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ll special! Dungeon Master RAW novel - Chapter 167
167
침 넘어가는 소리가 들렸다. 긴장한 탓이다.
내 소유의 던전들 중 가장 모험가가 적게 드나드는 곳. 최근 한 달간 한 명의 모험가도 오지 않은 곳에서 나는 시간이 가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이윽고 시간을 표시하는 홀로그램은 0을 표시했다.
그 순간, 빛으로 만들어진 지도가 나타났다. 그것은 익숙한 것을 표현하고 있었다. 매드세디아 대륙이었다.
그리고 붉은색으로 점멸하는 점들.
대륙에 흩어진 특채자들의 위치를 표시하는 것이다.
‘넷인가…….’
나는 점멸하는 붉은 점의 숫자를 세어 봤지만, 대수해에 있던 중에 탈락한 특채자는 없었다.
그리고 라메리안 왕국 한복판에 점이 찍혀 있는 반전은 없었다.
나를 제외한 붉은 점 세 개 모두 대륙 중앙에 흩어진 모습이다.
‘제국 근처에 셋이 전부 몰려 있다고?’
물론 지금 위치가 특채자들의 주 활동 무대일 가능성은 낮았다.
나만 해도 전혀 뜬금없는 곳에서 이 시간을 맞이했으니까 말이다.
바보, 혹은 정말 너무나 자신감이 넘쳐서 적을 끌어들일 생각이 아니라면 자신의 거점에서 위치를 밝힐 리는 없었다.
그렇다고 해도 공교로운 건 사실이었다. 어쩌면 내가 없는 수십 일 동안 저들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고, 서로의 거리를 좁히며 신경전을 벌이는 걸 수도 있겠다.
나는 특채자들이 현재 있는 위치를 기록하고, 지도와 대조하며 주변에 무엇이 있는 곳인지를 체크했다.
* * *
하루가 지났다. 별일 없이 서로의 위치가 다시 비밀에 부쳐졌다.
긴장된 시간의 시작이다. 내 던전으로 누군가가 찾아올까. 아니면 저쪽도 함정을 파고 기다리는 선택을 할까.
그렇게 시간이 흘러갔다.
“…….”
-주군, 어디 불편하십니까?
팔걸이를 빠른 속도로 두드리는 나를 본 여울이 물어 왔다.
던전의 점검을 마치고, 보고를 하기 위해 온 모양이었다.
굳이 직접 올 필요가 없음에도, 여울은 나와 같은 던전에 머무는 내내 무언가 전할 것이 있으면 직접 찾아오고 있었다.
“그냥.”
여울의 물음을 듣고서야 내가 꽤나 긴장한 상태로 있었음을 의식한 나는, 뻣뻣한 목과 어깨를 풀었다.
-그리 걱정하지 않으셔도 될 겁니다. 주군께서 말씀하셨듯 이곳에 오는 자가 주군과 같은 입장에 놓인 자라는 보장은 없습니다. 직접 적진을 향해 달려들 부나방이 있으리라 보기는 힘드니까요. 기껏해야 척후. 척후 정도에 무너질 저희가 아닙니다. 그리고 주군께서는 안전한 장소에 계시니까 더더욱 안전하십니다.
그녀의 말대로 나는 지금 던전 지하에 만들어진 패닉룸에 위치한 상태다.
깔끔한 일처리를 위해 도움 안 될 몬스터들을 전부 치워 버렸기에, 위쪽은 깡통이나 다름없는 상태지만, 안전만큼은 확실하게 확보했다고 할 수 있었다.
만일 특채자가 나를 찾기 위해 쳐들어온다고 해도, 지반 자체를 날려 버리는 상황이 아니라면 위협이 될 일은 거의 없을 것이다.
그러니 내 불안은 그런 것으로 인한 게 아니다. 이건 아무도 오지 않는 것에서 기인한 불안이다.
내가 포함된 위치 공개만 벌써 두 번째였고, 얼마 안 있으면 세 번째가 돌아온다.
다른 특채자들 입장에서는 갑자기 점 하나가 늘어나고 한 달이 가까워져 오는 셈.
