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ll special! Dungeon Master RAW novel - Chapter 102
102
나와 리엔이 륑겐 백작성을 빠져나올 수 있게 된 것은 다음 날 해가 질 때쯤이었다.
외성 전체가 통제당한 상태에서 성벽 밖으로 나오는 것은 아무리 다른 나라의 귀족인 우리라도 복잡한 절차가 필요했기 때문이다.
물론 그 전에 내가 마탑에 들러 루시아에게 생존 신고를 하느라 늦어진 것도 있긴 하지만.
어찌 됐든, 우리는 무사히 성을 빠져나와 비교적 낮은 계층의 영지민들이 사는 구역으로 나올 수 있었다.
이 세계에서 성벽의 보호를 받으며 살 수 있는 자들은 귀족이나 평민들 중에서도 상류층이라고 부를 수 있을 만큼 돈이 꽤나 있는 자들뿐이다.
인구의 절대다수는 성벽이 아닌 자신들이 쌓아 올린 목책에 기대어 사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라메리안에서까지 오셨는데 불미스러운 사건으로 고생이 많으십니다. 앞으로는 두 분 모두 무탈한 여행 되시길 바라겠습니다.”
나는 검문소장에 내미는 블랙 카드를 받아서 갈무리했다.
검문소장이 만면에 웃음을 머금고 우리의 행운까지 빌어 주는 것은 그가 심성이 고와서는 아니었다.
빡빡하게 통제된 통행을 가능하게 하는 과정에서 이자에게도 적지 않은 뇌물이 흘러들어갔기 때문이다.
그것마저도 타국의 귀족이라는 특수성이 없었더라면 불가능했겠지만, 들이지 않아도 될 노력과 금전이 소모된 것은 어쨌든 불쾌했다.
“수고하게.”
나는 감정이 담기지 않은 말로 백작성과 일별했다.
* * *
‘합법적’으로 백작성을 빠져나온 우리는 최대한 빠르게 아모스 왕자가 있는 해골 사원으로 향했다.
해골 사원에 아모스 왕자를 처박아 뒀다는 것을 알게 된 리엔은.
“뭐? 던전에 버려두고 왔다고? 드디어 미친 거냐!”
라며 놀랐지만, 나는 소환수를 배치해 두고 와서 괜찮다는 대답을 돌려 줬다.
물론 그것으로 완전히 납득을 시킬 순 없었지만, 가 보면 내 말이 맞았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그렇게 우여곡절 끝에 아모스 왕자가 있는 곳까지 도착한 나와 리엔이 가장 먼저 본 것은 주변에 널브러진 해골 조각들이었다.
“설마?”
그것을 본 리엔은 급히 방으로 들어갔으나, 더욱 파리한 안색이 됐지만 일단은 살아 있는 아모스와 한결 회복된 것처럼 보이는 호치를 보고는 가슴을 쓸어내린다.
주변에 흩어진 해골들은 자연스러운 연출을 위해 내가 일부러 보내서 그림자 망령에게 파괴시킨 싸구려 몬스터들이었다.
“정말… 오셨군요…….”
“왕자님의 상태가 너무 안 좋습니다!”
각각 아모스와 호치의 첫마디였다.
나는 불안한 얼굴을 한 호치에게 포션 한 병을 던져 줬다.
“그래도 제 말을 잘 듣고 용케 기다리셨군요. 그걸 마시면 상태가 훨씬 호전될 겁니다.”
포션을 받은 호치는 고맙다는 말도 없이 헐레벌떡 아모스에게 달려갔다.
“오랜만에 뵙습니다, 아모스 왕자님.”
파리한 얼굴로 포션을 받아 마시는 아모스에게 리엔이 정중하게 인사한다.
그러나 아모스는 입으로 흘러드는 포션 때문에 고개를 작게 끄덕이는 게 할 수 있는 대답의 전부였다.
나는 적당한 곳에 앉아서 그런 그들을 향해 물었다.
“도와줄 사람은 찾으셨습니까?”
내 질문에 아모스의 표정이 일변했다.
“첫째 형님이라면 지금 상황을 그저 보고만 계시진 않을 겁니다. 현재의 기형적인 왕국의 모습을 매우 안타까워하시는 데다, 아바마마와는 달리 분쟁이 무서워 피하실 분도 아니시니까요.”
“그 말은, 네즈빌의 1왕자님께선 륑겐 백작과의 내전도 불사할 만큼 단호하다는 말인가요?”
