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ll special! Dungeon Master RAW novel - Chapter 113
113
나는 처절한 외침과 함께 주변에 굴러다니는 창 한 자루를 날려 보냈다. 이렇게까지 간절하면 뭐 하나라도 각성해야 하는 게 아닐까 하는 억울한 심정을 담아서.
그런데, 내 심정과는 달리 이변은 다른 곳에서 일어났다. 리엔이 묻혀 있는 돌 더미 안에서 밝은 빛이 흘러나온 것이다.
촤악!
그 빛은 그대로 검광이 되었다. 천천히 다가오는 어둠을 가르며 나아간 빛의 검은 시종일관 여유를 잃지 않던 케네스마저 당황하게 만들었다.
처음으로 그녀가 뒤로 물러난 것이다.
“루크… 시간은 내가 끌 테니, 너는… 방법을 찾아라.”
트리시아의 심장에 박아 넣었던 신성한 창처럼 하얗게 불타오르는 검을 쥐고 일어선 리엔이 나를 바라보며 말했다.
나 또한 몰골이 말이 아닌데도 내가 만든다고 했던 방법을 신뢰하고서.
그런 그녀의 눈에는 하얀 빛이 흐르고 있었다.
각성은… 내가 아니라 리엔이 한 것이다.
* * *
나는 이게 승기를 잡을 마지막 기회라는 생각에 삐걱거리다 못해 무너져 내릴 것 같은 몸을 억지로 일으켜 총력을 다 해서 리엔을 서포트하려 했다.
“정말… 정말 아름다운 분이군요. 그런 당신이 다른 내는 비명은… 다른 나약한 자들의 비명과는 차원이 다르게 달콤하겠죠?”
그 희망은 한발 물러났던 케네스가 묘한 열기를 띠고 리엔을 바라보면서 점차 희미해졌다.
그녀에게서 느껴지는 힘이, 지금까지와는 차원이 다르게 강력해지고 있었던 것이다.
“리엔! 도망쳐!”
최초에 엄청난 거리를 순식간에 좁히는 케네스를 보고, 도주하면서 시간을 끄는 플랜은 아예 머릿속에서 지웠었다.
하지만 지금 느껴지는 기운은 그 기억마저 삭제시킬 정도로 불길했다.
콰콰콰콰콱!
필사적으로 거리를 벌리려는 내게 케네스의 공격이 날아왔다.
수십 마리의 검은 뱀이 지면을 뒤집으며 다가오는 공격.
‘내가 던전이다’를 발동한 상태에서도 순수한 신체 능력만으로는 피할 수 없을 빠르고 광범위한 공격이었다.
최대한 방패를 앞세우고 몸을 웅크렸음에도 팔이, 허벅지가, 옆구리가 속절없이 유린당했다.
“커어억!”
한 차례의 공격이 휩쓸었다고는 상상하기 어려운 폐허 속에 널브러진 나는 피로 얼룩진 시야 사이로 빛과 어둠이 물결치는 것을 바라봤다.
그러나 어둠은 거대했고, 이제 겨우 피어나기 시작한 빛은 그 어둠에 비해 너무나 초라했다.
결국 리엔은 넝마나 다름없는 상태로 케네스에게 붙잡히고 말았다.
그렇게 리엔을 생포한 케네스는 나를 향해 다가오면서 쉴 새 없이 나를 내리쳤다.
쾅, 쾅, 쾅.
지축이 뒤흔들리는 듯한 충격은 아무리 내가 입고 있는 옷이 방어력이 뛰어난 고단계 아이템이어도 견뎌낼 수 없는 파괴력을 가지고 있었다.
“쿨럭……!”
겨우 공격이 멈췄을 때는 방어구가 전부 박살 난 상태였다.
“이 소녀가 당신에게 소중한 존재인가요?”
리엔을 들어 보이며 내게 묻는 케네스. 그러나 나는 대답하지 않았다. 아니, 정확히는 대답할 기력이 없었다.
그러자 검은 영기가 내 따귀를 때린다.
“왜 대답을 하지 않는 거죠? 이 소녀가 당신에게 아무것도 아니란 뜻인가요? 그렇다면…….”
촤악, 하는 소리와 함께 리엔의 왼손 검지가 절단됐다. 그러나 이미 완전히 의식을 잃은 리엔은 손가락이 잘리는 통증에도 미동 하나 없었다.
