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ll special! Dungeon Master RAW novel - Chapter 116
116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길었던 여행의 끝자락.
나와 리엔은 라메리안 왕국의 북단에 있었다.
혼자가 될 시간이 필요해 새벽에 찾은 겨울의 숲은 조용함을 넘어 을씨년스러웠다.
[이름: 루크 에슬란테 (한세기)] [나이: 17세] [레벨: 61] [힘: 330] [체력: 330] [민첩: 330] [마력: 909] [특성: 사악, 이세계의 영혼, 던전 메이커, 던전 마스터, 패배를 안 지휘관, 내가 던전이다, 타락한 정령의 이해, 던전 공략자] [스킬: 염동력 Lv.7, 마력 감응 Lv.6, 마력 운용 Lv.6, 격투술 Lv.4]해를 넘기도록 쌓아 온 능력치와 스킬들.
내 능력치를 보고 역산을 하면 내가 지금까지 얼마나 많은 네거티브 포인트를 획득했나를 짐작할 수 있다.
레비아탄에게서 얻은 특전으로 능력치 10%가 상승한 것까지 감안해도, 대략 3억이 조금 안 되는 네거티브 포인트가 나를 스쳐 갔다는 계산이 나온다.
거기서 절반 이상은 던전에서 소모되는 몬스터들을 채워 넣는 데 쓰였고, 나머지의 대부분은 내가 전투를 하면서 갉아먹은 것이 많았다.
덕분에 지금까지 7단계 던전을 만들기 위한 포인트를 확보하기 어려웠지만, 네즈빌 왕국에서 내전을 통해 획득한 네거티브 포인트.
그리고 추가로 두 개의 국경을 넘으면서 늘어난 던전들까지 합세해 매일같이 벌어 주는 불행들이 더해져 내 벌이는 여행을 시작하기 전과는 비교가 안 됐다.
4,370만 포인트.
마령과의 전투 이후로 굵직한 전투 없이, 고정적으로 소모되는 것을 제외하고 알뜰히 모은 결과.
이제 이것을 사용할 때였다.
7단계 던전을 넘볼 수 있는 곳은 두 군데.
우리가 머무는 국경 근처의 루프테인 산맥의 암굴.
그리고 체니코 연안의 해저 동굴.
나는 그중에서 루프테인을 선택했다.
가장 강한 전력은 가까이에 있어야 한다.
던전 창을 연 나는 쌓인 포인트를 물처럼 소모했다.
간카오스를 도와 던전을 지킬 5단계 몬스터, 리자드맨을 여러 마리 소환하고, 그것들을 정예화하는 데에만 1,000만에 가까운 포인트가 사용됐다.
어차피 소모용으로 채워 넣는 자잘한 몬스터들의 개체 수는 늘릴 필요가 없었기에, 나는 기껏 확보한 정예 몬스터를 허무하게 잃지 않기 위한 비밀 공간을 만들었다.
추가적으로 동굴 지반 아래로 복잡한 미로를 만들어 몬스터들이 모험가의 앞뒤를 자유롭게 습격할 환경을 조성했다.
높은 단계의 던전을 방문하는 모험가들은 초보 모험가들에 비해 엄청난 양의 네거티브 포인트를 주지만, 그들에게 소모되는 몬스터의 가격 또한 그만큼 비싸진다.
그래서 있는 몬스터를 최대한 효율 좋게 소모할 수 있는 기반 시설에 대한 투자를 결정한 것이다.
그리고, 던전 업그레이드가 끝나는 대로 나를 호위할 그림자 망령 세 마리의 정예화.
한 마리, 두 마리… 세 마리까지 완료했을 때.
[루프테인 산맥의 암굴의 던전 등급이 상승합니다. 6단계 -> 7단계] [최고 던전 등급이 갱신됩니다.] [지옥 상점의 7단계 던전 관련 상품이 잠금 해제됩니다.] [‘이세계의 영혼’의 특전 해금 조건이 충족되었습니다.] [‘연결’을 시작합니다.]예상보다 조금 빠르게 기다리던 메시지가 주르륵 올라왔다.
신비가 나타날 때와 마찬가지로 바닥에 복잡한 마법진이 새겨지고, 밝은 빛의 조각들이 만들어졌다.
