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ll special! Dungeon Master RAW novel - Chapter 131
131
라치호가 기다리고 있는 곳은 평범한 거주 구역보다는 조금 좁은 동공이었다.
그 가운데를 걸어가는 데스나이트 주변으로, 엄청난 숫자의 무쇠 지저인들이 서 있었다.
대충 봐도 천은 넘길 정도의 숫자.
넓은 장소에서 회전을 벌인다면 지금 내가 가진 대부분의 포인트를 몬스터로 바꿔야 상대가 가능할 정도의 전력이다.
그것도 가장 높은 단계의 몬스터를 사용해야 하는 만큼 손해가 막심하겠지.
하지만 이들은 곧 나를 위해 움직이는 장기 말이 될 예정이다.
“…왔군.”
도열한 이들 사이에서 등장한 덩치가 1.5배는 되어 보이는 지저인.
익숙한 목소리로 그가 라치호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이 해골을 데리고 가면 된다는 것인가?”
나는 말 많은 자의 귀에 대고 대답하는 대신, 데스나이트에게 고개를 끄덕이도록 명령했다.
그것을 본 라치호가 눈을 두어 번 깜빡이며 생각에 잠긴다.
그러고는.
“가자.”
거대한 대검으로 땅을 쿵 찍으며 돌아섰다.
그것에 맞춰 무쇠 지저인들 모두가 라치호의 뒤를 따르기 시작했다.
“이것이 모두를 살리는 길이다.”
라치호의 자기최면에 가까운 말에, 그의 부하들 또한 굳은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 * *
땅의 심장이 있는 곳은 멀고 깊었다.
그리고 철저히 숨겨져 있었다.
구불구불한 통로를 벗어나, 이끼로 가득한 곳에서 이끼 바위를 치우고 드러난 굴로 다시 들어간다.
그렇게 얼마간을 걷고 나서 다시 나타난 거대한 공간은 지저인들이 인위적으로 만든 것이 아니었다.
그곳에서 또 걷는다.
내려가고 올라가고, 처음보다 올라간 것인지 내려간 것인지도 헷갈릴 만큼 복잡한 경로를 따라간 끝에 경이적인 광경이 펼쳐졌다.
땅의 심장.
예언자의 손을 통해 본 그것이 있었다.
거대한 구체의 모양을 한 땅의 심장을 동공 한가운데에 고정하고 있는 것은 사방으로 뻗어 나간 암석들이다.
그것은 마치 심장을 지탱하는 혈관같이 보였고, 땅의 심장은 이름대로 맥동하고 있었다.
드문드문 흰 살이 보이는 거대한 구체는 암석 표면을 일렁이며 숨을 쉬고 있었다.
[저것이 네가 찾는 것이다… 이제 우리는 무엇을 하면 되는가.]라치호의 물음.
나는 데스나이트를 통해 보석 하나를 내밀었다.
라치호는 불길함이 잔뜩 묻은 보석을 보고 눈을 찌푸렸다.
나는 말 많은 자의 귀에 대고 라치호를 향해 말했다.
“이것을 땅의 심장에 넣으면 원래의 모습을 되찾게 된다.”
[그런 후에는?]“내가 괜히 부하들을 전부 데리고 가라고 했겠어? 원래의 모습으로 돌아간 땅의 심장은 한동안 꽤 요란하게 발작을 할 거다. 그걸 진정시키는 게 네 역할이고, 거기까지만 하면 나머지는 내가 알아서 할 거야. 그런 후에 나는 물러난다.”
[…내가 이곳에 있는 동안 무슨 짓을 할 생각이라면 그만둬라. 여기에 있는 이들만이 내 부하들의 전부가 아니다. 피신한 동족을 지키고 있지. 그리 쉽게 무너뜨릴 수는 없을 거다.]노파심에 머리를 굴린 건가.
하지만 나는 피신한 다른 놈들은 별로 관심이 없다.
지금은.
나에게 엄포를 놓은 라치호는 데스나이트가 건네는 것을 받아들었다.
그리고 땅의 심장에 그것을 던져 넣었다.
암석이 아닌 속살이 드러난 곳에 닿는 보석은 마령의 정수였다.
