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ll special! Dungeon Master RAW novel - Chapter 122
122
카림의 저항은 이어졌으나, 부질없는 것이었다.
휘몰아치는 소용돌이에 녹아든 갈까마귀들은 시체를 쪼아 먹는 청소부라도 된 것처럼 희생자를 유린했다.
돌발적이고 격렬한 저항도, 얼마든지 찍어 누를 수단이 흘러넘쳤다.
접근조차 허락하지 않을 수 있는 힘의 차이가 그러했고, 내 수족과도 같이 나를 돕는 대미궁의 기믹들이 그러했다.
카림은 ‘세계가 허락한 세 번의 삶’ 특성으로 인해 죽음의 문턱에서 돌아왔지만, 그런 그를 기다리는 건 내가 아니라 텅 빈 방이었다.
이미 상태 창을 통해 용사가 죽음에 이르기까지의 걸림돌이 될 특성을 꿰고 있는 상태.
죽음의 문턱에서 부활을 기다리는 카림이 쓰러져 있는 곳의 바닥이 덜컹, 하고 열렸다.
[흐어업……!]그렇게 옮겨진 밀실에서, 의식이 돌아오기 무섭게 목을 부여잡고 고통을 호소하는 모습이 화면 너머로 보였다.
저 밀실은 지금 진공 상태이니 당연한 반응이다.
그럼에도 탈출을 모색하는 징그러운 생존력.
나는 밀실의 벽을 맨손으로 부수려는 그를 지켜보다, 다음 함정을 발동했다.
솨아아.
엄청난 기세로 바닥에서 물이 솟아오른다.
[크아악!]물에 닿기 무섭게 녹아내리는 신발과 고통을 호소하는 카림.
이유는 차오르는 것이 물이 아니라 강산성의 용액이기 때문이었다.
곧 천장에서도 같은 현상이 벌어지고, 벽을 부수려던 카림은 어쩔 줄 몰라 했다.
치이이익.
절망으로 가득 찬 카림의 얼굴은, 지금 자신에게 벌어지는 일들이 도대체 무슨 일인지 알지 못하는 자의 표정이었다.
결국, 세계 최고의 재능을 타고났을 용사는 피어 보지 못한 채 대미궁의 한편에서 쓰러졌다.
나는 죽은 듯 널브러져 있는 용사가 있는 밀실로 향했다.
강산성 용액에 절여진 카림은 옷은커녕 피부조차 입고 있지 않았다.
“아직도 살아 있다니…….”
될 수 있으면 생포하겠다는 생각을 하긴 했지만, 딱히 손속에 사정은 두지 않았다.
그런데도 용사, 카림 아크람은 여분의 생명을 모두 소진했음에도 숨이 붙어 있었다.
거기에 더해 옅게 흘러나오는 빛 조각들은, 아직도 이 세계가 그를 살리려 한다는 것을 느낄 수 있게 해 줬다.
-여자와 똑같이 처리하겠습니다. 주군께서는 흉한 모습을 눈에 담지 않으셔도 됩니다.
스륵, 하고 나타난 여울이 검을 뽑으며 말했다.
하지만 나는 눈을 돌리지 않았다.
어차피 선을 넘고, 벽을 부술 거라면… 확실히 해 둘 필요가 있었다.
뼈가 보이도록 살이 녹아내린 카림의 힘줄이 절단되고, 척추 사이사이에 저주받은 쇳조각이 박혀 신경을 차단했다.
팔은 아예 자른 뒤에 재생이 불가능하도록 녹인 쇳물을 굳혀 봉하는, 잔혹한 처치가 행해졌다.
이런 처리를 해 두면, 설사 대사제가 신성력을 퍼붓더라도 별도의 외과적 수술 없이는 원래의 모습을 되찾지 못할 것이다.
그렇게 용사를 철저하게 망가뜨렸을 때.
[세계가 바란 미래를 뒤틀었습니다.] [거대한 흐름에 탁류를 만들었습니다.].
.
.
운명과 연관된 메시지들이 그야말로 탁류처럼 나를 덮쳤다.
그리고, 메시지가 아닌 무언가의 속삭임이 머릿속을 헤집는다.
‘용사가 ■■■■■ ■ ■■■ ■■■■ ■■■. 그렇다면, 그 ■■ ■■ ■■ ■ ■■■.’
그러나 벨로제가 민감한 정보를 꺼내 놓을 때와 마찬가지로, 필터링으로 인해 알아들을 수가 없는 것은 물론, 참기 힘든 두통이 일어났다.
[■■■■도 ■ ■ ■■■ 무참히 짓밟은 ■■로 ‘■■’이 되었습니다.] [■■■는 ■■이 될 ■ ■■■다.] [해당 사항이 ‘■■’됩■다.]이어서 뜬 메시지 또한 마찬가지였다.
-괜찮으세요, 마스터?
-형님, 괜찮으십니까?
-주군.
언제나 나와 함께하는 셋의 근심 섞인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 덕은 아니겠지만, 일단 나를 괴롭히던 두통은 언제 찾아왔었냐는 듯 사라진 후였다.
