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ll special! Dungeon Master RAW novel - Chapter 109
109
보급로를 차단한 병력이 아티프 왕자에 의해 후퇴한 것은 이틀 뒤였다.
원래는 더 빨리 몰아낼 수 있었겠지만, 완전히 전투태세를 갖추고 출정을 하기 위해서 이만큼 늦어진 것이다.
어쨌든 아티프 왕자는 차단됐던 곳에 아예 임시 주둔지를 꾸리고, 언제라도 바로 전쟁에 임할 수 있는 상태를 유지하는 모습을 보임으로써 륑겐 백작에게 무언의 경고를 보냈다.
그리고 나와 리엔은 륑겐 백작의 봉신들이 완전히 물러간 시점에 예정했던 대로 다시금 길을 나섰다.
* * *
“요즘 분위기가 말이 아니던데, 계속 여기에 있어도 되는 건가?”
“그러게 말이야. 얼마 전 이쪽으로 넘어온 놈들 말로는 륑겐 백작 휘하에 있는 귀족들이 전부 전쟁 준비에 들어간 것처럼 보였다던데.”
“그쪽 영지에서 온 놈들이 있었나?”
“그 왜, 제프 놈 패거리가 그쪽에 있다 왔잖아.”
“아아… 그놈들?”
노스라인 성을 뒤로한 지 벌써 닷새. 나와 리엔은 허름한 여관 1층에서 식사를 하며 다른 모험가들의 잡담을 듣고 있었다.
하나같이 불안한 네즈빌 왕국의 상황을 논하며 내전에 대한 걱정을 하고, 혹시 모를 전화를 피해 다른 곳으로 사냥터를 옮길 궁리를 하는 모습.
처음에 거쳐 왔던 마을에서보다 더 심해진 모습이었다.
그만큼 모험가들이 느끼는 상황마저 안 좋아지고 있다는 뜻이다.
저런 자들이 전화를 피해 다른 곳으로 빠져나가면, 그들에 의해 조절되던 몬스터들이 불어나게 되고, 그 피해는 삶의 터전을 옮길 수 없는 영지민들의 몫이 될 확률이 아주 높다.
상황이 내가 예상했던 대로 흘러가고 있었지만, 그다지 뿌듯하지는 않았다.
조금만 생각해 보면 어렵지 않게 유추할 수 있었던 문제였으니까.
“소화도 시킬 겸 슬슬 밖으로 나갈까?”
잠시 다른 생각을 하던 내 의식을 리엔의 차분한 목소리가 다시 불러왔다.
그러나 별로 반가운 내용은 아니었다.
마치 산책이라도 하자는 듯한 그녀의 제안에 우리가 향한 곳은 어두워진 탓에 사람 그림자도 보기 힘들어진 여관 뒤쪽의 공터였다.
꽤나 수풀이 우거진 공터에 내리는 달빛은 이곳을 연인들의 밀회 장소로 적합하게 만들었지만, 정작 우리는 서로 마주 본 상태로 몸을 풀고 있었다.
그리고 준비가 완료되자마자 말없이 돌진해 오는 리엔.
나는 기세 좋게 돌진해 오는 그녀를 향해 주먹을 내뻗었지만, 가뜩이나 작은 키를 이용해 더욱 낮게 자세를 깐 리엔은 마치 뱀이 나뭇가지를 타고 오르는 것처럼 부드럽게 내 간격 안으로 파고들었다.
뻐억.
그렇게 이어지는 북 터지는 소리는, 당연히도 내 복부에 주먹이 꽂혔음을 의미했다.
“우웨엑!”
단 한 방에 저녁에 먹은 것을 게워 내는 신세라니.
얼음 유적에서 단단히 화가 나서 각오하라고 이를 갈던 리엔이었지만, 이렇게까지 뒤끝이 길 줄이야…….
물론 매일 시간 날 때마다 이어지는 이 대결이 단순한 화풀이 용도는 아니다.
위기가 닥치면 몸부터 나가는 마법사를 본 적이 없다며 화를 낸 리엔은, 내게 근접 전투 능력 또한 필요하다고 역설하며 내 다른 능력을 봉인한 채 신나게 두들기기 시작한 것이다.
