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ll special! Dungeon Master RAW novel - Chapter 188
188
핏빛 기운은 끓어오르는 마그마처럼 부글거리며 강철이의 불길을 밀어냈다.
그런 모습을 본 강철이는 한층 더 흥분해서 더욱 맹렬이 불을 토했다.
화아아!
강렬한 두 힘이 충돌해 서로를 밀어내기 위해 맞붙는다.
처음에는 팽팽한 힘의 대결처럼 보였다.
아니, 일시적으로 강철이의 불꽃이 다시 주디스의 반격을 밀어내는 것처럼도 보였다.
조금씩 움츠러드는 핏빛 장막. 그러나 밀리면 밀릴수록 반투명하던 것이 점점 더 짙은 색으로 변해 갔다.
마치 밀도가 올라가는 것처럼 말이다. 그것이 절정에 달해 완전히 불투명한 덩어리가 되었을 때, 같은 색의 빛줄기가 순식간에 화염을 밀어냈다.
콰앙.
그리고 그 빛줄기는 화염을 밀어내는 것에 그치지 않고, 강철이의 턱을 강타했다.
“크와앙!”
강철이는 엄청난 충격을 받은 듯이 거대하고 기다란 몸을 꿈틀거리며 몸부림쳤다.
그것만으로도 할 말을 잃을 정도의 광경이었다.
하지만 주디스의 폭주는 끝나지 않은 상태였다.
저주가 살아 움직이는 것 같은 덩어리 안에 도사린 주디스가 강렬한 도약을 했다.
“말도 안 돼! 도약 한 번으로 저 거리를 좁힌다고?”
잃었던 말까지 되찾을 정도의 광경.
주디스는 강철이가 떠 있는 상공까지 단 한 번의 도약으로 뛰어올랐다.
그리고 정신을 차리지 못하는 강철이의 머리를 주먹으로 후려쳤다.
집채만 한 기운이 응집된 주먹과 괴룡의 충돌은 얕게 떠 있는 구름을 밀어내고, 지상에 부서져 있는 파편들을 일제히 몰아낼 정도의 충격파를 발생시켰다.
쿠구구구궁.
강철이는 그대로 지상으로 추락해 애꿎은 건물들을 부수며 밀려 갔다.
“…….”
강철이가 받은 피해는 실상 그리 크지는 않았다. 간접적으로 상태를 확인할 수 있는 나이기에 가능한 판단이기도 했고, 밀려나기 무섭게 파편들을 휩쓸며 자세를 바로잡는 모습에서도 알 수 있다.
그렇다고 해서 주디스가 지금 보이는 모습이 정상적이냐 하면 그건 절대 아니다.
모든 요괴를 통틀어도 가장 단단한 육체를 가진 편인 강철이기에 저렇게 버텼지, 나였다면 한 방에 곱게 다져진 만두소가 됐을 거다.
순간적으로 머릿속이 새하얘졌다.
눈앞에는 강철이와 주디스의 격한 육탄전이 펼쳐지는데, 정작 나는 그것을 인식하기도 버겁다.
강철이가 비교적 짧은 앞발을 휘두른다. 덩치에 비해 짧다는 얘기이지, 실제로는 집도 집어 들어 던질 수 있는 크기에, 발톱은 바위도 잘라 낼 정도로 날카롭다.
그런 공격을 주디스는 피하지도 않고 맞받아쳤다.
한 번 한 번의 충돌이 불러온 충격파가 폐허를 유린하고 있다.
그런 장면들을 보면 볼수록 멍해졌다.
너무 엄청난 것을 보고 있는 탓일까? 아니면 막막함 때문일까.
감당하기 버거운 프로그램이 실행되어 버벅대는 싸구려 컴퓨터가 된 기분이다.
‘후퇴를 해야 하는 건가?’
그럼 그다음에는? 저런 놈을 상대로 어떤 전략을 짜고, 어떤 전술로 맞서야 하지?
이런 생각들이 쉴 새 없이 머릿속에 떠올랐다. 머리카락 하나하나가 곤두서는 불안이 가슴을 휩쓸고 지나갔다.