“괜찮아…….”
나는 아직도 사라지지 않고 점멸하는 의문의 메시지를 노려보며 대답했다.
“젠장… 사고 친 게 아니었으면 좋겠는데.”
레벨이 올랐다는 메시지가 주르륵 떠 있음에도 별로 기뻐할 기분이 들지는 않았다.
확인할 수 없는 메시지, 그리고 넘지 않았던 선을 잔뜩 넘은 감정의 찌꺼기 때문에.
-마스터, 이렇게 처리를 해도 용사란 것들은 무슨 일을 벌일지 모르는 놈들이에요. 그냥 깔끔하게 죽여 버리는 게 낫지 않을까요?
가끔 보여 주는 악마다운 모습.
벨로제가 차가운 목소리로 제안했다.
물론 나도 그 생각을 하지 않은 건 아니지만.
따로 생각하는 것이 있었기에, 아직은 살려 둘 생각이었다.
* * *
몬스터가 하나도 없는 던전.
대미궁의 가장 깊숙한 곳에 용사가 잠들어 있었다.
산성 용액에 각막, 고막을 비롯한 감각이 있는 기관들이 모두 녹아내린 탓에 통각을 제외한 모든 감각을 잃은 그는, 산지옥 속에 있었다.
혹시 다른 생각을 하지 못하도록 24시간 그가 갇힌 방을 가득 메운 지옥의 마약이 최후의 위안일 정도로.
용사의 소꿉친구는 대미궁의 반대편 끝자락에 있는 방에 가둬져 있었다.
신성 마법에 능한 만큼 자력 회복의 가능성이 있는 그녀는, 여울이 직접 눈과 귀를 못 쓰게 만들었고, 혀 또한 직접 잘라 냈다.
‘무력화하라’는 나의 명령에, 지나치게 잔혹한 처분을 내린 것이다.
아마도 나에게 조금이라도 위협이 될 요소를 배제하고자 하는 움직임일 터.
거기에 더해 쇠사슬로 묶인 그녀는 어떤 물건과 함께 포박돼 있었다.
신비에게 넘겨줬던 끔찍한 물건.
24시간 이어지는 흉물의 효과에 이미 그녀는 반쯤 미친 상태가 돼 있었다.
지옥 군주 중 하나의 육체를 본뜬 것의 위력은 어떤 마약이나 미약보다도 강력했다.
용사도, 그 동료도, 자신들의 어떤 운명을 타고났는지 깨닫기도 전에 끝을 맞이한 것이다.
이야기 속에 등장하는 마왕들이 용사에게 당하는 이유는 별것 없었다.
게으름과 방심.
근면함과 성실함 그리고 꼼꼼함만 있다면, 이미 기득권을 가진 마왕이 용사에게 지는 일은 일어나기 힘들다.
* * *
경매에 대한 새로운 소식이 도착한 것은 용사가 더 이상 네거티브 포인트를 뱉어 내지 않게 됐을 즈음이었다.
더 이상 고통마저 느낄 수 없을 정도로 정신이 망가진 것이다.
그리고 나는 지금 또다시 대미궁의 지하 깊숙한 곳에서, 내가 저지른 짓을 눈에 담고 있었다.
-가져왔습니다, 형님.
신비의 목소리와 함께 절그렁, 하는 소리와 철퍼덕, 하는 소리가 동시에 들렸다.
쇠사슬에 묶인 루미카를 던져 놓는 소리였다.
잔인하다는 말만으로는 부족한 카림과 루미카의 모습.
이 모습을 보고 누가 이들이 용사의 운명을 타고난 자들이라고 생각할 수 있을까.
나는 손에 쥐고 있는 검붉은 보석을 만지작거리며 자조 섞인 웃음을 흘렸다.
미워하는 상대라면야 더한 일도 즐기면서 할 수 있지만, 이들은 그저 잠재적인 위협이 될 확률이 높다는 이유로 이렇게 만들었다.
역시 나는 아무리 가끔 위선에 물든다 해도, 결국 이런 놈이란 것이 느껴진 것이다.
-마스터, 시간이 됐습니다. 이제부터 10분간 지옥에서 임시로 만들어 낸 차원으로 통하는 길이 열릴 거예요.
벨로제의 신호를 들은 나는, 손에 쥐고 있는 검붉은 보석을 바라봤다.
지옥 상점에서 보내온 지옥 경매에 참석할 수 있는 초대장이자 지옥에 들어오지 못하는 필멸자들을 위해 임시로 만든 차원계의 열쇠.
“가자.”
내 마력을 집어삼킨 보석은 뜨거운 물에 빠진 얼음처럼 녹아내렸다.
거기서 흘러나온 검붉은 안개가 나와 신비, 그리고 카림과 루미카를 집어삼킨다.
검붉은 안개가 걷히고,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 것은 광활한 우주였다.
불타는 별이 바로 옆에 있는 것처럼 이글거리는, 비현실적인 우주 속에 떠 있는 작은 원반 같은 세계.
