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ll special! Dungeon Master RAW novel - Chapter 162
162
대수해의 중심부를 고립시키고, 시간마저 뒤틀어 놓았던 것은 방주를 주변으로부터 보호하기 위한 조치였다.
다만 기능 고장으로 인해 방주만을 은닉해야 할 원래의 역할에서 벗어났던 것이다.
-복구 불가능한 영역을 분리 및 폐기, 안정성이 확보된 새로운 방주를 구성합니다.
마리아는 그런 고장 난 부분을 가차 없이 도려냈다.
엘론의 가운데에 쐐기처럼 자리 잡고 있는 수만 가닥의 빛줄기 또한 버려져야 할 것이었다.
오랜 세월 방어 기능을 해 오던 쐐기는, 분리됐다고 해서 얌전히 침묵하는 것을 선택하지 않았다. 오히려 폭주에 가까운 반응을 보이고 있었다.
“도, 도대체 신목에 무슨 일이……!”
앞을 가로막았던 엘프의 상태창을 확인했다. 캐리온인가.
과연. 혼자서 적장을 가로막을 만한 힘을 가진 자였다.
하지만 그런 그도, 자신들이 신목이라고 떠받들던 것이 폭주하는 모습에는 침착함을 유지하지 못했다. 그건 나도 마찬가지고.
-분리 과정에서 예기치 못한 오류가 발생했습니다.
-그런 건 저걸 보면 머저리도 알 수 있어.
안정된 회로도 같던 것이, 지금은 포악한 짐승처럼 분위기가 바뀌어 있었으니까.
산발적으로 쏟아 내는 빛 가루가 불길하게 흩날린다.
-방주로부터 분리된 부분의 폭주로 인해 발생할 위험은 현재 미지의 영역입니다. 마리아는 조속히 대피할 것을 추천합니다. 현재, 마리아는 방주 재구성 작업으로 인해 실질적인 지원이 불가능함을 알립니다.
-추가로, 현재 주변 공간은 매우 불안정한 상태입니다. 모든 종류의 공간 도약은 불가능하거나 매우 큰 위험을 동반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마리아는 도보를 통한 이탈을 권장합니다.
메시지 없이 목소리만으로 들려오는 경고.
유능한 관제 시스템이라더니, 더럽게 무책임했다.
‘저 자식이 정신 못 차릴 때 슬쩍 빠져나가야겠군.’
힘을 시험해 보고픈 생각이 안 드는 건 아니지만, 다른 위험이 저렇게 커서야 손해가 될 가능성이 크다.
저놈 한 놈뿐만 아니라, 소동을 감지하고 몰려올 다른 엘프들도 감안을 해야 하고.
-여울, 신비, 가능한 많은 몬스터들을 살려서 후퇴해. 후퇴 과정에서 시간 끌 필요가 있을 때는 싼 놈들부터 던져 가면서 물러나.
-주군께서는 괜찮으십니까?
-나는 내가 알아서 빠져나갈 테니까 걱정하지…….
조심히 거리를 벌리면서 명령을 내리던 나는, 여울에게 하던 말을 삼켰다.
망연하게 쐐기의 폭주를 바라보던 엘프의 신형이 흐릿해지더니, 순식간에 내 앞에 나타난 것이다.
콰득.
서 있던 장소가 두부처럼 갈려 나갔다. 분쇄기의 정체는 맹렬하게 소용돌이치는 물의 집합체였다.
전신을 휘도는 칼날 같은 바람, 양팔과 검을 뒤덮은 소용돌이, 그리고 그 모든 것에 깃들어 있는 푸른 스파크까지.
캐리온은 자신이 소환한 정령 셋과 합쳐진 상태로 나를 노려보고 있었다.
혼란, 피로, 분노가 적절하게 섞인 얼굴. 나오는 목소리에는 귀찮음마저 묻어난다.
“이제는 이게 네놈 짓인지를 묻는 것조차 귀찮다. 그러니 묻지 않겠다. 내가 이미 물은 것을 대답할 필요도 없다. 쓰레기에게 쓰레기인 이유를 말하라 한들 무엇이 득이 된다고. 그냥, 죽어라. 너를 죽이고도 할 일이 너무나 많이 남았다.”
다 내려놓고 싶으나, 그럴 수 없는 자의 말이었다.
아니, 너무 화가 나서 오히려 가라앉은 거라고 해야 하나.
‘어느 쪽이든 곱게 물러나긴 무리인가. 최대한 빠르게 처리하고 빠져나가야겠군.’
나는 괜히 입을 열어 상대를 도발하거나 시간을 끄는 심리전을 모두 생략했다.
차분히 힘을 시험하는 자리가 아닌 만큼, 전력을 다해 상대를 처리할 생각이었다.
특성을 발동, 능력치를 증폭하고, 던전 기능을 활성화한다.
순식간에 불어난 능력치가 평소에 느낄 수 없는 감각을 선물했다.
그리고 거의 동시에, 정령들에 묻혀 하얀 빛 덩어리가 된 캐리온이 하늘로 손을 뻗었다.
후우우우웅.
