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ll special! Dungeon Master RAW novel - Chapter 147
147
인간이라면 아무것도 발견할 수 없을 정도로 자연스러운 숲속.
하지만 베테랑 엘프 레인저들에게는 많은 흔적과 정보가 남아 있는 것이 훤히 보였다.
악귀라면 절대 남기지 않았을 흔적들이다.
그놈이 악귀라고 불리는 이유는 잔혹하고 더러운 수법 때문도 있지만, 숲의 종족이라 불리는 엘프들의 눈으로도 흔적을 전혀 찾을 수 없는 신출귀몰함에 있었으니까.
“이번 기회를 놓치면 언제 또 그 악귀를 처단할 기회가 올지 모른다. 주변에 있는 모든 레인저 분대에게 연락해서 습격조를 구성한다.”
너무 깨물어 너덜너덜한 입술을 하고 있는 엘프, 유리스는 자신의 분대원들에게 명령했다.
“분대장님…….”
안타까운 부하의 목소리에 유리스가 분노로 번들거리는 눈빛을 보낸다.
“듣지 못했나? 주변에 연락할 수 있는 모든 레인저 분대를 모으라고 했을 텐데.”
서슬 퍼런 유리스의 눈빛에, 부하들이 고개를 숙였다.
그녀는 원래 이렇게 부하들을 압박하는 상관이 아니다.
오히려 부드러운 성격을 가졌으면 가졌지.
하지만 지금 그런 태도를 바라는 건 어불성설이었다.
한쪽 팔이 뜯겨 나가고, 혀를 깨문 채 죽어 있는 처참한 시체가 유리스의 언니였기 때문이다.
“분대장님, 심정은 이해합니다. 저도 간절히 악귀를 잡아 엘론 광장에서 놈의 모든 살을 발라 버리고 싶은 심정입니다. 하지만 저희 레인저의 임무는 어디까지나 정찰입니다. 교전은 정말 어쩔 수 없을 때, 그리고 확실한 승리가 보장될 때입니다. 아시지 않습니까.”
“그걸 지금 말이라고……!”
유리스는 자신의 명령을 거부하는 부하를 노려봤으나, 그 눈빛은 바로 힘을 잃었다.
그 말을 한 샤릴란은 1년 전 악귀에게 여동생을 잃은 부하였기 때문이다.
그녀의 눈도 이미 실핏줄이 터져 붉게 충혈되어 있는 상태.
억지로 분노를 억누르고 있는 것을 누구나 알 수 있는 모습이었다.
자신들로는 무리다.
그 말이 유리스의 가슴을 저며 놓았다.
“악귀가 이렇게 흔적을 남긴 경우는 거의 없습니다. 언제나 함정이었거나 잠시 침입자와 동행할 때가 대부분이었죠. 정황상 침입자와 동행하고 있을 가능성이 더 높아 보입니다. 미미할지는 몰라도, 바깥에서 온 놈이 악귀와 동조할 경우까지 상정해서 전략을 짜야 합니다.”
“이대로 돌아가자는 말이냐?”
“…….”
샤릴란은 대답하지 않았다.
그녀도 진심으로 악귀가 잡고 싶은 것이다.
하지만 이제 겨우 레인저가 된 지 1년 차인 대원들을 사지로 내몰 수는 없다.
유리스도 같은 심정이었지만… 눈앞에 놓인 언니의 참혹한 시신이 그녀에게 희망적 관측을 강요했다.
‘아무리 악귀라 해도 몇 개 분대의 레인저들을 순식간에 전멸시킬 수는 없을 거야. 숫자가 많아질수록 전력 차는 커지는 법. 발 빠른 대원 몇 명을 엘론으로 보내면……. 신호탄이 터지면 악귀도 알게 될 테니 직접 엘론까지 가야 하겠지만, 그렇게까지 오래 걸리진 않아……. 그동안 발목만 잡아두면 돼. 그 정도는 할 수 있어.’
그건 희망이 아니라 집착이었지만, 가족을 잃은 자에게는 중요치 않았다.
“샤릴란… 네 말도 맞아. 하지만 명령에 번복은 없다. 주변 레인저 분대를 모아서 악귀를 추적한다.”
“유리스 언니!”
유리스의 고집에, 샤릴란의 입에서 사적인 자리에서만 사용되는 호칭이 튀어나왔다.
평소 같았으면 분대장으로서의 위엄 때문에라도 한소리 했을 텐데, 상황이 상황이니 만큼 유리스는 내렸던 명령을 보강하는 말만 내뱉었다.
