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ll special! Dungeon Master RAW novel - Chapter 126
126
쿠르르릉.
언데드 노예에 이어 타락한 땅의 정령들이 투입된 굴착 공사가, 드디어 끝이 났다.
관측 지점보다 훨씬 여유롭게 파고든 나의 부하들이 도달한 곳은 거대한 터널이었다.
화산 아래, 끝을 알 수 없을 정도로 깊게 이어지는 거대한 터널.
그 터널을 타고 올라와서 화산으로 이어지는 파이프들이 눈에 들어왔다.
그리고.
어두운 터널 저편에, 노랗게 빛나는 작은 빛들이 나타났다.
나는 벽이 부서지며 생긴 먼지를 털어 내며 가장 앞으로 나아갔다.
그때 떠오르는 메시지.
[지저인들이 갑작스러운 상황에 불쾌함과 불안함을 느낍니다. …….]이런, 놈들이 있을 건 알고 있었지만, 이러면 내 계획에 문제가 생긴다.
네거티브 포인트를 뱉었다는 건… 저것들이 몬스터가 아니란 말.
파악!
내가 그런 생각을 하는 사이, 신비가 들고 있던 조명탄을 발사했다.
조명탄이 만들어 낸 강렬한 빛이 쏟아지자, 벽이 움직였다.
사사삭.
아니, 벽이 아니다.
벽에 붙어 있는 지저인들이었다.
파라락.
“지저인들이라더니… 벌레들이잖아.”
불청객이 뚫어 놓은 구멍을 향해 달려드는 무수한 지저인들은 인간과 비슷했지만, 벌레 같은 껍질을 뒤집어쓴 모습을 하고 있었다.
굳이 따지자면 인간의 특징이 더 많이 살아 있는 모습.
벌레 인간이라기보다는, 빛이 없는 지하에서 오랜 세월을 살면서 지상의 유사 인종들과는 다르게 진화했다는 것이 맞을 것이다.
그러나, 내가 보기에는 충분히 불쾌한 모습을 하고 있었다.
-한 녀석도, 내게 닿으면 안 된다.
내 의념에, 몬스터 군단이 벌레들을 막아섰다.
콰앙.
돌덩이 같은 피부를 가진 지저인들과 언데드들의 충돌.
구멍 앞은 까마득한 절벽이나 다름없는 지저 터널이 있는 탓에 지형적으로 불리하다.
그러나 그런 지형에 구애받지 않는 부하도 있었다.
“이 녀석들! 말도 없이 다짜고짜 달려들다니, 볼기짝 좀 맞아야겠구나!”
귀화를 뿜어 대며 날아다니는 신비.
순간 이동에 가까운 움직임으로 벽을 기어 다니는 지저인들을 베어 떨어뜨리는 여울.
콰드드득!
놀라서 도주하는 놈들을 공격하는 땅의 정령들까지.
“끄에엑!”
처음 마주친 지저인들은 갑작스러운 적의 등장에 힘없이 죽어 갔다.
그들은 인간에 비해서는 훨씬 더 강력한 신체를 가지고 있었지만, 상대가 안 좋다.
예언자의 손을 통해서 여기를 지키는 무언가가 있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그게 몬스터가 아닐 줄은 몰랐다.
[지저인이 강렬한 귀화에 구워졌습니다. …….] [지저인이 생전 처음 겪는 전투에 정신을 못 차립니다. …….].
.
.
쉴 새 없이 눈앞을 물들이는 메시지의 향연.
시작부터 조금 심한 것 같긴 하지만 어쩔 수 없는 일.
이놈들의 터전에 흙발을 들인 것은 우리지만, 선공은 저쪽이 먼저 했으니까.
-몇 놈은 살려서 잡아 와.
-알겠습니다, 형님.
저 화산이 지상과 연결된 통로인 것 같은데… 너무 오랜 세월 이어진 적 없는 길이어서 방심했나.
아무리 봐도 지금 내 몬스터들에게 학살당하는 놈들은 전투원이 아닌 것 같다.
잘 쳐 줘야 일개미 정도일 놈들.
그런 놈들이 아무리 많다 한들, 6~7단계 땅의 정령들까지 동원된 굴착 노예들을 당해 낼 수는 없었다.
“잡아 왔습니다.”
결국 신비에게 사로잡힌 셋을 제외하면, 거의 대부분의 지저인들이 전멸해 버렸다.
터널 아래로 추락한 놈들 중에 살아남은 놈들이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일단 눈에 밟히는 놈들은 싹 사라진 것이다.
바스락바스락.
각자 팔이나 다리에 상처를 심하게 입은 지저인들은, 벌레 같은 껍질을 가지고 있음에도 붉은 피를 흘리고 있었다.