그만큼 주디스의 능력은 말이 안 되는 수준이다.
심지어 내 정신을 현실로 끌어온 것은 강철이의 비명이었다.
주디스가 목 뒤에 있는 거대한 비늘을 강제로 비틀어 뽑아 버린 것이다.
후두둑, 하고 검은 피가 지면을 적셨다.
광인이 된 주디스는 비와 다를 바 없는 핏줄기를 맞으며 포효하고 있었다.
그는 전투 시작부터 지금까지 끊임없이 강해지고 있었다.
분노한 강철이가 주둥이를 내밀고 주디스를 씹어 없앨 기세로 달려들었지만, 얕게 도약한 후 강타 한 번에 입을 다물게 한 뒤 수염을 잡고 묵직한 한 방을 먹였다.
쿠웅.
워낙 깔끔한 연계 동작이어서 폭주 기관차처럼 달려들던 강철이의 온몸이 꿀렁거린다.
최고 속도로 장벽에 충돌한 기차를 보는 것 같았다.
“마스터! 마스터!”
마음이 후퇴로 기울고 있을 때, 있는 호들갑 없는 호들갑을 전부 장착한 벨로제가 뛰어왔다. 양손에는 귀와 입을 들고 있다.
저걸로 연결된 상대는 주리안뿐인데, 지금 상황을 모르는 것도 아니고, 아무리 눈치가 없는 벨로제라 해도 별것 아닌 걸로 저렇게 호들갑을 떨며 올 리가 없는데…….
생매장을 통해 후천적으로 눈치가 삽입됐기 때문에 더더욱 그럴 가능성은 낮다.
“무슨 일이야!”
그러나 그런 생각과는 달리 나오는 목소리는 곱지 못했다.
상황이 상황이다 보니 자연스레 날카로워진 것이다.
“트, 트, 특채자!”
“뭐?”
“주, 주, 주리안이! 트, 특채자라고요!”
“뭐?”
이건 또 무슨 참신한 미친 소리란 말인가.
분명 특성을 확인했을 때는 전혀 아무런 특징도 없었는데.
무엇보다 나한테 명줄을 내주다시피 하고도 얌전히 지내던 놈이 특채자라고?
나는 이해할 수 없는 말을 하는 벨로제가 쥔 것을 거칠게 뺏었다.
그리고 말을 꺼내려는 순간.
[이런 젠장! 뭐가 이렇게 굼떠!]주리안이 거친 목소리로 불만을 토했다.
평소와 그리 다르지 않은 모습. 그런데 벨로제는 그가 특채자라고 했다.
한창 급박한 상황에 이런 중대한 내용을 허위로 보고했다가는 목만 남기고 묻힐 곳이 흙바닥이 아니라 시멘트가 될 수도 있다는 것을 모르지 않을 텐데.
나는 급한 와중에도 최대한 냉정하게 생각하려고 노력하며 말을 꺼냈다.
“무슨 일이지?”
일단은 평소의 주리안을 상대한다는 생각으로 말을 꺼내 본다.
그러나 돌아온 대답은 예상에서 많이 벗어난 것이었다.
[억지로 침착한 척하지 마. 떨리는 목소리 때문에 여기까지 땅이 흔들리는 것 같으니까. 제기랄, 쓸데없는 소리 하면서 시간 낭비할 때가 아니지. 긴말 안 한다. 일단 물러나. 지금 네가 상대하는 건 단순한 특채자가 아니야. 저건 우리들이랑 다르다고!]머리가 띵해졌다. 그러면서도 머릿속을 스치는 생각 하나.
이놈, 분명 나랑 접선할 때 꼭두각시를 활용했었다.
설마 하는 의문에 대한 답은 주리안, 아니 특채자가 직접 해 줬다.
