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ll special! Dungeon Master RAW novel - Chapter 121
121
용사와 용사의 동료를 죽여야 한다.
온갖 가호와 특성으로 보호받는 그들을 말이다.
독살, 암살 같은 전통적인 방법은 고려 대상에서 제외해야 한다.
강력한 몬스터를 이용한 불의의 습격 또한 기각.
용사를 급격하게 성장시킨 것이 데스나이트와의 전투라는 것을 생각할 때, 한 번의 습격이 실패하는 순간 사태는 걷잡을 수 없이 악화될 것이기 때문이다.
그나마 다행인 점은 카림과 루미카, 두 사람이 다음으로 향할 장소를 미리 알고 있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곳이 이미 내 손바닥 안에 있는 내 던전이란 것도.
* * *
[…던전에 몬스터가 하나도 없는데……?] [이상하네. 분명 지도에는 여기가 던전이라고 표시돼 있어.] [아저씨가 모험가일 시절에 그려진 지도라서 그런 것 아닐까?] [그, 그런가?]카림과 루미카가 진입한 던전 입구.
나는 그들이 주변을 두리번거리는 것을 원격으로 보고 있었다.
용사의 경험치가 될 가능성이 높은 일반 몬스터 따위는 치워 놓은 지 오래였다.
대신, 어마어마한 투자를 해서 던전 자체를 개조해 놓았을 뿐.
[아쉽다. 새로 산 장비들을 시험해 보고 싶었는데.] [몬스터가 없으면 좋지, 뭐가 아쉬워.]그들은 그렇게 말하면서도 던전 깊숙한 곳으로 들어가고, 또 들어갔다.
그리고 그들이 가장 적절한 위치에 발을 들이밀었을 때, 나는 새로 산 ‘던전’을 가동시켰다.
우르르릉.
지반이 흔들리는 진동은 흡사 강력한 지진과 같았다.
내가 서 있는 곳은 꽤나 떨어진 곳임에도 이렇게 느껴지니, 진동의 근원지인 던전 내부는 말할 것도 없었다.
[가, 갑자기 무슨 일이지?] [꺄악, 카, 카림!]던전 바닥은 단순히 흔들리는 것을 넘어서 어지럽게 움직이며 둘의 위치를 바꿔 놓기 시작했다.
[루미카!]그것에 맞춰 카림은 루미카에게 도약해 다가가려 했지만, 루미카가 바닥으로 꺼진 것이 더 먼저였다.
[꺄아아악!] [루미카아아!]추락하면서 멀어지는 친구의 목소리에 카림이 급히 뛰어들려 했지만, 그녀를 삼킨 구멍은 순식간에 사라졌다.
[이런 젠장!]검을 뽑아 드는 카림.
그러나 이번에는 그가 밟고 있던 지면 자체가 아래로 꺼졌다.
콰르릉.
지반 자체가 가라앉기 시작한 것이다.
당황 섞인 카림의 외침은 그 소음에 묻혔다.
잠시 후, 던전이 있던 야트막한 언덕은 흔적도 없이 사라져 있었다.
7단계 던전, 대미궁에 집어삼켜진 것이다.
* * *
7단계 던전 상점에서 구매한 테마 던전인 대미궁은 몬스터 하나 없이도 7단계 던전으로 인정받는 고가의 던전이었다.
입구마저 내가 직접 만들지 않으면 들어갈 수 없는 악취미적인 미로.
물론 탈출이 불가능한 것은 아니다.
대미궁 안에 존재하는 다섯 개의 방에서 퍼즐을 모두 풀면 탈출이 가능하다.
그 과정에서 무수한 미궁의 함정과 미궁의 주인이 배치한 몬스터들을 처치해야 하지만, 지금 대미궁은 미로로서의 역할만 하고 있을 뿐이다.
다른 모든 것은 정지된 상태.
용사에게 어떤 경험도 쌓지 못하게 하기 위한 조치였다.
이제 나는 대미궁에 직접 들어가 그들을 처리할 것이다.
나는 방금 전까지는 언덕이 있었던 장소에 섰다.
나만이 열 수 있는 출입구를 생성하자, 땅이 갈라지며 내가 원하는 위치로 내려갈 수 있는 계단이 나타났다.
일단은… 조금 더 만만해 보이는 여자부터 처리할까.
세부적인 목적지를 조정한 나는, 천천히 계단을 내려갔다.
