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ll special! Dungeon Master RAW novel - Chapter 171
171
대귀족이며, 동시에 다섯 번째 황자의 외조부인 벨레로프 백작의 영지에서 일어난 참극은 아주 충격적이었다. 그러나 제국인들은 그것을 폭풍으로는 생각하지 않았다. 폭풍이 불어올 전조. 딱 그 정도로 여겼다.
그만큼 1황녀, 주안느가 본격적으로 움직일 때 일어날 여파를 크게 상정한 탓이다. 반대로 이런 상정은 그녀의 대항마로 부상한 5황자의 저력을 높게 평가하는 것이기도 했다.
제국인들은 폭풍이 몰아치기 직전의 고요 속에서 제각각 준비에 여념이 없었다. 그런데 그런 준비 과정에서 문제가 발생했다.
아무도 신경 쓰지 않고 있었던 4황자의 등장이 그것이었다.
* * *
[미친 새끼! 네가 도대체 무슨 짓을 저지른 건지 알기는 하는 거야?]희소식을 접한 주리안은 여울이 던져 놓은 귀를 부여잡고 소리쳤다.
“미리 말하지 않았었나. 내가 선불로 선물을 주겠다고. 그게 네 여동생이란 것도 말했던 걸로 기억하는데.”
[이런 개자식! 그걸 지금 말이라고! 난 졸지에 대귀족에 준하는 놈을 다짜고짜 죽여 버린 미친놈이 됐단 말이다! 너 같은 사생아 새끼는 모르겠지만, 아무리 황족이라고 해도 그딴 미친 짓을 하면 정치적으로 얼마나 부담이 되는 줄…….]“부담도 없이 죽음만 기다리는 것보다는 낫잖아. 희미하긴 해도 역사에 이름 한 줄 남길 만한 일이기도 하고. 그리고 그런 일이 귀에 들어오면 일단 같은 배를 타자고 한 사람의 능력이 뛰어난 것에 기뻐해야 하는 것 아닌가?”
[개소리! 억지로 상황을 이렇게 만들어서 나를 몰아붙이려는 걸 모를 줄 알고! 너 같은 사생아… 헉……!]-입을 조심하시는 게 좋을 듯합니다. 주군께 이 이상 무례를 저질렀다가는 필담을 나누셔야 할지도 모르는 일이니까요.
한참 화를 내는 주리안의 주둥이에 검을 밀어 넣은 여울의 우아한 협박.
풀어 보자면 아가리를 조금 더 놀리면 혀를 잘라 버리겠다는 말이었다.
[젠장… 그래서 어떻게 하겠다는 거냐.]“의외로 빨리 진정하는군.”
[너는 무슨 이유인지 몰라도 내가 필요해서 이용하려는 놈이니 적당히 화를 내도 받아 주겠지만, 네 잘난 부하는 그게 아닌가 보군. 지금 상황에서 발을 뺄 수 있는 것도 아니고. 목숨을 부지하겠다고 얌전히 지냈다고 해도, 나는 바보가 아니다. 단순한 바보는 털도 나기 전에 죽어 없어지는 게 황실이니까.]그래서인가? 겪은 일이 상당히 당황스러울 텐데도 나름 안정적으로 상황을 받아들이는 것이. 지랄을 하는 건 그냥 성격 문제인 것 같고. 빼도 박도 못하는 상황인 것을 아니까 이러는 것이겠지만 말이다.
“구구절절 방법이나 그런 것을 설명할 생각은 없어. 너는 그냥 내가 주는 대로 받아먹으면 된다. 힘은 내가 쓰고, 너는 황제의 자리에 앉기만 하면 돼.”
[내가 황제의 자리에 앉으면?]“그거야 그때 가서 보면 되겠지.”
이놈이 지금 가지고 있는 가치는 연막탄, 딱 그 정도다. 두 특채자를 찾아내 죽일 때까지 나를 찾기 힘들게 해 줄 인물.
결과적으로 경쟁자가 없어지는 것이니 이놈이 황제가 될 확률이 높아지겠지만, 그건 그때 가서 볼 일이지 지금 고민할 일은 아니었다.
“널 어떻게 도와줄지는 곧 알게 될 거다.”
