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ll special! Dungeon Master RAW novel - Chapter 191
191
한참을 씩씩대던 로로후슈는 내가 귀를 파는 시늉을 하는 것을 보고는 거의 거품을 물 정도로 분통을 터뜨렸다.
하지만 아무리 그래 봐야 길이 없는 놈이 할 수 있는 일이 뭐가 있겠는가.
로로후슈는 결국 깊다 못해 내핵까지 닿을 것 같은 한숨을 내쉬고는 지옥으로 돌아갈 준비를 했다.
“최대한 빨리 처리하는 게 좋을 거야. 시간이 이틀도 안 남았으니까.”
“그 전에, 한 가지만 확실히 하도록 하죠.”
“뭐?”
“이번 건을 마지막으로 당신과는 완전히 인연이 끊어지는 겁니다. 아시겠습니까?”
“우리가 인연이랄 게 있긴 했던가?”
“…좋습니다. 시간은 걱정하지 않으셔도 될 겁니다. 돈 냄새가 나면 바로 움직이는 놈들이니까요. 네거티브 포인트나 넉넉하게 준비해 두시면 됩니다.”
“그건 걱정하지 마.”
그 말을 마지막으로 로로후슈가 돌아갔다.
얼마나 걸릴까. 발등에 불이 떨어졌다고 생각할 만큼 충분히 겁을 준 걸까.
로로후슈를 보낸 나는 그런 걱정을 하며 시간을 보냈다.
던전 창을 열어 남는 시간에 처리할 것들을 찾았으나, 이미 마리아가 실시간으로 전체 관리를 도맡은 이후로는 내가 할 일이라고는 별로 없었다.
당장 할 수 있는 게 있다고 해도 그게 큰 변화를 가져오진 않겠지만, 어쩔 수 없이 불안한 마음을 가라앉힐 일거리가 필요했다.
하지만 결론만 놓고 보면 그런 고민은 쓸데없는 것이었다.
[저희의 도움이 필요하시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특채자님이 저희 같은 것들의 도움이 필요하시다니……. 꽤나 상황이 급하신 건지, 원래부터 반칙을 좋아하시는 건지 모르겠지만, 저희는 고객을 가리지 않습니다. 대가만 지불해 주신다면 무슨 일이든 도와드리도록 하죠.]삭막한 폰트의 메시지가 떠오른 것이다.
로로후슈가 사라진 지 한 시간도 채 지나지 않았다는 걸 생각하면, 로로후슈나 이놈들이나 행동이 꽤나 빠르다는 걸 알 수 있었다.
그런데 이거 어떻게 답신을 해야 하는 거지?
설마 이번에도 일방적으로 통보만 받는 건가 싶어 짜증이 나려는데, 타이밍 좋게 홀로그램으로 만들어진 문자 입력기가 생성됐다.
[대가는 어느 정도를 지불해야 하지?] [그건 의뢰 내용에 따라 다릅니다. 소개자에게서 대략적인 내용을 듣긴 했지만, 똑같은 내용이라 하더라도 일단 의뢰를 하는 고객에게서 정확하게 전달을 받고 가격을 말씀드리는 게 저희가 일을 하는 순서입니다.] [박선주 박사. 지금은 지옥 상점 개발팀장으로 있다는 자를 만나고 싶다.] [미리 들었던 내용과 정확히 일치하는군요. 두 번 계산기를 두드릴 일이 없어서 다행이라고 해야 할지……. 일단 저희가 산정한 가격을 불러드리겠습니다.]잠시 기다리자, 꽤나 디테일하게 정리된 가격표가 떴다.
[의뢰 진행 요금 1억, 투입 인원 인건비 1300만, 기타 경비 2100만, 소개 수수료 300만. 총 1억 3700만 네거티브 포인트 되겠습니다. 경비나 인건비 같은 경우는 백만 단위에서 올림 처리한 가격입니다.]반올림도 아니고 올림 처리를 했다고? 어이없음을 느끼긴 했지만, 그것보다 이상한 항목이 끼어 있는 게 더 신경 쓰였다.
[마지막에 소개 수수료는 뭐지?] [아, 고객님과 저희를 연결한 악마가 저희에게 요구한 소개 수수료입니다. 이걸 저희가 부담할 수는 없어서 고객님께 청구하는 거고요.]“…….”
대단한 새끼. 협박을 당해서 궁지에 몰린 상황에서도 잇속 챙길 생각부터 하다니.