“제가 마음대로 해도 괜찮다는 뜻이겠죠?”
그것을 본 나는 넘어오려는 피를 삼키고 겨우 말을 뱉어 냈다.
“미친년…….”
“역시… 이 소녀가 소중하군요? 이유가 뭐죠? 역시 아름답고 강인한 육체 때문이겠죠. 저와는 달리 선천적으로 아름답게 태어났을 테니…….”
케네스는 질문인지 독백인지 모를 말들을 쏟아내며 리엔의 손가락을 하나 더 잘라 냈다.
나는 그만하라고 소리치려는 자신을 겨우 억제했다.
지금 흥분하는 모습을 보여 주면, 저 미친년이 무슨 짓을 할지 모른다.
“…그럼 내가 묻지. 너는 이런 짓을 하는 이유가 도대체 뭐지?”
“질문에 대답을 하세요!”
내가 대답 대신 질문을 하자, 케네스는 처음으로 언성을 높였다.
동시에 리엔의 손목도 절단되어 툭 하고 땅에 떨어진다.
나는 욕이 목구멍까지 올라왔지만, 그래도 꾹 참았다.
목숨만 붙어 있다면… 어떻게든 원래대로 돌려줄 수 있는 세계니까.
“…이것 봐요. 손까지 잘라 버렸잖아! 이 아까운 걸… 저 예쁘장한 입에서 비명이 나오는 걸 들었어야 하는데, 비명도 못 듣고 이만큼이나 낭비해 버렸잖아요!”
케네스는 바닥에 떨어진 리엔의 손을 보며 안타까운 표정을 지었다.
푸욱.
젠장, 안타까우면 안타까운 거지, 왜 멀쩡한 종아리에 구멍을 내는 건지. 정말 제대로 미친년이었다.
그나마 워낙 부상이 심각해서 그런지 아릿한 통증 정도만 느껴져서 비명도 안 나온다. 이게 다행이라고 할 수 있는 일은 아니겠지만.
지금 상황만 보면 이대로 죽어도 이상하지 않을 상황이지만… 아직 실수를 만회할 기회는 있다.
이런 미친 사람들일수록 한번 제대로 포인트만 잡으면 대화로 시간을 끄는 건 그다지 어렵지 않을 터.
그사이에 벨로제 위에 있는 놈들이 조치인지 뭔지를 내리기를 기대하는 수밖에 없었다.
“사람을 가지고 놀다 죽이는 게 즐겁나? 케네스 륑겐.”
종아리에 검은 가시가 꽂힌 채로 침착하게 내뱉은 내 말에, 케네스의 움직임이 우뚝, 하고 멈췄다.
일시 정지 버튼이라도 누른 것처럼 극적인 정적이었다.
“어머… 저를 아는 분이셨나요? 이상하다… 나는 한 번 본 사람은 절대 잊지 않는데…….”
고개를 갸웃거리며 말하는 케네스에게서는 약간의 당황은 느껴졌지만, 여전히 여유가 넘치는 상태였다.
이미 나와 리엔의 명줄을 쥐고 있는 상태이니 당연한 일이다. 그리고 내가 노리는 것도 그것이었다. 호기심과 방심.
“나도 당신을 직접 보는 건 처음이야. 다만 이야기를 들었을 뿐이지. 이미 죽었다는 이야기를.”
“그건 사실이에요. 예전의 나약하고 볼품없던 저는 이미 죽어 없어졌죠. 그런데, 제 질문에 대한 답을 하라는 말, 못 들은 건 아니겠죠?”
대답에 대한 집착이 아주 대단한 미친년이군. 하지만 나는 시간을 끌어야 했기에, 허세로라도 비싸게 굴 수밖에 없었다.
“내가 대답을 해 주면, 그쪽도 대답을 해 주는 건가?”
“지금 우리가 대등한 위치에 있다고 착각을 하는 건 아니겠죠? 이 아가씨, 좀 더 잘라 내야 당신이 고분고분해질까요?”
케네스는 날카롭게 벼려진 검은 칼날을 리엔에게 가져가며 웃었다.
“어차피 살려 줄 생각은 없잖아.”
