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ll special! Dungeon Master RAW novel - Chapter 20
20
“으어어……!”
그 흐느끼는 듯한 소리는 점점 가까워졌다.
내가 다가가고 있기도 했고, 그쪽에서도 다가오는 듯 빠른 속도로 소리가 가까워진다.
나는 검을 양옆에 띄워, 언제든 쏘아 낼 준비를 마쳤다.
소리의 정체는 머지않아 시야에 들어왔다.
덩치가 산만 한 모험가 한 명이 비틀거리며 벽을 짚고 걸어오고 있었다.
“끄으윽……!”
아무리 봐도 정상은 아닌 모습이었지만, 아직은 살아 있는 것 같았다.
“정지, 정지, 정지, 움직이면 쏜다! 정체를 밝혀라!”
나는 점점 다가오는 놈에게 전생에 선배들이 나를 놀려먹을 때 썼던 말을 내뱉었다.
사실 지금 상황에 어울리는 말이기도 했고.
하지만 역시나 제정신을 유지하고 있지 않은지, 대답은 없었다.
지금 이놈이 이렇게 비틀거리며 걸어오는 것 자체는 문제가 아니지만, 이 앞에서 무슨 일이 있었던 건지 듣지 못하는 것은 아쉽다.
무시하고 지나칠까? 아니면 위험을 피해 돌아갈까.
그런 고민을 할 때 상대방의 시선이 내게 고정됐다.
내가 외친 소리를 듣지 못했는지, 이제야 나를 인식한 것이다.
무슨 일을 당한 건지 눈이 새빨갛게 충혈돼 있고, 입에선 침이 질질 흐르는 중이었다.
“서… 스……!”
놈은 뭐라고 말했지만, 입에 침이 고여서인지 아니면 제대로 말도 못 하는 상황인지 알아듣기가 힘들었다.
파악!
그때, 갑자기 놈이 미친 듯이 달려오기 시작했다.
아직 거리가 있어서 당장 내 앞에 도달하진 못하겠지만, 나는 간이 떨어질 만큼 놀랐다.
“성수! 성수를 내놔!”
“으악!”
퍼억
나는 진심으로 깜짝 놀라서 뛰어오는 놈을 벽에다 처박아 버렸다.
꽤나 큰 충격이었을 텐데도 꿈틀거리며 일어나려 하고 있다.
그러면서도 입으로는 계속해서 성수를 달라며 괴성을 지른다.
털이 북슬북슬 난 사내새끼가 성수를 달라며 달려드는 모습은 그야말로 공포 그 자체였다.
아니, 저 꼴이면 절세의 미녀가 달려들었어도 아마 벽에 처박았을 것 같긴 하다.
“젠장, 어떻게 된 거야? 어이, 괜찮아?”
벽에다 대차게 처박은 내가 묻기에는 조금 민망한 질문이긴 했지만, 지금 상황에서 딱히 할 말이 없었다.
하지만 놈에게 가까이 다가갈수록 풍겨 오는 냄새에 나는 상황을 파악할 수 있었다.
썩은 피의 역한 냄새가 나고 있었다.
“머저리 같은 놈들이… 시간도 제대로 체크 안 하고 있었나?”
나는 역한 냄새에 소매로 코를 막았다.
“크르르륵……!”
역시나 내 예상이 맞았는지, 이미 언데드화가 진행되고 있는 놈이었다.
아마 탈출 시기를 놓쳐 성수가 모자라게 된 것 같았다.
“그럼 웬만하면 안쪽에 있는 놈들은 이미 글렀겠는데.”
그사이 완전히 언데드가 되어 버렸는지, 고통에 찬 신음이 끊기고 나를 향한 공격 본능만 남은 상태가 됐다.
계속해서 일어나서 나를 공격하려 하는 것을 염동력으로 눌러 놓고 있었다.
“아직은 내 던전이 아니라서 굳이 죽이려고는 안 했는데… 이렇게 되면 죽여 주는 게 낫겠군.”
촤악!
나는 떠다니는 검을 수평으로 휘둘러 모험가의 목을 쳤다.
성수의 효과로 몸을 부숴 놓지 않았음에도, 꿈틀거리던 몸이 서서히 움직임이 잦아들었다.