“나는 너희들이 무엇인지, 어떤 삶의 방식을 가졌는지는 전혀 관심이 없다. 그저 땅의 심장을 찾으러 왔을 뿐. 땅의 심장이 있는 곳을 알려 준다거나 나를 방해하지 않으면 굳이 너희들을 적대하지 않겠다.”
“도, 도대체 어떻게 여기까지 들어온 거냐?”
다행히 말은 통하는 것 같다.
성대가 인간과는 다른 탓에 목소리가 심하게 갈라지긴 하나 의사소통은 가능한 수준.
동문서답을 하고 있는 게 문제이긴 했지만.
“나는 땅의 심장의 위치를 아느냐고 물었다.”
“흥! 우리가 입을 열 것 같으냐? 더러운 침략자 놈 같으니라고. 애초에 그것이 뭔지도 알지도 못하고, 네놈들에게 줄 정보 따위는 없다.”
아주 단호한 반응.
“아까 말했지? 나는 네놈들에 대해서는 하나도 궁금한 게 없다고. 여울, 이놈들에게서 빼낼 수 있는 건 다 빼내라.”
내 말에, 여울이 유령검을 뽑아 들었다.
나는 이어지는 잔혹한 장면은 눈에 담지 않고, 다시금 끝없이 밑을 향해 뚫려 있는 터널로 다가갔다.
[지상과 지하의 경계에 던전을 생성하시겠습니까? 1,200만 네거티브 포인트가 소모됩니다.]던전 능력을 개화하면서 어렴풋이, 그리고 자연히 깨닫게 된 것이 있다면, 던전을 차지하고 만드는 것의 개념이었다.
던전을 만든다는 것은 내게 쌓인 부정한 힘을 소모해 일정 지역을 물들이는 행위.
물들이기 힘든 영역일수록 더 많은 힘을 요구한다.
그건 물든 영역을 조금 더 확장하는 데도 마찬가지로 적용되는 법칙이다.
지저인들이 얼마나 긴 세월을 차지하고 있었을지 알 수 없는 곳을 물들이는 것은 그만큼 값이 비쌌다.
그래도 못 할 수준은 아니다.
우드드득.
지상과 지하의 경계가, 내 부정한 힘에 물들어 갔다.
가장자리에서부터 뻗어나간 구조물이 그 영역을 넓히며 터널의 천장에 해당하는 곳을 덮어 나갔다.
그것에 맞춰 추가적으로 네거티브 포인트가 소모된다.
내 목적이 완수될 때까지 적을 유린할 군단이 생성될 공장이자 나를 지킬 보루.
나는 지하 세계로 이어지는 터널 꼭대기를 던전이라는 마개로 덮어 버렸다.
* * *
지하로 이어지는 거대한 터널은, 끝없이 아래로만 이어진 것이 아니었다.
중간중간 옆으로 뚫린 통로들이 무수히 많이 있었던 것이다.
한마디로 이건 거대한 개미집의 한 줄기일 뿐이라는 얘기였다.
그 말은 내가 원하는 땅의 심장의 위치를 찾는 것이 그만큼 힘들다는 뜻.
-의지가 대단한 건지, 아니면 정말 위치를 모르는 것인지는 몰라도 끝까지 입을 열지 않았습니다.
그리 크게 기대하진 않았지만 처음에 잡았던 지저인 3명이 아무런 정보도 뱉지 않고 조각나 버린 상태.
나는 어쩔 수 없이 이 거대한 개미굴 전체를 점령해야 하는 입장이 돼 버렸다.
아니, 오히려 잘된 것일 수도 있다.
이놈들도 어차피 네거티브 포인트를 뱉어 내는 놈들이니까.
나는 곧바로 지하 세계를 침공할 부대를 편성하기 시작했다.
* * *
-형님, 보고 올립니다. 어… 4번 구멍이랑 5, 6번 구멍이 더 큰 구멍으로 합쳐졌습니다. 아무래도 여길 따라가면 무언가 나올 것 같습니다.
-주군, 첫 번째 1번 언데드 부대가 새로운 갈래를 찾아냈습니다.
각각의 몬스터 부대에서 올라오는 보고를, 조금 더 간략하게 정리해서 내게 다시금 보고하는 신비와 여울.
그렇게 하는 데도 정신을 차리기 힘들 정도로 얽히고설킨 터널은 복잡했다.
이쪽으로 진입한 부대와 저쪽으로 진입한 부대가 조금 더 큰 통로에서 마주치기를 수차례.
-1번 언데드 부대를 지휘하는 정예 데스나이트로부터 보고입니다. 정찰대 파견 결과, 해당 통로 끝부분에서 지저인들이 사는 공간이 발견됐다고 합니다.
드디어 처음으로 지저인의 흔적을 발견했다는 보고가 올라왔다.
-다른 통로를 수색 중인 부대 중 거리가 가까운 부대들을 전원 소집, 해당 구역에 합류해 대기해라.