그것이 내가 서 있는 작은 공간의 정체였다.
“어서 오십시오. 지옥 경매에 참가해 주셔서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가져오신 물품들은 저희가 따로 보관을 해 드릴까요?”
압도적인 광경에 잠시 정신이 팔린 사이, 염소 머리를 가진 턱시도 차림의 남자가 다가와 말을 걸었다.
잠시 염소가 말을 하는 괴상함에 말을 잃었던 나는, 바닥에 쓰러져 있는 둘을 가리키며 말했다.
“부탁하지.”
“알겠습니다. 루크 에슬란테 고객님.”
대답과 함께 검은 바다에 빠져들 듯 카림과 루미카가 바닥으로 가라앉았다.
“자리로 안내해 드리겠습니다.”
염소 머리를 따라 지정된 자리로 이동하며 나는 경매 참석을 위해 모인 자들을 살폈다.
애석하게도, 다른 이들 모두가 각기 짐승의 머리를 하고 있어 정체를 짐작할 수가 없다.
그나마 복장으로 짐작건대, 정말 여러 시대, 여러 세계에서 모였구나, 하고 생각할 뿐이었다.
“좋은 술을 준비했습니다. 천천히 즐기시며 경매를 기다려 주십시오.”
투명한 술을 따르며 말하는 염소 머리.
나는 문득 떠오른 것을 물었다.
“너는 악마인가?”
“네, 고객님과 함께하는 악마분과 같습니다.”
인간 출신이란 건가.
그렇다는 건… 저기 헐벗고 시중을 드는 토끼 머리의 여자들도 지옥에 떨어진 인간들이란 뜻이군.
“여자가 필요하십니까?”
아무래도 내 시선의 뜻을 곡해한 모양이다.
“필요 없어.”
“…그럼 필요하신 것이 있으시면 언제든 말씀해 주십시오.”
그가 깍듯하게 인사하고 물러난 후 심호흡을 했다.
얼굴을 확인할 수는 없지만, 여기에 모여 있는, 그리고 지금도 늘어나고 있는 경매 참석자들의 기운이 심상치 않아서 괜히 긴장이 된다.
하긴, 지옥 경매에 초대될 정도라면 전부 자신의 세계에서 한 쓰레기 하시는 분들이 모였을 테니…….
그것보다, 이렇게까지 쓸데없을 정도로 유난을 떨면서 진행하는 경매에 나오는 물건들은 뭐가 있을까.
내가 가져온 게 상품으로 인정은 될까, 같은 생각이 머릿속을 부유한다.
쟝이 캐네스의 영혼을 탐낸 것 때문에 가치가 있지 않을까 싶었지만, 정작 악마가 아니라 나와 비슷한 처지의 ‘고객’들에게 그런 게 얼마나 가치가 있을지.
이런저런 궁리를 하고 있을 때, 누군가가 허공을 걸어서 나타났다.
올빼미 머리를 한 턱시도 차림의 남자였다.
“안녕하십니까. 저는 이번 경매의 진행을 맡은 데모라입니다. 먼저, 이번 지옥 경매에 참석해 주신 고객님들께 감사의 인사를 드리고 싶습니다.”
우아하게 인사를 올린 데모라.
그와 동시에 눈앞에 홀로그램 화면이 출력됐다.
“지금 눈앞에 나타난 화면에 익숙하신 분도, 그렇지 않은 분도 계실 겁니다. 경매의 진행에 도움이 되는 정보가 제공될 예정이니, 참고해 주시기 바랍니다.”
여러 세계에서 고객들이 모이다 보니 쓸데없는 설명이 길어지고 있었다.
-여기 있는 놈들은 제대로 된 악마는 하나도 없는 건가?
-그럴걸요? 의외로 순수한 악마들은 정말 드물거든요.
-저놈도?
나는 한창 열심히 떠들고 있는 올빼미 머리를 가리켰다.
-잠시만요. 직원 정보 열람을 해 보면 나올 거예요.
조금 기다리자 벨로제가 정보를 물어왔다.
-어… 사람들을 납치한 뒤에 방송을 하면서 돈을 받고 고문하다 죽인 죄로 지옥에 떨어진 자네요.
-사람의 죽음을 경매하던 놈이 지금은 지옥 경매의 진행자라…….
괜히 잘 어울려서 웃음이 나온다.
인간의 생을 경매하던 놈이, 지금은 지옥 경매의 절차에 대해 친절하게 설명을 하고 있었다.
지옥에서 준비한 물품을 경매하는 기본적인 경매 후에, 참가자들 사이에서 이뤄지는 특별 경매까지.
그렇게 긴 설명이 끝나고.
“자, 그럼 첫 번째 상품부터 소개를 하도록 하겠습니다.”
데모라가 짝, 하고 손뼉을 치자, 토끼 머리로 통일된 여자들이 힘겹게 거무튀튀한 상자를 들고 나타났다.
“이번 지옥 경매의 첫 번째 상품을 소개하겠습니다.”
검은 상자가 열리며, 지옥 경매가 시작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