그사이 조금의 움직임도 없이 고정적인 위치에서 공개 시점을 맞이한 건 나 하나인데…….
‘너무 노골적으로 함정 냄새를 풍긴 건가?’
아니면 멀리 떨어진 나를 신경 쓸 수 없을 정도로 급박한 상황인 걸까.
알아본 바에 의하면 제국은 초긴장 상태에 있었다.
황위를 두고 대립하는 황족들의 다툼이 사실상의 내전까지 번지고 있다는 소식.
제국 근방의 다른 국가들도 바짝 긴장하긴 마찬가지였다.
누가 황위에 앉느냐부터 시작해서 어떤 피해와 어떤 이득이 자신들에게 영향을 끼칠지에 대해 생각을 해야 할 테니 말이다.
아마도 제국 주변국은 뒤에서 각자 황위 계승권자들을 물밑에서 돕고 있을 것이다.
소위 줄을 선다고 표현하는 작업을 진행하는 것이다.
지금까지 한 명을 제외한 둘은 제국 근방을 벗어난 적이 없었다.
그렇다는 건 혹시 이런 상황 속에 놓인 인물이어서 자리를 비울 수 없는 입장에 있는 게 아닐까. 그런 생각이 들었다.
어디까지나 추측에 불과하지만, 내가 얻을 수 있는 정보를 규합해서 괜찮아 보이는 가설들을 만들고, 확률을 좁혀 나가는 것은 분명 괜찮은 방법이다.
‘은근히 피 말리는 짓이군…….’
그것과는 별개로, 뭐라도 변화가 생겨서 행동할 지침을 세울 수 있게 되기를 바라게 되는 건 어쩔 수 없지만 말이다.
* * *
“이번 의뢰는 참 특이하군요. 의뢰주 신분을 숨기는 건 그렇다 치는데, 전리품에 대한 것도 아니고, 그냥 거기 뭐가 있는지 알아봐 달라니.”
“우리가 해 본 적 없을 뿐이지, 그런 의뢰는 그리 드문 편은 아니야.”
“그런가요. 그래도 이렇게 아무도 오지 않는 가치 없는 던전을 탐색하라는 의뢰는 별로 없을 것 같은데요.”
단검을 한 손으로 저글링하면서 말하는 젊은 모험가에게 곱지 않은 시선이 쏟아졌다.
모험가 파티의 인원은 다섯. 가장 말이 많은 자가 막내로 보였다. 대충 30대. 나머지는 나이 지긋한 분위기의 모험가들이다.
그들 중 흰색 수염을 갖고 있는 모험가가 입을 열었다.
“별거 없는 곳에 큰돈을 주면서 보내는 의뢰주는 없다. 뭐라도 주워듣거나 알고 있으니까 보내는 거지. 그러니까 다들 긴장하자고. 은퇴할 날이 얼마 안 남은 늙은이를 죽여서 은퇴시킬 생각이 없다면 말이야.”
이번에는 나머지 넷이 모두 피식 웃는다. 은퇴할 생각도 없으면서 매일 입에 올리는 은퇴라는 단어가 웃긴 것이다.
그러면서 각자 무장을 점검한다. 이미 출발할 때 챙겨 놓긴 했지만, 던전 진입 직전에 완벽함을 점검하는 건 무조건 거쳐야 하는 절차였다.
몬스터가 달려드는 순간, 부츠에 꽂아 놓았던 단검을 쥐려는 손이 허전하다면 그건 죽음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트랩 색적 키트는 제대로 챙겼겠지?”
질문을 받은 건 막내였다. 단검에서 알 수 있듯이 그는 도적이었다.
말없이 자신의 가슴을 툭툭 두드려 보이는 도적.
다른 이들도 그것을 보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앞장서겠습니다.”
도적은 그리 말하며 다 무너져 가는 석재 구조물 안으로 진입했다.
사원이었는지, 아니면 다른 용도의 건물이었는지, 그것도 아니면 카타콤이었는지도 모를 만큼 오래된 폐허.
