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ll special! Dungeon Master RAW novel - Chapter 163
163
화염에 휩싸인 엘프의 이름은 로라. 평균적으로 레인저가 스피릿 나이트에 비해 약하다는 공식을 완전히 뒤집어 버리는 능력치의 소유자였다.
퍼퍼펑.
그녀의 활은 초당 다섯 발이 넘는 화염 화살을 쏘아 댔다. 달리는 내 뒤로 열심히 땅이 터져 나간다.
마리아가 시각적으로 공격의 궤도를 표시해 주지 않았다면 맞았어도 이상하지 않을 빠르기다.
‘이런!’
허탕이 계속된 탓일까. 내 이동 경로를 미리 선점하는 실선들이 표시됐다.
뒤로 물러나도, 가만히 있어도, 심지어 앞으로 치고 나가도 피하기가 힘든 화망이다.
나는 마리아를 믿으며 몸을 굴렸다. 자칭 유능한 관제 시스템 마리아는, 내 움직임으로 피해 낼 수 있는 화살들을 계산하고, 피하지 못할 것들을 요격했다.
콰앙.
창에 요격된 화살이 요란한 폭음과 함께 터져 나갔다.
-방어만으로는 상황을 타개할 수 없다는 판단이 내려집니다. 방어에 소모되는 자원을 최소화, 적극적인 반격에 나섭니다.
인정한다. 막기만 해서는 이길 수 없다는 것 정도는. 하지만…….
‘이걸 어떻게 다 피하라는 거야?’
생각하며, 몸을 날렸다. 위력은 현저히 떨어지더라도, 맞으면 충분히 아플 레인저들의 화살이 날아온 까닭이다.
그에 섞여 있는 치명적인 화살도 몇 개나 된다. 1초에도 수십 발의 화살이 쏟아지는 와중에 골라 피하기란 어려운 일.
“어이쿠! 숫자가 왜 이렇게 많아!”
콜린 또한 사정이 좋지 않았다. 레인저들을 공격하려 하면 곧바로 다른 곳에서 몇 발의 화살이 날아들어 경로를 차단했기 때문이다.
‘전장이 너무 안 좋아.’
콜린은 자각하는지 몰라도, 그가 쉽게 잡아 죽이던 레인저들에게 고생하는 이유는 다른 게 아니었다. 탁 트인 공터. 엄폐물도 딱히 없고, 난전을 유도하기 힘든 장소가 그의 발목을 잡는 것이다.
그렇다고 적극적으로 던전 기능을 사용하기에는 수지타산이 맞지 않는다.
[내가 던전이다] 상태에서 함정을 즉각적으로 발동시키는 건 포인트 소모가 너무 심하다.5단계까지야 뭐, 지금까지도 써 왔고, 6단계도 위급할 때는 썼다.
하지만 7단계부터는 소모되는 값의 단위가 달라지고, 8단계는 말할 것도 없었다.
낭비하다가는 지금 쌓인 네거티브 포인트가 순식간에 말라도 이상하지 않은 것이다.
언제 지옥 특채자를 대면할지도 모르는 상황에서, 소모되기만 하는 전투를 하는 것은 미래를 팔아 현재를 사는 짓이 될 터.
덮어 놓고 쓰다 보면 거지꼴을 못 면하는 법이다.
그리고.
‘페널티가 따르는 능력은 이제부터는 배제하는 게 맞아. 그러기 위해서 강해지려고 한 거니까.’
결심은 내가 했지만, 반격은 자동으로 이뤄지기 시작했다.
회피에 전념한 채 몸을 굴린다. 퉁. 시작하는 지점에서 하나. 퉁. 완전히 굴렀을 때 또 하나. 퉁퉁. 한 걸음을 내디디면서 둘.
격하게 흔들리고, 한 곳에 0.1초도 시선이 머물지 않지만, 아무리 빠르게 지나가는 시각 정보라고 해도, 마리아는 놓치지 않았다.
그렇게 자연히 스쳐 가는 적들. 집중하지 않았기에 인식하지도 못하는 배경이나 다름없는 것들을 귀신같이 캐치하고, 무기를 사출한다.