“당신이 간 후로 줄곧 생각을 해 봤습니다. 륑겐 백작은 지금까지도 노골적으로 자신의 권력을 과시했지만, 지금처럼 파격적으로 움직인 것은 처음입니다. 그만큼 철저한 준비를 했을 테고, 자신이 원하는 곳에 도달할 때까지 멈출 생각이 없을 겁니다.”
나는 아모스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어제는 정신이 없어서 횡설수설하더니, 그동안 생각을 많이 정리한 것 같다.
아무리 눈치가 없어도 지금 돌아가는 상황을 보면 백작이 요구하는 것들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었다.
아모스를 희생양으로 삼고, 백작의 요구 조건을 수용한다고 거기서 끝이 날까?
아니다. 아마 다음 희생양은 백작에게 시집오게 될 3왕녀가 될 것이다.
아모스처럼 살인자로 몰릴지, 사고를 가장해 죽이는 것으로 도발을 할지, 그것도 아니면 더 기발하고 사탄마저 손뼉을 치며 감탄할 계획이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륑겐 백작은… 브레나드 륑겐이란 인간은 쉽게 멈출 자가 아닙니다. 하지만 아바마마는… 저보다도 유약하십니다. 아마도 요구 조건에 응하려 하실 테죠. 그러니 제가 향해야 할 곳은 형님이 계신 곳입니다. 형님은, 절대 누이를 저런 자에게 보낼 분이 아니십니다.”
“형님이 있는 곳? 1왕자가 왕성이 아닌 다른 곳에 있다는 말씀이십니까?”
내 질문에 아모스가 무겁게 고개를 끄덕이며 말을 이었다.
“형님께서는… 북쪽에 계십니다.”
* * *
아모스가 북쪽에 있다고 말한 네즈빌의 1왕자, 아티프 네즈빌은 왕위 계승권을 갖고 있으면서도 왕국에서 가장 척박한 노스라인 성채를 굳건히 지키는 성주였다.
아모스의 말에 의하면 원래는 지방의 영주가 지켜야 할 성이지만, 그 영주마저 버린 땅이 된 이후로는 국왕 직할령이 된 땅이었다.
척박한 토지, 험난한 보급로도 물론 노스라인 성이 버림받은 이유들이었지만, 가장 큰 이유는 북쪽에 있는 던전 때문이었다.
몇 년 전 모험가들에 의해 발견되면서 깨어난 유적 형태의 던전은 각성한 이후로 끊임없는 냉기를 뿜어내 주변을 얼리고, 주기적으로 대량의 몬스터를 배출하기 시작했다고 한다.
물론 그게 적당한 선에서 이뤄진다면 오히려 지역 경제 활성화에 도움이 되는, 유전과 다를 바 없는 소중한 자원이 될 수도 있다.
륑겐 백작령만 해도 유명한 던전 몇 개 덕분에 모험가들이 와서 쓰는 돈으로 재정에 아주 큰 보탬이 되고 있으니까.
하지만 몬스터가 빠르게, 많이 발생하고, 심지어 장미 고성처럼 던전에 묶인 것도 아니고 침공을 해 온다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그걸 막아 내는 데 소모되는 물적, 인적 자원은 말할 것도 없고, 모험가들을 고용해서 틀어막는 것도 지속하기에는 너무나 많은 돈이 들기 마련이다.
요는 유전은 유전인데, 이게 석유를 꺼내서 팔면 돈이 되는 유전인가, 아니면 꺼내서 팔수록 손해를 보는 유전인가가 중요한 것이다.
노스라인 성 위쪽에서 발견된 던전은 그중에서도 꺼내서 팔지 않으면 불바다가 되는 가장 쓰레기 같은 유전이었다.
문제는 아모스가 이렇게 사정이 안 좋은 곳으로 손을 벌리기 위해 가야 하는 처지라는 것이었다.
그럼에도 아모스는 ‘형님이라면 저와 누이를 외면하지 않으실 겁니다. 언제나 본인께서 왕관을 물려받는다면 권력의 불균형으로 고통받는 백성을 구하겠다, 입버릇처럼 말씀하시던 분이시니까요.’라며 철석같은 믿음을 과시했다.
해서, 우리는 북쪽으로 향하기로 했다.