나도 처음에는 괜찮은 제안이라고 생각해서 수락하긴 했다.
격투술 스킬을 배우면서 나도 생각했던 부분이고, 검술과 비슷한 격투 능력을 보유한 리엔이 스승이 되어 준다면 배울 점이 많을 테니까.
그러나 지금까지 기술적인 부분에 대한 가르침은 전혀 없이 오직 신나게 얻어맞기만 하고 있으니 몸과 마음이 고달픈 게 사실이다.
“경솔하게 주먹을 뻗지 마! 나는 키와 체격에서 너에게 상대가 안 돼. 손에 무기를 쥐고 있든 안 쥐고 있든, 거리가 가장 중요한 부분이다. 상대에 따라 네가 유리한 거리를 유지하는 것부터 생각해.”
나는 할 말이 많았지만, 하지 않았다.
내가 몸을 일으키고 자세를 잡자, 다시 리엔의 공격이 시작됐다.
거리, 거리, 거리…….
나는 리엔이 내 간격 안으로 들어오는 것을 막아 보기 위해 자세를 바짝 낮추는 그녀를 향해 무릎 차기를 시도했다.
고작 1레벨이긴 하지만 스킬의 보정이 들어간 무릎 차기는 꽤나 날카로운 선을 그으며 날아갔다.
그러나 리엔은 내 공격을 가슴으로 받아 내며 균형을 무너뜨리고, 그대로 나를 바닥에 쓰러뜨렸다.
이보다 더 깔끔하기 힘든 테이크 다운.
“크윽!”
“너는 머리가 좋아. 내가 자세를 낮추는 것을 보고 그것에 맞는 대처법을 생각하지. 하지만 네가 싸우는 간격과 우리가 싸우는 간격은 다르다. 10가지 수를 생각해 놔도 그게 동나는데 1초도 걸리지 않는 게 근접한 거리에서의 수 싸움이야.”
민망한 자세를 취한 나를 깔아뭉갠 리엔의 설명.
하지만 나는 그녀의 친절한 가르침을 받기에는 정신이 없었다.
갑옷도 입지 않은 데다, 나를 제압하기 위해 몸을 밀착한 탓에 그녀의 숨결까지 느껴질 지경이었기 때문이다.
“이, 일단 일어나서 이야기를……!”
“첫날 말했듯이 어떤 무기를 쥐더라도 시작은 여러 상황에서 맞아 보는 거다. 피하든 막든 일단 살아남는 방법을 배워야 공격이란 걸 해 볼 수 있으니까. 그 말은…….”
말끝을 흐리는 리엔에게서 불길함을 느낀 나는, 반사적으로 고개를 틀었다.
아니나 다를까, 리엔의 작은 주먹이 쐐액, 하고 귓가를 스쳐 바닥을 강타했다.
“이런 자세에서도 맞아 봐야 한다는 뜻이다.”
“젠장……!”
달빛을 등진 리엔이 씨익 웃는다.
“말했지? 가만 안 둔다고.”
달빛이 내리는 낭만적인 숲속의 공터에서 뒤엉킨 남녀.
단어만 보면 부러워 할 놈들도 있겠지만, 나에게는 아나콘다에게 붙잡힌 아기 사슴의 심정을 간접적으로 체험하는 끔찍한 시간이었다.
* * *
다음 날, 나는 평소라면 상대도 안 될 몬스터들을 상대하는 대신 염동력을 봉인한 상태로 오직 맨몸만을 사용해서 놈들을 상대했다.
수많은 놈들이 몰려오는 바람에 제대로 맞았으면 치명상이 될 공격들도 허용하긴 했지만, 내 몸은 온갖 마법 장비들로 보호받고 있었다.
저급한 오크의 도끼질 정도는 묵직한 주먹질에 타격당한 정도의 충격밖에 남기질 못한다.
그렇다고 해도 수십 마리의 오크가 밀려오는 것은, 그것만으로도 압도적인 질량이 되었기에 최대한 빠르고 정확하게 놈들을 무력화시킬 필요가 있었고, 내 주먹과 발길질은 단 1초도 쉴 틈이 없었다.