퉁퉁퉁퉁.
달리면서도 마찬가지.
화살 하나가 위협적인 궤도로 날아온다는 예고. 나는 고개를 홱 꺾었다.
화살이 날아온 방향과 겹치는 시야. 그곳으로는 추가적인 실선 하나가 더 이어져 있었다. 방어를 위한 것이 아니라, 공격을 위한 계산이다.
투확.
다시금 정면을 향한 망막에는 상체가 날아가는 엘프의 잔상이 남아 있었다.
방어에 열중하지 않는데도, 갈수록 공세가 줄어드는 것을 체감됐다.
육박전을 벌이지 못하도록 하는 견제사격도 많이 줄어들었다.
“엄폐! 이 이상 피해를 늘릴 필요는 없다! 시간은 우리 편이니까!”
화아악.
부하들의 소모가 생각보다 빠르다고 판단한 걸까. 화벽이 세워지며 새로운 명령이 내려졌다.
일사불란하게 견제 사격을 남기며 흩어지는 레인저들.
“이런 쥐새끼 같은 놈들!”
겨우겨우 레인저 하나의 목을 딴 콜린도 분통을 터뜨렸다.
어깨에 어울리지 않는 장식도 눈에 띈다. 이런 상황을 만든 게 저 영감이라는 생각을 하면, 어깨가 아니라 목이나 머리에 장식됐으면 딱 어울렸을 물건이었다.
나는 잇소리를 내며 속도를 올렸다. 어차피 더러워진 싸움이라면, 할 수 있을 때 위협적인 적을 제거하는 게 맞다.
레인저들이 엄폐물을 찾아 거리를 벌리는 동안 생긴 공백을 돌파해, 화염에 휩싸인 로라를 노렸다.
“흥! 그리 쉽게 목을 내어 줄 것 같으냐!”
까아앙!
회전의 힘까지 실어 날린 검격이, 그녀의 활에 막혔다.
‘도대체 뭐로 만들면 활이 저렇게…….’
패액.
공기의 벽을 깨부수는 발차기가 생각을 끊어 놨다.
맞았으면 치명상까지는 아니라도 꽤나 아팠을 일격.
그사이 마리아의 협공도 로라를 노렸다. 지근거리에서의 무기 사출. 피하는 것이 거의 불가능에 가까운 공격이다.
그러나 로라는 없다고 생각한 틈을 날씬한 몸매를 자랑하며 텀블링으로 빠져나가고, 공중에서 중심을 회복하고는 자신을 향하는 병기들을 향해 속사를 갈겼다.
따다당.
“…….”
전부 요격 성공. 다시 착지하면서 활시위를 끝까지 당긴 일격이 날았다. 화염은 덤이다.
“큭!”
까아앙.
급히 꺼낸 방패에 염동력을 집중했다. 금속을 갉아 내는 듯한 소음, 쭈욱 밀릴 정도의 물리력.
움직임이 변칙적이고 빠르다. 전투 방식이 단순했던 캐리온보다 더 껄끄러웠다.
그 평가에는 로라를 보조하는 레인저들의 존재가 포함된 것이지만.
“젠장……!”
로라에 집중한 사이, 늘어난 실선들이 이상해 고개를 돌리자, 멀리서 접근하는 병력들이 보였다.
부하들의 걱정 어린 목소리들이 어지럽게 울린다.
나는 그것들을 무시하고, 남은 시간을 가늠했다.
‘절반…….’
지속 시간이 다 되면, 빠져나가는 것은 요원해진다.
성벽에 있는 몬스터들, 여울, 신비와 함께 움직이는 몬스터들을 불러들여 결전을 벌여야 할 것이다.
문제는 마리아가 예고했던 문제인데…….
이미 과부하가 제대로 걸린 듯 쐐기의 가지는 추락하고 있었다.
그게 아니더라도, 공간이 요동치는 게 피부로 느껴질 지경이다.
“마리아.”
-네, 캡틴.
“15분 후에는 달릴 기운만 있으면 되니까… 싹 긁어서 가져가.”
