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ll special! Dungeon Master RAW novel - Chapter 158
158
정면으로 부딪칠 수 있다면 지지 않는다.
정찰을 통해 확인한 엘론의 방어 체계에서 느껴지는 인상이었다.
거대한 나무들이 서로 뒤엉켜 만들어 낸 거대한 성벽은, 인간들이 만든 것 이상의 견고함과 웅장함을 자랑했다.
아마도 고위 목령들을 이용해 오랜 세월 만들었을 산물이다.
‘인간은 꿈도 못 꿀 레벨이군. 하나둘쯤 엘프들 수준 가는 정령사가 있을지는 몰라도, 저런 건 그런 놈들이 수백은 필요할 테니까.’
촘촘했던 경계망이 무너진 만큼, 몬스터를 통한 정찰도 가능해졌다.
침투하기 위해 척후병의 절반 이상이 손실되긴 했지만, 싼 병력이다.
잃는 만큼 정보를 얻을 수 있다면 전체를 소모해도 상관없다.
어차피 엘프들이 죽인 척후병을 보충하는 불행 또한 엘프들이 지불할 것이다.
-북부 준비 완료되었습니다.
여울.
-남쪽도 준비됐습니다, 형님.
신비.
둘의 보고를 들은 나는 뒤를 돌아봤다.
형형히 빛나는 눈빛들이 어둠 속에서 나를 바라본다.
엘프들이 그동안 토해 낸 절규를 실체 있는 악몽으로 바꾼 것들.
곧 있을 살육을 느낀 것인지, 하나같이 흥분한 숨을 후욱 내뱉고 있었다.
하물며 지금은 고르고 고른 만월의 밤이다.
라이칸스로프들에게는 더없이 흥분되는 순간일 것이다.
여울을 따르는 언데드들 또한 적지 않은 영향을 받을 테고.
준비는 갖춰졌다. 돌격. 그 한마디만을 내뱉으면 된다.
“시작.”
조금 다른 단어지만, 의미는 같았다.
엘프들의 심장을 겨냥한 잔혹한 칼날이라는 점에서.
작전 계획은 완벽하게 짜 놨다. 전투가 시작되고, 전장의 변수가 작용하기 전까지는 짜 놓은 각본대로 움직일 것이다.
그리고 그 각본은, 조금 먼 곳에서 시작될 것이고.
쾅.
짧은 단발성의 굉음이 아주 먼 곳에서 다가왔다.
이제, 소리보다 조금 느린 것이 다가올 순서다.
* * *
정해진 위치에서 우직하게 명령을 기다리고 있는 것은 땅의 전사였다.
-시작.
이곳에 존재하는 모든 하수인에게 울렸을 명령.
땅의 심장 알렉산더 또한 그것을 기다린 하수인 중 하나였다.
차이점이 있다면, 미리 받은 명령이 있었고, 그것이 아주 중요하다는 것뿐.
알렉산더는 주인의 명이 떨어지자마자, 바위 육체 안에 깃든 코어를 풀파워로 가동시켰다.
키이이잉.
엔진음이라고 불러도 좋을 기관의 폭주.
그것은 가진 바 마력에 더해, 주변의 마력을 끌어와 연료를 태우는 소리였다.
태운 연료가 만든 힘을 급격하게 끌어 가고 있는 부위는 하체였다.
과부하가 결국 절정에 달했을 때 일어난 것은 폭발이었다.
콰앙.
작은 운석이 떨어진 듯한 충격파가 주변을 휩쓸고, 얕은 크레이터를 만들었다.
주변 거목들이 부러져 나간 것은 자연스런 현상이다.
파아앙.
파괴적인 도약. 땅의 왕이라 불려야 할 거인은 자신에게 허락되지 않은 창공을 비행했다.
자신이 줄기차게 던졌던 악의 담긴 자루들과 같은 궤도를 날아간다.
“쿠어어!”
음속에 가까운 가속도에서 오는 공포는 없었다. 바위에게 감정이란 사치였으니. 있는 것은 오직 주인을 향한 충성뿐이다.
몸을 웅크리는 알렉산더. 목적지가 가까워졌기에 나오는 동작이다.
정령의 도움을 받아 만든 거목의 성벽이 가까워진다.
“어어?”
성벽 위에서 하염없는 어둠을 감시하던 엘프의 당황스런 목소리.
멍청하다고 생각해도 되겠으나, 하늘에서 운석이 눈앞으로 다가오는 형국이다. 그 누구라도 어떤 대응을 해야 할지 알 수 없을 것이다.
