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ll special! Dungeon Master RAW novel - Chapter 205
205
주디스는 이미 단일 개체가 아니라 하나의 군집으로 변한 지 오래였다.
주디스의 지배하에 들어간 희생자들. 재앙의 힘이 강해질 대로 강해진 탓인지 이제는 그 아래의 병졸들마저 붉은 기운에 휩싸여 움직이고 있다.
다각도로 펼쳐진 정찰용 몬스터들의 시야를 하나의 화면에 조합한 곳에는 그 붉은 군체가 움직이는 모습이 적나라하게 드러나 있었다.
그것은 꿈틀거리는 거대한 벌레처럼 보이기도 했고, 느리게 흘러내리는 걸쭉한 액체처럼 보이기도 했다.
“전에 봤을 때보다 더 강해졌는데…….”
붉은 기운을 이야기하는 것이다.
이틀 전만 해도 이 정도는 아니었는데.
이제는 안쪽에서 움직이는 인영들이 불타는 지옥 안에서 꿈틀거리는 것처럼 보일 정도다.
보이는 것 이상의 불길함으로 점철된 모습은 재앙이라는 이름에 어울리는 모습이었다.
다행인 것은 어설플지는 몰라도 저것에 대항할 방법을 마련했다는 것이겠지.
그렇게 생각하면서 나는 관을 열었다.
용사가 담긴 관이 열리며 속살이 드러났다.
부위별로 자르고, 안쪽의 내용물을 전부 긁어내고, 입기 편하도록 가공한 시체였던 것.
나는 옷을 벗었다.
그리고 용사의 왼손을 들어 올려 장갑을 끼듯 손을 집어넣고 단단히 고정했다.
차라리 방금 죽은 시체의 내장을 헤집는 것이 조금 낫지 않을까 싶을 만큼 기분이 나쁘다.
그러나 나는 그런 기색을 내비치지 않고 전신에 용사의 신체를 덧씌웠다.
손, 발, 팔, 다리… 그리고 몸.
마지막으로 가면처럼 만들어진 용사의 얼굴을 안면에 가져다 댔다.
그것이 완전히 밀착된 순간.
“흐읍……!”
내 것이 아닌 감정들이 썰물처럼 밀려들었다.
정의감, 사명감, 지상에서 움직이는 재앙에 대한 걱정, 적개심, 그것에 이미 희생된 자들에 대한 슬픔, 연민 같은 것들.
내 것이 아닌 무언가가 나를 잠식하여 마음을 멋대로 움직이려 들고, 사고의 방향성을 한정하려는 감각은 매우 구역질 나는 것이었다.
의도하지 않아도 본능이 내 능력을 움직일 만큼.
“끼아아아아!”
내 몸에서 비명이 흘러나왔다.
심연처럼 검게 변해 버린 부정의 정수가 흘러나와 그 안에 갇힌 희생자들의 절규가 새어 나온 것이다.
나는 그것을 움직여 역으로 용사의 기운을 먹어 치웠다.
내가 필요로 하는 건 재앙을 물리치기 위해 용사에게 주어진 것들이지, 저런 쓸데없는 잡념들이 아니다.
정의감이나 사명감이 없어도 나는 재앙을 상대할 것이고 살아남기 위해서 재앙을 물리쳐야 하니까.
도움도 되지 않을 것들이 내게 들어오는 걸 허락할 생각이 없다.
다행히 내가 쌓아 올린 것들도 호락호락한 것은 아니어서 햇병아리 시절에 죽어 버린 용사의 사념 정도는 손쉽게 뭉갤 수 있었다.
나는 그렇게 용사의 마지막 찌꺼기를 제거하고, 껍질에 남은 실용적인 것들만 취하는 데 성공했다.
“이런 감각이었나…….”
위기를 넘겨 새로워진 몸에 집중할 여유를 되찾은 나는 압도적인 감각에 전율했다.
용사의 운명에는 그에게 주어졌던 폭발적인 재능도 포함되어 있는 모양이었다.
이것이 일시적으로 빌려 온 운명이자 감각이라는 것이 슬프고 아쉬울 정도로 하늘이 내린 재능을 가진 자의 세상은 범재가 사는 세계와는 아예 다른 것이었다.
마음 같아서는 조금 더 즐기고 싶다.
하지만 지금은 그런 여유가 허락되는 시점이 아니다.
마지막 전투 준비라고 할 수 있는 용사화를 마치고 원래 있던 장소로 발걸음을 옮겼다.
벨로제를 따라갔던 클라리스도 돌아와 있다.
진짜 성녀의 조각을 몸에 걸치고 그 위에 흰 갑옷을 덧댄 모습이… 기괴했다.
하긴, 나도 그리 다르지 않은 모습이겠지.
