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ll special! Dungeon Master RAW novel - Chapter 184
184
벨로제를 시켜서 만든 리스트에는 정말 다양한 악마들과 집단들이 적혀 있었다.
지옥의 각 부서부터 시작해서 음마 같은 악마들이 모인 집단, 생전에 예언자였던 자들이 모인 그룹, 싸움을 좋아하는 아수라 같은 자들이 모인 곳까지.
그러나 아무리 VVIP 고객으로 인정받았고, 실질적으로 그에 걸맞는 거래를 할 수 있는 입장이기는 하나, 아직까지도 제약은 존재했다.
예를 들면 고위 악마들에게 대가를 지불하고, 그들에게 다른 특채자를 공격하라는 의뢰를 할 수는 없었다.
노골적으로 상대 특채자에 대한 정보도 살 수 없다.
다른 특채자에게 영향이 가지 않는다고 판단되는 거래만이 용인된다는 것이 벨로제의 설명이었다.
결국, 대부분이 지금 상황에서는 딱히 쓸모가 없다는 결론이 나온다.
인력 사무소나 다름없는 것들은 전부 탈락.
만일 제한이 없더라도 사용을 보류해야 하는 이유는 내 영향력이 미치지 않는 용병들은 주디스의 능력에 조종당할 확률에 있었다. 그렇게 되면 괜히 처리해야 할 골칫덩이만 늘어날 수도 있다.
검토, 기각, 보류, 다시 검토.
써먹을 수 없겠다 싶은 것도, 다른 방향에서 활용이 가능한지를 꼼꼼하게 체크하며 넘기기를 몇 시간.
사고는 지옥과의 거래 바깥으로 확장되기 시작했고, 그런 중에 과거에 스쳐 지나갔던 것들과 연결됐다.
나는 감정 평가 팀에 주목했다.
내게도 익숙한 이름을 가진 곳이지만, 일단 지옥에서는 어떤 일을 하는지 정확히 알아야 할 필요가 있었다.
모를 땐 물어봐야 하는 법. 나는 벨로제를 다시 불러냈다.
-아, 감정 평가 팀이요? 거기는 딱히 중요한 곳이 아니라서 자세히 적지 않았는데요. 거기는 지옥에 들어온 물건들의 가치를 감정하거나 가치를 알 수 없는 것들을 거래 대금으로 받게 된 악마들을 도와주는 부서예요. 일단 상대가 가진 것의 가치를 정확히 알아야 후려 치기를 할 수 있으니까요.
-악마 새끼들이 사기 치고 다니는 걸 묻는 게 아냐. 이놈들이 감정하고 평가한다는 게 물건에 국한돼 있어?
-음… 잘은 모르겠는데, 아마 아닐걸요? 영혼이고 뭐고 지옥에 저당 잡힐 만한 건 전부 하는 것 같았어요. 얼마 전에는 돌덩이인 줄 알고 악마가 받아 온 게 전설적인 성인이 싼 똥이 굳은 거라는 걸 밝혀내서 몇 명이 휴가도 갔…….
사족은 듣지 않았다. 부처가 쌌건 예수가 쌌건, 누군가가 싼 똥 이야기를 들을 필요는 없지 않은가.
어찌 됐든, 일단은 내가 하려는 일의 성공 가능성이 조금은 보인다는 소리만 걸러 들었다.
-이 새끼들이랑 만나 봐야겠어.
내가 이러는 이유는 마리아와, 아니, 정확히는 방주와 관련돼 있었다.
[세월에 묻힌 방주를 강제로 획득 당했습니다.] [해당 던전의 등급을 산출할 수 없습니다.] [강제로 획득당한 몬스터, A.I. 마리아의 등급을 산출할 수 없습니다.]마리아와 방주를 얻었을 때 봤던 메시지다.
여러 일을 겪으면서 잠시 잊고 있고 있었지만, 어떤 방법을 써야 단시간에 강해질 수 있을지를 고민하고 또 고민하는 중에 다시금 수면 위로 기억이 떠오른 것이다.
감정 평가 팀인지 뭔지, 저놈들이 던전 가치를 감정할 수 있다면, 방주는 제대로 된 평가를 받을 수 있을 것이다.
* * *
감정 평가 팀과의 접촉은 간단했다.
출장비, 즉, 악마가 물질계에 머물 때 들어가는 네거티브 포인트를 내가 부담하는 조건으로 바로 인력이 파견된 것이다.
악마가 이곳에 오려면 상당한 제약을 무마해야 했기에 지출이 상당했다. 성과가 없다면 아까워서 하루쯤은 밥맛이 없을 정도로.