입구로부터 약 지하 3미터까지는 내리막. 그 이후로는 기다란 복도가 나왔다.
원래대로라면 대단할 게 없는 던전이지만, 리더의 말대로 세상에 공짜란 없는 법.
뭔가가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모험가들은 적당한 긴장을 유지했다.
도적이 품에서 주머니를 꺼내더니, 그 안에 담긴 가루를 뿌렸다.
바람 한 점 없는 공간에서도 가루는 넓은 범위로 퍼져 나갔다.
함정을 찾기 위한 절차다. 잠시 가루와 환경의 반응을 관찰하는 도적. 그의 눈에는 다른 이들에게 보이지 않는 어둠 안쪽의 상황도 비치고 있었다.
“문제없습니다. 꽤 안쪽까지 아무것도 없는 것 같아요. 몬스터의 기척도 딱히 느껴지진 않습니다.”
“좋아. 그래도 조심해서 진입하자고.”
* * *
“좋아. 그래도 조심해서 진입하자고.”
여울은 바로 앞에 선 사내를 유심히 바라봤다.
벽에 기대어 말을 듣고, 관찰을 하는데도 사내들은 여울의 존재를 눈치채지 못하고 있었다.
주군의 격이 올라갈수록 자신의 능력 또한 증폭되고 있었다.
더 도움이 될 가능성이 높아지는 것 같으면서도, 따라가기에 벅차면 어쩌나 하는 불안이 공존했다.
‘이런… 중요한 일을 앞두고 다른 생각을 했구나.’
주군께서 오래 기다리시다 맞이하는 첫 손님이었다.
완벽하게 제압해서 대령해야만 했다.
여울은 조용히 앞서 던전에 진입하는 모험가들을 뒤따랐다.
지금의 자신이라면 한 호흡 안에 이것들의 목을 분리해 놓을 자신이 있었지만, 그럼에도 이렇게 뒤를 밟는 이유는 생포를 위해서였다.
자신의 검은 너무나 쉽게 상대를 죽이기에 협력자를 대기시켜 놓은 상태였기 때문이다.
아무런 기척도, 소리도 없이 모험가들을 따라 걷기를 수 분.
펑.
모험가들이 디디고 선 자리에 있던 돌이 갑자기 요란한 소리를 내며 부풀어 올랐다.
“와하하하! 멍청한 인간 놈들! 감히 주제도 모르고 이 신비 님께서 도사린 곳에 들어오다니!”
“모, 몬스터다!”
“잠깐 사람 목소리가… 아니잖아!”
요란한 웃음소리에 놀란 모험가들은 자신들 가운데에 나타난 덩치 큰 괴물을 보고 재빠르게 흩어지려 했다. 그러는 중에도 재빠르게 공격을 하면서 물러나는 사람만 둘이다.
그런 모습을 본 여울은 인상을 찌푸렸다. 최대한 깔끔하게 잡아서 대령을 해야 하는데, 굳이 저런 식으로 기습의 의미를 퇴색시키는 일을 하는 것이 마음에 안 드는 것이다.
그래도 신비라고 아주 생각이 없는 건 아니었다. 몸이 근질근질한 참에 좀 놀아 보려 한 것은 사실이지만, 한 놈도 놓칠 생각도, 고장 낼 생각도 없었다.
턱.
물러나던 놈 중 하나의 어깨를 큰 손으로 움켜쥔다.
“이익!”
몸을 비틀어 빠져나가려는 시도. 그러나 더 재빠른 것은 신비의 반대쪽 손이었다.
“요술 방망이 맛이나 봐라!”
뻐억.
요술 방망이와 사내의 골반이 만나자, 고깃덩이로 무언가를 후려칠 때 날 법한 소리가 났다.
“흐으응!”
골반을 얻어맞은 사내는 나이를 불문하고 우락부락한 남자가 뱉어서는 안 될 신음을 내뱉으며 쓰러졌다.
그러더니 바들바들 떨며 행복에 겨워한다. 정말로 본인이 행복한지는 모르겠지만, 일단은 그래 보였다.