잠시 쥐죽은 듯한 침묵이 동공에 내려앉았다.
잔뜩 긴장한 라치호도, 그의 부하들도, 맥동하던 심장마저도 얼어붙은 시간.
그 찰나 같은 평화가 지나자 폭풍이 불어왔다.
[쓰아아아아아!]화면 너머에서 엄청난 소리가 밀려든다.
비명 같기도 하고, 엄청난 기세로 바람이 부는 것 같기도 한 소리가.
그것을 확인한 나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정리되기 전에 현장을 덮치려면 지금부터 준비를 해야 하기 때문에.
* * *
미래를 위한다는 명목으로 다툼을 피하고자 하는 동족들을 척박한 곳으로 밀어낸 것은 자신이다.
그렇게 해서라도 종족의 미래를 개척해야 한다고, 그것이 대지의 축복의 비밀을 알게 된 자신이 해야 할 일이라고, 라치호는 생각했었다.
그러나 그 꿈이 얼마나 허황된 것인지 깨달았다.
지상에서 내려온 죽은 것들.
그것들은 자신들과 달랐다.
상상도 못 할 비겁하고 잔혹한 방법으로 자신의 동족을 유린했다.
머리로는 알고 있으나, 자신도, 그를 도와 지상의 비옥한 터전을 동족에게 선물하기로 맹세한 형제들도 눈앞에서 녹아내리는 동족들을 보면 물러나기를 반복할 뿐이었다.
그리고 죽음을 몰고 다니는 놈들의 뒤에 선 자와 대화를 나눴을 때 완전히 이해했다.
놈의 말대로, 자신이 아무리 강하다 해도 모든 이를 지킬 수는 없다.
적을 물리친다 해도, 같은 상황이 계속 반복된다면 결국 잃기만 하는 전쟁이다.
지상에는 아마도 더 악랄한 것들로 가득하겠지.
한 번도 본 적 없는 아름다운 지상을 꿈꾸었던 것이 우스워 웃음이 나왔다.
저런 악마 같은 놈들이 득시글거리는 곳으로 나가겠다고 동족을 핍박했다니.
이제는 기댈 것은 동족을 무참히 살해했고, 지금도 살해하고 있는 놈의 약속이 이행되길 바라는 것뿐.
허황된 꿈을 꾸며 형제들을 선동했고, 동족을 더욱 척박한 곳으로 밀어낸 죄.
그 죗값을 치룰 때가 된 것이다.
“라치호 님!”
폭풍이 부는 와중에 감상에 빠졌던 라치호는, 자신을 부르는 목소리에 정신을 차렸다.
“이제 어떻게 해야 합니까! 명령을 내려주십시오!”
라치호는 지금도 자신을 철석같이 믿고 따르는 부하들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눈빛이 흔들리는 자는 없었다.
울컥 무언가가 올라왔지만, 라치호는 그 감정을 억지로 내리눌렀다.
“이제 곧 대지의 주인께서 깨어나신다… 그분의 노여움을 막아 내는 것이 우리의 할 일이다.”
라치호는 말을 마치고 울부짖는 땅의 심장을 바라봤다.
쿠웅.
지진이라도 난 것처럼 땅이 울린다.
땅의 심장이 내뿜은 기운에, 그것을 지탱하던 암석 줄기들이 끊어졌기 때문이다.
거대한 땅의 심장은 바닥에 닿자마자 지반을 녹여나갔다.
뜨겁진 않다.
그저 흐물흐물해진 지반이 땅의 심장으로 흘러 들어갈 뿐.
라치호는 그것을 보고 막아야겠다는 생각을 잠시 했지만, 그건 생각으로만 끝이 났다.
순식간에 주변의 모든 암석을 마셔 나간 땅의 심장이, 새로운 모습을 갖췄기 때문이다.
그것은 아주 거대한 거인이었다.
* * *
“아아아아아아!”
산이 운다.
거대한 산이 인간의 형상을 한 것처럼 느껴지는 거인.
순수한 마력을 뿜어내어 대지의 축복이라 불리는 기운을 선물하던 땅의 심장은 온데간데없었다.
아주 탁하게 변해 버린 기운.
선하지도 악하지도 않은, 순수한 자연의 흐름이 모이고 모여서 만들어진 것이었다.
