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ll special! Dungeon Master RAW novel - Chapter 17
17
“음, 루크 학생, 정말 이 마력을 느끼지 못하는 건가요?”
자신을 제르닉이라 밝힌 고지식한 인상의 마법사가 당황을 넘어 약간은 골치 아픈 표정으로 물었다.
“네…….”
내 대답은 주변 학생들의 비웃음을 샀다.
“하… 아무리 아카데미가 돈만 많으면 입학은 할 수 있다지만, 기본도 없이 마법학을 선택하다니. 아니면 기억상실증이라더니 배우던 걸 다 까먹은 건가?”
뒤쪽에서는 비웃음을 넘어서 정말 어이없다는 목소리마저 들려왔다.
마석이 마력에 반응하는 것에 대한 수업을 진행하던 중 마석에 마력을 주입하지 못한 학생이 나 하나였기 때문이다.
마력을 주입하기는커녕 제르닉이 내미는 마석에 주입된 마력마저 느끼질 못하니, 이들의 반응이 당연하다면 당연했다.
사칙연산도 못하는 학생이 카이스트 수학과에 신입생으로 앉아 있는 꼴이었으니까.
“음, 이 문제에 대해서는 나중에 천천히 이야기하도록 하죠. 물론 저희 아카데미에서 어떤 것을 수학하느냐는 학생의 선택에 맡기고 있습니다만, 굳이 어려운 길을 가려는 것은 추천하고 싶지 않군요.”
“…….”
나는 자존심이 매우 상했지만, 할 말이 없었기에 그냥 조용히 있었다.
내 복잡한 심정은 뒤로하고, 수업은 계속 진행됐다.
제르닉은 그래도 나를 배려한 것인지, 기초적인 이론에 대해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아마, 이것이 이 수업의 정식 커리큘럼인 것 같았다.
대부분의 학생들이 알 것이라 생각하고 생략해 버린.
“여러분 대부분이 아시다시피, 마법은 마력을 통해 이루어지는 이적 행위입니다. 그 계통을 나누자면 끝이 없죠. 기본적인 원소 마법부터 그것에서 파생되는 마법들, 정령을 다루는 마법에 공간을 다루는 고난이도 마법까지. 그것 이외에도 일일이 언급하기조차 힘들 만큼 많은 마법이 존재합니다.”
제르닉은 그렇게 말하면서 마석을 집어 들었다.
“그런 마법들을 사용하기 위해서는 먼저 마력을 느끼고, 그것을 뜻대로 다룰 수 있어야 하죠. 물론 기사들도 마력을 사용하지만, 그들과 우리는 다릅니다. 정해진 술식에 마력을 짜 넣음으로써 만들어 내는 마법과는 달리, 기사들은 육체를 강화하는 데 마력을 사용하고, 물리적 단련과 마력에 의한 과부하가 지속되면서 인간 이상의 육체를 가지게 되는 것이죠. 마법사가 그런 것을 따라 했다간 연약한 육체가 무너지고 맙니다.”
나는 처음 듣는 이야기지만, 학생들은 다 알고 있는 이야기인지 다들 지루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그리고 그 중요한 마력을 다루는 능력의 기준점이 되는 것이 바로 염동력입니다.”
제르닉은 마석을 염동력으로 띄워 머리 위에서 빠른 속도로 빙글빙글 돌렸다.
지루해하던 학생들의 얼굴에 흥미가 떠오르기 시작했다.
슬쩍 감탄하는 학생들도 보인다.
“염동력은 술식으로 완성된 마법을 발현하는 게 아니라, 순수한 마력의 힘으로 물리력을 행사하는 만큼, 대기 중에서도 흩어지지 않을 정도로 많은 양의 마력과 그 밀도를 유지할 수 있을 정도의 숙련도가 필요합니다.”
제르닉이 다시 마석을 손바닥에 올려놨다.