거센 바람이 불기 시작하고, 우리 둘을 제외하고는 아무도 없는 주변이 회오리에 삼켜졌다.
‘[내가 던전이다]가 아니었으면 갈려 나갔을 정도인데.’
의미 없는 가정이다. 지금 나는 특성으로 인해 앞으로 30분 동안은 압도적인 신체 능력과 마력을 갖췄으니.
“인간이라고는 믿기 힘든 수준이군. 하지만 위대한 자연의 벗을 상대로는 의미 없는 일이다.”
소리친 내 목소리를 내가 들을 수 없을 정도의 소음이 지배하는 장소. 그러나 캐리온의 목소리는 이상할 정도로 또렷하게 주변을 울렸다.
하는 말로 봐서는 지금 이 회오리는 저놈이 하려는 짓거리의 준비 과정에 지나지 않는 모양.
그렇다면 추가적으로 뭔가를 하기 전에 끝내야 했다.
‘바람이 너무 거세지만, 두 개까지는 가능할지도…….’
해 보면 알겠지. 나는 그렇게 생각하며, 지옥 주머니에서 무기들을 꺼냈다.
여울에 비할 바는 못 되지만, 죽음의 기운이 짙게 묻어 있는 창 두 자루였다.
나는 그것들을 공중에 띄워 봤다. 아직 불안정하긴 하지만, 질량을 가진 것의 비행 자체가 거의 불가능하던 예전보다는 낫다. 아마도 쐐기의 폭주로 인한 영향인 것 같았다.
전투를 조금은 수월하게 이끌 조건 하나가 충족된 것에 만족하며 시작하려던 때였다.
-방주 재구성 완료. 재구성된 방주는 92.649%의 기능을 소실했습니다. 그러나 마리아는 여전히 유능하며, 방주는 여전히 쓸모 있습니다. 지금부터, 그것을 증명하겠습니다.
-캡틴의 일시적인 성능 강화가 종료되는 시점까지 약 28분 52초.
그야말로 찰나. 내면을 훑는 듯한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그러고는 수십 줄의 실선이 그어진다. 어지럽게 시야를 점령하는 증강현실.
이게 뭐지? 의문은 짧았다. 생각할 겨를을 주지 않는 신입 때문이다.
-캡틴, 적의 침묵 및 안전 확보 시점까지 한시적인 권한 확장을 요청합니다.
무슨 뜻인지 물을 필요는 없었다. 방주는 지금 내 안에 있고, 마리아도 마찬가지.
여울처럼 과거를 공유할 수준까지는 아니나, 말 뒤에 숨은 속뜻을 느끼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그러나 놀라움은 어쩔 수 없다.
‘그런 게 가능하단 말이야?’
독백을 통해 놀라움을 토하며, 마리아의 요청을 승인했다.
내 의식의 한편에 마리아가 들어오는 것은 묘한 기분이었다.
그리고 최초 시야를 점령했던 실선들의 정체가 밝혀진다.
지옥 주머니가 열리고, 탄환이 될 무기들이 나타났다.
정확히 29개. 마리아가 계산한 최적의 효율을 위해 동시에 사용할 무기의 숫자.
-교전을 시작합니다.
고저 없는 목소리와 함께, 푸른 궤적을 남기는 29개의 탄환들이 전장을 비행하기 시작했다.
염동력의 레벨과 별개로, 한 번에 다룰 수 있는 무기의 숫자는 어느 순간부터 늘지를 않았다.
출력 문제가 해결된 시점부터는 인간이 한 번에 집중할 수 있는 개체의 한계 때문이었다.
그리고 그런 것에 집중하다 보면, 시야에 들어온 것들도 놓치게 되곤 했다. 내가 움직여야 할 개체, 그리고 공격할 개체를 제외한 것은 인식을 벗어나는 것이다.
사위를 수놓는 유성우를 닮은 궤적들.
“이게 무슨……!”
막 자신이 만든 회오리에 물의 정령에게 빌린 힘을 실으려던 캐리온은, 자신에게 날아드는 공격을 보고 평정을 잃었다.
정면, 측면, 후방, 위, 아래. 총 29갈래에서, 가장 막기 까다로운 간격을 두고 꽂히는 공격들이니 당연했다.
거기에 더해, 나는 살 수 있는 가장 비싼 번개 정령을 집어삼켰다.
타락한 정령의 이해. 정령을 희생시켜 나의 힘으로 바꾸는 특성이 발동한다.
벼락을 닮은 단말마와 함께 정령이 소멸하고, 내 온몸을 푸른 스파크가 잠식했다.
“말도 안 돼!”
힘겹게 염동력이 깃든 공격들을 방어하던 캐리온이 가까워지는 나를 보고 소리친다.
자신과 비슷한 모습을 한 걸 믿을 수 없는 모양. 그건 그의 이어지는 말이 증명했다.
“어떻게 저런 악마 가랑이를 찢고 기어 나온 것 같은 폐기물이 우리와 같은 힘을!”
내 출생의 비밀을 선동하고 날조한 엘프를 보며, 한 자루의 검을 쥐었다.