“안녕하십니까. 저는 지옥 특수 부서, 감정 평가 팀 대리, 로로후슈라고 합니다.”
거대한 돋보기를 등에 메고 나타난 악마는 매우 처진 눈을 가진 서글서글한 인상의 소년이었다.
그런데 눈빛이 외모와 어울리지 않는다. 벨로제의 표현대로 ‘후려 치기’를 노리는 자의 눈빛이다.
그래, 저런 눈빛을 나는 본 적 있다. 전생에 전자 상가를 전전하며 구하기 힘든 게임을 구매하려고 수소문을 할 때 자주 본 눈빛이다.
“던전 감정이 가능한지 물었을 때, 직접 보지 않으면 아무 것도 장담할 수 없다고 했었지?”
“저는 상담 부서에서 일을 하지 않습니다만, 기본적으로 저희는 직접 확인하지 않은 물건에 대해서는 어떤 확답도 드리지 않고 있습니다. 저희의 인지를 벗어난 것들도 존재하는 세상이니까요.”
“그러면서도 일단 출장을 나오는 순간 어마어마한 금액을 청구하던데.”
나는 눈을 가늘게 뜨고 방실방실 웃는 로로후슈를 노려봤다.
그런데 정작 매서운 눈빛에 얻어맞은 로로후슈는 이런 클레임이 익숙한지 전혀 위축되지 않았다.
아니, 아예 내 눈초리와 질문을 슥 하고 넘겨 버린다.
“어이쿠, 시간이 지체되면 그만큼 많은 비용이 청구되게 됩니다. 고객님을 위해 최대한 빠른 감정을 해야 할 것 같네요. 어디, 감정을 의뢰하실 던전이 어떤 곳인가요? 제가 서 있는 이곳을 감정하면 되는 건가요?”
“…….”
능청스럽게 돋보기를 앞으로 돌려 메면서 묻는 로로후슈.
웬만해서는 저 철판 깐 얼굴을 뭉개 놓기는 힘들 것 같다.
물리적으로야 뭉갤 수 있겠지만, 그런 건 저놈이 방주를 감정하지 못했을 때 생각해 보도록 하자.
-마리아, 방주를 잠시 꺼내 줘. 그리고 조금이라도 위험하다 싶으면 바로 방어든 공격이든 알아서 해.
-Aye, Captain.
마리아의 대답이 있고서 잠시 후, 내 가슴에서 작은 빛무리가 튀어나왔다.
자세히 보면 수많은 입체 도형들이 얽히고설킨 그것이 바로 방주였다.
물론 이걸 집어 간다고 내게서 방주를 빼앗을 수 있는 건 아니지만.
“……!”
그것을 본 로로후슈는 겉으로 보기에는 전혀 감정의 동요가 없어 보였으나, 동공이 약간 확장되는 걸 나는 놓치지 않았다.
“이런 형태의 던전도 감정이 가능한가?”
“…해 봐야 알 것 같습니다. 물리적인 한계를 넘어서는 던전이야 찾아보면 흔합니다만, 개중에는 어마어마한 것도 섞여있는 법이라서요. 제가 가까이에서 확인을 해 봐도 되겠습니까?”
“제대로 된 감정만 할 수 있다면 좋을 대로. 그러라고 비싼 대가를 줘 가면서 부른 거니까. 단, 감정하는 과정에서 손상이 있어서는 절대 안 된다.”
“물론입니다. 의뢰하실 때 작성한 계약서에도 명시되어 있듯이, 저희는 감정을 포기하면 포기했지 의뢰된 물건을 손상시키는 일은 절대 하지 않습니다.”
로로후슈가 등에 매고 있던 돋보기를 꺼내서 다가왔다.
혹시 위험할지도 모른다고 생각한 것일까. 그는 조금 거리를 둔 상태에서 돋보기로 빛무리를 살피기 시작했다.
“호오! 다행이군, 제작자가 기원을 찾지 못하도록 조치를 하지 않았어. 음, 기능은 정확히 파악할 수가 없지만, 손상이 심각한 건 알겠군. …기원이 되는 차원이… 뭐? 거기는 마법이 아예 없는 곳인데…….”
어느 순간부터인가 자신만의 세계에 빠져든 로로후슈는 내가 자신을 유심히 살피는 것도 눈치채지 못할 정도로 방주에 빠져들었다.
아예 돋보기 안으로 들어갈 기세로 눈을 들이민다. 혼잣말이 이어졌고, 한쪽 손은 공중에 떠 있는 종이에 빠른 속도로 무언가를 기록하고 있었다.
그렇게 한참을 끄적이던 로로후슈가 우뚝 움직임을 멈추더니, 문자가 빼곡하게 채워진 종이를 돌돌 말았다.