모두가 준비를 마친 것을 확인한 후에 선발대인 몬스터를 투하할 장소를 물색했다.
최대한 지형적으로 불리하지 않은 장소를 골라야 하는데…….
이런 생각을 하며 주디스의 진행 경로를 살피던 중에 생각도 못 했던 것들이 발견됐다.
“마리아, 저쪽에 있는 것들은 또 뭐야?”
묻기는 했지만 몰라서 물은 건 아니었다.
이런 타이밍에 기병대가 주디스가 있는 방향을 향해 미친 듯이 달려가는 게 어이가 없어서 물은 것이다.
마리아는 친절하게 기병대의 숫자와 속도, 주디스와의 거리, 두 집단이 만나기까지의 예상 시간까지 알려 줬지만 그런 건 전혀 관심 없었다.
이대로는 괜히 상대 쪽수만 늘려 주는 꼴이 된다.
저게 설령 제국 황실을 수호하는 최강의 기사단이라 해도, 나는 놈들이 도움이 될 거란 생각을 0.1%도 하지 않는다.
그건 용사로서의 감각을 살짝 맛봤기 때문이기도 하다.
이 정도면 그냥 매드세디아라는 세계가 대놓고 사기 치라고 만든 캐릭터나 다름없다.
이런 놈조차 성장을 끝낸 뒤에 목숨 걸고 맞서 싸워야 하는 데다가 운명이니 뭐니 하는 것으로 보호받는 재앙을 저놈들이 흠집이나 내겠는가.
애초에 흠집을 낼 수 있는 놈들은 나서지도 못하게 막아 뒀을 텐데.
그래서 나는 결정했다.
-마리아, 몬스터들 낙하지점은 저놈들 머리 위로 한다.
-Aye, Captain.
군말은 없었다.
즉각적인 실행만이 있을 뿐.
마리아는 내 명령에 맞춰 부유성을 움직였다.
주디스의 머리 위에 맞춰 정확히 비행하던 부유성이 서서히 움직여 주디스를 추월하고 놈에게 접근 중인 기병대의 머리 위로 자리를 옮겼다.
-투하합니다.
간결한 보고와 동시에 부유성 아래쪽의 격납고가 열리고 커다란 관들이 쏟아져 내렸다.
* * *
일찍이 존재감 없는 황자였던 주디스는 이제 뭇사람의 입에 마왕이라는 단어로 오르내리고 있었다.
황성으로 다가오는 직접적 위협이 되어 버린 옛 황자를 막기 위해 경로상의 영지군은 물론이고 정규군, 심지어 제국의 숨은 전력들도 동원됐으나 막지 못했다.
얕본 탓이다.
처음부터 다섯 번째 황자를 제대로 인식하고, 최선을 다해서 전략을 수립한 후에 그에 맞는 전력을 투입했다면 이런 상황까지는 오지 않았을 것을.
몇몇 인사들이 그런 목소리를 냈으나 ‘겨우 어린아이에게, 그래도 황자인데, 이런 일은 황권을 계승될 때 왕왕 있던 일…….’ 이런 소리를 해 대며 늦장 대응을 하는 사이 사태가 걷잡을 수 없는 상태가 된 것이다.
제국답지 않은 실수였다.
그러나 아직 만회할 기회는 있다.
자존심 따위는 없으며, 운을 믿지 않고 오직 실력만을 추구하고, 적을 철저하게 파악한 후에 충분한 힘으로 찍어 누르는 제국으로 돌아간다면 이런 위기쯤이야.
결사대 가장 선봉에서 새하얀 백마 위에 올라 달리고 있는 마젠다는 진심으로 그렇게 생각했다.
창의 명가로 유명한 브람가의 후계자. 살아만 있다면 빛나는 삶이 보장된 자신부터 그런 제국을 위해 이렇게 목숨을 걸지 않았던가.
제국이 최강일 수 있었던 건 지리적 이점도, 풍부한 자원도 아니었다.
제국의 시작은 더 이상 척박하기 힘든 돌산의 중턱에 위치한 소수 민족이었음을 모르는 제국 귀족은 없다.
‘지금 이 결사대에 있는 자는 말단 병사 한 명까지, 더욱 견고해질 황성의 벽에 이름이 새겨질 것이…….’
이런 생각들로 결의를 다지고 공포를 억누르고 있는 마젠다는 갑자기 조금 어두워진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그래서 하늘을 보려는 찰나.
콰아아앙!
지축을 뒤흔드는 충격이 그녀를 덮쳤다.
그녀가 내뱉은 비명, 말들이 놀라 히이잉 대는 소리, 충격에 집단으로 넘어져 말과 한데 뒤섞여 갈려 나가는 끔찍한 소리들은 폭력적인 소음에 묻혀 버렸다.