“후훗, 당신은 제가 어떤 일까지 할 수 있는지 몰라서 그러는 거예요. 차라리 곱게 죽는 게 나을걸요?”
“그럼에도 알고 싶어 하는 게 인간이니까.”
드디어 케네스의 얼굴에 흥미 비슷한 감정이 떠올랐다.
절망적인 상황에서 고통이 가득한 비명과 애원을 내뱉는 인간들을 수백씩 학살했을 그녀다.
나 같은 태도를 보이는 인간은 처음이겠지.
역시나 케네스가 미끼를 물었다.
“좋아요. 나도 당신 같은 분에게 묻고 싶은 게 많았어요. 하지만 먼저 질문한 것은 저니까, 대답도 먼저 듣는 게 순서고, 예의겠죠?”
예의라… 확실히 돌은 년이군, 하는 생각이 떠올랐지만, 입 밖으로 낼 수 있는 건 아니었다.
“리엔이 왜 소중하냐고 물었었지… 대답을 해 주고 싶지만, 사실 나도 잘 몰라. 그냥 같은 전쟁터에서 부대끼다 보니까 어느새 정이 들었고, 어쩌다 보니 친구가 된 거지.”
“거짓말. 이 소녀가 아름답지 않았다면 당신이 구하려고 들었을까요?”
“나 정도 외모에 능력이면 예쁘기만 한 여자라면 얼마든지 만들 수 있어. 그런데 왜 내가 친구에게까지 그런 잣대를 들이대야 하지?”
나는 솔직한 대답을 돌려줬다. 그런데, 정확히 3초가 지난 뒤에 종아리에 또 하나의 가시가 꽂혔다. 그러나 고통을 느낄 겨를은 없었다.
리엔이 한쪽 다리만 잡힌 상태로 바닥에 사정없이 내리찍히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기절한 상태라 전혀 충격을 줄일 수 없는 그녀에게는 매우 위험한 공격.
“무슨 짓이야!”
“이런, 죄송해요. 당신 대답이 너무 재수가 없어서……. 그래도 외모가 상관없다면 얼굴이 좀 망가져도 상관없잖아요?”
씨익 웃으며 대답하는 케네스는, 리엔의 뒤통수를 꾸욱 누른 채 바닥에 끌고 있었다. 진득한 피가 묻어나는 것을 본 나는 다급해질 수밖에 없었다. 아무리 시간과 돈만 있으면 재생할 수 있다는 걸 알고 있다고 해도 심리적인 한계선이란 게 있는 법이다.
“젠장! 맞아! 예뻐서 그런 거다!”
내 대답이 떨어지자마자 바닥에 처박혔던 리엔이 다시 원위치로 돌아갔다.
“좋아요. 그렇게 솔직한 대답을 원했어요.”
“…….”
이 여자가 나를 가지고 노는 것에 희열을 느끼고 있다는 것이 피부로 느껴졌다.
참을 수 없는 분노가 올라왔지만, 나는 억지로 식혀 내며 이성을 유지하려 노력했다.
분노는, 이 여자를 처단할 때 쏟아내면 된다.
“이번에는 내 차례다… 이런 짓을 벌이는 이유가 뭐지? 백작과 한통속인가? 아니면 백작에 대한 분노 때문에 미쳐 버리기라도 했나? 도대체 자신의 죽음까지 꾸며 내면서 이러는 이유가 대체 뭐냐?”
“아하하핫!”
내 질문을 들은 케네스가 배를 잡고 웃는다. 잔혹한 광녀의 입에서 나왔다고는 생각하기 힘들 만큼 맑은 소리였다.
“내가 그 쓰레기와 한통속이라고? 웃기는 소리! 그는 이미 내 꼭두각시야! 언제든 내 손짓 한 번이면 죽어 없어질 쓰레기라고!”
내 질문의 뒷부분은 듣지도 않은 모양이다. 거기다 말투마저 변한 것을 봐서 자신의 부친에 대한 감정이 아주 안 좋다는 것은 잘 알 수 있었다.
“아비에 대한 분노 때문에 그렇게 괴물이 된 건가…….”
“괴물? 지금 괴물이라고 했나요? 날 보고 괴물이라고 했냐고!”