그리고 허공에 생긴 검은 구멍에 쏙 하고 집어넣는다.
“고객님께서는 감정 결과가 모든 세계에서 인정받기를 원하셨다고 들었습니다. 일단 제가 알아낼 수 있는 것들을 기록해서 넘겼으니, 1차적인 결과를 받아 보실 수 있으실 겁니다. 다만 완벽한 감정에는 실패해서… 만족스런 결과가 나올지는 모르겠군요.”
로로후슈의 말대로 반응은 즉각적이었다.
두루마리가 된 종이가 구멍으로 사라지자마자 어지러운 막대들이 미친 듯이 표시되기 시작한 것이다.
마치 대량의 데이터를 동시에 다운받는 컴퓨터 화면을 보는 것 같았다.
[아카식 레코드에 새롭게 등록된 데이터를 다운로드합니다.]아카식 레코드. 생소하지만은 않은 단어가 눈에 밟힐 때, 로로후슈가 다시 말을 걸어왔다.
“워낙 방대한 자료입니다. 시간이 꽤 걸릴 테니, 그사이에 제가 알아낸 다른 것을 알려 드려도 될까요? 물론 무료입니다.”
방실방실. 기분 나쁜 웃음을 짓고 있는 로로후슈의 말이었다.
공짜라고는 하나, 저 웃음은 돈 되는 것을 찾은 놈의 웃음이다.
그러나… 듣지 않고 넘어갈 수는 없는 것이 사실이었다.
“말해 봐.”
“보셨다시피 저는 돋보기로 보여 주신 던전, 방주를 살필 수 있는 한계 내에서는 철저하게 파헤쳤습니다. 그리고 방주의 기원을 살필 때, 익숙한 얼굴이 보이더군요. 이것을 만든 분은 지금 지옥 상점 개발 팀에서 팀장을 맡고 계십니다.”
“뭐?”
-……!
나와 마리아가 동시에 놀랐다.
방주를 만든 자라면… 박선주 박사일 텐데, 지옥에 있는 것도 모자라서 뭐? 개발 팀장?
나는 어이없게 이어진 인연에 당황했다. 하지만 겉으로 드러나기 전에 빠르게 수습했다. 음흉한 악마 앞에서 동요를 내비칠 수는 없었기 때문이다.
“그렇다는 건… 그 팀장이란 자에게 보이면 정확하게 감정이 가능하다는 뜻인가?”
“그건 저도 모릅니다만, 만드신 분이니 지금 상태를 파악해서 정리하는 것도 가능하시지 않겠습니까? 단, 개발 팀은 지금은 직접 접촉하는 것이 불가능하실 겁니다. 개발 팀은 워낙 기밀이 중시되는 곳이다 보니, 보안 규정이 까다로워서 말이죠. 그러니 제가 대신 전달자가 되어 드리겠습니다.”
“설마, 일단 방주를 넘기라는 소리를 하는 건 아니겠지?”
“설마요. 저희는 불가능한 것을 요구하지 않습니다. 그것도 앞으로 어떤 위치에 설지 모르는 고객을 상대로는 더욱이. 제가 전달하는 건 해석 불가 판정을 받은 데이터 덩어리 그 자체입니다.”
“원하는 대가는? 공짜로 해 주겠다는 소리는 아닐 텐데.”
“지불하신 출장비만큼의 네거티브 포인트 그리고 앞으로 이런 의뢰를 하실 때 저를 지명해 달라는 부탁. 두 가지입니다.”
“약간의 실리 그리고 미래를 위한 투자… 뭐 그런 건가?”
“그렇다고 할 수 있죠.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아직도 어지럽게 오르락내리락하고 있는 막대 그래프들. 저것이 멈췄을 때 어떤 결과가 나올지는 모른다. 내가 원한 결과가 바로 나올 수도, 아닐 수도 있다.
하지만 나는 어떤 결과가 나오든지 로로후슈의 제안을 받아들이기로 했다.
“단순 전달자 역할을 하면서 바라는 게 과해 보이기는 하지만… 좋다. 그렇게 하지.”
“탁월한 선택이십니다.“
나는 로로후슈 개인에게 네거티브 포인트를 전송했다.
입이 찢어질 정도로 웃음을 머금는 모습이 재수 없었으나 시킨 일만 제대로 하고, 결과만 좋다면 참아 넘길 만했다.
그렇게 로로후슈를 보내고도 꽤 오래 막대 그래프는 정신없이 움직였다.
이윽고 그 움직임이 멈췄을 때 막대 그래프만큼이나 어지러운 메시지가 출력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