여울은 신비가 손에 쥐고 신나게 휘두르는 흉물을 보고 한숨을 내쉬었다.
목숨을 붙여 놓고 제압하기에 적절한 무기이긴 하지만, 보기만 해도 거리를 두고 싶어지는 외관인 것은 어쩔 수 없었다.
신비가 두 번째 희생양에게 쾌락의 방망이를 휘두를 때, 여울도 모습을 드러냈다.
나타난 곳은 한 모험가의 정면.
“이건 또 뭐야!”
갑작스런 상황에 놀란 스트레스에 모험가는 신경질적으로 공격을 시도한다.
상대가 소름 돋게 아름다운 여자라는 건 인식하지도 못하고.
빠각.
그러나 들린 것은 검에 살이 베이는 소리가 아니라, 무언가가 부서지는 소리였다.
“으아악!”
비명 또한 남자의 것이었고.
모험가는 역방향으로 꺾여 버린 무릎을 잡고 바닥에 쓰러져 있었다.
여울은 그 모습을 감정 없는 눈으로 바라보며 생각했다.
‘저 정도면 고문을 견디는 데 문제는 없겠지.’
여울은 나머지도 무력화하기 위해 고개를 돌렸다.
결국 침입한 모험가들이 모두 사로잡히는 데는 채 1분의 시간도 걸리지 않았다.
몇 번의 고비를 넘기면서 신비를 비롯한 특전 몬스터들이 강해진 탓이었다.
“여울 누님, 그럼 이것들은 옮겨 놓도록 하겠습니다. 보고하시고 천천히 오시면, 제가 딱 준비해 놓겠습니다.”
-부탁드리겠습니다.
여울은 도대체 왜 자신을 누님이라 부르는지 궁금했지만, 딱히 지적하지는 않았다.
그리고 주군을 찾아간 여울은 구두로 보고를 했다.
‘일반적인 모험가일 확률이 높을 거고, 아니더라도 딱히 알고 있는 건 없을 거야.’
상황을 지켜본 주군은 별 기대를 안 하는 눈치였다. 다만.
‘이번에는 성과가 없을 가능성이 높지만, 일단 놈들이 특채자가 보낸 것들이라면 누군가가 움직이기 시작했다는 신호라고 봐도 되겠지. 그 부분만 확실히 캐내.’
여울의 주군은 지금 당장 얻을 게 없더라도, 다음을 바라보고 있었다.
잠시 후, 모험가 하나가 가죽이 벗겨졌다.
첫 희생양은 다른 넷에게 보이는 본보기로써 질문 하나 받지 못하고 극심한 고통 속에 숨을 거뒀다.
“누님, 저도 해 봐도 되겠습니까?”
옆에서 구경하던 신비의 한마디. 들어 올린 것은 예의 그 흉측한 몽둥이였다.
잠시 모험가들을 바라보며 불안한 눈빛을 보내던 여울은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하나만입니다. 최대한 정보를 뽑아내 주세요.
“알겠습니다!”
고통에 찬 비명뿐이던 공간에 감당할 수 없는 쾌락에 헐떡이는 숨소리가 더해졌다.
그러나 그런 노력에도 불구하고, 둘이 얻은 정보는 그야말로 초라했다.
신분을 전혀 알 수 없는 누군가가, 모험가 조합도 아니고 다른 경로를 통해 조사를 의뢰했다는 것. 조사 내용마저도 던전에 무엇이 있는지 알아봐 달라는, 아주 불명확한 내용이었다.
그러나 신비와 여울의 보고를 들은 주인은 아주 만족한 모습이었다.
“굳이 숨기려고 하면서까지 이런 변두리 던전을 알아보라고 시킨 것부터가 수상하고, 구체적 내용 없는 의뢰라는 게 두 번째로 수상하네. 아마도 저놈들은 이곳이 위험한지 아닌지 알아보기 위한 희생양일 거야. 그렇다는 건 이제 곧 뭐가 추가로 벌어질 거란 얘기지.”
주인의 말에, 여울은 없는 육신을 긴장시켰다. 곧 검집에서 뽑힐 것을 기대하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