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ll special! Dungeon Master RAW novel - Chapter 13
13
새벽에 먹은 간식 때문이었을까, 아침 식사치고는 꽤나 늦은 시간이었는데도 제대로 먹지 못했다.
에일라는 그런 나와 루시아를 보며 나에게는 혹시 몸이 안 좋냐며 걱정을 했고, 깨작대는 루시아에게는 엄한 목소리로 제대로 먹으라며 나무랐다.
지은 죄가 있는 루시아는 꽤나 배가 부를 텐데도 억지로 제 몫을 다 해치웠다.
아침 식사가 끝나고는 아카데미로 가기 위한 준비를 했다.
이럴 때가 귀족이어서 좋다는 생각을 하게 되는 순간이다.
준비를 한다고 했지만, 아카데미에 입학하는 장본인인 나는 준비할 게 별로 없었다.
짐도 알아서 싸 주지, 수속도 알아서 끝내 주지, 출발 시간에 맞춰 나갈 수 있는 상태만 만들면 내가 할 일은 끝나는 것이다.
“도련님, 이제 출발하셔야 할 시간입니다.”
던전 창을 열고 이것저것 만지작대는 사이에 준비가 완료된 듯 크리스가 들어와 말했다.
크리스는 엘라 대신 나와 아카데미로 들어가게 된 하녀였다.
“알았어. 곧 내려갈게. 첫날부터 지각을 할 수는 없지.”
나는 던전 창을 닫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나는 그동안 지낸 방을 둘러봤다.
음, 아무 감정도 안 드는군.
뭐, 군대 입대하는 것도 아니고, 감상적인 기분이 들진 않는다.
밑으로 내려가니, 에일라와 루시아가 드레스 차림으로 기다리고 있었다.
입학식인 만큼 가족으로서 동행을 하기로 한 것이다.
이미 아카데미에 재학 중인 레온도 분명 가족이긴 했지만, 우리와 한 번도 마주 앉아 식사도 한 적 없는 만큼, 그런 기대는 할 수 없었다.
애당초 에슬란테 남작은 어디서 놀고 있는지조차 모를 정도였으니, 훌륭한 콩가루 집안이다.
우리는 마차를 타고 아카데미로 이동했다.
나는 그 둘과 마차를 타고 가면서, 이곳에 올 때를 생각했다.
그때의 어색한 공기와 지금은 많은 차이가 느껴진다.
에일라는 아직까지도 나를 어려워하긴 했지만, 두려워하기까지 하던 예전과는 분명 달랐다.
루시아는 나와 새벽에 저지른 일탈 때문인지, 훨씬 더 친근해진 느낌이었다.
원래 같이 죄를 지으면 가까워지게 마련이다.
“오라버니, 주말에는 오시는 건가요?”
“특별한 일이 없으면. 귀찮으면 안 올 수도 있고.”
“저는 오라버니께서 오셨으면 좋겠어요.”
에일라는 루시아가 내게 하는 행동을 보고 꽤나 충격을 받은 것 같았다.
“루크, 루시아를 잘 챙겨 줘서 너무 고마워요. 저는 루크를 제대로 챙기지도 못했는데…….”
“여동생인걸요.”
“…고마워요.”
이후로 우리는 마차에서 루시아가 에일라에게 엘라에 대해서 종알종알 떠드는 것을 들으며 시간을 보냈다.
“도착했습니다. 마님, 도련님.”
마차가 멈춰 서고 문이 열렸다.
밖의 정경은 한마디로 대단했다.
내로라하는 귀족과 대상인의 자식이 아니면 입학조차 힘든 라메리안 왕국의 최고 교육 기관, 왕립 아카데미는 넓고 거대하며, 화려하고 웅장했다.
100층이 넘는 건물도 본 적 있는 내가 그 크기와 위용에 압도될 정도였으니, 에일라와 엘라가 느끼는 놀라움은 말할 것도 없었다.