“무, 무슨……!”
앞으로 구르는 바람에 목이 부러져 죽은 자신의 애마를 확인하지도 못하고 뒤쪽 상황부터 살피려던 마젠다는 뒷말을 잇지 못했다.
스윽 하고 드리우는 그림자가 1초도 남지 않은 재앙을 예고했기 때문이다.
“모두 흩어……!”
쾅!
처음 소리만 들렸다.
이후로 들린 연속적인 폭음은 소리가 아니었다.
그건 그저 하늘에서 떨어져 내리는 수십 개의 폭력 그 자체였다.
그 와중에도 결사대에 속한 출중한 실력의 무장들은 용케도 살아남을 공간을 찾아 몸을 날리고 있었지만, 그렇지 못한 자들을 구해 줄 능력은 없었다.
특히 마법사들은 육체적으로 발달하지 못한 탓에 갑자기 닥친 천재지변에 대응하는 자가 몇 없었다.
뿌지직.
아무리 고위 마법사라 해도 집채만 한 구조물이 운석처럼 덮치는데 살아남을 방법이 요원하다.
마젠다는 죽을 확률이 높다는 것을 알면서도 자원한 젊은… 아니, 어린 마법사 셋이 으깬 토마토 신세가 되는 것을 보며 몸을 날렸다.
원통했지만 자신의 머리 위로도 같은 것이 떨어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게… 이게 도대체 무슨 일이냐……! 이런 일이 가능할 리가 없는데……. 이건 마법도 뭣도 아니잖아!’
그런 혼란 속에서 정신을 차렸을 때는 마지막 충격 이후로 30초가 흐른 후였다.
한쪽 무릎을 꿇은 채 창에 의지해 고개를 든 마젠다.
그녀는 눈앞에 펼쳐진 광경에 눈물이 날 것 같았다.
‘제국을 위해 목숨을 건 자들의 최후가 이리도 무참해선 안 되는 것인데……!’
적장의 얼굴조차 보기 이전이다. 도대체 무슨 일을 벌였기에 이런 일이 벌어진단 말인가.
이런 의문들의 꼬리가 잘렸다.
쾅.
아까보다는 작은 소음과 함께 떨어져 내린 거대한 구조물들이 일제히 분해된 것이다.
“그어어어!”
그리고 어두운 구조물 안쪽에서 수십, 수백, 수천 쌍의 눈들이 빛나는 것이 보였다.
한차례 폭풍이 지났다고 생각했던 이들이 이제부터 무슨 일이 벌어지려는지 예상해 보기도 전에, 그것은 파도가 되어 밀려 나왔다.
말 그대로 죽음의 파도였다.
“으어어어!”
소리만 들으면 멍청하기 그지없으나, 그것이 4미터가 넘는 키를 가진 좀비 골렘이라면 이야기가 다르다.
놈이 휘두르는 말의 사체가 세 명의 병사에게 포물선 비행이라는 진귀한 경험을 선사했다.
“으아아아!”
멀어지는 비명이 아련하기까지 했다.
그 밑으로는 일류 검사 못지않은 현란한 검술을 자랑하는 죽음의 기사들이 채 자세를 수습하기 이전인 자들을 기계적인 찌르기로 죽이고 있었다.
“마, 맞서 싸워라! 주디스 황자의, 개새끼의 부하들이다!”
그리 말하며 마젠다는 오늘 최초로 창을 내뻗었다.
일직선으로 뻗어 나가는 빛줄기. 브람가의 자랑인 일점 찌르기다.
오라의 형태로 쏘아낸 마력 줄기는 허공을 격해 몇 마리의 몬스터들의 머리를 관통했다.
그것을 신호로 결사대의 반항이 시작됐다.
하지만 그들은 알지 못했다.
아직 제대로 된 재앙은 시작도 안 됐다는 사실을 말이다.
* * *
-투하 완료.
“화끈하네.”
사과에 얻어맞은 뉴턴이 저런 기분이었을까?
나는 중력의 힘을 빌린 자유 낙하의 위력을 감상하며 그런 시답잖은 생각을 했다.
하지만 저 관짝처럼 생긴 것들의 용도는 저것만이 아니다.
내부로 가는 충격을 최소화해서 7단계 이상 몬스터이면서 일정 수준 이상의 물리 내성을 갖춘 놈들을 상공에서 투하하는 것도 대단히 파괴적인 전법이지만, 저건 일반 아이템이 아니라 어디까지나 ‘던전’이었다.
“조립해.”
-Aye, Captain.
언제 들어도 시원시원한 마리아의 대답과 함께 투하된 관들이 ‘조립’되기 시작한다.
그렇다. 저건 요즘 던전 좀 만진다는 자들 사이에서 유행하는 조립식 던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