세상 어느 군대도 눈앞으로 운석이 직선 비행을 할 때는 이렇게 하시오, 하는 묘책을 병사에게 교육하지 않는다.
이어진 것은 굉음이라던가 폭음이라는 말이 무색한 폭거였다.
적어도 엘론에 있는 모든 이들이 지진을 느꼈고, 인간 문명에서는 바라지 못할 견고함을 자랑하는 자연의 성벽은 커다란 구멍을 만들고야 말았다.
거대함에 비해 작은 균열이었으나, 적을 허락하지 않아야 하는 성벽에 메우지 못할 구멍이 생긴 것으로 이미 성벽이란 이름이 퇴색되기 충분했다.
물론 알렉산더도 무사하지는 못했다.
육체의 8할이 산산조각으로 부서졌으니 말이다.
그러나 거인의 기절은 잠시일 것이다.
코어만 회복되면 육체를 재구성하는 것쯤은 식은 죽 먹기였다.
그 전에 소멸시켜야 했지만, 아마도 엘프들에게 그럴 여유는 주어지지 않을 것이다.
* * *
-명중 확인! 저도 시작하겠습니다!
신호와 함께 남쪽에서 불길이 치솟았다. 북쪽도 마찬가지.
남과 북에서 시작된 불길은 넉넉하게 뿌려놓은 기름을 게걸스럽게 삼키며 엘론을 고립시킬 것이다.
“가라.”
명령에 반응한 짐승들이 거친 숨을 몰아쉬며 사지를 휘저었다.
무서운 속도감과 함께 옆을 스쳐 앞으로 치고 나가는 무리들.
아쉽게도 알렉산더가 충돌한 지점의 정보를 얻을 수 없었다.
허약한 척후병이 거리가 꽤 있음에도 충격에 휘말려 죽은 탓이다.
하지만 휘말려 죽은 척후병 자체가 상황을 알려 주고 있다고도 할 수 있다.
아마도 엘프들은 너무 세게 얻어맞아서 잠시 정신을 잃었을 것이다.
‘자, 얼마나 빠르게 대응하나 볼까?’
나는 산책이라도 하듯 천천히 걸음을 옮기며 생각했다.
내가 찌르는 칼이 엘프들의 심장에 닿아, 그 생명을 꺼뜨릴 때까지 얼마나 걸릴지.
최대한의 혼란을 주기 위해 고른 전장은 세 곳이었다.
북, 남, 그리고 심장.
북은 여울이, 남은 신비가, 심장은 내가 찌른다.
화벽은 밖으로 빠진 병력이 본진으로 복귀하는 것을 막는 동시에 탈출을 막기 위함이다.
뚫고 들어올 강자들도 있겠지만, 소수일 것이다.
다수의 병력을 묶어 둘 수 있다면 불길은 제역할을 다 했다고 볼 수 있다.
‘남쪽은 그것 이상의 의미가 있는 것 같고.’
홀로그램을 통해 본 남쪽은 이미 거대한 괴수가 되어 엘프들을 휩쓸고 있는 불가사리로 가득했다.
신비가 뿌리는 푸른 귀화 또한 볼 만했으나, 주변이 화염의 바다인 이상, 불가사리의 전투력이 훨씬 더 월등하다.
불가사리가 스피릿 나이트에 의해 소환된 물의 정령을 양손으로 잡아 찢는 것을 마지막으로, 시야를 여울에게 돌렸다.
북쪽은 요란하진 않았지만 잔혹했다.
또 피눈물을 흘리는 여울과 그녀를 따르는 죽음의 부대는 엘프들을 포위한 채 전투 중이다.
차라리 불길만이 있었다면 희망이 있었을 것을.
북쪽은 화마보다 지독한 독기로 가득한 세상이었다.
간카오스가 뿜어 대는 브레스 때문이었다.
고위 언데드들 또한 부식을 감수해야 할 정도.
살아 있고, 숨을 쉬어야 하는 엘프들에게는 지옥이나 다름없었다.
최대한 살려서 잡아 보라고 했는데. 짧게 스치는 생각.
대답은 곧바로 돌아왔다.
-승기를 잡은 순간부터는 살릴 수 있는 만큼 살려서 잡겠습니다.
그녀의 말을 듣고 보니, 독기로 가득한 공간은 전투원들이 있는 곳이다. 어떻게든 대피해 보려 하는 엘프들은 독기의 영향권 밖이었다.
화염 때문에 설 곳이 별로 없긴 하지만.