나는 그 말을 마지막으로 다시 대화를 중단했다. 여울 또한 연기처럼 흩어져 사라졌다.
* * *
척척척척.
“저것들은 어디서 온 기사단이랍니까?”
“난들 아나? 괜히 쳐다보지 말게. 소문 못 들었나? 저 기사 나리들이 어디서 뭘 하고 왔는지.”
“제기럴, 주리안 황자님은 그냥 하시던 대로 조용히 계시지……. 이러다 우리도 휘말려서 죽는 거 아닌지 모르겠구만.”
주리안의 병사들은 성으로 들어오고 있는 기사단을 보며 수군거렸다.
“묘하게 기분 나쁘지 않나?”
“쉿! 자네, 정말 죽고 싶어서 그러는 건가?”
“아니, 그거야 아니지만서도…….”
병사 중 갑옷 안에서 흘러나오는 불길한 기운을 느끼는 감이 좋은 자도 몇몇 있었다.
하나하나가 마법 갑옷을 걸쳐서 기운을 숨겼음에도 은연중에 흐르는 기운 때문이었다.
“도대체 이 많은 인원을 어떻게 보낸 거지……?”
그것을 보며 놀라기는 주리안도 마찬가지였다.
공터 대부분을 차지할 정도로 많은 인원이 미동도 없이 사열한 모습은 충분히 압도적이었다.
게다가 그들 하나하나가 입이 떡 벌어질 정도로 고급스러운 갑옷을 입고 있는 게 아닌가.
주리안은 새삼 자신에게 접근한 놈의 정체가 궁금해졌다.
‘이렇게 신출귀몰하게 등장하는 놈들이니 그렇게 허망하게 당한 것이군.’
주리안은 그렇게 생각하며, 갑옷 입은 기사들 사이에서 걸어 나오는 작은 체구의 여기사를 바라봤다. 전신을 완전히 감싼 갑옷 때문에 눈만 살짝 드러났을 뿐이지만, 체형으로 성별을 짐작할 수 있었다.
“……?”
그런 주리안의 얼굴에 의문이 떠오른다.
뒤뚱뒤뚱. 여기사는 입고 있는 갑옷이 무겁고 불편한지, 걸음이 무척 어색해 보였다.
“아! 안녕하세요.”
“어…….”
너무나 해맑은 인사가 말문을 막아 버렸다. 이게 정말 놈이 보낸 사람이 맞는가 하는 생각이 든 것이다.
“저는 앞으로 마스터와 황자님 사이에서 이것저것 돕게 된 자입니다. 그냥 편하게 벨이라고 불러 주세요.”
“그, 그렇군.”
일전에 마주쳤던 언데드와는 너무나 다른 모습에, 주리안은 꽤 당황한 모습이었다.
“먼저 당부드릴 것이 있습니다. 지금 저와 같이 온 것들은 인간이 아닙니다.”
“…설마 저 많은 것이 다 언데드인가?”
“맞습니다. 그러니 황자님을 위해서도 일반 기사나 병사들과는 다른 공간을 내어 주시기 바랍니다.”
“젠장… 폭탄을 떠안은 꼴이군.”
제국은 국가적으로 사술과 흑마법을 연구하는 국가였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비공식적인 것이지, 대놓고 하지는 않는다.
하물며 황실의 일원이 걸어 다니는 시체를 부려 내전을 일으켰다는 소리는 엄청난 타격을 줄 수 있는 스캔들이었다.
“네 뒤에 있는 놈은 흑마법사가 사술사인가? 그것도 대마법사 수준의. 그렇다면 지금까지 일어난 일들을 납득할 수도 있을 것 같은데.”
가까운 곳에 다른 사람이 없음에도 목소리를 낮춰 묻는 주리안.
“그건 말씀드릴 수 없습니다. 저는 그저 마스터께서 지시하신 것만을 수행할 뿐이니까요.”
이년도 싸가지 없는 것은 매한가지군. 주리안의 머릿속에 스친 생각이었다.
“그래, 그럼 그 지시 사항이란 걸 들어 보고 싶은데.”
“전쟁입니다. 저희는 황자님 대신 1황녀, 그리고 5황자 진영과 내전을 벌일 예정입니다.”