갓난아이라고 표현해도 좋을 만큼 중립적이고 흔들리기 쉬운 무언가였을 뿐인 그것에, 순수한 마의 기운이 정제된 마령의 정수가 빠진 것이다.
아주 깨끗한 물을 마실 수 없는 것으로 만드는 데는 검은 잉크 한 방울이면 충분한 것처럼, 땅의 심장은 오염됐다.
“대지의 주인이여! 용서하시오!”
갓난아이처럼 엉금엉금 기고 있는 거인을 향해 포탄처럼 날아간 라치호.
침통한 사과와 함께 그의 대검이 거인의 등에 꽂힌다.
콰앙.
포탄처럼이 아니라, 정말 포탄이었다.
대검을 꽂았을 뿐인데, 엄청난 운동 에너지는 폭발을 일으켰다.
콰콰콰콰쾅.
라치호를 잇는 무쇠 지저인들의 공격도, 그에 못지않은 소리를 동반하며 거인을 강타한다.
쿵.
갑작스런 충격에 거인이 중심을 잃고 휘청인다.
“그아아!”
그러나 거인을 휘청이게 만든 대가치고는 가혹한 공격이 날아왔다.
엎드린 채로 주먹을 휘두를 뿐인 단순한 공격.
그러나 바퀴벌레 입장에서 인간이 휘두르는 것은 무엇이 됐든 재해일 뿐인 것처럼, 거인의 공격은 재앙이었다.
콰과과과곽.
주변 모든 것이 박살 나며 휩쓸렸다.
산만 한 덩치에도 느리지 않은 공격은, 그에 준하는 물리적인 파괴력을 동반했다.
라치호의 부하들 중 몇몇이 비명을 지르며 갈려 나간다.
“으아아아!”
그 와중에 거인의 등에 대검을 꽂은 채로 달리는 라치호.
밭이 갈리듯 거인의 등이 터져 나간다.
“라치호 님을 따라라!”
그것을 본 다른 지저인들도 똑같이 거인의 등을 따라 달린다.
그러나 거인은 고통 따위 없다는 듯 그대로 몸을 일으켰다.
처음과는 달리 어색함이 조금 사라진 동작.
새로이 얻은 몸에 적응해 가는 모습이다.
후웅!
물기를 털어 내는 짐승처럼 거인이 몸을 털자, 등을 달리던 지저인들이 후두둑 떨어진다.
그 충격에도 바닥에 무사히 착지한 라치호는 기운을 끌어모았다.
“끄아압!”
대지의 축복을 극한까지 받았고, 그것을 갈고 닦은 라치호의 검에 대지의 기운이 서린다.
다리 근육은 한계를 넘은 출력을 내기 위해 피와 마력을 게걸스레 삼키며 팽창했다.
쾅 하는 소리와 함께 라치호가 허공을 직선으로 갈랐다.
포물선을 그리던 처음과는 비교할 수 없는 기세.
그대로 거인의 명치에 충돌한다.
대지를 집어삼킨 땅의 심장이 있었던 곳.
“그어어!”
산울림 같은 비명을 내지른다.
그것에 동반된 몸부림은 거셌다.
동공이 무너질 듯한 충격이 연이어 일어났다.
폭주하듯 휘둘러지는 주먹질은 탁한 마력을 동반해 주변을 분쇄한다.
하지만 참혹한 전장의 한복판에서도 지저인들은 포기하지 않았다.
동족이 죽어 가는 모습에 분노한, 그리고 나머지 동족을 살리기 위한 필사적인 공격이 이어진다.
지저인들은 각각의 각오와 사죄, 눈물, 바람을 담아 외치며 자신들에게 가호를 내려줬던 존재를 갉아 나갔다.
누구는 눈물을 흘렸고, 어떤 이는 앙다문 입에서 피를 흘렸다.
그러나 멈추는 자는 없었다.
그들에게는 남기고 온 동족의 목숨이, 종족의 미래가 가장 중요했기에.
자신들의 희생으로 그들에게 내일을 선물할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이 너무 커서 의심조차 하고 싶지 않아서, 그저 목숨을 버려 가며 라치호를 따를 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