하지만 나는 그 감탄을 이어 갈 수 없었다.
아카데미의 하인들이 입학식 행사가 진행되는 장소로 안내를 하겠다며 다가온 것이다.
우리는 하인을 따라 이동했다.
그렇게 우리가 안내된 곳은 마치 오페라 공연장 같아 보이는 대강당이었다.
음, 진짜 특이하군.
입학식이라면서 학생들을 줄을 세우지도 않고, 각각의 학생들이 가족들과 함께 가족석에 앉아 진행되는 입학식이었다.
게다가 테이블엔 고급스런 다과까지 준비되어 있었다.
아카데미에 입학하는 신입생은 어림잡아 100명 남짓.
그들의 가족들까지 들어와 있으니 북적대야 정상이지만, 대강당의 넓이가 워낙 넓어서 오히려 한산한 느낌마저 들 정도였다.
연단에는 누군가 올라와 지겹기 짝이 없는 이야기를 늘어놓았지만, 귀담아듣는 이들은 거의 없는 것 같다.
실제로 입학식이 진행되는 순간에도 하인들과 하녀들이 돌아다니며 음식과 음료를 나르고 있었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아카데미는 분명 최고의 교육 기관이고, 가르침을 주는 교사들 역시 최고의 명사들인 것은 분명했지만, 이곳에 모인 이들 중에는 후작도, 공작도 있을 수 있다.
그런 이들의 아들딸들 혹은 이미 작위를 물려받았거나 따로 작위를 하사받은 경우도 있다.
심지어 왕족이 입학하는 경우도 있을 수 있으니, 그런 이들에게 학생으로서의 경건함을 바라긴 힘들었다.
“안내 책자입니다.”
입학식이 거의 끝나갈 때쯤 하인이 두꺼운 책자를 가지고 왔다.
“허, 참.”
뭔가 해서 들춰 본 나는 어이가 없어서 헛웃음을 흘렸다.
하인이 주고 간 책자에는 귀족 가문 출신 재학생, 신입생들의 이름과 초상화보단 몽타주에 가까운 그림이 첨부되어 있었다.
“이건 왜 주는 거지?”
하인은 내가 불쾌해한다고 느꼈는지, 당황해서 설명을 덧붙였다.
“학기 초에 발생하는 문제를 최소화하기 위해서 마련된 방법입니다. 불쾌하셨다면 진심으로 사죄드리겠습니다.”
“음.”
어이가 없었을 뿐, 화가 나진 않았다.
이건 마치 선임 이름이랑 얼굴 연결해서 외우기, 선배나 상사들 이름 외우기 같은 느낌이다.
뭐, 그런 것이 다 그렇듯이 부조리 같아 보이긴 하지만, 갑이 아닌 을의 입장에서는 외워서 나쁠 것은 없는 게 사실이다.
물론 나는 구태여 미리 외우겠다며 들여다볼 생각은 없었지만 말이다.
그래도 나도 실려 있는가 궁금해서 들춰 보니, 가장 뒤쪽에 나도 그려져 있긴 했다.
그때.
입학식 행사가 종료된 듯 잠시 연단이 소란스러워지더니, 두 명의 인물이 올라왔다.
지금까지의 인물들과는 느낌이 다르다.
나뿐만 아니라 행사 자체를 별 관심 없이 보고 있던 다른 사람들까지 연단에 집중하는 것이 느껴졌다.
한 명은 음침해 보이는 후줄근한 로브를 입은 여자, 나머지 한 명은 ‘기사’라는 단어를 그대로 빚어서 인간을 만들면 이런 모습이겠거니, 할 수 있을 만큼 기사 그 자체인 남자였다.
여자는 뭐라고 중얼거리는 것 같더니, 한숨을 내쉬고 손을 휘저었다.
“아, 아, 이제야 제 목소리가 들리는군요. 죄송합니다. 워낙 목소리가 작아서…….”