그러나 행선지가 결정됐다고 모든 것이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
“백작은 바보가 아닙니다. 왕자님이 도망친 이상 어떻게든 영지 밖으로 나가기 전에 잡으려 할 테고, 그 경로는 철통같이 지키고 있을 겁니다.”
“확실히 네 말이 맞을 것 같군. 아마도 이곳과 이곳, 그리고 이쪽 방면은 완전히 차단된 상태겠지.”
리엔이 내 말에 동조하며 어디를 가려고 해도 지나칠 수밖에 없는 영지 내의 요충지들을 손가락으로 짚으며 말했다.
“맞아. 그리고 무엇보다, 연고가 있는 자를 만나러 갈 방향은 더 꽉 막혔다고 봐야겠지. 그렇다면 이 산은 완전히 차단돼 있을 가능성이 커.”
“그렇다면 어찌해야 합니까? 이대로 있다가는 국왕 전하께서도 움직이기 시작하실 겁니다.”
호치의 걱정스런 물음.
그는 마치 왕이 아모스를 잡으려 들 것처럼 말하고 있었다.
하긴, 아모스도 그랬지. 유약하다고.
유약한 군주만큼 악한 존재도 드물다고 생각하는 나로서는 호치의 반응이 이해가 가긴 했다.
“어차피 영지 밖으로 나가려면 싸움을 완전히 피하는 건 힘들 겁니다. 손을 내밀어 볼 만한 사람이 북쪽에 있는 1왕자뿐이라면, 결국 북쪽을 뚫어야겠죠.”
나는 그렇게 말하며 펼쳐진 지도의 한 부분을 가리켰다.
내 입으로 완전히 차단됐을 것이라 확언했던 산이었다.
“완전히 차단됐겠지만, 그건 곧 포위망이 얇고 넓게 분포했다는 뜻. 최대한 빠르게 한 지점을 돌파해서 영지를 벗어나야 합니다.”
“…그게 가능하겠습니까?”
“불가능하면 독 안에 든 쥐가 되는 거죠. 저와 리엔은 지금이라도 떳떳하게 영지 밖으로도, 네즈빌 왕국 밖으로도 나갈 수 있습니다. 선택은 왕자님이 하셔야 합니다.”
멍청한 질문을 한 호치도, 딱딱한 얼굴을 한 아모스도 아무 말이 없어졌다.
나는 말을 잃은 둘 대신 리엔을 바라봤다.
“리엔, 네 의견은?”
“솔직히 가장 뚫기 힘든 쪽으로 넘어가는 건 내키지 않지만… 이 경우에는 네 말대로 어쩔 수 없을 것 같다. 우리의 위치가 드러나는 순간부터는 치열한 추격전이 될 테니, 결국 가장 정직한 방향으로 뚫어 내야겠지.”
리엔의 동의까지 얻어 낸 나는, 지도를 접어서 품에 넣었다.
“날도 딱 움직이기 좋게 어둡겠다, 바로 움직이도록 하죠.”
* * *
나와 리엔, 그리고 떨거지 둘은 전부 같은 복장을 하고 있었다.
검은색 가죽으로 만들어진 갑옷에 피로 칠갑 된 피에로의 얼굴이 그려진 가면을 쓴… 아주 수상한 몰골이었다.
나와 리엔의 신분을 숨기기 위해서 그런 것이지만, 지옥 상점에서 구매한 아이템들인 만큼 기본적으로 방어 성능이 뛰어나서 떨거지들에게도 ‘빌려’준 것이다.
“그냥 아주 쫙 깔렸다고 보면 돼.”
여느 때처럼 몬스터들을 통해 정찰을 마친 나는 일행에게 사태의 심각성을 알려 줬다.
그러나 리엔의 반응이 시큰둥했다.
“네 정찰 능력은 언제나 혀를 내두를 만큼 뛰어나지만, 지금이라면 나도 그 정도는 알 수 있다.”
“…….”
그녀의 말대로, 딱히 몬스터를 통한 정찰이 아니더라도 산을 가득 메우다시피 한 횃불의 숫자만 봐도 얼마나 철통같이 차단을 하고 있는지 알 수 있었다.
“저, 정말 저길 돌파할 생각이십니까?”
“뭘 그렇게 떨어요? 우리는 저것보다 훨씬 더 심각한 상황에서도 살아남았었는데.”
호치의 엄살을 일축하는 나를 본 리엔이 쓰게 웃는다.
나와 같은 상황을 떠올리고 있는 것 같았다.