“엄밀히 말하자면 염동력은 마법이 아닌 거죠.”
제르닉이 학생들을 바라보며 말을 잇는다.
“아마, 아직은 염동력을 사용할 수 있는 학생이 드물 것이라 생각합니다. 마력을 다루는 숙련도 이전에, 대기 중에서 흩어지지 않고 물리력을 행사할 수 있을 만큼의 농도를 유지할 마력이 없을 겁니다. 혹시 염동력을 사용할 수 있는 학생, 있습니까?”
제르닉의 말을 유심히 듣던 나는 무심코 손을 들어 올렸다.
“……?”
점잖던 제르닉이 ‘무슨 개소리지?’ 하는 표정으로 나를 쳐다봤다.
그뿐만 아니다.
30명 남짓한 학생 모두가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나 말고도 손을 든 사람이 세 명이나 있는데, 정작 손을 든 장본인들까지 나를 쳐다본다.
“기억상실이라더니, 그냥 머리에 이상이 생긴 거 아냐……?”
이름 모를 여학생의 입에서 나온 개소리가 내 귀에 꽂혔다.
비웃거나 비꼬는 게 아니라 진심으로 걱정해 주는 목소리라 더 짜증이 솟구친다.
더러워서 내가 던전 늘려서 마법 스킬 왕창 사고 말지.
“루크 학생, 음, 이걸 어떻게 받아들여야 좋을지, 솔직히 좀 당황스럽군요.”
나는 구구절절 설명하기도 귀찮아서 제르닉 근처에 있는 마석들을 허공에 띄워 올렸다.
“……!”
순간, 제르닉을 포함한 교실 내부의 모든 사람들의 시선이 허공에 떠오른 마석을 향한다.
그 마석들을 내게 가져와서 제르닉이 했던 것처럼 빙글빙글 돌리기 시작했다.
“말도 안 돼…….”
누군가의 허탈한 목소리가 모두의 의견을 대변했다.
“…마력을 느끼지 못한다는 말, 거짓말이었습니까?”
제르닉이 미묘한 표정으로 묻는다.
“아니요. 정말 못 느꼈습니다.”
내 대답을 듣자 제르닉은 이번에는 호기심 어린 표정을 지었다.
“하긴, 굳이 그런 거짓말을 할 이유는 없죠. 하지만 이런 경우는 정말 처음 보는군요.”
마법사 특유의 새로운 것에 대한 탐구심이 발동된 듯했다.
“혹시 정말 기억상실증 때문에… 아냐, 음, 그래도 다른 이유가…….”
이젠 아예 혼자만의 생각에 빠져 중얼거리기까지 한다.
“이런, 제가 수업 중에 추태를 보였군요. 루크, 혹시 이 수업이 끝나고 저와 동행할 수 있을까요?”
그의 말에 나는 선선히 수락했다.
그리고 남은 수업 시간 내내 모두의 관심은 내게 고정되어 있었다.
하지만 ‘대단한 것’을 바라보는 눈빛이 아니라 ‘이상하고 신기한 것’을 바라보는 눈빛들이다.
그렇게 제르닉의 물음에 손을 들었던 나머지 세 명은 아예 주목도 받지 못하고 수업이 어영부영 끝나 버렸다.
* * *
나는 수업이 끝나고 제르닉의 뒤를 따라 걷고 있었다.
“루크, 혹시 기억을 잃기 전에 마법에 대해 공부한 적이 있습니까?”
“음, 없는 걸로 알고 있습니다.”
“흐음… 그럼 혹시 가문에 특수한 혈통이 내려오거나…….”
“아니요. 별 볼 일 없는 졸부 집안입니다.”
“크흠, 가문에 대한 평가가… 아주 겸손하시군요.”
외모에 관련된 유전자는 뛰어난 집안임에 틀림없지만, 다른 종족의 피가 섞였다거나 해서 마력이 뻥튀기되는 그런 대단한 집안은 절대 아니었다.
