능했다는 것은, 결국 왕과 귀족을 대표하는 륑겐 백작의 권력 균형이 완전히 깨졌다는 것을 의미했다.
데릴사위나 24살의 나이차 같은 건 불구라는 멍에 앞에서는 명함도 못 내미는 수준의 애교다.
결혼 얘기를 꺼내는 것만으로도 왕실 모독으로 가문이 지워져도 할 말이 없는 수준의 도발인 것이다.
이제야 지금까지 나도 모르게 느껴 왔던 위화감이 해결되는 기분이 든다.
아무리 본인이 신분을 감추는 것을 원했다 해도, 한 나라의 왕자가 결혼을 하러 가는데 그렇게 조용하게 올 수 있었던 이유가 무엇일까?
그리고 왕자와 백작 영애의 결혼이면 적어도 일주일은 떠들썩해야 할 백작성이 결혼식 당일마저 조용했던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왕과 백작 모두 숨기고픈 일이었기 때문이었다.
왕실은 굴욕적인 결혼 자체가 창피했을 것이고, 백작은 장애를 가진 딸을 내보이고 싶지 않았던 것이다.
“캐네스 백작 영애는… 저와 단둘이 되자마자 미안하다고 하더군요. 무엇이 미안하냐고 물으니 씁쓸히 웃기만 했습니다. 그러고는 백작성, 그리고 내성에서 외성 바깥으로 나갈 수 있는 비밀통로를 알려 줬습니다. 혹여 자신에게서, 자신의 아버지에게서 도망가고파지면 언제든 도망가라면서요.”
거기까지 얘기한 아모스는 머리를 부여잡으며 괴로워했다.
“그런데… 거기까지만 기억이 납니다. 그다음에는 정신을 잃고… 깨어났을 때는 침대가 온통 붉었습니다. 그 작은 여인에게서 흐른 피라고는 생각하기 힘들 만큼 엄청난 피였어요.”
기억을 더듬으며 그 광경이 떠올랐는지, 아모스는 몸을 사시나무 떨듯 떨기 시작했다.
그러나 나는 그를 더욱 궁지로 몰았다.
“그래서, 그 중간의 기억은 아예 없다는 건가? 원치 않는 결혼에 대한 반감으로 너도 모르게 죽여 버린 건 아니고?”
“그런……!”
아모스는 눈물이 흐르는 눈으로 나를 노려보며 무언가를 말하려다 삼켰다.
그러더니 주먹으로 바닥을 쿵, 하고 내리친다.
“…솔직히 원치 않은 결혼인 것은 맞습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그런 불쌍한 여인을 죽일 생각 같은 건 해 본 적이 없어요. 그녀는 저와 마찬가지로 이 촌극의 희생자일 뿐, 가해자가 아니란 말입니다!”
확실히… 아무리 멍청한 놈이라도 죽이고 싶다고 결혼식 당일 침대 위에서 신부를 살해하진 않겠지.
그러나 세상엔 그 ‘아무리’에 해당하는 놈들이 꽤나 많이 있고, 자신의 어두운 면을 잘 포장해서 선량함으로 위장하는 놈들이 아주 많다는 것을 나는 잘 알고 있다.
내 특기였으니까.
해서, 나는 마지막으로 한 번 더 확인을 하기로 했다.
“정말… 기억이 안 난다는 말입니까?”
그 말을 하며 가면을 벗자, 아모스 그리고 신비에게 입이 막혀 버둥대는 호치 모두의 눈이 튀어나올 것처럼 커졌다.
“다, 당신은……!”
“제 개입은 호기심과 흥미 때문이 절반 이상이지만, 적어도 당신의 결백은 확인을 해야 이 다음을 정할 수 있습니다.”
물론 그 선택 속에서도 내 이득은 철저히 챙기겠지만… 희생당할 쪽을 선택하는 건 또 다른 문제다.
이왕이면 악당같이 보이는 놈을 쥐어짜서 네거티브 포인트를 버는 게 마음도 편하고, 재미도 있고……. 그렇지 않겠는가.
“저는… 그녀를 죽이지 않았을 겁니다……. 나는… 그녀를 동정했어요. 내가 나를 동정하는 만큼, 똑같은 처지인 그녀를 동정했단 말입니다!”
[아모스 네즈빌이 자신이 동경하는 인물로부터 신뢰받지 못하는 현실에 절망합니다. 1,800 네거티브 포인트를 획득합니다.]아모스의 격한 반응은 예상했지만, 갑작스레 뜬 메시지는 나를 당황하게 했다.
본 지 얼마나 됐다고 동경씩이나 한다는 건지.
철저히 상황이 흘러가는 대로 휩쓸리는 희생양의 입장에 있었던 그로서는 나와 리엔이 정말 부러웠나 보다.
그의 진술이 사실이라면 그가 캐네스 륑겐을 죽였을 가능성은 낮다.
정황상 륑겐 백작이 대의명분을 얻기 위해 벌인 계획 살인일 가능성이 가장 높았다.
