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ll special! Dungeon Master RAW novel - Chapter 107
107
창과 왕좌는 서로 만나기 무섭게 서로 분해되어 갔다.
그렇게 해방된 마력의 폭풍 안에서 버틸 수 있는 건 나뿐이었다.
나는 소용돌이치는 마력을 어떻게든 찍어 누르려고 시도했다.
[…스킬 레벨… 상승…….].
.
.
곧 추락하는 전함의 계기판처럼 점멸하는 시야 속으로 스킬들이 강화됐음을 알리는 메시지가 흘러간다.
진작 몸이 가루가 됐어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로 염동력과 마력을 동원하고 있었고, 생전 겪은 적 없는 마력의 폭풍 안에서 피부로 마력을 느끼고 있으니 당연한 결과였지만, 그것에 일희일비할 여유는 없었다.
-마스터! 30초밖에 남지 않았어요!
벨로제의 외침이 내게 죽음이 유예된 시간을 알려 줬다.
하지만 나는 그녀와의 연결을 차단했다.
울음 섞인 목소리를 듣고 있으면 더 집중이 안 된다.
“으아아아아!”
나는 몸에 남은 힘을 모두 짜내서 부서진 왕좌가 뱉어 내는 마력의 방향을 돌렸다.
천장으로, 하늘로. 그것을 위해 지금까지 1단계부터 구매해서 쌓여 왔던 방패들도 동원해 마력이 흐를 길을 만들었다.
그렇게, 폭주하던 마력은 수많은 방패를 희생시키며 내가 만든 길을 따라 흩어졌다.
털썩.
[탈피의 효과가 소멸되었습니다.]나는 차가운 바닥에 드러누워 눈앞에 떠 있는 메시지를 바라봤다.
“으윽…….”
아슬아슬하게 시간을 맞춘 덕에 몸은 상처 하나 없이 멀쩡했지만, 마력을 바닥까지 긁어서 사용한 바람에 구토감, 현기증, 졸음, 오한 등 사람 기분을 더럽게 만드는 모든 것들이 나를 덮쳤다.
“루크!”
그런 나의 의식을 붙잡는 소리는 리엔의 것이었다.
그녀는 혼자서도 아니고, 옆구리에 사제를 끼고 피라미드를 달려오고 있었다.
“빨리! 빨리 루크를 살려!”
거의 던지다시피 사제를 내려놓은 리엔은, 예의와 격식을 다 던져 버린 채 소리쳤다.
정신을 차리기도 전에 헐레벌떡 나에게 신성력을 주입하는 사제.
나는 쥐꼬리만큼 나아지는 몸 상태를 느끼며 리엔에게 말했다.
“아… 직 적이 남았잖아…….”
리엔이 입술을 깨물며 대답한다.
“너는… 정말 이번에는 곱게 안 넘어갈 테니 각오해 둬라.”
그 말을 남긴 리엔은 포탄처럼 밑을 향해 날아갔다.
도약 한 번에 바닥에 도착한 리엔은 검을 한 바퀴 돌리며 다섯 개의 얼음 결정을 동시에 베어 낸다.
수정 기사도 자신을 지원하던 마력원을 잃어서인지, 속절없이 신비에게 구타를 당하고 있었다.
이제는… 나 없이도 상황이 정리될 것 같았다.
“정신 차리세요! 지금 정신을 잃으면 안…….”
나를 깨우려는 사제의 목소리가 희미하게 들렸지만, 나는 입이 돌아간다고 해도 정신을 차릴 수가 없을 만큼 힘들었다.
* * *
[강력한 마법사 프리다우스 케르니가 위대한 기사이자 사랑했던 여인, 클레어 이슈타르의 죽음을 막기 위해 영혼마저 얼릴 봉인을 행했다.프리다우스는 자신의 죽음을 더 이상 유예하지 못할 정도가 됐을 때, 자신이 사랑한 여인을 지키는 의지로써 존재할 것을 선택했다.
죽음의 끝자락에서 붙잡힌 클레어가 자신을 사랑하는 친우와 영원을 함께하게 된 것을 반겼을지, 그건 아무도 알 수 없지만, 프리다우스의 광기 어린 사랑만큼은 진짜였다.]