“음, 벌써 성수 효과가 떨어지고 있는 건가? 너무 소모가 빠른데…….”
나는 사기가 주는 통증이 심해지는 것을 느끼고, 이상함을 느꼈다.
[헤테란 사원의 소유권을 획득하시겠습니까? 필요 네거티브 포인트 287,000]포인트 체크를 위해 옆으로 치워 놓았던 메시지가 갑작스레 수치가 변했다.
화악!
그와 동시에 전방에서 사기의 파도가 밀려온다.
방금 전보다 1.5배 정도 짙은 농도의 사기였다.
“으윽……!”
나는 급히 마력을 끌어올렸다.
성수의 효과만으로는 감당하기 버거울 정도였다.
이 정도면 1시간은커녕 20분도 버티기 힘들지도 모른다.
이 앞에 뭔가가 있다.
이놈들도 그 무언가 때문에 이렇게 된 것 같았다.
바보가 아니고서야 저렇게 깊은 곳에서 성수가 떨어질 때까지 기다리진 않았을 테니 말이다.
“제길, 기껏 살 수 있는 가격 근처까지 떨어졌는데…….”
남은 성수는 3병. 마력 소모를 감수하고 사기를 밀어내는 데 사용한다면, 앞으로 1시간 30분은 버틸 수 있을 것 같았다.
돌아갈지, 앞으로 나아갈지 고민하는 중에 비올카의 얼굴이 떠올랐다.
내게 가장 큰 동기를 부여한 여자.
더럽고 위험한 일들을 피하기만 해서는 영원히 그 여자의 발끝에도 못 미칠 것이다.
나는 걸음을 앞으로 옮겼다.
앞에 무엇이 있건, 그 여자보다는 덜한 놈일 것이다.
음, 그 비올카의 절반만 돼도 희망이 없을 것 같긴 하지만, 지금의 나라면 웬만한 위험에서 몸을 빼내는 것 정도는 할 수 있다.
시종일관 거북이같이 전진하던 나는 빠르게 안쪽으로 치고 들어가기 시작했다.
1시간 30분이란 시간이 짧은 시간은 아니지만, 마냥 긴 시간도 아니다.
그렇게 복도를 뛰어가고 있을 때, 이번에는 복도 벽에 기대어 있는 남자가 눈에 들어왔다.
그는 달려오는 나를 담담한 눈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남자는 허벅지에 큰 상처를 입고 있었는데, 이미 언데드화가 반쯤 진행된 것 같다.
아니었으면 오히려 과다 출혈로 죽었을지도 모르겠다.
아이러니하게도 언데드화가 그를 잠시 더 살려 둔 것이다.
나는 혹시 몰라서 검을 띄워서 겨눈 상태로 다가갔다.
“괜찮지는 않아 보이는군.”
“크윽… 당신은 혼자 여길 온 거요? 나갈 수 있을 때 나가는 게 좋을 거요. 오늘따라 이상하게 예상보다… 더 빨리, 쿨럭……! 젠장……!”
이미 성수를 준다고 살릴 수 있는 상태가 아니다.
고위 성직자라도 있으면 모르겠지만.
“저쪽에서 사람 닮은 곰 한 마리 보지 못했소……?”
“봤지. 당신은 버려진 건가?”
“아니요. 내가 두고 가라고 했지. 어차피 둘 다 죽을 것 같아서…….”
나는 한 가지 의문이 생겼다.
“어떻게 당신이 더 오래 버티고 있는 거지? 동료는 이미 완전히 언데드가 됐던데.”
“크큭… 그놈 덩치를 보면 모르겠소? 성수도 먼저 소화시켜 버린… 쿨럭……! 크… 젠장……!”
“침착하군.”
나는 순수하게 감탄했다.
이 남자는 내가 본 자들 중에서는 죽음 앞에서 가장 침착했다.
“어차피 칼 밥 먹는 놈이야, 언제 뒤져도 이상하지 않으니까. 그래서 가족도 안 만들었소……. 그러니까 갈 때 편해서 좋구만…….”
심하게 기침을 하던 남자의 목소리가 점차 안정됐다.
몸의 떨림도 잦아들었다.
마지막 순간인 것이다.