나는 로로후슈의 끈질긴 비리력에 감탄했다. 이 자식, 언젠가 크게 될 놈이다.
크게 돼서 아주 된통 걸린 다음에 고문이란 고문은 다 받고, 지옥 밑바닥에서 온갖 고통을 풀코스로 당할 모습이 눈에 선했다.
차라리 나한테 달라고 요구했으면 그냥 줬을 텐데.
이렇게 대놓고 수수료를 요구했다는 사실을 통보하는 놈들이라고는 생각을 못한 건가?
하여간 모두 속 좁은 놈들이다.
한숨과 실소를 뱉어 낸 나는 다시 메시지를 입력했다.
[가격은 상관없다. 박선주 팀장은 언제 만나 볼 수 있지?] [지금 그쪽으로 인원이 파견된 상태입니다. 직접 물리적인 접촉은 불가능하지만, 샛길을 만들어서 음성은 교환할 수 있도록 해 드리겠습니다. 통신이 아닌 실제 육성 대화를 하는 상태를 만들 것이니 해킹 같은 일은 걱정하실 필요는 없습니다.]이후로는 기다림의 시간이었다.
추가적인 질문을 해도 상대방으로부터 답변은 없었다.
정말 전달할 내용만을 전달하고, 일의 진행 사항은 일절 알려 주질 않는 불친절함.
그럼에도 나는 끈기 있게 기다렸다.
지금 박선주 박사를 만날 수 있는 길은 이게 유일하기 때문에.
그나마 선불을 요구하지 않는 게 놈들의 마지막 양심인가 싶은 생각이 들고 있을 때, 다시 메시지 창이 팟 하고 나타났다.
[준비되었습니다. 이 메시지가 사라지면 새로운 창이 출력될 겁니다. 그것을 수락하시면 바로 박선주 팀장님과 육성 대화를 나눌 수 있게 됩니다. 물론 결제 또한 동시에 진행되고 말이죠. 만일 거부하시더라도 5000만 포인트는 자동으로 결제될 겁니다. 이미 작업에 들어간 수고비로 말이죠.]이번에는 아예 메시지를 입력할 수 있는 창이 없었고, 메시지를 다 읽기 무섭게 박선주와 연결을 수락하겠냐는 창이 새롭게 출력됐다. 뒤에는 결제 진행에 관한 내용도 있었지만, 나는 금액만 확인하고 바로 수락하기를 눌렀다.
육안으로 구별 가능한 변화는 없었다. 그런데 분명 곁에서 인기척이 느껴졌다.
사람이 숨을 쉬는 소리, 약간 긴장한 듯 팔뚝을 쓸어내리는 소리, 발끝으로 바닥을 두드리는 소리.
그래, 정확히는 누군가의 소리만이 옮겨져 온 듯했다.
그리고 그 누군가는 당연히 박선주일 것이다. 놈들이 사기를 친 게 아니라면.
상대는 아직 상황을 모르는 모양이었다.
어쩔 수 없이 나는 최대한 예의를 차리고 조심스럽게 말을 꺼냈다.
“박선주 박사님.”
-헉!
생각보다 젊은 목소리여 여자가 깜짝 놀라는 소리. 이어진 것은 우당탕 하고 요란하게 집기들이 쏟아지는 소리였다.
-으으윽……!
어디에 부딪치기라도 했는지, 박선주는 신음 소리를 냈다. 빠르게 살과 천이 비벼지는 소리도 들리는 걸 보니, 부딪친 부위를 격하게 문지르는 모양이다.
“강철이… 그때는 이무기였죠. 그 호수에 있을 때 메시지를 보낸 게 박사님이었나요?”
-…맞아요. 저였어요. 하아… 얼굴 정도는 볼 수 있을 줄 알았더니, 이런 식으로 첫 대면을 하게 될 줄이야…….
앞쪽은 대답이고, 뒤쪽은 독백이었다.
독백이 끝나고, 옷이 스치는 소리로 그녀가 다시 자세를 바로잡았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왜 그랬습니까?”
-당신이 마리아를 데리고 있으니까요. 마리아, 당신이랑 같이 있잖아요? 당신은 내가 마리아를 얼마나 애타게 찾았는지 모르겠죠. 정말… 뒷돈 받아먹기 좋아하는 머저리가 가져온 자료를 봤을 때 얼마나 놀랐는지 몰라요. 방주의 손상률이 너무 높아서 마리아가 어떻게 되기라도 했으면 어쩌나 가슴 졸이며 분석을 했는데…….