* * *
“카림……?”
낙하의 충격에서 벗어난 루미카는, 몸 상태를 체크하는 것보다도 먼저 친구의 이름을 불러 봤다.
그러나 어두운 복도에 울리는 목소리에 응답하는 사람은 없었다.
루미카는 불안을 억누르기 위해 주먹을 꽉 쥐고 입술을 깨물었다.
그럼에도 심장 소리가 쿵쾅대서 괴로울 정도.
루미카는 어둠만이라도 몰아내기 위해 신에게 기도를 올렸다.
그녀를 사랑하는 수많은 신 중 하나가 힘을 빌려주자, 주변을 감싸고 있던 어둠이 신성한 빛에 의해 물러난다.
“분명 언덕에 뚫린 토굴이었는데…….”
루미카는 주변이 깔끔한 석벽으로 이뤄진 공간인 것을 보고 중얼댔다.
환경이 너무 급격하게 변한 탓에 적응하기가 어렵다.
그러나 이대로 있을 수만은 없는 일.
그녀는 그 자리에서 카림이 자신을 찾아내기를 기다리고 싶은 마음을 억누르고, 눈앞에 보이는 길을 조심스레 걷기 시작했다.
* * *
[카림……?]주기적으로 친구의 이름을 부르며 걷는 루미카.
나는 그런 그녀가 조금 있으면 지나칠 길목에 앉아 있었다.
내 것이 아닌 피를 잔뜩 뿌려 두고, 그 피 웅덩이 위에.
“도대체 어디로 떨어진 거야… 카림은 또 어디에 있고.”
화면 너머로만 들려오던 목소리가 복도 저편에서 직접 들려온다.
나는 그것에 맞춰 고개를 푹 숙이고 기절한 사람을 연기했다.
망설임 가득한 발소리가 가까이 다가오기까지는 꽤나 오랜 시간이 필요했다.
지루함보다는 갈수록 커지는 긴장감에 괴로워할 때쯤.
“앗?”
나를 발견한 루미카의 외침이 들렸다.
탁탁탁, 하는 다급한 발소리가 이어지고.
“괘, 괜찮아요? 피가 이렇게나 많이……! 잠시만 기다리세요.”
이제부터 저지를 일을 생각하면 아무리 나라고 해도 미안함에 고개를 들기 어렵게 만드는 선량함.
하지만 내게 선택지란 이것뿐이었다.
푹, 푹푹, 푹푹푹.
완전히 내 간격 안에 들어온 루미카의 몸에 지옥 주머니에서 튀어나온 단검들이 꽂혔다.
“커, 커헉……!”
루미카는 신음을 흘렸지만, 바로 쓰러지진 않았다.
따로 신성 마법을 발동하지 않았는데도 자동으로 일어나는 강력한 신성력.
그녀가 가진 온갖 특성과 가호들 탓.
그리고 나는 그녀의 특성을 대부분 꿰고 있는 상태였다.
급히 몸을 빼내려는 루미카를 향해, 내 손이 뻗어 나갔다.
“헉!”
함정 정도라고 생각했는지, 내가 움직이자 말도 꺼내지 못하고 헛숨을 들이켠다.
몸만 자란 어린아이나 다름없는 그녀는, 이런 상황에 대처할 경험이 전무한 풋내기였다.
당연히 반응도 그만큼 늦어지기 마련.
던전 내에서 보정을 받는 내 능력치는 이미 인간이 아닌 존재들조차 따라잡을 만큼 비대하다.
둘이 함께 있을 때 신성 마법으로 도배된 용사라면 또 몰라도, 그녀가 저항할 수준은 아득히 넘어선 지 오래였다.
푸욱.
내 손가락이 그녀의 여린 가슴을 꿰뚫었다.
“쿠, 쿨럭……! 당신… 도대체……?”
“…나도 이렇게까지 하고 싶진 않지만… 하고 싶은 일만 하면서 살기 참 힘든 세상이야. 안타깝게도.”
의문이 가장 많은 비율을 차지하는 그녀의 눈을 바라보며 중얼거린 나는, 손에 잡힌 심장을 터뜨렸다.
퍼어엉.
심장이 터져나감과 동시에 그녀의 전신에서 강력한 신성 폭발이 일어난다.
이미 상태 창을 통해 공부한 나는 짐작하고 있던 일.
루미카가 가진 ‘부활의 가호’의 효과였지만, 세 배나 증폭된 내 마력을 뚫고 피해를 입히기엔 역부족이었다.