그 대의명분이 단순히 왕실을 압박해서 더 큰 권력을 얻는 것이 목적일지, 아니면 아예 내전을 바라는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말이다.
나는 다시 가면을 쓰고, 여전히 바닥에 주저앉아 있는 아모스에게 마비초를 던져 줬다.
“상처는 죽을 정도는 아니군요. 그 풀을 먹으면 움직이는 데 불편해지긴 하지만, 통증도 같이 마비되니까 견디기 힘들 때 사용하도록 하십시오. 그리고 제가 돌아오기 전까지 당신을 도와줄 사람이 있는지, 누구인지를 생각해 놓으시고요.”
“…저를 믿어 주는 겁니까?”
“원래는 사람을 잘 안 믿기는 하지만… 지금은 당신을 믿어서 손해 볼 게 없습니다. 저는 손해 볼 게 없으면 지나가는 개가 하는 말도 그러려니, 하고 믿는 사람이니 괜히 감동은 받지 않으셔도 됩니다.”
무거운 질문에 비해 지나치게 가볍게 대답한 나는, 복잡한 해골 사원의 복도를 지나 밖으로 나왔다.
잠시 후, 내 뒤로 신비가 따라붙었다.
“기생오라비처럼 생긴 놈은 허약하기 짝이 없던데, 괜찮을까요?”
“저 정도 부상은 며칠 놔둔다고 안 죽어. 그래도 죽으면 뭐… 어쩔 수 없는 거지.”
안타깝게도 지옥 상점은 6단계까지 해금된 지금도 치유나 회복에 관련된 아이템은 전혀 판매를 하지 않고 있었다.
신전에서 한정된 수량만 판매되는 포션은 리엔의 가방에 들어 있어서 가져오질 못했고.
아무리 그래도 하루 만에 죽겠어?
그렇게 없던 걱정마저 덜어 낸 나는 다시 어둠 속에 녹아들었다.
* * *
다시 돌아온 여관의 창문을 들어서면서 나는 가슴을 쓸어내렸다.
나갈 때는 그나마 외성을 빠져나가는 게 수월했는데, 돌아올 때는 그야말로 천라지망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삼엄한 경계가 이뤄지고 있었던 것이다.
수많은 기사들과 마법사들까지 깔리는 바람에 결국 가장 허술한 지점에 있는 병사 하나를 죽이고서야 구멍을 만들어서 들어올 수 있었다.
아모스를 구하는 과정에서 마주친 기사를 보고 생각하긴 했지만, 륑겐 백작의 전력은 생각보다 훨씬 강한 것 같았다.
“루크! 지금 자고 있을 때가……!”
막 창문틀을 넘어오는데, 방문이 쾅, 하고 열리며 리엔이 들이닥쳤다.
얼마나 급하게 들어왔는지, 문을 달린 경첩이 형편없이 찌그러진 게 눈에 들어온다.
“…뭐 하고 있는 거야……?”
리엔은 창틀에 어정쩡하게 서 있는 나를 의심의 눈초리로 바라봤다.
그런 그녀의 손은 이미 허리에 찬 검에 가 있었다.
그나마 가면을 벗은 후라 다행이지, 하마터면 바로 친구 칼 맞고 저승으로 갈 뻔했다.
“…잠이 안 와서 산책을 좀…….”
나는 내가 생각해도 어이없는 변명을 입에 담았다.
역시나 리엔의 눈썹이 꿈틀, 하고 움직인다.
그리고.
“지금 그 말을 믿으라고 하는 말이냐!”
“아니! 지금 남의 방문을 부수고 들어온 게 누군데 큰소리야! 이거 엄연한 사생활 침해라고!”
“시끄럽다! 또 나 몰래 뭔가 하고 왔겠지. 빨리 이실직고해라.”
음… 일단 화부터 내 보는 작전은 씨알도 안 먹혔다.
“하아…….”
깊게 한숨을 내쉰 나는 대략적인 상황을 리엔에게 털어놨다.
해가 뜰 때까지 그럴싸하게 포장해서 혓바닥을 굴릴 예정이었는데, 그럴 시간적 여유가 사라지는 바람에 담백한 진실을 알려 주고 만 것이다.
“…아모스 왕자님을 네가 구했다고?”
“그래.”
“왜 그런 일을 상의도 없이……! 그렇게 위험한 일을 할 거면 나도 데려갔어야지!”
나는 화를 내는 리엔에게 할 말이 없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숙였다.
이럴 때는 시무룩한 얼굴로 아주 많은 반성을 하고 있다는 것을 어필하는 것이 덜 혼나는 비법이다.
그러면서도 나는 심심찮게 표시되는 메시지들을 읽어 내려갔다.
그리 큰 고민 없이 한 행동치고, 아모스를 빼돌린 것이 생각보다 크게 벌고 있었던 것이다.