-형님, 뒤쪽으로 암컷들과 새끼들이 도망가는데 어떻게 할까요?
넓은 오크 부락에서 도망치는 오크가 있을 것을 우려해 감시를 맡긴 신비에게서 보고가 들어왔다.
-죽여.
잠시 고민하던 나는 짧은 명령을 내렸다.
어차피 이곳은 오크들이 꾸린 마을. 던전이라고 하기에도 애매했고, 이런 공터를 던전화하는 것은 포인트 효율이 완전 바닥이다.
어차피 내 소유가 되지 못할 몬스터들을 괜히 살려 줄 필요는 없었다.
“음, 확실히 많이 맞은 덕인지 빠르게 실력이 는 것 같군.”
내가 긴 송곳니를 드러내며 달려드는 오크의 턱에 짧은 어퍼컷을 꽂아 넣는 것을 본 리엔이 뿌듯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는 훈련을 명목으로 나를 부려먹고 있었던 것이다.
물론 나도 의미 없는 노가다보다는 격투술이라도 훈련을 하는 게 낫다는 것은 인정하지만, 왠지 나만 고생하는 기분이라 입술이 튀어나오는 건 어쩔 수 없었다.
“많이 맞아 봤으면 그다음은 많이 때려 볼 차례다. 맞아도 죽지 않는다는 생각으로 받아 내지 말고, 최대한 피해 가면서 때려. 오크들이 네 방어구를 뚫을 수 있는 무장을 갖춘 적이었다면 너는 오늘 10번도 넘게 죽었어!”
심지어 나를 피해 도망치는 오크 몇 마리를 베어 넘기며 윽박을 지르기까지 한다.
그래도 나는 불평하지 않고 그녀의 말대로 최대한 공격을 피해 가며 오크의 숫자를 줄여 갔다.
심지어 맞아도 별로 아프지도 않을 공격을 피하기 위해 흙바닥에 몸을 굴리기까지 했다.
나도 훈련의 성과가 있다는 것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스킬 레벨은 답보하고 있지만, 그것과는 별개로 근접한 적을 상대하는 것에 대한 판단력, 그리고 기술적 향상도 눈에 띌 정도였다.
많이 맞으면서 자연스럽게 보게 되는 동작들을 자연스럽게 따라 하게 된 것이다.
그런데 막 찔러 들어오는 창을 아슬아슬하게 빗겨 피하고 무릎으로 오크의 복부를 가격했을 때, 뻐억, 하는 호쾌한 타격음과 함께 눈앞에 홀로그램이 출력됐다.
[격투술의 레벨이 상승했습니다.]드디어 격투술의 레벨이 상승했다.
“…….”
정말 뭐라 표현할 수 없는 감정이 올라왔다.
노스라인 성을 나서자마자 인적 없는 곳에서 조그마한 소녀에게 무자비한 구타를 당하던 기억들…….
물론 나를 위한 일이란 것을 알고 있음에도 서러운 것은 어쩔 수 없었다.
그러나 이제는 1에서 2가 됐으니, 두 배나 강력해졌을 테고, 그 말은 한 대 정도는 때려 볼 기회가 생길 수도 있다는 이야기였다.
그렇게 내가 눈앞에 뜬 글자를 한 획, 한 획 뜯어 보면서 행복 회로를 돌릴 때.
퍼어억!
옆에서 엄청난 소리가 들렸다.
자연히 내 고개는 소리가 난 곳으로 돌아갔고, 그곳에는 리엔의 강철 건틀렛에 의해 두 마리의 오크가 동시에 배에 구멍이 뚫린 광경이 기다리고 있었다.
“…….”
나는 오크들의 내장이 부채꼴 형태로 퍼져 있는 모습을 보고 방금 떠올렸던 상상들을 조용히 집어넣었다.
아직… 다른 능력을 봉인하고 그녀를 때려 볼 기회는 없을 것 같다.
“후우…….”
대충 정리를 끝낸 나는 살짝 가빠 오는 숨을 골랐다.