[그래, 네가 길들인 황자 놈 몸은 내가 접수했다. 조금 더 확실한 방법으로 접촉하고 싶었는데… 미친! 어디로 숨었는지 찾을 수가 없더니, 하늘 위에 있을 줄이야. 그러니 내가 아무리 찾아도 찾을 수가 없지!]“하소연은 됐고, 네 능력도 대충은 알겠다. 그런데, 주디스가 단순한 특채자가 아니란 얘기, 그게 무슨 소리지?”
[그리 짧게 끝날 설명이 아니다. 듣고 싶으면 일단 물러나. 지금 얻어맞고 있는 드래… 괴물부터 물려라. 지금 낭비하기에는 아까운 전력이야.]“눈물이 다 날 것 같군. 내 걱정을 다 해 주고 말이야. 우리 적이었던 것 같은데.”
지금 막 후퇴하려던 참이긴 했다. 강철이의 상처가 느린 속도지만 쌓이고 있으니. 승산은 없고, 추가적인 전력 투입은 전부 낭비가 될 수밖에 없다.
후퇴한다고 답이 나올 상황은 아니지만, 후퇴 말고는 선택지가 없었다.
그런데… 저놈이 후퇴하라고 하니까 그러면 안 될 것 같은 기분이 든다.
[제발! 내 말을 믿으라는 게 얼마나 병신 같은 소리로 들릴지 잘 알지만, 저놈이 저렇게 날뛸 수 있는 건 네 책임도 있으니까, 내 말대로 일단 물러나라.]“내 책임이라고?”
[그래! 네 책임. 햇병아리 용사랑 성녀 후보를 걸레짝으로 만들어서 지옥에 팔아넘긴 게 너니까 말이야.]“그게 무슨 상관…….”
대화가 진행되는 동안 냉정을 유지하려다 보니 상황을 분석할 여유가 생겨서일까, 강철이 쪽 상황을 살피면서도 놈이 흘린 말과 단어들을 조합할 수 있었고, 나는 한 가지 답을 도출할 수 있었다.
이 허무맹랑한 생각이 정답인지는 모르겠지만…….
“설마… 용사가 생긴 이유가 저놈 때문인가……?”
[머리가 나쁘진 않아 다행이군. 그러니까 지금까지 살아서 그렇게 깽판을 치고 다녔겠지만. 저 무식한 놈은 굳이 특채자가 아니었어도 큰 사고를 칠 놈이었다. 세계가 만드는 운명 중에 쓸모없는 건 없어. 그중에서도 세계의 운명 그 자체를 구원하기 위해 만들어지는 게 용사인데, 쓸모가 없는 시기에 등장할 것 같나? 저게 용사가 맞서야 할 재앙이다. 아마 얼마 안 있어 마왕이라 불리게 되겠지.]주리안의 몸을 차지한 놈은 어지간히도 나를 빨리 후퇴시키고 싶은지, 속사포처럼 설명했다.
이미 용사와 마왕이 언급된 순간 후퇴를 확정지었다는 것을 모르니까 조금이라도 나를 납득시키려는 모습.
어떻게 알아냈는지, 왜 나에게 말해 주는지는 모르겠지만, 저놈 말이 사실이라면… 잘나신 지옥 군주님이 그냥 둬도 지랄 맞은 놈을 굳이 특채자로 골랐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 재앙에 맞설 운명을 갖고 태어난 용사는… 젠장.
-물러나라, 강철이.
막상막하로 치고받는 상황이긴 해도, 아직 충분히 물러날 정도의 여유는 있을 것이다.
나는 어차피 하늘 위에 떠 있으니, 피해 없는 후퇴가 가능하다.
이런 계산이 깔려 있기에 멍도 때리고, 고민도 하고, 갈등도 할 수 있었다.
그런데… 그런 예상이 빗나갔다.
[그와아아아……!]온몸에서 핏빛 오러를 내뿜은 주디스에게서 뻗어 나온 오러 줄기가 강철이의 머리를 감싸서 바닥으로 끌어내리고 있는 것이다. 이제는 아예 붙잡아 놓고 패려는 것처럼.
매드세디아의 재앙이라더니, 각성한 후에도 지랄 맞은 속도로 강해지고 있는 건가.