“단, 악귀를 우리가 상대하는 게 무리라는 건 인정해. 그러니까 우리는 악귀의 위치 파악 및 추적만을 담당한다. 도로시, 로미, 너희 둘은 지금 당장 엘론 방향으로 달려. 그리고 스피릿 나이츠를 호출해.”
“…….”
샤릴란은 여전히 납득하기 힘들다는 표정이었지만, 더 이상 반대하지 않았다.
유리스가 어떤 심정인지 잘 알기도 했고, 지금 유리스가 호명한 둘이 1년 차 신입이었기 때문이다.
“시간 끄는 정도라면 저희도 할 수 있겠죠.”
“맞아요. 이제는 정찰하면서 언제 악귀한테 잡혀갈지 무서워서 새벽부터 기도하는 우스꽝스런 짓 좀 그만했으면 했는데, 이번 기회에 끝내자고요.”
“악귀가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을지도 모르니까 신호탄은 무리겠네요. 직접 뛰어서 다른 분대들을 모아야 하니까 최대한 빠르게 움직이죠.”
둘을 제외한 분대원들이 저마다 담담하게 한마디씩 한다.
“분대장님, 저희만 돌아갈 수는 없습니다.”
“저희가 모자라서 그러시는 거라면…….”
도로시와 로미가 항의하려 했으나, 돌아온 것은 엄한 목소리뿐이었다.
“너희가 마음에 걸려서 그러는 것 같아? 나는 작전 효율을 위해서 너희 둘을 골랐을 뿐이야.”
“그럼 로미만 보내면 되지 않나요?”
“숲속에서 작전 활동을 할 때는 무조건 둘 이상의 대원이 같이 움직여야 한다는 거, 안 배웠어? 우리가 그렇게 걱정되면 지금 당장 달려. 너희들이 빠르게 뛰면 뛸수록 지원도 빨리 올 테니까.”
“…….”
“…….”
결국, 둘은 눈물을 글썽이며 경례를 올리고 미친 듯이 달리기 시작했다.
* * *
콜린은 잡다한 정보를 술술 알려 줬다.
많이 쓸모는 없어도, 알아서 나쁠 것은 없는 것들.
엘프는 여자가 훨씬 더 많으며, 레인저의 대부분이 여자들이란 점.
남자 엘프는 여자보다 훨씬 더 강력한 대신 보기가 엄청 어렵다는 점 같은 것들.
“그럼 잡아 뒀던 남자는 뭡니까?”
“아, 그거? 가끔 남자 구실 못 하는 놈들이 여자들이랑 섞여서 돌아다니거든. 놈들은 성별이 아니라 철저히 힘의 논리로 신분의 고하가 결정되는 것 같더라.”
대수롭지 않게 대답하는 콜린에게, 나는 차마 남자는 왜 굳이 잡아 왔는지 묻지 못했다.
그걸 들어버리면 동굴에서 뛰쳐나가게 될 것 같아서.
그래도 혹시 모르니…….
나는 조심스럽게 엉덩이를 옮겨서 콜린에게서 거리를 벌렸다.
조심해서 나쁠 건 없으니까.
그런데 그때, 콜린의 기세가 달라졌다.
“아무래도 오늘은 한 푸닥거리 더 해야 할 것 같군.”
그게 무슨 소리냐고 묻지 않았다.
내게는 아직 느껴지지 않지만, 50년을 혼자서 살아남은 그에게는 무언가 느껴지는 것일 테니.
나는 조용히 전투 준비를 했다.
“눈치 하난 귀신같구나. 설명도 해 주지 않았는데 바로 기세부터 달라지는 것을 보니. 아니면 설마 너한테도 느껴지냐?”
“몇이나 됩니까?”
“몰라. 그런데 많다. 은신처를 들킨 건 정말 오랜만인데…….”
“어떻게 하는 게 좋아요?”
“멀찍이서 대기하면서 거리를 좁힐 생각이 없는 것을 보니 지원이 오길 기다리고 있는 것 같다. 그러면 여기서 먼저 치고 나가서 난전을 유도하고, 적당히 만져 준 뒤에 자리를 옮겨야지.”
“정석적이군요.”
“너는 괜찮겠냐? 아까 보니까 맹탕은 아닌 것 같지만…….”
“죽지 않을 정도는 될 겁니다. 그래도 먼저 나가서 난전을 유도하는 건 선배님이 해 주시죠.”
“허허, 뻔뻔한 손님이로구만.”
콜린은 어이없다는 듯 웃었지만, 내 말대로 동굴 입구를 향해 몸을 돌렸다.
“지금은 놈들이 기척을 죽이는 데 신경을 쓰고 있지만, 싸움이 시작되면 훤히 느껴질 거다. 알아서 숨든 싸우든 해라.”