정신이 들고, 눈꺼풀을 들어 올리기도 전에 보인 것은 새로운 형식의 메시지였다.
맥락을 봐서는 얼음 유적에 관한 내막 정도로 생각되는 그것은, 알아봐야 별 쓸모가 없는 내용이었다.
이 수수께끼 같은 메시지가 왜 떴는지에 대한 단서는 쌓여 있는 다른 메시지들 사이에서 발견됐다.
탈피의 효과로 특성을 획득했다는 글귀. 나는 상태 창을 열어 특성들을 확인했다.
새로이 얻은 특성의 이름은 던전 공략자였다.
[던전 공략자(S 등급 특성)] [던전 마스터인 당신은 던전 공략에 있어서도 스페셜리스트입니다.] [공략하지 않은 던전에서 공략의 길을 찾을 수 있습니다.(해당 던전에 대한 이해도가 요구됩니다.)] [공략이 완료된 던전의 추가적인 이야기를 습득할 수 있습니다.]내 다른 특성들처럼 수치화된 것이 아니라 효과가 막연한 특성이었다.
그러고 보니 정신없는 와중에도 분명 왕좌가 홀로그램으로 점멸하던 것이 기억난다.
이미 던전을 공략할 방법을 찾은 후에 발동된 것을 봐서는 공략집 같은 느낌은 아닐지라도, 내가 찾은 방법이 맞는 것인지 확인할 수 있는 것만으로도 가치는 충분해 보인다.
그렇게 눈을 감은 채 밀린 메시지들을 보며 내게 무슨 일이 있었나를 체크한 나는, 슬슬 기절한 척은 그만하고, 눈을 떠 볼까 생각했다.
‘아, 그 전에…….’
마지막에 벨로제의 말을 무시하고 차단했던 것을 떠올랐다.
급박한 상황이라 그러긴 했지만, 걱정해 주느라 울던 녀석을 매몰차게 차단한 것이 내심 미안해졌다.
그래서 나는 눈을 뜨기 전에 벨로제에게 한마디 말이라도 해 주기로 했다.
눈을 뜨면 리엔에게 짧지 않은 잔소리를 들어야 할 테니까…….
그렇게 막 차단을 풀고 벨로제와의 연결을 이은 순간-
퍼억!
“커억!”
나는 갑작스레 배에 느껴지는 충격에 눈을 부릅뜨며 비명을 질렀다.
순간 오만가지 생각이 다 들었다.
기절한 척하던 것을 들켜서 리엔이 분노의 철권을 꽂은 걸까? 아니면 새로운 적이 나타난 걸까? 제 주인이 얻어맞는데 신비 이놈은 뭘 하고 있는 거지? 같은 생각이 머리를 스친다.
그러나 그런 생각은 순식간에 백지장이 되어 버렸다.
말캉, 하는 감촉이 얼굴을 뒤덮은 것이다.
“우와아아앙!”
그리고 익숙한 목소리. 그것도 울음소리가 들렸다.
“누, 누구냐!”
내 주변에서 쉬고 있었을 리엔을 비롯한 일행들이 무기를 꺼내 드는 소리가 혼란하게 뒤섞였다.
내가 느꼈던 복부의 충격은, 벨로제가 떨어지면서 무릎으로 시원하게 찍어 버린 충격이었던 것이다.
-야! 갑자기 튀어나오면 어떻게 해!
“어허어어엉……!”
나는 벨로제가 전혀 듣고 있지 않다는 것을 눈치채고, 그녀를 밀어내서 시야를 확보해 급히 주변을 살폈다.
“잠깐!”
나는 갑작스런 상황에 반사적으로 벨로제를 베어 넘기려는 일행에게 소리치며 생각했다.
‘아… 차라리 다시 기절하고 싶다.’
* * *
나와 리엔, 기사들, 사제, 마법사는 졸지에 학예회를 관람하는 학부모들처럼 벨로제를 향해 시선을 모으고 있었다.
그나마 도대체 왜 쓰고 있는지 차마 물어보기도 싫은 요상한 모자가 앙증맞은 뿔을 가리고 있어서 다행이다.