상황을 보니 두 곳은 저항할 힘이 부족한 것 같았다.
그리 늦지 않게 정리하고 메인 전장에 합류할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저항이 거센 것은… 역시나 심장이었다.
[으아아! 빌어먹을 짐승 놈들!] [아끼지 말고 쏴! 거기, 너! 그러고 있을 거면 화살이나 날라!] [어차피 뚫린 곳은 한 군데다! 병력을 집중해!] [목령을 다루는 자들을 소집해라! 성벽을 복구해야 한다!] [다른 걸로라도 막아! 화령!]소속이 불분명한 자들부터, 레인저, 스피릿 나이트가 뒤섞인 적군은 혼란 속에서도 강력했다.
투입된 라이칸스로프들이 제대로 된 활약을 못하고 죽어 나갈 정도라니.
특히 스피릿 나이트들의 활약이 대단하다.
겨우 하나나 둘 정도 있을 때와는 비교할 수 없는 순간 화력이 인상적이다.
게다가 숫자가 계속해서 느는 것을 보니, 바깥으로 나간 병력에는 스피릿 나이트가 소수만 포함된 듯했다.
‘아니, 빠진 건 병력이라기보다는 피난한 비전투 인원이라고 보는 게 맞을 것 같군. 다른 곳의 저항이 너무 형편없어.’
바깥으로 빠진 인원들이 무너지는 속도와는 별개로, 엘론에 투입된 몬스터 병력의 소모가 생각보다 빠르고 심했다.
주력이 저곳에 남았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래도 앞으로의 전황이 어두워 보이진 않았다.
막 알렉산더가 육체 재구성을 마치고 일어나는 참이니.
[저, 저기- 으아악!]알렉산더가 쥔 거대한 대검 형상의 암석 구조물은 차라리 신전의 기둥이라 부르는 게 나을 정도.
그것이 휘둘러지자 범위 안에 있던 엘프들이 경악과 비명을 내지른다.
낙하한 것이 무엇인지 몰랐기에 발생한 불상사였다.
거대한 물체가 충돌해서 성벽을 부수긴 했는데, 그게 일어나서 공격을 가할 것이라고는 생각을 못했겠지.
[한눈팔지 마! 우직하게 눈앞에 있는 새끼들만 막아! 자기 방향만 사수해라! 아군을 믿어!]뒤늦게 합류한 이들의 외침.
그러면서 그들은 각자가 계약한 정령의 이름을 외친다.
까드드득.
무언가를 깎아 내는 소리가 화면 너머에서 흘러들었다.
‘음…….’
이후 벌어진 상황은 나로서도 예상을 넘어선 광경이었다.
알렉산더 이상의 덩치를 가진 나무 정령들이, 성벽에서 기어 나오는 모습.
[쿠어어어!]자신을 향해 다가서는 목령들을 본 알렉산더는 강력한 힘이 실린 일격을 휘둘렀지만, 셋이나 되는 목령들은 낭창이는 팔을 휘둘러 알렉산더를 감쌌다.
투두두둑.
질긴 나무줄기가 힘없이 끊어지는 소리. 알렉산더의 힘이 더 강한 탓인 것 같다.
그러나 숫자가 많다. 어느 정도일 때는 힘없이 끊어지던 나무줄기들이, 겹겹이 쌓여 가면서 알렉산더의 움직임을 봉쇄한다.
결정적 타격이 될 수는 없겠으나, 전장의 혼란을 수습하기에는 충분한 조치다.
저들 입장에서 적장인 나로서도 저런 목령이 내 몬스터들을 상대로 투입되는 것을 막았으니, 서로 카드를 교환했다고 봐야 할 것이다.
‘도착하기 전에 웬만큼 전력을 무너뜨리고 시작하고 싶었는데…….’
역시 정면 대결을 피하고 갉아먹을 때와는 다르다.
독기 오른 것들의 옥쇄는 상당한 수준이었다.
저곳에서 악에 받쳐 싸우는 자들 대부분이 나에게 누군가를 잃은 자들일 테니.
증오와 분노, 슬픔이 담긴 외침과 몸부림들.
그러나 애석하게도, 그런 감정마저 내게는 자원이고, 일용할 양식이 됐다.
그 양식이 상대에겐 치명적인 독일 테고.
스스슥.
수풀을 헤치는 소리가 주변을 물들이다가, 전방으로 멀어진다. 2차 공세가 몰려가는 소리였다.
고통에 몸부림치는 선한 자들이 있는 한 내 수족은 언제든 새롭게 자라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