그 본연의 효과인 부활과 강화 효과조차 처음 꽂힌 단검이 지닌 저주에 상쇄되어 힘을 잃는다.
지독한 저주를 뚫고서 심장은 아슬아슬하게 복원됐으나, 이미 그녀는 전투를 할 수 있는 상태가 아니었다.
입으로 역류하는 피를 토해 내면서 나를 바라보는 그녀의 시선에는 ‘왜’라는 단어만이 가득했다.
[루미카 에이너스가 갑작스런 상황에 혼란을 느낍니다. …….] [루미카 에이너스가 터져버린 심장으로 인해 극심한 고통에 허덕입니다. …….] [루미카 에이너스가 죽음의 공포에 울먹입니다. …….]용사의 동료이나, 본인조차 그 사실을 모르는 시골 소녀는 죽음 앞에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여울.”
내 부름에, 혹시 사제인 그녀가 눈치챌까 봐 멀리 보내 놓은 여울이, 흩어졌다 뭉치기를 반복하며 다가왔다.
-주군.
이대로 죽이지 않고 살려 두면 어떤 가호가 그녀를 되살릴지 모른다.
성장과 각성을 밥 먹듯 해 대는 놈들이니까.
깔끔하게 죽이면 문제가 없겠지만…….
이 짧은 시간 동안 그녀가 만들어 낸 네거티브 포인트는 도합 67만.
이대로 죽이기엔 아깝기도 하고… 이 정도의 네거티브를 뱉어 내는 자는 어떤 방향이든 쓸모가 있을 것이다.
잠시 고민하던 나는, 여울을 바라봤다.
내 의지를 읽어 내는 것에 능한 그녀에게 따로 명령은 필요 없었다.
-알겠습니다.
고개를 살짝 숙이고 반투명한 검을 뽑아 낸 여울은, 루미카의 전신의 힘줄을 잘라 냈다.
나름대로 지켜오던 알량한 선은 물론이고, 조금 더 큰 벽이 무너지는 기분이다.
소녀의 전신을 난도질하는 것은 목이 잘린 귀신이었으되, 그것을 명한 것은 나였기에.
잘린 힘줄들이 자연스레 생성되는 신성력에 의해 회복되지 못하도록 저주의 단검을 꽂아 넣기까지 한 후에, 치사량에 가까운 마약을 투여했다.
-괘념치 마십시오. 주군께서 명하시는 것이라면 어떤 것이든 저는 행할 뿐입니다.
아무 말도 하지 않았지만, 여울은 나를 위로했다.
이제는 어렴풋이 알고 있었다.
벨로제도, 신비도, 여울도, 나의 감정을 일정 부분 공유한다는 것을.
“…너야말로 신경 쓰지 마. 어차피 나와 공존할 수 없는 것들. 어설프게 방치할 수 없다면 철저하게 짓밟을 수밖에 없어.”
-…….
“다음은 진짜 용사다. 준비해.”
-알겠습니다.
대답과 함께 여울이 눈앞에서 사라졌다.
* * *
카림은 루미카와 달리 망설임 없이 대미궁을 공략하려 들었다.
사제로서의 재능에만 특화된 루미카와 달리, 용사인 카림은 더욱 많은 재능을 부여받았기 때문으로 보였다.
용기는 물론이고, 문제 해결을 위한 지능, 판단력, 직관력, 예감, 직감.
인간이 타고날 수 있는 거의 모든 재능을 하나의 육체와 정신에 몰아넣은, 그야말로 사기라는 말이 어울리는 존재였다.
옛날이야기 속 마왕들이 괜히 용사에게 당한 것이 아니구나, 하고 바보처럼 납득하게 만들 정도로 어이없는 재능.
그러나 그런 용사도 피어나기 전에 짓밟을 수만 있으면 심각한 문제는 되지 않을 것이다.
복도 저편, 멀리서부터 다가오는 카림이 화면 속에 보였다.
그런 그가 잠시 발걸음을 멈추더니, 검을 뽑아 든다.
전방에 적이 있음을 인지한 듯한 행동.
별다른 투기도, 살기도 내뿜지 않았음에도 나의 존재를 이미 눈치챈 모양새였다.
역시, 기습 같은 걸로 어떻게 할 상대가 아니다.
차라리 본능이라는 말이 어울릴 정도의 위기 감지 능력.