무슨 짓을 한 건지, 그녀의 목소리가 갑자기 영화관에서 울리는 소리처럼 사방에서 크게 들려왔다.
[이름: 비올카 이리오스] [레벨: 73] [나이: 548] [힘: 224] [체력: 250] [민첩: 247] [마력: 3,200] [특성: 마도, 요정왕의 축복, 요정안, 마력 친화, 불로…….] [스킬: 공허 마법 Lv.9, 신비 마법 Lv.9, 정령 마법 Lv.9, 염동력 Lv.9, 마력 감응 Lv.9, 마력 운용 Lv.9…….]로브 입은 여자의 상태 창을 확인한 나는 너무 놀라서 의자에서 반쯤 일어났다.
“루크……?”
에일라가 그런 나를 의아한 눈으로 쳐다봤지만, 그걸 신경 쓸 정신이 없었다.
지금까지 본 모든 인간, 아니 모든 존재 중에서 가장 강력했다.
그것도 압도적으로.
비올카 이리오스, 이름을 확인하자 ‘상식’이 꿈틀거린다.
그녀는 이미 상식이 될 만큼 유명한 존재라는 뜻이었다.
비올카 이리오스. 라메리안 왕국의 마도를 대표하는 인물.
제국도, 다른 나라들도 그 나라의 가장 뛰어난 마법사는 대부분 각 나라의 마탑 지부 수장이나 궁중 마법사가 나눠 갖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하지만 몇몇 예외가 있는데, 그중 하나가 바로 비올카였다.
대륙 최고의 마법사를 논할 때 빠지지 않는 존재. 그녀는 그런 힘을 가지고도 옛 친우와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이 아카데미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었다.
다시금 인간을 홀리는 듯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저는 아카데미에서 마법을 가르치고 있는 비올카라고 합니다. 전공을 마법으로 정한다면 저를 자주 보게 될 거예요. 사실, 이런 자리에 오르는 것을 싫어하는데, 학장이 하도 부탁하길래 올라왔습니다.”
비올카의 말은 뒤쪽에 앉아 있던 학장의 얼굴을 울상으로 만들었다.
그래도 어쩔 수 없을 것이다.
이미 그녀는 계급이나 직급으로 어떻게 해 볼 수 있는 존재가 아니니까.
그 오만한 학생들과 귀족들도 모두 그녀에게 집중하고 있는 것만 봐도 알 수 있었다.
심지어 존경과 흠모의 눈빛을 보내는 학생들도 적지 않다.
“마지막으로, 대부분 알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가끔 수업 시간에 저를 처음 보고 놀라는 학생들 때문에 밝혀 두겠습니다. 뭐, 절 보고 놀란 학생도 30년쯤 전이 마지막이었지만…….”
비올카는 로브의 후드를 젖혔다.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 것은 빛나는 오팔과 같은 눈이었다.
흰자가 없는 눈은 그야말로 안구 대신 보석을 끼워 넣은 듯한 모습이다.
뾰족한 귀와 하늘빛 머리카락, 무엇 하나 인간다운 것이 없다.
실제로 그녀는 인간이 아니었다.
고대 요정족의 후예.
뭐, 나이만 봐도 이미 인간이 아니란 것은 짐작할 수 있겠지만, 그녀의 신상은 내 ‘상식’이 알 수 있을 정도로 유명한 일화였다.
“그럼 전 할 일을 했으니, 이만 가 볼게요.”
무슨 할 일을 했는지 모르겠지만, 비올카 자신은 맡은 바 역할을 다 끝냈다고 생각했는지, 훌쩍 연단을 내려가 버렸다.
학장은 당황해서 말리려 했지만, 이미 그녀의 속도는 사람이 따라잡을 수 있는 속도가 아니었다.
“…….”
대강당의 모두는 너 나 할 것 없이 침묵했다.
“크흠, 크흠.”
이제야 옆에 멀뚱히 서 있던 남자가 입을 연다.