마리아에게 내 모든 자원을 투사하라는 명령을 내리며, 숨을 깊게 들이마셨다. 전장에 흐르는 타인의 불행이 스며들어 체력을 조금 회복시켜 준다. 이게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길…….
-확인. 안전이 확보되는 시점까지 모든 자원을 아낌없이 사용하도록 하겠습니다.
쭈욱, 하고 마력이 빠져나가는 감각. 현기증 비슷한 어지러움이 덮쳐 왔다.
동시에 시야는 우주 전함의 계기판처럼 점멸했다.
이미 사출됐던 무기들의 위치를 정확히 파악하고 있는 마리아가 그것들을 동시에 조작했다.
대충 수십 자루다. 나로서는 한 번에 숫자를 파악하기도 어려울 지경.
새로운 국면의 싸움이 시작됐다.
엄폐한 적들과의 대치, 새롭게 충원되는 적들, 강력한 로라의 견제.
차륜전을 통해 나를 소모시키려는 적들과 그보다 빠르게 적을 소모시켜 전투를 끝내려는 나의 격돌.
다소의 포인트 소모를 감수하면서 몬스터들을 소환하고, 난전을 유도했다.
성벽 쪽이 불안해진 만큼 엘프들도 마냥 여유롭진 못했고.
전투가 길어지자 엘프 쪽에서는 질린 얼굴을 한 자들이 많아졌다.
전투 피로와 스트레스를 견디기 힘든 것이다.
퍼억. 퍼억.
한 놈의 머리를 퍼뜨리는데, 뒤쪽에서도 파열음이 들렸다.
조용히 내 뒤를 노리던 놈이 사출된 무기에 목숨을 잃은 것이다.
-마리아는 소리로도 적의 위치를 파악할 수 있습니다.
쓴웃음을 지었다. 일단 소리든 시각 정보든 간에 내가 인식하지 못해도, 입력만 되면 된다는 건가.
‘확실히… 유능하군.’
인정할 건 인정하자. 몇 초간 주어진 여유는 콜린에게 몰린 공격을 의미했다.
참 질긴 영감이다. 나는 그사이에 얼굴에 튄 피를 닦아 냈다. 거칠게 닦아 냈는데도 소용이 없다. 손이고 팔뚝이고 전부 피로 젖어 있었기 때문이다.
-캡틴.
경고의 의미를 담은 부름. 이번 건 나도 보고 있었다. 가까이 다가온 것은 로라.
검을 들어 응수한다. 레인저들이 쓰는 직검을 휘감은 화염이 튀었다.
입술을 꽉 깨문 얼굴이 창백했다.
‘젠장…….’
이제는 지긋지긋할 정도다. 또 차륜전인가. 반격을 하려는데, 로라의 등 뒤로 다가오는 누군가의 실루엣이 증강현실로 표시됐다.
매양 이런 식이지. 반격하려 하면, 누군가가 공격을 해서 훼방을 놓는다. 마무리를 짓기가 어렵도록.
‘그래도 방해하는 건 확실히 죽여야지. 죽이다 보면 끝이 있겠지.’
로라는 몰라도, 차륜전에 투입되는 다른 레인저들은 충분히 일격에 쓰러뜨릴 수 있다.
꽈악. 이어질 상황을 머릿속으로 그리며 검병을 더욱 세게 쥐었다.
그런데.
푸욱.
검이, 가슴을 꿰뚫었다.
“……?”
어이를 상실한 얼굴. 로라는 자신의 가슴을 내려다봤다.
“쿨럭.”
밭은기침에 피가 섞여 나왔다. 폐가 뚫렸으니 당연했다.
“이, 이게 무슨……?”
나도 궁금하다. 지금 로라의 뒤에서, 바들바들 떨고 있는 실루엣의 주인이 무슨 생각으로 로라를 찌른 것인지.
“…죄, 죄, 죄송… 아아… 죄송합니다……!”
“유, 유리스…….”
목소리를 듣고 상대를 알아챈 로라의 얼굴은 더더욱 의문으로 가득 찼다.
왜? 그녀의 얼굴에는 그 단어만이 부유하고 있었다.