내가 고개를 끄덕이는 것을 확인한 콜린이 땅을 박찼다.
팍.
단 한 번. 가볍게 튄 흙먼지를 마지막으로 콜린의 신형이 사라졌다.
그리고 잠시 후.
“아아악!”
아름다운 비명이 울렸다.
파파팡.
이어진 것은 익숙한 투사체의 소리들과 다급한 외침들.
완전히 전투가 시작된 것을 확신한 나는 조심스레 바깥으로 나갔다.
‘멀군.’
마력탄이 터지는 것을 눈으로 확인해 보니, 꽤나 멀리서 우리를 감시한 모양이다.
콜린의 말대로 전형적인 지원을 기다리는 척후의 행동이다.
나는 무기를 사출하는 대신 빠르게 몸을 날려 레인저들이 있는 곳까지 달렸다.
“허억!”
첫 번째 목표에 손이 닿자, 콜린을 향해 활을 난사하던 엘프가 헛숨을 들이켠다.
우드득.
나는 엘프가 경고성을 뱉기도 전에 목을 꺾어 버렸다.
손에 잡힌 육신이 추욱 힘을 잃는 감촉을 느끼며 바닥에 던져 버렸다.
“이 자식!”
그 소리에 반응한 그녀의 동료가 쓰기 편하게 생긴 직검을 뽑아 들고 찌르기를 걸어온다.
지금의 내게도 충분히 빠르고 깔끔한 일격이다.
그러나.
푸욱.
지옥 주머니가 열린 곳은 그녀의 옆구리. 내게 시선이 집중된 그녀는 속수무책으로 내장이 거덜났다.
슈슈슝.
파파팍.
날아드는 마력 화살을 쓰러지는 엘프를 집어들어 막아 냈다.
“끄아악!”
아직 숨이 끊기지 않은 엘프가 고통에 몸부림친다.
“이런 쳐죽일!”
그 모습을 본 화살을 쏜 장본인들이 분노를 토했다.
“네놈들이 쏴 놓고 왜 나한테 지랄이야!”
나는 억울함을 호소하면서 들고 있던 엘프를 동료들에게 집어 던졌다.
쐐액, 퍼억!
무서운 속도로 날아간 육체가 고층빌딩에서 떨어진 것처럼 터졌다.
나를 공격한 엘프들은 투척 공격은 피했지만, 그 참혹한 광경에 잠시 눈을 두는 실수를 했다.
멀지 않은 간격을 두고 한눈을 판다는 건 죽겠다는 말과 같다.
“헉!”
뒤늦게 반응하려 하지만, 직검을 사용하는 레인저들에게는 부담스러울 만큼 간격이 좁아졌다.
화악, 하고 풀내음이 섞인 싱그러운 살 냄새가 풍긴다.
뻐억, 뻐억!
그리고 달큰한 풀내음이 어지러울 정도로 진해졌다.
터져나온 피에서 나는 향내였다.
‘엘프들은 피에서도 풀냄새가 나네?’
주먹과 무릎에 각각 안면이 함몰된 둘을 보며 또 하나의 지식을 채워 나갔다.
“와하하하! 이런 수준으로 나를 잡으려고 한 거냐! 오늘은 세 년을 살려서 잡아가 주마! 아예 자결은 꿈도 못 꾸게 팔다리를 싹 뽑아내서 말이야!”
그 와중에 콜린은 광소를 흘리며 이곳저곳으로 날아다니고 있었다.
엘프들이 쓰는 직검을 빼앗아 휘두르는 모습은, 적어도 여울보다는 훨씬 더 강력한 검사로 보였다.
다만 그의 움직임에는 여울에게서 느껴지는 깔끔함이나 세련됨이 보이질 않았다.
그저 강력한 짐승이 사냥감을 죽이기 위해 움직이는 것 같은 느낌이다.
슈슝.
젠장, 한눈팔면 X 되는 건 나도 마찬가지지.
나는 날카로운 궤적을 그리는 화살을 겨우겨우 피하며 몸을 굴렸다.
그러면서 다리에 염동력을 집중하고, 순간적인 출력을 올리면서 박찼다.
파악.
마력과 염동력을 듬뿍 빨아들인 다리 근육이 평소에는 맛볼 수 없던 속도감을 줬다.
그 해방감과 긴장감 속에서 나를 공격한 엘프에게 손을 뻗는 순간.
-이동 경로에 있던 몬스터들을 규합하느라 늦었습니다. 이제 곧 주군 곁에 도착합니다. 조금만 기다려 주십시오.
내 수족들이 지척까지 도달해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