흥분한 케네스는 내 발목을 잡고 자신에게로 당겼다. 검은 줄기에 붙잡힌 나는 속절없이 주르륵, 하고 그녀의 코앞까지 끌려갔다.
“다시 한번 말해 봐요.”
서로의 숨결이 느껴질 정도로 가까워진 거리. 나는 이 거리에서 공격을 해 볼까 생각했지만, 그녀를 감싸고 있는 검은 영기는, 지금의 내가 어떻게 해 볼 문제가 아니었다.
“도대체 뭐가 당신을 그렇게 만든 거지? 내가 보고 있는 당신은… 적어도 겉모습만큼은 아름다운데…….”
“하! 그래요! 지금의 나는 누가 봐도 아름답겠죠. 이게 원래 내가 가졌어야 할 아름다움이에요. 평생을 걷지 못해 퇴화할 대로 퇴화해서 흉하기 그지없는 다리와 생기 하나 없이 뒤틀린 얼굴이 아니라, 이 생기 넘치는 모습이 내 모습이었어야 한다고요!”
반말과 경어가 뒤죽박죽이 되어 횡설수설하는 케네스를 본 나는 깨달았다. 내가 그녀의 약점을 제대로 파고들고 있음을.
이쯤 되면 누가 질문을 하고 누가 대답을 하느냐가 중요한 시점은 지났을 것이다.
저런 서러움과 한이 맺혀 있는 존재들은, 저런 상태가 되고 나서는 자신 안에 있는 것을 꺼내놓지 않고는 못 배길 테니까.
“걷기 위해서, 아름다워지기 위해서 그런 선택을 했다는 거군.”
“맞아요. 뭐가 잘못됐죠? 나는 불행했어요! 이건, 이 힘은 신이 불쌍한 내게 내려준 축복이 틀림없어요. 나를 경멸하던 자들과 나를 눈엣가시처럼 여긴 쓰레기의 희생 위에 내 행복을 찾을 수 있게 말이에요.”
“그럼 이제 된 것 아닌가? 이미 걸을 수 있게 됐고, 누가 봐도 아름다울 만큼 변했으면 됐지, 도대체 뭐 때문에 끝없이 사람을 죽이고 있는 거지? 그것도 그렇게 싫어하는 백작을 돕는 형태로 말이야.”
“아직도 부족하니까요. 저는 제 인생을 전부 보상받을 거예요. 그리고 한 번이라도 저를 무시한 것들은 죽이고 짓밟아 그 재료로 삼을 거예요. 사랑하는 동생이 청혼을 받았을 때, 결혼식은 몰라도 축하 무도회에서만큼은 축하를 해 주고 싶었어요. 그래서 용기를 내서 몰래 그곳에 갔었죠.”
이야기가 이어지면 이어질수록 케네스의 광기 어린 표정은 더욱 극적으로 변해 갔다.
“그때… 내가 무도회장에 꽃다발을 무릎에 얹고 들어갔을 때의 침묵과 내게 모였던 시선이 기억에서 사라지지 않아요. 그래서 나는 그들을 전부 죽여 없앨 거예요. 호기심, 경멸, 동정… 그 모든 것이 내게는 상처였으니까!”
그래… 꼭두각시가 됐다는 백작을 움직여서 이런 일을 꾸민 나름의 이유가 있다는 건가. 물론 내가 납득해 주고 싶지는 않지만, 많이 서러워서 그랬다는 것은 알겠다.
“그럼…….”
“잠깐만요.”
케네스가 내 말을 막았다.
“왜 당신이 시간을 끌려는 건지는 모르지만, 저도 바보가 아니에요. 아쉽게도… 제가 바라던 것이 먼저였나 보네요.”
“무슨……!”
케네스가 무슨 소리를 하는 건지 몰라 불안함을 느끼는 순간, 나는 그녀가 기다린 것이 무엇인지 알게 됐다.
나에게 꽂혀 있는 검은 영기에서 무언가가 나를 침식하기 시작한 것이다.
아마도 내 마력의 저항을 나도 모르게 무력화할 시간을 벌고 있었던 모양이다.
“후훗, 당신처럼 강한 인간들을 오염시키는 건 오래 걸리더라고요. 이제 당신도 제 꼭두각시가 되어 줘야겠어요. 가장 먼저 해 줄 일은… 이 아이를 죽이는 것으로 시작할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