미리 이런 현상을 겪어 준비를 하고 있던 나는, 커다란 천을 펼쳐 주변을 가려 멀리서 이 현상을 발견할 수 없도록 막았다.
눈이 아릴 만큼 강렬한 빛이 터져 나오고.
[당신의 인연이 닿은 ‘이세계’에서 주군 잃은 처녀 귀신, 여울을 소환했습니다.] [‘연결’이 종료됩니다.]여자가 눈앞에 나타났다.
흐트러짐 하나 없는 옷자락, 핏기라고는 하나도 없는 새하얀 피부를 가진 그녀는, 목이 잘린 유령이었다.
상처가 너무나 깔끔해 혹시 분장이 아닐까 싶을 정도였지만, 잘린 목을 붙여 놓아 그렇게 보일 뿐이었다.
-생전 다하지 못한 의무를 이어 가기 위해 왔습니다. 이번에는 주군을 먼저 보내는 불충은 절대 저지르지 않겠습니다.
[주인의 죽음을 직접 보지 못한 채 처형당한 비운의 호위무사, 여울. 그녀는 죽기 직전 자신을 참수하려는 자의 속삼임을 들었다. ‘다시 한번 주군을 섬길 수 있다면, 그 혼을 내놓을 수 있겠는가?’ 여울에게만 들렸을 속삭임. 여울은 피눈물이 흐르는 눈을 부릅뜨고 대답했다. ‘그리하겠다’고.]신비 때와는 달리 여울이 지옥에 귀속될 때의 이야기가 나타났다.
지금까지 그래왔듯 새로운 단계가 해금되면서 내게 어떤 변화가 있어서인지, 아니면 ‘던전 공략자’의 영향인지는 모르겠지만.
그녀가 죽음 이후에도 지키고 싶었을 주군은 내가 아니었을 텐데, 지옥에 귀속되어 영혼마저 속박당한 여울은 내 앞에 무릎 꿇고 끝없는 충성을 맹세하고 있었다.
그렇게 나는 악마와 도깨비에 이어, 몸에 귀신까지 붙이고 다니게 되었다.
* * *
전에 없이 불안한 표정을 한 리엔.
집에 돌아가야 하는 가출 소녀에게서는 무수한 몬스터를 같이 상대하며 엿본 용맹함은 찾을 수 없었다.
“설마 죽이기야 하겠어?”
무심한 내 말에 얼굴이 한층 더 일그러진다.
“편지를 조금 더 자세히 적을 걸 그랬다.”
리엔은 생존해 있다는 것만을 알려 왔던 편지를 후회했지만, 언제나 후회는 늦는 법.
손목이 날아갔다는 소리도 하지 않았을 테니 돌아가면 난리가 날 것은 불 보듯 뻔했다.
“건투를 빈다.”
“…….”
리엔은 수도 라멜란트로 이어지는 길목으로 기수를 돌린 나를 부러운 눈초리로 바라봤다.
이곳에서 우리는 갈라져야 했다.
“혹시 같이…….”
“미안, 나도 이제부터 처리해야 할 일들이 한두 개가 아니라서.”
나는 리엔의 말이 채 다 나오기도 전에 잘랐다.
아무 죄 없는 내가 왜 죄인 옆에서 같이 무릎을 꿇어야 하는가.
괜히 공범으로 몰려서 눈치 보기는 싫었다.
돌아오는 동안 정리한 생각들을 빨리 실행하고 싶은 것도 사실이고.
“후우… 그래. 이건 내가 감당해야 할 내 업보지.”
그녀도 큰 기대는 하지 않았는지 빠르게 포기했다.
원래부터 남에게 같이 책임을 져 주길 바라는 성격이 아니기도 하고.
“한동안은 못 보겠구나.”
“그렇겠지. 너는 당분간은 신전 신세일 거고, 그 후로도 아마 머리가 빡빡 밀려서 영지에 감금되지 않을까?”
“…정말 그렇게 될지도 모르니까 그만 놀려라.”
“그래, 가끔 연락할 테니까 일단은 손목부터 신경 써.”
“걱정 마라. 이 손목을 보면 나를 꽁꽁 묶어서 아무것도 못 하게 만들 사람들이 한둘이 아니니까.”
“그럼, 나중에 보자.”