“그 숲에서는 정말… 거기서 죽는 줄 알았었는데. 사방을 뒤덮은 불길하며, 어디서 덮치는지도 모르게 병사들을 유린하는 낫들까지…….”
“그때에 비하면 저 정도는 아무것도… 까지는 아니더라도 뚫어 낼 만하겠지?”
“물론이다.”
각오를 다진 우리는 아주 당차게… 산에 숨어들었다.
뚫어 낼 자신이 있는 것과 일부러 처음부터 들키는 것은 아주 많이 다른 개념이니까.
될 수 있으면 최대한 늦게 들키는 것이 좋지 않겠는가.
그러나 그런 바람은 그리 오래가지 못했다.
그나마 횃불이 가장 적게 분포하는 능선을 넘기 위해 산에 들어서자마자 미약하지만 확실히 느낄 수 있는 마력 파장이 산 전체로 퍼져 나가는 것이 느껴진 것이다.
아마도 탐지 계열의 마법 트랩에 걸린 것 같았다.
역시나 그것을 느낀 내가 경고를 하기도 전에 가까운 곳에서 밝게 빛나는 조명탄 같은 것이 하늘로 솟아오른다.
“벌써 들켜 버린 것 같습니다. 이렇게 된 이상 최대한 빠르게 뚫고 지나간 후에 추격을 따돌리는 수밖에 없어요.”
그렇게 말한 나는 앞장서서 산을 오르기 시작했다.
평소라면 풀벌레 소리만 가득해야 할 산이 수많은 쇳소리로 가득했다.
얼마나 올라갔을까, 횃불을 들고 산을 내려오는 일단의 병사들이 가시거리 내로 들어왔다.
“신호가 발생한 지점이 이 아래이니 지금부터는 조심…….”
나는 그들 가운데 로브를 입고 있는 자의 머리를 날려 버렸다.
퍼걱, 하며 선혈이 낭자하자, 횃불을 든 병사들이 기겁을 했다.
아무리 절대적으로 유리한 숫자를 자랑한다 해도 밤에 횃불을 들고 저렇게 움직이다니. 나에게 있어서는 과녁이 되어 주겠다는 것과 다를 바 없는 행동이었다.
그러나 다른 면에서는 철저한 놈들이었다.
마법사가 죽으면서, 아까 발생했던 것과 똑같은 마력 파장이 발생했다.
“이 새끼들, 마법사를 얼마나 동원한 거야?”
질렸다는 듯한 내 말과 동시에 리엔이 앞으로 치고 나간다.
리엔은 여섯 명의 병사들을 검은 뽑지도 않고 오직 맨손으로 순식간에 제압했다.
그녀가 병사들을 제압하는 사이 하늘에서 정찰 중인 공중 몬스터의 시야를 확인한 나는 혀를 찼다.
불빛들이 일제히 우리가 있는 방향으로 몰려들고 있었다.
우리는 구태여 포위당하면 안 된다느니, 이대로는 골치 아픈 놈들이 몰려올 거라느니, 하는 말을 하며 시간을 낭비하지 않았다.
그 시간에 한 걸음이라도 더 발을 놀리는 게 이 상황에서 멀어지는 답이라는 걸 알고 있기 때문이다.
“병사들은 나에게 맡겨라!”
다시 마주친 한 분대의 병사들을 본 리엔이 빠르게 튀어 나갔다.
아까 머리가 사라진 마법사의 시체를 씁쓸히 보던 그녀인 만큼, 최대한 병사들을 살려 주려는 모습이었다.
그런데, 그렇게 튀어 나간 리엔이 막 세 번째 병사의 턱에 주먹을 꽂아 넣는 순간, 몸을 뒤로 굴리며 검을 뽑아 들었다.
그리고 그런 그녀를 양분하듯 번쩍이는 붉은 검광 하나가 스친다.
챙!
맑은 쇳소리와 함께 날아간 리엔이 공중에서 몸을 빙글 돌리며 균형을 회복하려 했지만, 재차 날아드는 검광을 막아 내느라 결국에는 바닥을 굴렀다.
결국 완전히 무방비가 된 리엔이었지만, 아슬아슬하게 내가 날린 방패들이 그녀를 완전히 감싼다.
그러자 거짓말같이 날아들던 검광이 뚝 멎었다.
“분명히 우리보고 잡아 오라고 한 건 비실비실한 왕자였는데… 이건 웬 광대들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