나는 전투를 준비하며 몸을 풀었다.
분명 저쪽은 용사로서 괴물 같은 재능을 받았다.
하지만 던전 안에서라면, 아직 채 피지 못한 용사 정도는 상대할 수 있을 것이다.
드디어 용사가 내 눈앞에 나타났다.
“…혹시 당신도 모험가이십니까?”
이미 만반의 전투태세를 갖춘 상태로 묻는 상대.
여기서 어설픈 연기를 한다 한들 그의 경계를 허물 방법은 없을 것이다.
이미 카림은 내가 적이란 것은 본능적으로 알아 버렸다.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의 대답은 공격뿐이었다.
파앙.
7레벨이 된 염동력은 이제 단순히 물건을 움직이는 것에 그치지 않고, 염동력 그 자체가 힘을 갖기 시작했다.
거기에 보정을 통해 2,800이 넘어가는 마력까지.
예전의 내가 시위를 여러 번 당기며 힘을 축적한 것보다도 강력한 힘이 실린 무기들이 용사를 향해 날아든다.
“역시!”
본능의 경고가 맞았음을 느낀 카림이 몸을 날려 창을 피하려 들었다.
그러나 좁은 공간에서 날아드는 모든 창을 피할 수는 없는 일.
그중 몇 개는 직접 마주해야 활로가 열린다.
콰앙, 콰앙.
카림은 새로 샀다는, 별 볼 일 없는 철검으로 두 자루의 창을 쳐 냈다.
아득한 능력치 차이를 극복하는 스킬과 특성들의 향연.
그러나 육체적인 능력만 따져도 두 배 이상, 마력만을 비교하면 열 배가 넘게 차이 난다.
내게 접근한 카림은 단 두 번의 격돌로 입은 상처라고 보기엔 과한 부상을 입은 상태였다.
“크아악!”
그런 부상을 입으면서도 카림은 내 간격 안으로 파고들어 공격을 감행했다.
나의 영역 밖이거나, 과거의 나였다면 형편없이 몸을 굴려서 피했어야 할 공격.
팡- 콰앙!
하지만 여긴 내 영역이고, 여기에 서 있는 건 과거와는 비교할 수 없게 성장한 나였다.
튕겨 나간 것은 카림이었다.
염동력과 전격이 깃들어 있는 발차기가 복부를 강타한 것이다.
강화된 육체의 내구도는 다소 과하다 싶은 마력과 염동력의 과부하도 전혀 문제없이 견뎌 냈다.
카림이 깔끔한 직선을 그으며 벽에 처박혔다.
곧바로 이어지는 무자비한 공격.
쾅쾅쾅쾅.
쉴 새 없이 들리는 굉음이 지축을 울렸다.
그런 맹렬한 공격에도 용케 버티고 살아서 빠져나왔지만, 이미 카림이 가지고 있던 장비들은 모두 생명을 다한 뒤였다.
뛰어난 특성의 비호로 최초 격돌에 용케 버텼던 검도, 이제는 사용할 수 없는 폐품이 됐다.
“허억… 허억… 허억……. 이러는, 이유가 뭐지……? 설마 인간 모습을 한 몬스터인가.”
몸 곳곳에 피를 흘리는 용사의 물음.
무시할 수도 있었지만, 나는 대답했다.
“내가 살아야 하니까.”
“그게 무슨 뜻이냐? 나는 너를 위협할 생각이 없… 크아악!”
말을 하던 카림이 옆에서 날아온 창에 옆구리를 찔리며 비명을 내질렀다.
야수의 본능에 가까운 회피로 급소가 직격당하는 건 피했지만, 완벽히 피하기엔 너무나 빠른 공격이었다.
“이, 비겁한……!”
카림의 비겁하다는 말에 울컥해 반응하려는 여울을 말렸다.
괜히 나 이외의 무언가가 달려들었다가 저놈에게 죽기라도 하면, ‘레벨업’ 특성을 통해 지금까지 입힌 모든 상처가 아물 것이다.
그리고 강력한 적을 처치한 대가로 또 한 번 성장을 할 테고.
지금 이 순간, 변수는 없어야 한다.
“질문에 대한 대답은… 이 일이 마무리된 다음에 해 주지. 그때도 대화가 가능한 상태라면 말이야.”
뻗어 나가는 내 손짓에, 강력한 염동력의 소용돌이가 용사를 집어삼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