“남겨 놓은 가족이 없어서 마음 편해 좋았지만, 갈 때 혼자 쓸쓸히 가는 건 좀 그랬는데 당신 덕분에 그래도 좀 낫군… 한 가지 부탁해도 되겠소?”
“뭐, 들어는 보지.”
“내가 언데드가 되자마자 죽여 주시오… 지금 죽는 건 아플 것 같아서 싫거든……. 그리고 만약 안쪽으로 더 들어갈 생각이면, 머저리 두 명이 있을 텐데 그놈들도 편하게 만들어 주면 고맙겠소.”
그는 그 말을 끝으로 내 대답을 듣지 못한 채 마지막 숨을 내뱉었다.
숨은 멈췄으나 움직임은 더 활발해지려 한다.
“크륵… 케헥……!”
나는 부탁대로 마무리를 해 줬다.
조금 늘어났던 필요 포인트가 다시 원점으로 돌아온다.
방금 전까지는 인간이었지만, 죽는 순간에는 걸어 다니는 시체일 뿐이어서 네거티브 포인트조차 주질 않는다.
다시 안쪽으로 얼마간 걸어 들어가자, 복도가 끝나고 넓은 공동이 나왔다.
공동에는 눈이 따가울 정도의 사기가 요동치고 있었다.
“이런, 또 사내놈인가.”
기분 나쁜 목소리가 울려 퍼진다.
공동 안으로 들어가자 가운데는 바닥이 완전 뒤집어져 있었고, 그 가운데에 사람 하나가 있었다.
끈적하고 기분 나쁠 정도로 윤기가 흐르는 녹색 피부가 생리적인 불쾌감을 준다.
쩝쩝.
“……!”
그놈은 가운데에서 쭈그리고 앉아서 여자의 내장을 파먹고 있었다.
“하아… 젠장. 조금 더 빨리 나왔으면 이년이 시체가 되기 전이었을 텐데, 새로 온 놈은 살아 있는 여자인가 했더니 또 사내새끼라니.”
[이름: 샤르잠 디아뷔르] [나이: 67] [레벨: 43] [힘: 157] [체력: 203] [민첩: 135] [마력: 48] [특성: 살아 있는 시체, 시체 군주] [스킬: 강체 Lv.6, 시독 Lv.6, 경화 Lv.6]살아 있는 시체라니…….
놈의 상태 창을 보고 나와 비교를 해 보니, 그냥 돌아갈 걸 하는 생각이 살짝 고개를 들었다.
현재 내 능력치는 힘, 체, 민을 50까지 올린 뒤부터는 전부 마력에 투자한 상태.
그렇게 올인한 마력 수치가 347이었다.
레벨에 비해서는 충분히 높은 수치지만, 저놈에게는 능력치의 총합으로도, 스킬로도 밀리는 상황이다.
변수라면 지옥 상점에서 구입한 장비들과 남은 성수인데, 그게 어디까지 통할지…….
내가 상태 창을 보며 견적을 내는 사이에 샤르잠은 먹던 여자의 시체를 바닥에 툭 버리고 일어났다.
“퉷, 역시 이미 죽은 건 아무리 계집이라 해도 맛이 없군. 차라리 살아 있는 사내새끼가 낫겠어.”
놈은 천천히 내게로 시선을 옮겼다.
“네가 여길 이렇게 만든 놈이냐?”
뭐, 사기의 중심에 놈이 있는 걸 보니 물어볼 것도 없어 보였지만.
“하! 건방진 놈이군.”
순간, 샤르잠을 중심으로 사기의 파도가 한차례 밀려왔다.
하지만 작정하고 마력을 끌어올려 상쇄시키니 버티지 못할 정도는 아니다.
“호오… 이놈들이랑은 조금 다른가 보군.”
“묻는 말에나 대답해 주는 게 어때? 네가 여기 대장인가? 대답하지 않겠으면 지금 당장 공격하고. 나도 시간이 많은 게 아니라서.”
“크크큭… 30년 넘게 땅속에 묻혀 있다가 나왔는데, 첫 대화 상대가 이리도 버릇없는 놈이라니.”
샤르잠은 곧 실성한 듯 웃기 시작했다.