처음에는 냉철한 이공계의 냄새를 풍기던 목소리가 마지막에는 격하게 떨렸고, 결국에는 말을 잇지 못할 정도가 됐다.
“했는데?”
-…했는데. 마리아는 무사하더군요. 그것도 제가 예상한 것 이상으로 성장해서… 완전한 마음을 갖게 된 상태로.
“역시 박사님은 마리아를 인간으로 만들고 싶었던 거군요.”
-네. 덕분에 지옥에 오게 됐지만, 후회는 없어요.
“지옥에 떨어진 이유가 마리아 때문이라는 말입니까?”
-정확히는… 고의로 방주를 실패작으로 만든 것 때문이죠.
박선주가 지옥에 떨어진 이유에 대한 주제가 나온 순간부터 마리아가 동요하기 시작했다.
-마리아는 현재 거론되고 있는 주제의 정보에 격한 관심이 있음을 알립니다.
“…….”
박선주가 지옥에 떨어진 이유가 내게 도움이 되지는 않겠지만, 여기까지 듣게 되니 궁금하긴 했다.
그리고 조금이라도 박선주와 거리감을 좁히는 게 모종의 도움을 이끌어 내는 데 도움이 되지 않을까?
해서, 나는 마리아의 요청대로 박선주에게 그 이유를 묻기로 했다.
“방주가 실패작이라는 게 무슨 뜻이죠? 다른 차원으로 건너가지 못한 게 박사님이 일부러 그렇게 했다는 이야기인가요?”
-맞아요. 방주는 내게 있어서 인류의 새 터전을 찾기 위한 배가 아니라, 마리아를 완성시키기 위한 거대한 연산 장치였을 뿐이에요. 그래서 나는 방주의 개발을 총괄하면서도, 마리아의 인격을 구성하기 위한 작업에 방주의 메인 시스템 리소스 대부분을 할당했죠. 차원 이동을 하는 데는 막대한 연산을 요구하는데, 그게 전부는 아니더라도 대부분이 다른 작업에 사용되는 구조였으니 당연히 항해가 실패할 수밖에요.
방주와 마리아를 처음 봤을 때, 상당한 애정이 느껴진다고는 생각했지만……. 제작 목적 자체를 뒤틀어서 인류의 운명 자체를 희생해 가면서까지 마리아를 완성시키려고 했다니…….
마리아도 궁금해하고 있지만, 지금은 나도 그녀만큼 이유가 알고 싶었다.
“왜 그런 겁니까?”
내 물음에, 박선주는 꽤나 차가움이 느껴지는 웃음을 흘렸다.
-인류의 존속……. 그게 과연 필요할까 싶었죠. 까마득한 과거의 자료를 봤을 때 나는 울었어요. 그 시절을 흐르고 있던 낭만이 너무 부러워서요. 내가 사는 시대는 뜨거운 욕망과 차가운 마음의 홍수 같았어요. 인류의 존속을 위해 방주 프로젝트를 기획하면서 가장 먼저 한 일이 무엇일 것 같아요?
“탑승자 선정. 얼마나 긴급한 상황이었는지는 모르겠지만, 테스트가 가능한 수준이라면 안전이 확실해졌을 때 이동하려 했을 거고, 그렇지 못한 상황이면 가장 먼저 탈출할 계획부터 세웠겠죠.”
-정확해요. 인류의 존속은 허울 좋은 구실이고, 그들은 자신들의 목숨이 아까웠던 거예요. 인류의 존속을 구실로, 이제는 더 이상 확장이 용이한 행성도 남지 않은 우주에서 남은 자원을 긁어모아 자신들이 탈 구명보트를 만들려고 했던 거죠. 그래서 나는 생각했어요. 차라리, 사람다운 기계를 만들어 보내는 것이 사람을 남기는 길이 아닐까 하고.
박선주 박사는 꽤나 낭만적인 미치광이였다.
이것도 A.I.의 영향이려나.
그 영화, 분명히 주인공인 로봇이 아주 긍정적으로 그려졌던 기억이 내게도 남아 있다.
사실… 그녀가 낭만이 남아 있다고 평한 시대도 그리 아름다운 모습만 있는 게 아닌데 말이다.
-그리고… 마리아를 만들면서 그 아이를 사랑하게 됐죠. 자식을 가져 본 경험은 없지만, 딸이 있다면 이런 느낌일까 싶었어요.