“가진 바 능력은 뛰어날지 몰라도, 오만하기 짝이 없는 놈이군. 겨우 이 정도로 그 둘을 상대하겠다는 말이냐?”
“이건 그야말로 ‘겨우’일 뿐. 마스터께서 하실 수 있는 일들은 아주 많습니다. 그러나 그걸 황자님께서 아실 필요는 없다고 마스터께서 말씀하시네요. 아, 아, 아닙니다. 제가 말한 겁니다.”
“…….”
주리안은 깨달았다. 지금 자신이 예의 그 빌어먹을 사생아와 대화하고 있는 중이란 사실을.
그리고 이 잘린 귀와 입을 대신하기 위해 보내진 여기사가 매우 멍청하다는 사실도 알 수 있었다.
* * *
-죄송합니다…….
-됐다……. 어차피 네가 처음부터 끝까지 연기를 제대로 할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았으니까.
이렇게 순식간에 들킬 거라고도 생각하진 않았지만.
-다음 이야기나 진행해. 어차피 네가 내 메신저라는 게 알려졌다고 나쁠 건 없으니까.
-네.
-주리안한테 병력 배치 상황을 보고, 중요 요충지에 대해서 아는 것들 표시하라고 해.
벨로제는 내 말을 전달했다. 이제는 아예 나와 간접적으로 대화한다고 생각했는지, 말투가 나와 대화할 때처럼 날카롭게 변해 있었다.
그럼에도 벨로제가 건네는 것을 받아들이기는 한다. 자기도 살려면 협조해야 한다는 것을 아는 것이다.
* * *
나는 내가 모은 정보를 주리안에게 주고, 주리안은 제국 내부에서만 얻을 수 있는 정보들을 나에게 주었다. 이를테면 공중 정찰로는 파악하기 힘든 지형 같은 것들 말이다.
그리고 그렇게 정리된 것을 기반으로, 제국 내부에 거점을 설치하는 작업에 착수했다.
몇 개 만들어 둔 것들이 있긴 하지만, 그 정도로는 어림도 없었다. 나는 제국에 거미줄을 깔 듯이 닥치는 대로 던전을 획득하고 생성했다.
그것을 위해 망령들이 밤을 날았고, 늑대들이 인적 없는 들판을 쏘았다.
포인트는 아끼지 않고 쏟아부었다. 마지막이 될지도 모르는 싸움을 준비하는 과정이다. 전부를 잃어도, 최후에 살아남기만 한다면 얼마든지 잃어 줄 용의가 있었다.
‘생각보다 시간이 촉박하군. 1황녀… 주라시아라고 했던가? 5황자 쪽은 간을 보는 것 같더니, 새로운 경쟁자는 아예 싹부터 잘라 버리겠다는 생각인가? 확실히 이 이상 정국이 혼란해지는 건 껄끄럽겠지.’
아니면 주라시아 본인이 특채자라서, 또 하나의 특채자가 속해 있는 것 같은 진영은 섣불리 건드리지 못하는 건가.
‘그거 하난 좋군. 어느 쪽이든 할 일은 하나라는 거.’
굳이 찾자고 노력을 할 생각은 없었다. 거기 있는 놈들을 싹 다 죽이다 보면 알아서 튀어나오겠지. 아니면 그냥 같이 쓸려 나가든가.
윤곽이나마 적의 정체를 짐작하고 있다는 건 아주 큰 이점이다.
문제는 그것을 알려 준 또 다른 적이 무엇을 노리는지 알 수 없다는 것이지만… 달리 길이 없다면 불도저처럼 밀어 버리기로 했다. 내 정체가 드러날 시간조차 주지 않을 생각이었다.
몬스터들의 움직임을 살피던 나는 지옥 주머니를 열었다.
꺼낸 것들이 부딪히며 쇳소리를 냈다.
벨로제와 함께 주리안의 성으로 간 몬스터들이 입고 있는 갑옷이었다.
나는 입고 있던 옷과 덧대어 입고 있던 가죽 갑옷을 벗고, 마법적인 처리가 된 철제 갑옷으로 갈아입었다.
이제 곧 또 한 번의 위치 공개 시점이 다가오고 있었고, 나는 주리안에게 파견한 병력 사이에서 그 시간을 맞이할 예정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