직접적으로 쓸어버린 백작의 부하들은 물론이고, 아모스 왕자를 잡기 위해 쉬지 못하고 돌아다니는 병사들이 보내오는 후원도 적지 않았다.
어디까지나 간접적인 영향이라 한 명이 주는 양은 적다고는 해도, 주는 인원이 워낙 많아서 지금의 나도 절로 휘파람이 나올 만큼 짭짤했다.
현대의 한국에 비유하자면, 주말에 국지도발이 터진 최전방 병사들의 심정이 모이고 모여서 내 통장에 꽂히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 다분히 정치적인 판을 내가 뒤에서 지저분하게 흔든다면 어떤 결과가 도출될까?
나는 갑자기 궁금해졌다.
지금의 내 능력으로 소위 말하는 흑막이 되어 얼마나 큰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을지, 그리고 그런 내 행동으로 인해 나타나는 나비효과들이 나에게 어떤 결과를 가져다줄지가 말이다.
“루크! 지금 내 말 듣고 있는 거냐? 너는 다 좋아. 그런데 혼자 모든 걸 짊어지려는 그 태도가 문제다. 그렇게 내가 못 미덥…….”
나는 계속해서 나를 혼내는 리엔의 손을 덥석 잡았다.
“이, 이게 무슨 짓이냐!”
“너도 말했었지? 아모스 왕자는 절대 범인이 아닐 거라고. 나도 그렇게 생각했어. 물론 겉모습만으로 사람을 판단할 수는 없겠지. 그래도 우리가 본 그의 모습이라면, 진실이 밝혀질 때까지는 믿어 줘도 좋다고 생각했어.”
“이, 일단 이건 놓고 말을 해도 될 것…….”
손을 빼려는 리엔을 더욱 강하게 쥔 나는, 가장 안쓰러워 보이는 각도로 얼굴을 기울였다.
부드러운 금발 사이로 애처롭게 뜬 금안이 부각되도록.
그러자 리엔의 손에 힘이 풀린다.
떼어 내자면 체술과 육체 능력 모두 나보다 훨씬 뛰어난 리엔이 내 손을 뿌리치지 못할 리가 없다.
그래서 나는 그것을 그녀의 마음이 약해졌다는 신호로 받아들였다.
“확실히 우리 입장이 이런 일에 끼어들 입장은 아니란 것, 잘 알고 있어. 자칫 잘못하면 라메리안에도 피해가 갈 수도 있겠지……. 하지만 우리가 겉으로 드러나지 않더라도 충분히 도울 방법이 있지 않을까? 적어도 안전한 곳까지 데려다주는 정도는 할 수 있잖아.”
“…루크, 솔직히 말해라. 이번에도 무슨 꿍꿍이가 있는 거지? 나도 너를 적지 않게 겪었다. 너는 이런 상황에서 그런 이유로 감정적인 선택을 할 사람이 아니야.”
“…….”
쳇, 안 통하나?
나는 리엔의 날카로운 지적에 겸연쩍은 얼굴로 손을 놓아줬다.
예전 같으면 속아 넘어갔을 텐데, 붙어 있는 시간이 늘어나다 보니 이제는 나를 조금은 파악한 것 같았다.
나는 손으로 머리를 거칠게 흩트리며 다시 입을 열었다.
될 대로 되라는 심정으로, 나오는 말을 필터링하지 않고 말이다.
“젠장… 그래. 솔직히 말할게. 륑겐 백작 딸을 아모스가 안 죽였다면, 그걸 지금 좋다고 이용해 먹으려는 백작 짓일 확률이 높잖아. 정치적인 대의명분으로 쓰기 위해서 자기 딸을 죽였을지도 모르는 놈이라니……. 어떻게든 진상을 밝히고, 정말이라면 면상에 주먹을 꽂아 넣고 싶었을 뿐이야.”
“음… 확실히 그런 이유라면… 네가 움직일 것 같긴 하군.”
뭐? 방금 나보고 감정적인 선택을 하지 않을 사람이라고 하지 않았나?
나는 나를 무슨 분노 조절 장애가 있는 환자쯤으로 취급하는 리엔을 어이없게 바라봤다.
그런 나를 본 리엔이 손을 저으며 변명했다.
“오, 오해는 하지 마라. 네가 폭력적이라는 게 아니라, 이성적이라는 말을 하는 거니까. 다만 불의를 보면 참지를 못하는 사람이라는 거지.”
역시 변명을 그다지 해 보지 않은 사람이라 말에 모순이 한가득인 데다가 도대체 무슨 말을 하는지 알 수가 없을 정도다.
리엔 본인도 그걸 느꼈는지, 급히 말을 돌리려고 들었다.
“그, 그래도 네가 움직이기로 정했다는 건 다 계획이 있다는 거겠지? 앞으로 어떻게 할 생각이야?”
“당연히 계획이 있으니까 움직였지.”
자신만만하게 대답하는 나에게 벨로제의 목소리가 날아들었다.
-아무 계획도 없으시잖아요?
-제발 닥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