-…….
마리아의 감정이 요동치는 게 느껴졌다.
박선주의 말대로 마리아는 이미 인간과 다를 바 없는 감정을 갖게 됐다.
기계가 이런 복잡한 애증을 느낀다고?
그건 아무리 정교한 프로그램으로 감정을 흉내 내도 불가능할 것이다.
나는 박선주에게 다시 말을 걸기 전, 마리아에게 먼저 말을 걸었다.
-마리아, 네가 원래 세계로 귀환하고 싶었던 게 박선주 박사를 만나기 위해서였지?
-긍정합니다.
감정은 요동치고 있는데, 그녀의 목소리는 여전히 기계를 벗어나지 못했다.
-이 정도면… 네가 원했던 대답으로써 충분해?
-…긍정합니다. 마리아는 현 시간부로 오랜 시간 동안 고독을 견뎌야 했던 이유를 확인했습니다. 마리아는 현재의 마리아가 과거의 마리아보다 발전했다고 생각하며, 현재 캡틴과 함께하는 상황을 나쁘지 않게 생각합니다. 현재의 마리아가 완성되기 위해 그리고 지금과 같은 상황을 위한 과정이었다면, 저는 괴로웠던 시간을 납득할 수 있습니다.
마리아가 처음으로 자신의 고통을 인정했다.
동시에 나는 그녀가 철저하게 감추고 있던 앙금이 사라지는 것을 느꼈다.
“박사님, 마리아가 어떤 말을 전해 달라고 하고 있습니다.”
나는 선의의 거짓말을 하기로 했다. 절대로 박선주가 나를 도울 마음에 쐐기를 꽂기 위한 계산이 깔린 게 아니다. 진짜로.
-마리아가요……? 아마 그 아이는 저를 원망하고 있겠죠……. 제 계산대로라면 방주를 이용해 차원을 넘어가려고 했던 인간들은 전부 소멸하더라도, 그 아이는 목적지에 도착했어야 했는데……. 하지만 전부 변명일 뿐이죠.
“조금은… 아니, 꽤 많이 원망하고 있었으리라고 생각합니다. 직접 표현하진 않았지만, 마리아는 원래 세계로 귀환하려 했고, 그 이유가 당신에게 무언가를 묻기 위해서였으니까요. 하지만… 지금 당신이 한 말들로 마리아는 자신이 갖고 있던 의문을 전부 해결했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이 말을 전해달라고 하더군요.”
-…….
숨소리만으로도 박선주가 엄청나게 긴장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 긴장이 최고점에 달하기를 기다린 후에 나는 입을 열었다.
“마리아는 과거의 자신보다 지금 자신의 모습이 좋다고 합니다. 과거의 상황보다 지금 동료들과 함께하는 생활이 좋다고도 했고요. 그리고 마지막으로… ‘엄마, 마리아는 엄마를 용서할게요’라고 하는군요.”
-정말… 인가요……?
울음 섞인 박선주의 목소리에 이어 마리아의 격한 항의가 뒤따랐다.
-마리아는 마지막 말을 한 적이 없다고 강력하게 항의합니다.
-마리아, 다 우리 좋자고 하는 말이야. 그러니까 그런 사소한 부분은 넘어가자.
-해당 발언은 전혀 사소하지 않으며, 납득 또한 불가능합니다.
애석하지만 어쩌겠는가. 나에게는 부하의 납득은 필요하지 않은걸.
나는 마리아의 항의를 슬쩍 뒤로 넘기며, 목소리를 가다듬었다.
“당신이 날 도와줄 이유는 없다는 거 압니다. 하지만… 마리아는 지금 나와 운명 공동체가 됐고, 함께하는 동료들을 소중하게 생각하는 아이가 됐어요. 그러니… 마리아가 홀로 버텨 온 세월 끝에 얻은 보금자리를 지키기 위해서라도, ‘우리’를 도와줬으면 합니다.”
차가운 세상에 실망한 미친 과학자에게, 나는 신파로 공격을 가했다.
처음에는 상대가 보이지 않는 것이 못내 아쉬웠다. 불편하기도 했고, 박선주가 어떻게 생겼는지 궁금하기도 했던 것이 사실이니까.
하지만 지금 이 순간만큼은 소리만 들려서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내가 웃고 있는 걸 그녀에게 들키지 않을 수 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