강철이는 끌어당겨지는 와중에도 몸에서 불을 뿜어 저항했다.
다시 한번 시작된 팽팽한 줄다리기.
당장 심각한 피해를 입을 일은 없어 보이지만, 강철이가 자력으로 후퇴할 수 있을 것 같지가 않다.
그런 장면을 보면서, 나는 멀리 떨어진 안전한 던전으로 연결된 포탈을 즉시 설치까지 사용해 가면서 만들었다.
-전부 포탈로 들어가서 도망가. 여기는 내가 어떻게 해 볼 테니까.
“무슨 말씀이세요! 설마 마스터 혼자서 희생하실 생각이신 거예요!”
명령을 내리기가 무섭게 벨로제가 내 팔을 부여잡고 울기 시작했다.
그런 그녀의 영향으로 신비랑 여울까지 합세해서 빽빽 시끄럽게 굴었다.
-주군! 차라리 죽음을 명해 주십시오. 주군을 버리고 혼자 살 길을 찾다니요. 주군께서 가 주십시오. 저는 주군 없이 살아남는 것이 가장 큰 벌입니다. 그러니 제발…….
“형님! 저도 형님 두고 어디 못 갑니다! 같이 가셔야 합니다!”
감동적인 장면이다. 그러나 나는 감동보다는 짜증이 올라왔다.
‘이 새끼들… 지들 멋대로 사람 하나 골로 보내려고 작정했나?’
누가 보면 내가 장렬하게 희생하고 골로 갈 준비라도 하는 줄 알겠다.
단편적으로만 생각을 읽어 낼 수 있는 입장들이니, 중간에 생략된 무언가로 인해 오해라도 한 모양이다.
나는 시간이 아깝기도 하고, 일일이 설명할 기분도 아니어서 신비와 여울에게 강제력을 행사했다. 거부할 수 없는 명령을 내린 것이다. 물러나라고.
-얌전히 기다리고 있어.
사라지는 둘에게 이 말을 남겨 주고, 벨로제는 엉덩이를 걷어차서 포탈 안으로 던져 버렸다.
이제 이 부유성에 남은 것은 나 하나다.
이제 부유성을 옮겨서 위치를 조정하고, 부유성의 심장부나 다름없는 엔진을 파괴하면…….
쿠궁.
추락에 저항하려는 충격이 한 번 있었으나, 중력을 거스르는 기관을 잃은 부유성은 고도를 유지하지 못하고 추락하기 시작했다.
중력에 의해 등가속 운동을 시작한 부유성은 그야말로 엄청난 기세를 안고 지상을 향해 내달렸다.
나는 가고일 하나를 소환해서 몸을 맡기고, 먹구름에 생긴 큰 구멍을 통해 아래를 내려다봤다.
꽈아아앙.
부유성의 질량은 중력이라는 동반자를 만나 엄청난 파괴력으로 지상을 강타했다.
주디스나 강철이 모두, 저 정도 물리적 충격에 휩쓸린다고 해서 치명적인 부상을 입진 않을 것이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아무렇지 않을 리도 없다.
‘됐군.’
부유성 추락으로 인해 발생한 충격과 혼란을 틈타 강철이가 원래 있던 호수로 후퇴하는 데 성공했다.
주디스의 생사는 확인할 수 없었으나, 나는 놈이 죽거나 심하게 다쳤을 거란 기대를 품지도 않았다.
어차피 강철이가 무사히 후퇴할 기회를 만들기 위해 때려 박은 것이니, 목적은 달성했다.
나는 가고일에게 최대 속도로 전장을 벗어날 것을 명령했다.
일단은 주리안의 몸을 차지한 놈이 무슨 꿍꿍이인지, 뭘 얼마나 알고 있는지부터 확인해야겠다.
나는 다짐했다.
놈이 개수작을 부린 거라면 사지를 잘라서 돼지 먹이로 쓰이는 걸 놈에게 직접 보여 주기로 말이다.
지금 상황은 여린 내가 그런 생각을 하게 될 정도로 불쾌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