“루크, 아까 제가 했던 말, 사과하도록 하겠습니다. 설령 지금부터 마법을 새로 배운다고 하더라도 당신은 다른 누구보다도 재능 있는 사람일지도 몰라요. 이론은 외우면 되는 것이지만, 마력을 다루는 것은 재능의 영역이니까요.”
제르닉의 목소리에선 살짝 흥분마저 느껴졌다.
시종일관 조용하고 담담한 태도를 고수하던 사람인데, 그만큼 지금 상황이 흥미로운 것일까.
이 현상이 단순히 단계를 뛰어넘어 습득한 스킬과 비이상적으로 비대한 내 능력치 때문임을 알고 있는 나는 살짝 미안한 감정마저 들었다.
그렇게 제르닉의 뒤를 따라서 도착한 곳은 연구실이었다.
우리가 연구실 문을 열려고 할 때 제르닉이 복도에서 걸어오는 사람들을 바라봤다.
제르닉을 따라 시선을 돌린 나는 하마터면 비명을 지를 뻔했다.
그곳엔 내 던전을 박살 낸 남매, 카이네와 카마로가 있었다.
“오, 카이네 님, 카마로 님.”
“아! 제르닉 교수님! 안녕하세요. 혹시 스승님 안에 계신가요?”
“아, 저도 방금 온 참이라 확실치는 않습니다만, 웬만하면 계실 겁니다. 비올카 님이니까요.”
나는 제르닉과 반갑게 인사하는 카이네를 보며 침음을 삼켰다.
[이름: 카이네 알마이어] [나이: 24] [레벨: 45] [힘: 112] [체력: 119] [민첩: 109] [마력: 1,595] [특성: 마재, 마력 친화, 용혈…….] [스킬: 원소 마법 Lv.8, 공간 마법 Lv.8, 염동력 Lv.8… 마력 감응 Lv8, 마력 운용 Lv.7] [이름: 카마로 알마이어] [나이: 21] [레벨: 43] [힘: 992] [체력: 1,050] [민첩: 1,171] [마력: 520] [특성: 검호, 마력 친화, 용혈, 요정의 가호…….] [스킬: 검술 Lv.7, 격투술 Lv.7, 강체 Lv.7, 마력 감응 Lv7, 마력 운용 Lv.6…….]이름만 들었을 땐 몰랐는데, 알마이어라는 성을 보자 ‘상식’이 떠올랐다.
알마이어 공작가.
라메리안 왕국의 두 공작가 중 하나.
대대로 내려오는 용의 피 덕분에 마법에 있어서는 왕국 내에서 견줄 가문이 없는 마학의 명가.
그들에게 깃든 마법적인 용의 피는 저주에 가까워서 세대를 거듭해도 희석되는 일 없이, 알마이어의 피를 잇는 모든 이들을 반인반용으로 만든다고 한다.
내 던전이 괜히 박살 난 게 아니란 것을 이들을 직접 보니 뼈저리게 느낄 수 있었다.
그런 그들은 내 던전에서 잡아간 지네를 넣은 거대한 유리관 두 개를 들고 오고 있었다.
하나는 어떻게 처리했는지, 액체에 담겨서도 아직도 살아서 꿈틀거리고 있었다.
물론, 들고 있는 것은 카마로였다.
“제르닉 교수님은 무슨 일로 오셨어요?”
“졸업생들보다는 제가 여기 올 일이 많지 않겠습니까?”
카이네의 물음에 제르닉이 웃으며 답했다.
“카마로 님은 여전하군요.”
짜증이 덕지덕지 묻은 표정의 카마로를 본 제르닉이 말했다.
“누나가 여전한 거죠.”
“시끄러워. 이제 내가 들 테니까 내놔. 스승님께 건네드릴 때는 내가 드려야 하니까.”
카마로는 별말 없이 지네를 넘겨줬다.