무릎을 꿇은 로라의 뒤로, 손을 부들부들 떨고 있는 엘프가 보였다.
유리스. 익숙한 이름이다. 목소리도 기억이 난다. 그리고 저 얼굴은 익숙한 몰골이었다.
나를 향한 간절한 시선 또한… 익숙했다.
“지, 진통제를… 제발 진통제를 주세요!”
당장 목숨이 사라져도 이상하지 않을 전장 한복판.
아군의 등을 찌른 유리스는 나를 향해 외쳤다.
망연히 자신을 바라보는 로라를 지나쳐, 내 앞에 짐승처럼 기고 있었다.
“…….”
그것을 보는 로라의 눈은 공허했다. 원망이나 분노보다는 허탈함이 더 많은 비중을 차지하는 것 같다.
“뭐, 뭐든지 할게요! 아, 아니! 이미 했어요! 더한 것도 하겠습니다! 그러니까 제발!”
“유리스! 너!”
미친 듯이 애원하는 유리스와 그런 그녀에게 분노하며 달려오는 레인저들.
로라를 구하려는 마음은 알겠지만, 거리를 좁히는 것도, 엄폐물을 포기하는 것도 좋은 선택은 아니었다.
-요격합니다.
마리아는 물 만난 고기처럼 신나게 탄환을 쏘아 댔다.
그렇지만 마리아는 코앞에 엎드려 기고 있는 유리스는 공격하지 않았다.
‘혼란하군.’
사람도, 환경도, 과정도, 결과도, 모두 혼란했다. 그래서 더 마음에 든다.
나는 손을 뻗어, 부상으로 무력화된 로라의 목을 움켜쥐었다.
조금만 힘을 줘도 푸욱 하고 손가락이 박힐 것 같은 연하고 부드러운 목이다.
그렇게도 미꾸라지처럼 피해 다니더니, 역시 배신자만큼 치명적인 건 없는 법인가.
휙.
나는 감상을 방해하는 것을 향해 로라를 내세웠다. 급격하게 움직인 탓에, 대롱대롱 들려 있는 로라가 휘청이며 흔들린다.
퍽.
“이런!”
분노를 담은 외침은, 똑같은 크기의 당황을 동반하고 있었다.
“사격 중지!”
내 등을 노린 화살을 로라가 대신 맞았기 때문이다.
다급한 외침이 있기도 전에, 레인저들이 활에 먹여 놓은 화살을 아래로 축 늘어뜨렸다.
그 모습이 우스워 웃음을 내뱉게 됐다. 하하하. 시원스런 웃음을 내뱉으며 손에 힘을 줬다.
“으으윽……!”
로라가 힘없는 물고기처럼 꿈틀거렸다.
“전부, 멈춰라. 더 이상 시체를 늘리고 싶지 않으면.”
우습다. 목숨을 갈아 넣어서 내 체력을 갉아 내던 것들이, 겨우 우두머리가 사로잡혔다고 갈팡질팡하는 모습이라니.
로라가 말을 할 여력이라도 있었으면 자신을 버리라고 외쳤을지도 모르지만, 지금 그녀에게는 그런 여력이 없었다.
꿈틀.
그러나 손을 까딱일 힘은 있는 건가. 나는 수신호를 보내려는 로라를 보고, 그 손을 잡아 으스러뜨렸다. 퍼드득, 경련하는 육체.
“무슨 짓이냐!”
“흥분하지 마. 얌전히 있지 않은 네들 대장 잘못이니까. 그리고 그쪽 너, 화살 내리지 않으면 이번에는 이미 뚫려 있는 구멍을 조금 더 벌려 줄까 하는데.”
“크윽……! 개 같은 새끼……!”
울분을 토하며 활을 내리는 상대를 보고, 나는 호흡을 가다듬었다.
“어차피 더 싸워 봐야 서로에게 득 될 게 없을 것 같은데, 이쯤에서 나를 보내 주는 게 어때?”
기묘한 대치 상황에서 내뱉은 내 말에, 엘프들이 분노했다. 그래서 더 즐거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