역시 몸만 써서 전투를 하다 보니 아무리 약한 몬스터를 상대로 싸워도 체력 소모가 상당했다.
“이 정도면 당분간은 오크들이 민가를 습격할 일은 없겠지?”
“그렇겠지. 아무리 번식력이 좋다고 해도 부락 안에 있는 놈들은 싹 정리를 했으니까. 밖에 나가 있던 놈들이 있다고 해도, 인간을 위협할 만큼 집단을 이루려면 꽤 걸릴 테니까.”
우리는 잔뜩 쌓인 오크들의 시체를 보며 대화를 나눴다.
그렇게 잠시간의 휴식을 취하면서도, 나는 다른 것을 병행했다.
-벨로제.
-…….
나는 습관적으로 벨로제를 부르다, 돌아오지 않는 대답에 아차, 하고 혀를 찼다.
그녀가 내 고객 등급이 올라가면서 새로이 교육을 받기 위해 어디론가 갔다는 것을 또 깜빡했다.
드디어 자신도 진급을 한다면서 들뜬 모습에 다른 판매원들 사이에서 기죽지 말라고 용돈도 쥐여 줬으면서, 부르면 바로 튀어나오던 그녀이기에 없는 게 어색했다.
내 몬스터들을 통제할 수는 없지만, 모니터링은 가능해진 그녀에게 흩어 놓은 몬스터들이 보내는 정보를 정리하는 것을 시켜 놨었는데, 지금은 노예가 자리에 없어서 예전처럼 내가 해야 하게 된 것이다.
“오크들은 저번 마을에서처럼 처리할까?”
일단 묻긴 했지만, 리엔은 당연히 동의를 할 것이기에, 나는 그녀가 고개를 끄덕이기도 전에 오크들의 시체를 한곳에 몰아 놓기 시작했다.
나에게는 푼돈이지만, 근처 마을에 사는 사람들에게 가져다 팔라고 하면, 그 돈은 혹독한 시기를 견디게 될 자들에게 단비 같은 돈이 되어 줄 것이다.
그렇게 시체들 정리를 마친 나는, 륑겐 백작령과 노스라인 성 인근에 퍼진 공중 몬스터 편대의 시야를 확인하며 걸었다.
고블린 굴까지는 꽤나 거리가 있어서 이동하는 데 시간이 조금 남았기 때문이다.
륑겐 백작령은 내가 그곳에 있을 때부터 전투태세를 갖춘 상태였지만, 노스라인 성 근방은 그곳과는 비교도 안 되게 분위기가 험악했다.
아티프 왕자가 보급로를 확보하면서 새로이 만든 임시 주둔지 근처로 새로운 부대들이 집결한 것이다.
분위기만 봐서는 생각보다 빨리 유혈 사태가 벌어질 분위기였다.
륑겐 백작이 적지 않은 봉신들의 세력을 이끌고 수도로 갈 것이라는 소문도 들리는 상황.
명분은 3왕녀를 맞이하러 간다는 것이지만, 누가 봐도 반역이나 다름없는 모양새다.
이런 상황까지 왔는데도 왕실에서는 이렇다 할 반응이 없는 것을 보니, 아모스의 말대로 지금의 왕은 유약하기 짝이 없는 것 같았다.
아마도 아티프의 단호한 태도와 실질적인 움직임이 아니었다면 벌써 아모스는 처형당하고, 3왕녀 아리니는 백작의 첩으로 팔려 갔을 것이다.
그런 후에는 다시 아리니를 희생양으로 새로운 분쟁을 만들었을 테고.
나는 마지막으로 보병들의 걸음으로도 1시간도 채 걸리지 않을 위치에 주둔지를 꾸리고 있는 아티프 왕자와 백작 휘하의 봉신들 진영을 살핀 후에 화면을 치웠다.
오늘 일정의 마지막 장소. 고블린 굴에 도착한 것이다.
나는 이번에도 고블린들을 맨손으로 때려 죽인 뒤, 던전 소유권을 획득했다.
언젠가 네즈빌 왕국이 안정되고, 다시금 모험가들이 이곳을 찾을 때 장사를 시작할 수 있도록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