“감히! 나를! 30년이나! 땅속에 묻어 놓고!”
그러곤 웃음을 멈추더니 미친 듯이 절규하고 포효했다.
놈의 절규에 맞춰서 사기가 요동친다.
“미쳤군……!”
말 그대로였다.
샤르잠은 아예 정신이 분열된 놈처럼 발광하고 있었다.
“여자……! 계집을 가져와!”
30년 전이라면, 시기상 헤테란 사원이 척살당한 시점쯤인 것 같다.
즉, 이놈은 교단과 관련 있는 인물이고, 모종의 이유로 땅속에 봉인되어 30년을 지낸 것 같았다.
모험가들은 이놈이 나오려고 뿜어 대는 사기에 중독돼서 저리된 것 같았다.
15년을 갇혀 살았던 최민식도 돌아 버렸는데, 30년, 그것도 만두도, TV도 없이 땅속에 파묻혀 있었는데 제정신이라면 그것도 이상하긴 하다.
하지만 그건 저놈 사정이지, 내 사정이 아니다.
도대체 왜 이런 곳에 저런 고위 몬스터가 나온 건지에 대한 의문이 풀렸으니, 혼자 지랄하고 있는 지금 죽여 버리는 게 좋을 것 같았다.
나는 검 두 자루를 최대 속도로 발사했다.
빛살같이 날아간 검이 샤르잠에게 박혀 들어간다.
치이이익!
“……!”
발광하던 샤르잠이 침묵했다.
내 검에 꿰뚫려서는 아니었다.
내 검은 샤르잠에게 생채기 정도만을 남기고 멈춰 선 것이다.
염을 집중해 아무리 밀어붙이려 해도 소용이 없었다.
성수가 만들어 내는 연기만이 피어오른다.
아무리 그래도 마법까지 걸려 있는 검인데… 놈의 피부조차 뚫을 수가 없었다.
“너도 나를 가둬 두려 하는구나! 더러운 불신자 놈들!”
눈을 까뒤집은 채 악다구니를 내뱉은 샤르쟘이 미친 듯이 돌진해 왔다.
나는 뒤로 물러나며 염을 집중해 놈을 직접 막으려 했지만, 지독한 사기에 막혀서 놈의 몸에 직접적인 물리력을 행사하기가 힘들었다.
나는 어쩔 수 없이 주변에 흩어져 있는 돌덩이들을 끌어와 샤르잠에게 날렸다.
퍼억, 퍼억, 퍼억!
샤르잠은 돌덩이들을 몸으로 받아 내면서도 잠깐 주춤할 뿐, 돌진을 멈추지 않았다.
“크읍!”
급격히 가까워지는 거리에 다급해진 나는 아예 샤르잠이 밟고 있는 석판을 들어 올려서 발판째로 날려 버렸다.
아무리 터프한 몸뚱이를 가지고 있어도, 발판째로 들어 올려 버리면 소용이 없다.
“크워어어어!”
하지만 벽에 거하게 처박았음에도, 샤르잠은 전혀 타격을 입지 않은 모습으로 잔해 더미를 헤치며 뛰쳐나왔다.
이제는 아예 이성이 날아간 듯, 짐승처럼 울부짖을 뿐이다.
나는 성수를 한 병 더 마시고, 검을 다시 불러와 검에도 뿌리려다 멈칫했다.
이제 남은 성수는 두 병, 이걸 검에다 써 버리면 한 병밖에 남지 않는다.
게다가 이미 이 방법은 통하지 않았던 방법이다.
다른 방법을 생각하지 않는다면 다시 한번 샤르잠을 잔해 밑으로 처박고, 그대로 도주를 시도하는 게 현명한 방법이다.
“절대 쓰고 싶지 않았는데……!”
여기까지 온 이상 비장의 무기를 꺼낼 수밖에 없을 것 같다.
차라리 그림자 마수를 데려올 걸 하는 후회가 뒤늦게 밀려 왔지만, 아쉬움은 아쉬움일 뿐이다.
나는 등에 짊어지고 있던 상자를 앞으로 가져왔다.
파캉, 파캉, 파캉!
염동력에 의해 자물쇠가 요란한 소리를 내며 부서져 나가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