-알겠습니다.
투명한 유리 재질로 바뀐 바닥.
뻥 뚫린 공간이 전부인 던전에 앉아 있는 내 아래로, 시커먼 구멍이 도사리고 있었다.
몬스터들이 손수 설치한 조명 장치들이 빛을 뿜고 있지만, 그런 미약한 빛으로 비추기엔 너무나도 거대한 동공.
이 검은 공간에 얼마나 많은 지저인들이 살고 있을지,
-준비 완료됐습니다.
지금부터 알아낼 것이다.
-반항하는 놈들은 전부 죽이고, 생포할 수 있는 것들은 생포해서 정보를 빼내.
내 명령에, 정예 데스나이트들이 이끄는 언데드 부대들이 진격했다.
[우리의 터전에 발을 들이다니, 괴수 놈들……! 원래 있던 지상이 그리워지게 만들어 주마!]그런 언데드 부대를 막아선 것은, 처음 마주쳤던 지저인들과는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로 크고 우락부락한 몸을 가진 놈들이었다.
아마도 병정개미에 해당하는 놈들일 터.
그것을 본 정예 데스나이트들 셋이 시퍼렇게 날이 선 장검을 뽑아 들었다.
-지저인들 중에도 강자가 있을 확률이 높다. 그런 놈들에게 너를 잃을 순 없으니, 전투에 개입하지 마라, 여울.
-주군…….
내 명령에 감동과 반박이 반씩 섞인 대답이 돌아왔지만, 나는 뜻을 굽히지 않았다.
정예 데스나이트들은 일종의 실험을 위한 투자였다.
수많은 생이 스러지는 전쟁에 투입된 정예 몬스터는 네임드가 될 수 있는지 없는지에 대한 실험.
하지만 언제든 포인트만 있으면 충당이 가능한 그런 것들과, 특성 특전으로 받은 규격 외 몬스터의 가치가 같을 수는 없다.
* * *
커다란 집게 같은 양손으로 스켈레톤 워리어의 머리를 으깨 버리는 지저인.
순수한 완력은 이미 보통의 인간과 비교 대상이 아니었다.
그런 놈들이 바글바글하게 뭉쳐서 달려오는 모습은 엄청난 위압감으로 다가왔다.
하지만, 그것을 상대하는 몬스터들은 두려움을 모르는 존재들.
이미 생명을 잃은 지 오래인 언데드들은 지저인들을 향해 거침없이 무기를 휘둘렀다.
병정개미 하나가 능히 두셋의 언데드들을 상대할 수 있다.
그러면 언데드들은 두셋의 동료가 부서져 나갈 때를 노려 병정개미의 등에 칼을, 이빨을, 그것도 안 되면 날카롭게 부러진 자신의 갈비뼈를 박아 넣었다.
그리고 7단계이면서 정예로 업그레이드까지 된 데스나이트들은 단단한 지저인들의 갑각마저도 무처럼 썰어 가며 학살을 실행하고 있었다.
거기다 정예가 되면서 더욱 강력해진 냉기 오라는 그 주변에서 전투를 치르는 지저인들의 움직임을 점점 둔하게 만들었다.
두려움도 없고, 지치지도 않으며, 완전히 박살 나지 않는 한 두 다리를 잃고도 팔로 기어 적을 물어뜯는 언데드들의 처절한 전투 방식은 지저인들에게 충분한 압박감으로 다가갔다.
[여, 여기서 물러나면 동족이 죽게 된다! 적어도, 모두가 대피할 때까지는 버텨야 해! 크에엑!]사기를 북돋으려던 놈의 목이 뎅겅 하고 잘려서 하늘을 날았다.
전장을 지배하다시피 누비는 데스나이트의 짓이었다.
-추가로 몬스터들을 투입할 필요는 없겠군.
-그런 것 같군요. 저항이 거세긴 했으나, 언데드 부대 손실은 절반을 조금 넘는 수준에서 그쳤습니다.
-음, 순익을 따지자면 10%가 조금 넘는 수준인가. 확실히 지저인들이 고급 모험가들보다 훨씬 수준이 높은 것 같군.
이번 전투에서 획득한 포인트와 병력 충원에 들어갈 포인트를 비교 분석한 나는, 앞으로도 방심을 하면 안 되겠다는 생각이 더욱 확고해졌다.
이 정도 전투력을 가진 놈들이 이렇게 많다면, 개중 특출한 개체는 얼마나 강할지.
그래 봐야 강자 한둘로 막을 수 없을 만큼 여기저기를 동시에 들쑤시면 될 일이지만.
언데드들은 전장에 살아남은 벌레들을 하나하나 찾아 확인 사살하고, 놈들이 필사적으로 지키려고 했던 곳으로 발걸음을 옮기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