“이런, 비올카 님께서 마법을 풀어 놓고 가셨군요.”
헛기침이 울리질 않자 그는 목소리를 키워서 말했다.
확성 마법은 이미 걸려 있지만, 대강당이 너무 넓다.
“원래는 기사반과 마법반, 그 이외의 전공을 선택할 때의 차이점을 미리 공지하는 것이 목적이었는데, 워낙 자기 세계가 확고하신 분이라…….”
[이름: 가이어 헤세] [나이: 32] [레벨: 55] [힘: 383] [체력: 353] [민첩: 387] [마력: 105] [특성: 검재, 신검합일] [스킬: 검술 Lv.8, 강체 Lv.7, 지휘 Lv.3, 교습 Lv.5…….]가이어의 상태 창은 내가 방금 비올카를 보지 못했다면 기함을 토했을 정도로 대단했다.
그는 기사반과 마법반, 그리고 여타 학과에 대해서 설명을 하기 시작했다.
아마 학장은 아카데미에서 가장 유명한 인물 둘에게 설명을 맡기고 싶었던 것 같았다.
가이어도 유명 인사이긴 마찬가지니까.
실력으로만 따지면 한 기사단의 단장 정도는 무난히 맡을 수 있을 정도로 대단한 사람이라는 것이 세간의 평가였으니까 말이다.
게다가 워낙 젊은 나이에 강함을 인정받았기에 천재라는 칭호도 따라붙은 사람이다.
실제로 그의 특성 ‘검재’는 S등급으로 검에 대한 한 천재에 가까운 재능을 부여한다고 적혀 있었다.
“물론, 아카데미에 입학할 정도의 배경, 재능, 나이를 생각할 때, 자신이 정한 진로에 대한 배움은 이미 일정 수준 이상일 것이라 생각합니다만, 그렇다고 이런 절차를 무시할 수는 없으니까 말이에요.”
나는 가이어의 말을 들으면서 상태 창을 띄웠다.
[이름: 루크 에슬란테 (한세기)] [나이: 16] [레벨: 14] [힘: 22] [체력: 20] [민첩: 22] [마력: 10] [보너스 포인트: 55] [특성: 사악, 이세계의 영혼, 던전 메이커, 던전 마스터, 패배를 안 지휘관]나는 진로를 결정하려면 먼저 남은 능력치부터 분배해야 한다.
그런데 관련 스킬이 생기질 않으니 지금까지도 정할 수가 없었다.
혹시 검술 스킬이 생길까 해서 며칠은 검을 미친 듯이 휘둘러도 봤지만 아무 소용이 없었다.
사실 마법이라는, 현실에서 가능하리라 생각도 못한 것에는 관심이 있었지만, 메커니즘을 전혀 모르니 선뜻 나설 수가 없다.
혹시 수학적 지식과 비슷한 메커니즘이라면 나는 평생 마법으로 모닥불도 못 피울지도 모른다.
그에 반해서 몸을 쓰는 것은 일단 진입 장벽이 낮으니, 만에 하나 스킬을 얻을 수 없더라도 능력치로 밀어붙일 수가 있는 것이다.
그렇게 상태 창을 보며 골머리를 앓고 있을 때, 내게 하나의 메시지가 ‘도착’했다.
[지옥 상점에서 공지 사항이 도착했습니다. 확인하시겠습니까?]처음 있는 일이었다.
나는 다른 모든 것을 꺼 버리고 메시지를 확인했다.
[안녕하십니까. 지옥 상점을 이용해 주셔서 감사합니다.저희는 이번에 빅 데이터 분석을 통해, 향후 우수 고객이 되어 주실 가능성이 높은 고객님들을 대상으로 이벤트를 진행하기로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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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은 이벤트 시간: 13일 23시간 57분] [지옥 상점 카탈로그 열람. +1단계의 일부 상품을 열람하실 수 있습니다.]
“…….”
진로 선택은 잠시 미뤄야 할 것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