카이네는 오만상을 찌푸리며 그것을 받아 들었다.
“그런 표정 지을 거면 염동력을 쓰던가.”
“장난해? 스승님께 드릴 때는 직접 손으로 건네 드려야 하는 것도 몰라?”
“어… 진짜 난 누나를 모르겠다…….”
카마로의 공허한 목소리가 절절히 울려 퍼졌다.
“제르닉 교수님, 제가 먼저 들어가도 될까요?”
제르닉은 카이네의 도가 넘치는 열정이 담긴 눈빛을 보고 무심코 한 걸음 뒤로 물러났다.
“그, 그러시죠.”
“감사합니다!”
카이네는 그 말을 남기고 문을 열더니 휙 들어가고, 문을 닫아 버렸다.
“…….”
“지금은 안 들어가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이런 때 방해를 했다간 어떤 꼴을 당할지 모르거든요.”
제르닉이 친절히 설명했지만, 딱히 듣지 않았어도 지금 저 안으로 들어가고 싶은 마음은 없었다.
“카마로 님, 그런데 오늘은 또 어떤 기념일이라 이러시는 건가요?”
“비올카 이모가 처음으로 과자를 준 기념일이랍니다. 5살 때였다고 하던데요.”
“…….”
우리들 세 명 사이에 무거운 침묵이 내려앉았다.
그 침묵을 깬 것은 카마로였다.
“어이, 후배님.”
“예?”
나는 갑자기 카마로가 나를 부르자 깜짝 놀랄 수밖에 없었다.
그는 나를 처음 보지만, 나는 아니었으니까.
“혹시 약혼이나 결혼은 했나?”
“…아직 안 했습니다만.”
나는 갑자기 무슨 이야기인가 싶었지만, 일단 대답했다.
“혹시 우리 누나 어때? 저 정도면 동생인 내가 말하긴 뭐하지만 미녀에다가, 후배님도 여기 근처에서 돌아다니는 걸 보니 마법을 배우는 것 같은데 우리 집안이 마법으로 좀 유명해. 게다가 나는 마법사가 아니라서 집안도 못 물려받으니 누나가 정통한 후계자지. 즉, 결혼만 하면 우리 가문의 비전을 전부 물려받을 수 있다는 이야기야. 원한다면 내가 물려받을 재산까지 줄 수 있어. 나이 차가 좀 있어 보이지만, 우리 집안사람들은 또 늙는 게 아주 느리거든. 저 모습으로 최소한 수십 년은 갈 테니 걱정 안 해도 돼. 지금 당장 저 여자만 데리고 가 주면 여기서 절이라도 해 주지. 호칭도 형님으로 바꿀 수 있어.”
카마로의 속사포 같은 말은 농담 같으면서 진담 같기도 했다.
“저에게는 과분한 제안인 것 같군요…….”
“하아… 젠장, 정략결혼은 절대 싫다고 하는데, 미치겠군. 지금 누나가 내가 동생이라 이렇게 막 대하는 거지, 다른 사람한테는 깍듯해. 마음씨도 나름 고운 편이고. 이렇게 스승님 기념일 챙기는 것 보면 모르겠어?”
카마로는 추잡한 거짓말을 서슴지 않았다.
“…저는 외모나 배경보다는 그 사람의 마음씨를 보자는 주의입니다.”
“후우… 이번에도 영업 실패인가… 쓸데없이 현명해서 재수 없군.”
카마로가 진심으로 아쉽다는 듯 중얼거린다.
“카마로 님은 농담 삼아 영업하고 다니시는 것도 여전하시군요.”
제르닉이 그런 카마로를 보며 웃었다.
“제르닉 교수님, 혹시 주변에 적당한 남자 없습니까? 누나 마음에 들 만한 사람으로요. 다른 건 필요 없습니다. 얼굴만 반반하면 일단 들이밀어 보면 되니까요.”
“크흠, 크흠.”
제르닉은 대답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