그리고 심호흡. 달콤한 향기가 폐부로 스며들었다. 모공 하나하나가 주변에 깔린 비명들을 삼켰다.
아직도 엘론의 성벽에서는 치열한 전투가 계속되고 있다. 삶과 죽음이 오가는 곳에는 언제나 강렬한 감정들, 특히 부정적인 감정이 넘치기 마련.
그것들이 내게 모여 새로운 힘으로 정제되고 있었다. 비명의 한복판이었다면 더 좋았겠지만, 메아리처럼 몰려온 비명도 나쁘진 않다.
나는 내 몸으로 할 수 있을 일을 하고, 마리아는 그것을 제외한 모든 것을 사용해 전투를 도왔다
아니, 이쯤 되면 내가 마리아를 돕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였다.
심지어 마리아는 실시간으로 상대의 움직임을 분석해서 내게 상대의 다음 움직임을 표시해 주기까지 했다.
‘이건 예측이라기보다는 차라리 행동을 강제하는 것에 가까운 것 같은데.’
이런 생각은 괜히 든 게 아니었다.
마리아가 예측 자료라고 주장하며 실시간으로 표시하는 증강현실은 이를테면 이런 식이었다.
‘1초 뒤, 당신은 앞으로 몇 걸음 걷게 됩니다.’
이 말을 하면서 등을 식칼로 꾹 찌른다. 그러면 어떻게 되겠는가. 당연히 한 걸음이든 두 걸음이든 걸을 수밖에 없다. 아니면 뒤질 테니까.
마리아의 예측이 이랬다. 29방향으로 공격을 시도하며 불쌍한 물고기를 한 방향으로 몰아넣으면, 탈출할 방향이 한 곳뿐인 물고기는 그곳으로 헤엄을 친다.
그리고 거기에는 내가 도사리고 있는 것이고.
파악.
“커억!”
스파크를 뿜어 대는 캐리온이, 마찬가지로 스파크를 뿜어 대는 나와 충돌해 비명을 질렀다.
나도 속으로 욕을 내뱉었다. 놈이 두른 정령들의 힘이 너무 강한 탓.
그래도 마력, 염동력을 총동원했기에 못 견딜 수준은 아니다. 몸에 걸친 방어구들의 성능이 엄청나기도 했고.
푹.
“카학!”
나는 통증만 잠시 견디면 그만이지만, 캐리온은 나와 충돌해서 생긴 경직으로 허벅지에 구멍이 하나 생겼다.
부패의 창. 이름은 간단하지만, 저 창에 걸린 부패의 저주는 결코 간단히 생각할 것이 아니다.
역시나 캐리온이 만든 회오리가 맹렬한 기세를 잃고 지리멸렬하고 있었다.
정령의 기운이든 마력이든 저주를 틀어막는 데 써야 할 것이다.
그러나 그건 내가 가만히 둘 때나 가능한 대처. 나는 상처를 감싸며 물러나려는 캐리온을 향해 돌격했다.
마리아가 움직이는 것들도 마찬가지.
콰아앙.
그런데 갑작스런 충격과 함께 몸이 뒤로 날아갔다.
피해를 입은 건 아니지만, 강력한 충격파에 몸이 붕 뜬 것이다.
폭발은 열과 불을 동반했는지, 후끈한 열풍이 뒤늦게 나를 휘감았다.
마리아가 공격하던 것을 거두고 방어로 돌리지 않았다면 직격을 피하지 못했을 것이다.
“크큭, 로… 라……. 그래, 네가 불에 막힐 녀석이 아니지…….”
캐리온은 공격이 날아온 방향을 보고 있었다.
무서운 속도로 거리를 좁히는 자는 하나가 아니었다.
“야! 이 미친놈아! 불을 지를 거면 말을 해야지! 너 때문에 내가 얼마나 개고생을 한 줄 알아!”
걸걸한 입담을 자랑하며 달려오는 것은 콜린이었다.
“젠장, 뭘 저렇게 주렁주렁 매달고 오는 거야?”
내뱉어진 말에는 숨길 수 없는 짜증이 묻어나왔다. 콜린 뒤로 따라오는 많은 수의 엘프 레인저들 때문이었다. 레인저들의 선두에 달리는 여자는 온몸에 화염을 둘러싼 모습이다. 아마도 지금 접근하는 이들 중에서는 가장 강해 보였다.
“이쪽으로 오지 말고 뒤로 돌아서 싸워요!”
“X부럴 놈이! 기껏 도와주러 온 사람한테 할 소리야!”
“도와주긴 뭘 도와줍니까! 적만 주렁주렁 달고 왔으면서!”
“야 이 X발놈아! 네가 사고만 쳐 놓고 뒤지면 엘프 새끼들이 눈 까뒤집고 나만 쫓아다닐 텐데, 네가 책임질 거야? 엉? 그래서 내가 너 뒤지기 전에 여기 온 거 아냐! 저것들이랑 싸우다 말고!”
-현재 접근 중인 대상에 대한 적개심이 감지됩니다. 마리아는 대상을 제거 대상으로 인식할지를 묻습니다.
고개를 끄덕이고 싶어지는 질문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