그게 아니었으면 거짓말도 할 수 없었을 테니까.
“훌쩍.”
그 앞에서 코를 훌쩍이며 쭈뼛거리는 머저리 하나.
신비는 나의 분노를 느끼고 재빠르게 노리개로 변신해 현장에서 도망친 상태였다.
“저, 저는…….”
내 날카로운 눈빛에 몰린 벨로제가 겨우 입을 열었다.
-저는 이곳에 봉인되어 있었습니다.
“저는 이곳에 봉인되어 있었습니다.”
나는 벨로제의 입에서 나와야 할 거짓말을 실시간으로 제조하며 일행의 반응을 살폈다.
아직 의심의 눈초리를 거두지 않는 일행들.
특히 리엔의 손은 검집 안에 들어 있는 검을 언제들 뽑을 준비를 하고 있는 상태였다.
물론 벨로제는 그런 리엔보다 내 눈빛을 겁내고 있었지만.
그래서 그녀는 내가 전달하는 말들을 토씨 하나 틀리지 않고 옮기기 위해 천천히 말을 이었다.
“저를 이곳에 봉인한 자는… 변태였어요. 하지만 동시에 강력한 마법사이기도 했던 그는, 지속적인 구애에도 제가 넘어가지 않으니 어느 순간 돌변해 저를 납치했습니다.”
이럴 때는 역시 정정당당하게 선동과 날조로 승부를 봐야 한다.
프리다우스인지 프라이우스인지 하는 놈에게는 미안하지만, 일단은 내가 살고 보는 게 먼저다.
그리고 아닌 게 아니라 서로 좋아했다는 말은 없었으니, 실제로 변태여서 이런 던전을 만들었을 가능성도 없지 않아 있었다.
억울하다고? 그럼 살아나서 반박하시던가.
“그는 저를 납치해서 가질 수 없으면 영원히 박제하겠다며 이곳을 만들고, 저를 봉인했습니다. 수백 년을 얼어붙은 채로 고통받고 있었죠……. 그런데 그런 저를 속박하던 봉인을, 저분께서 부숴 주셨어요. 그래서 너무나 기쁘고, 하마터면 그런 분이 죽을지도 몰랐다는 사실에 감정이 북받쳐 울었던 거예요.”
“그 강력한 마법사라는 사람의 이름이 뭐죠?”
역시나 마법이라는 단어에 가장 민감하게 반응하며 질문을 한 것은 마법사였다.
-잘 모른다고 해. 웬 변태 영감이 계속 쫓아다녔다고.
-그, 그래도 돼요……?
-해.
“…저, 저는 그가 누구인지도 잘 몰랐어요. 그냥 변태 할아버지라고 생각하고 피해 다녔을 뿐이에요…….”
내 말을 듣고 다시 내뱉느라 우물쭈물하는 벨로제의 태도는, 그녀의 가녀린 외모와 맞물려서 오랜 시간 잠들었던 불쌍한 소녀 같은 분위기를 풍겼다.
그리고 그건 아주 효과가 뛰어났다.
“세상에… 그렇게 추하고 사악한 변태가 있다니. 마음을 받아 주지 않는다고 영원히 얼려서 박제를 한다고요? 신이시여…….”
여사제의 경멸 섞인 반응.
“이런 던전을 만들어 낼 정도로 강력한 마법사가 그런 욕망 하나를 못 이겨 추악한 쓰레기가 되다니… 역시 강한 힘을 가진 것이 다가 아니군. 인성이 완성되지 못한 자는 괴물이나 다름없는 거야…….”
리엔의 반응은 기사들을 대표하는 반응이었다.
벨로제가 뭔가 있어 보이면 의심이 이어졌겠지만, 쟤는 정말로, 과장 하나 섞지 않고 말해서 엘라나 크리스와 전투력이 동일하다.
입으로나 악마 타령을 하고 있는 거지, 몸에서 느껴지는 마력은 그야말로 반딧불한테 밀릴 정도고, 육체적인 능력은 허약하기 그지없었다.