그동안 부대낀 몇 개월의 시간은 구구절절한 말이 필요 없게 만들었기에, 대화는 길지 않았다.
그 아무것도 아닌 말을 마지막으로, 우리는 각자의 갈림길로 말을 몰아갔다.
이 갈림길이, 잠시 같이 걸었으나 앞으로 걸어갈 길이 다른 서로를 상징하는 것같이 느껴졌다.
* * *
해를 넘기고 돌아온 집에서, 나는 그간 정했던 것들을 처리해 나갔다.
가장 먼저 아카데미는 휴학을 하기로 했다.
최초 생각했던 파릇파릇한 캠퍼스 라이프를 시작부터 조졌던 곳.
일 년이란 시간은 비올카라는 악연 아닌 악연을 만든 것만으로도 충분한 가치를 했지만, 이제는 내가 그곳에서 얻을 것이라고는 전혀 없었기에 내린 결정이었다.
가장 걱정했던 것은 비올카나 카이네의 반응이었지만, 짧은 기간 동안 더욱 강해진 나를 본 그녀들은 내 변화와 행적에 흥미를 가졌을 뿐, 내 선택을 반대하지 않았다.
비올카는 일전 그녀가 말했듯이 자신의 인지를 벗어난 나를 관찰하는 관찰자의 역할에 충실할 생각인 것 같았다.
세간은 그녀와 나의 관계를 사제 관계라 생각하지만, 실상 우리들의 관계는 그게 아니다.
나는 그녀를 막힌 길을 뚫기 위한 간판이자 윤활제로 생각하고 있었고, 그녀는 나를 흥미로운 무언가로 생각할 뿐이다.
낭비되는 시간을 없앤 나는 한동안 마구잡이로 늘려 놓은 던전들을 전체적으로 정비하는 시간을 가졌다.
라메리안, 룸펜, 네즈빌, 베르콜, 제나스.
내 던전이 뿌리내린 땅들.
여러 국가에 걸쳐 퍼져 있는 내 던전은 어느새 84개가 됐다.
여행을 마치고 던전을 재정비하면서, 수많은 던전에서 다치고 죽어 가는 모험가들은 내게 하루에도 적게는 100만, 많게는 300만을 넘는 포인트를 벌게 해 줬다.
순익이 그 정도이니, 유지 보수에 소모되는 포인트까지 합산하면 정말 어마어마한 포인트가 생성되고, 소모되고 있는 것이다.
그 증거로, 늘어난 던전을 정상 가동하기 시작한 지 얼마 되지도 않은 시점에 내 능력치 총합은 곧 2천을 바라보고 있었다.
이제 곧 네거티브 포인트 1천만당 능력치 1이라는 말도 안 되는 수치가 다가온다.
그 얘기는 벽이 다가온다는 것이고, 그 벽을 허물기 위해서는 더 바삐 달려야 할 필요가 생긴다는 뜻이다.
그렇게 눈 코 뜰 새 없이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을 때였다.
쾅!
방문이 거친 소리를 내며 열렸다.
시중을 들던 크리스와 엘라는 물론이고, 루시아까지 놀라 눈을 크게 떴다.
“내가 너를 찾았다는 이야기, 듣지 못했느냐?”
분에 가득 차서 나를 노려보는 자는, 레온이었다.
듣긴 했었지. 고의적으로 잊고 있었지만.
“오랜만에 본 동생이 반가운 마음은 알겠는데, 노크 정도는 해도 될 것 같지 않아?”
레온은 콧김을 내뿜으며 눈을 부라렸다.
외면은 나와 판박이인데, 성격은 참으로 달랐다.
“닥쳐! 아버지가 맡긴 루비 광산까지 내팽개치고, 아무런 상의도 없이 멋대로 집안을 비우다니. 그렇게 무책임한 짓을 저지르고도 그런 말장난이 나오는 거냐!”
톡, 톡, 톡.
[레온 에슬란테가 참을 수 없는 열등감에 허우적거립니다. …….]메시지를 확인한 나는 책상을 손가락으로 두드리며 레온을 응시했다.
룸펜은 물론이고, 네즈빌에서도 중간까지만 신분을 감추고 나중에는 거의 대놓고 돌아다녔다.
그 이후는 말할 것도 없고.