거기에 가녀린 외모까지 더해지니 의심 대신 동정을 받기 시작했다.
나는 그렇게 벨로제에게 관심이 쏠린 사이에 얼음 유적의 소유권을 획득했다.
그런데… 땅값이 헐값이었다.
그야말로 던전이 완전 빈 깡통이 된 것이다.
아마도 내가 얼음 유적을 이루던 모든 것들을 완전히 박살 내 버린 탓에 이렇게 된 것 같았다.
얻은 게 없는 것은 아니지만, 레비아탄에게서 얻은 강력한 카드를 소모한 것을 생각하면 아쉬운 성과가 아닐 수 없었기에, 나는 짙은 아쉬움을 느꼈다.
그때, 시종일관 모른다는 답변을 하는 벨로제에게서 다른 곳으로 관심을 돌린 마법사가 비명을 질렀다.
“잠깐만요! 이거 전부 마정석이잖아요!”
그녀는 나를 보며 동의를 구했다.
그 호들갑에 둘러보니 정말로 주변을 둘러싸고 있는 천장, 벽, 바닥에 수정들이 전부 마정석이었다.
이렇게 엄청난 양의 마정석을 순식간에 만들어 낼 정도의 마력이라니… 괜히 벨로제가 울면서 튀어나온 게 아니다 싶다.
“설마 아까 그 마력의 격류 때문에 만들어진 걸까요?”
“아마도… 그렇겠죠……?”
나는 일단 아는 척 대답하며 머리를 굴렸다.
이 정도로 풍부한 마정석이 생겼다는 건 그만큼 여기에 많은 모험가나 다른 자들이 몰려들 것이란 뜻.
지형 변형을 이용해서 마정석을 적당히 캐기 힘들게 위치를 조정하고, 몬스터를 적절히 배치하면 대인기 던전을 만들 수 있을 것 같았다.
헐값에 산 부지가 알고 보니 금광보다 더 가치가 높은 땅이 된 상태였을 줄이야.
역시 세상일은 끝까지 가 봐야 하는 것 같다.
최선은 아니지만, 일단 최악은 아닌 방향으로 던전 공략을 마친 나는 이제 일단락을 맞이하는구나, 하는 생각에 긴장을 풀었다.
그러나 나는 간과하고 있었다.
이런 혼란한 와중에도 리엔이 약속을 잊지 않고 이를 갈고 있다는 것을.
* * *
성으로 돌아온 나는 그 누구도 만나지 않고 바로 방으로 옮겨져 특별 치료에 들어갔다.
정신은 차렸지만, 마력을 너무 소모하는 바람에 며칠 요양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보고는 나 말고 다른 사람들로도 충분했다.
중간에 같이 걷던 벨로제가 바깥에 있을 수 있는 제한 시간이 다 되는 바람에 흐릿해지면서 사라지는 통에 난리가 나긴 했지만, 그건 모르쇠로 일관하면 되는 것이기에 문제가 되지 않았다.
나도 같이 놀라서 허둥대는데 누가 나에게 묻겠는가.
앞으로 또 불미스러운 일이 생겨도 봉인을 깬 사람이 나인 탓에 들러붙은 정령… 은 아니고 조금 모자란 반쪽짜리 귀신 정도로 취급하면 되니까.
꼬치꼬치 캐묻는 마법사에게 모릅니다, 모르겠군요, 저도 처음 봅니다, 기억나지 않습니다, 같은 대답을 주구장창 하느라 잠시 내 직업이 국회의원이 된 것처럼 느껴지긴 했지만 말이다.
그렇게 내가 요양을 하는 사이, 노스라인 성의 분위기는 급변했다.
정찰대를 파견해 정말 얼음 유적이 공략된 것을 확인한 아티프가 잠재적인 전쟁 준비에 들어간 것이다.
이제는 륑겐 백작이 물러서지 않는다면, 왕이 말려도 내전을 벌일 기세였다.
그리고 침상 생활이 이틀째로 접어들었을 때, 나는 리엔을 향해 그동안 정리한 생각을 털어놨다.
“리엔, 우리는 여기까지만 하자.”
내 첫마디에, 리엔의 눈이 커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