내 행적을 좇자면 못 할 것도 없었을 테니, 그중 주워들은 몇 가지 정보를 접하고 저러는 것 같다.
그런데 예전보다 자판기 성능이 올라간 건지 뱉어내는 포인트 양이 확연히 늘어났다.
역시나 상태 창을 확인하니, 예전과는 비교도 안 될 만큼 발전한 레온의 모습이 눈에 들어온다.
처음 마주쳤을 당시의 리엔급까지 성장을 하다니.
저 정도면 상당한 재능이고, 그에 맞는 노력 또한 수반됐을 것이다.
그러나 비교 대상이 누구냐에 따라 자신을 망칠 수도 있는 것.
어설픈 재능이란 그런 것이다.
자신이 만족을 못 하면, 피나는 노력의 결실은 아무것도 아닌 것이 되고, 남는 것은 박탈감과 열등감뿐일 테니까.
“왜 아무 말도 없지? 내 말이 말 같지 않다는 거냐!”
“대화할 생각이 없는 사람을 상대로 무슨 말을 하라는 거야? 무책임? 우리 집안에 책임이란 게 있었나? 그리고 루비 광산은 애초에 내가 손대기 전에는 완전 시궁창이나 다름없는 부패 덩어리였어. 언제부터 그렇게 신경을 썼다고 지랄을 하는지 모르겠는데.”
“뭐, 뭐라고?”
나는 너무나 한심한 레온의 모습에 다짐했던 것이 흔들리는 것이 느껴졌다.
“…너는 도대체 누구냐. 기억상실이라고? 겨우 그딴 같잖은 이야기로 너의 변화가 설명이 된다고 생각하는 거냐? 병신처럼 화만 내던 네가 어떻게 그런 재능을 가질 수가 있지? 도대체 어떻게!”
그의 악다구니가 계속될수록 내 마음은 더욱 차갑게 가라앉았다.
“거기다 분명 내 어머… 커억!”
속에서 올라오는 짜증을 억누르던 나는, 레온이 선을 넘으려는 순간 그를 벽에 처박았다.
저항하기엔 그와 나의 간극이 너무나 까마득했기에, 레온은 내 손짓에 날아가 벽에 처박히는 신세가 됐다.
“꺄악!”
갑작스런 상황에 눈치를 보던 여자들이 비명을 지른다.
“형, 우리는 가족이야. 서로 선만 넘지 않으면 얼마든지 잘 지낼 수 있을 가족이라고.”
낮게 깔린 목소리로 말한 나는, 레온을 더욱 몰아붙였다.
레온은 힘겨운 눈으로 나와 울먹이는 루시아를 번갈아 봤다.
“가족……? 웃기지 마라. 너만 잊었다고 저것한테 네가 저지른 일들이 사라질 것 같으냐? 그런 같잖은 가족 놀이로 네 모습이 달라질 것 같으냔 말이다.”
넘을 수 없는 벽이란 것을 알면서도 으르렁거리는 레온을, 나는 이해할 수 없었다.
너무나 모자랐던 동생이 갑자기 너무 위로 올라가 버려서?
그것에서 비롯한 열등감이 그를 이렇게까지 몰아넣은 걸까.
아니면… 그도 몰랐던 모친에 대한 정이라도 있었던 것일까.
어지럽게 뱉어 내는 네거티브 포인트들로도 그의 정확한 심정은 짐작할 수 없었다.
아니, 애초에 인간의 복잡한 마음을 딱 정의한다는 게 불가능한 일일지도 모른다.
이중적이기만 하면 다행인 것이 인간의 감정이니까.
다만, 관계가 개선되기 어렵다는 것은 확실하게 알 수 있었다.
내가 진심으로 양보를 한다고 해도 메우지 못할 골이 느껴진다.
내 속박에서 벗어나 ‘너는 내 동생이 아니다’라는 말을 몇 번이고 중얼거리며 나가는 레온은 무언가에 취한 사람처럼 보일 정도였다.
아니, 실제로 술 냄새가 나고 있었다.
“오라버니…….”
잔뜩 위축된 루시아의 목소리.
“괜찮아. 신경 쓸 것 없어.”
루시아를 안심시킬 말을 꺼내며, 나는 생각했다.
발에 채어 거슬릴 가능성이 있는 돌은… 미리 정리를 해야겠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