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ll special! Dungeon Master RAW novel - Chapter 210
210
신비, 여울, 불가사리, 강철이.
어느 순간부터 높은 던전 등급을 해금할 때마다 [이세계의 영혼] 특성의 효과로 특전 몬스터를 얻었었다.
그러니 방주가 10단계 던전으로 인정받았을 때 새로운 특전 몬스터가 소환된다는 메시지가 나타났어야 했겠지만, 그때 출력된 메시지는 조금 생소했었다.
[최종 단계 던전 해금.] [당신은 던전의 진정한 주인이 될 준비가 되었습니다.] [경계를 건너십시오.]경계를 건너라는 간단한 말.
그게 다였다.
글만으로는 전혀 충분치 않은 설명이었으나, 나는 알 수 있었다.
내 안에 방아쇠가 하나 생겼다는 것을 말이다.
하지만 나는 이 방아쇠를 당기지 못했었다.
건널 수는 있으나, 다시 돌아올 방법이 없다는 것을 본능적으로 알아 버렸기 때문이다.
준비된 계획이 어그러질 가능성이 높다는 것도 이유의 하나였지만, 어쩌면 그건 변명이었을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어설프게 빌린 다른 사람의 운명으로는 정작 내 운명을 개척할 수 없는 것 같다.
그렇다면 결국 돌아가야 하는 곳은 내 자리밖에 남지 않겠지.
망설임의 무게와는 달리, 방아쇠의 무게는 너무나 가벼웠다.
* * *
안쪽에서부터 심연이 터져 나왔다.
댐이라도 터진 것 같다.
방아쇠를 당기고, 경계를 건너는 것을 선택한 순간 인간의 육체로는 감당하기 힘든 힘이 생겨나고 있었다.
“끄아아아!”
몸이 아니라 영혼이 부풀어 터질 것 같은 느낌.
입에서는 내 목소리라고는 믿기 힘든 끔찍한 비명이 샌다.
어깨에 박혀 있던 붉은 오라 가시는 사라지고, 뻥 뚫린 상처에서 피 대신 검은 심연이 콸콸 흘러나왔다.
펑펑펑펑.
머릿속에서 폭음이 연달아 울린다.
세포 하나하나가 터져 나가는 소리다.
살점, 손톱, 머리카락, 이, 피, 골수……. 몸을 이루는 모든 것이 죽고 있었다.
그리고 죽은 만큼 새롭게 태어난다.
인간의 몸에서 태어난 모든 것이 죽고, 어둡고 음습한 심연에서 새로운 육체가 잉태되고 있었다.
그렇게 육체의 절반 이상이 치환되자 고통이 사라졌다.
모든 부분이 완전히 새롭게 태어났을 때에는 오히려 포근하기까지 했다.
[자신의 욕심과 이기심을 채우기 위해 수많은 타인의 불행을 야기한 당신. 인간으로 남기에는 너무 멀리 온 당신. 이미 당신은 완전한 괴물입니다.]최종 단계의 던전을 해금하면서 얻은 것은 이세계에서 소환된 새로운 몬스터가 아니었다.
그건 내가 새로운 괴물이 되는 것이었다.
스으으.
안개가 걷히듯 주변의 어둠이 사라진다.
언제 뱉어 냈냐는 듯이 다시 내게로 흡수됐기 때문이다.
부정한 자로 각성하고, 그것을 넘어 부정왕이 되었을 때도 부정의 정수는 내게 ‘기술’이었다.
타인의 고통에서 부정을 모아야 했고, 정제된 그것을 사용하기 위해 나름의 노력을 해야 했었다.
익숙해지고, 다른 능력들과 녹아들면서 활용이 깔끔해졌다고는 해도 거기까지.
그런데 지금은 그 모든 것이 숨을 쉬는 것처럼 자연스럽게 느껴진다.
들숨에 심연을 삼키고, 날숨에 타인을 불행하게 만들기 위한 악의가 내뱉어진다.
용사의 껍데기는 이미 끓는 기름에 빠진 버터처럼 녹아내려 있었다.
한차례 태풍이 지나가고, 주디스와 눈이 마주쳤다.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서로를 향해 팔을 휘둘렀다.
촤아아.
파도와 파도가 만난 듯한 소리가 울렸다.
한 번에 크게 터지는 폭발이나 폭음은 없었으나, 차라리 그러는 편이 나았을지도 모르겠다.
서로 다른 방향에서 흘러온 격류가 합쳐진 것처럼 나의 악의와 놈의 증오가 뒤섞여 소용돌이를 만든 것이다.
선명하게 섞인 힘의 격류가 주변을 초토화시켰다.
붉은색은 모든 걸 갈아 버리겠다는 듯이 분쇄했고, 검은색은 모든 걸 집어삼켜 녹이려는 것처럼 닥치는 대로 분해시킨다.
두 힘의 충돌로 만들어진 소용돌이는 점점 커졌다.
쨍그랑.
결국 방주의 한쪽 벽이 깨져 나갔다.
콰아아.
꽉 들어찼던 힘이 뚫린 길을 향해 거침없이 흘렀다.
“그아아…….”
벽에 몰려들어 있던 주디스의 꼭두각시들이 부서지고, 분해됐다.
‘이대로는 안 되겠어……!’
경계에 선 자리를 버리고, 완전히 괴물이 되는 것을 선택했지만 갈수록 격렬해지는 흐름에 저항하는 것은 너무 힘들었다.
베히모스의 가죽? 그건 이 붉고 검은 소용돌이 속에서는 종잇장만도 못한 능력이었다.
그건 주디스도 마찬가지인지 뼈처럼 놈의 몸을 감싸고 있는 갑각이 부서지고 생겨나기를 반복하고 있었다.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뚫린 구멍을 향해 몸을 날렸다.
잠시 공기가 달라졌다.
폐쇄돼서 대기의 흐름이 멈췄던 방주 안쪽과 다르게 바깥은 악취 섞인 바람이 불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악취는 금방 사라졌다.
바닥에 내려선 내게서 흘러나온 저주를 품은 어둠이 주변에 있는 것들을 전부 정화했기 때문이다.
실제로는 분해해 버린 것이지만, 악취를 풍기는 원인이 되는 것들을 없애 버렸으니 정화라는 표현도 아주 틀린 건 아니다.
그에 반해 주디스는 악취 덩어리가 되어 가고 있었다.
주변의 꼭두각시들을 조각조각 분쇄해서 그 파편을 그러모아 덩치를 불리고 있다.
‘변신이 끝나기를 기다려 주는 건 아동용 만화에서나 지키는 매너니까.’
그러니, 이 정도는 정정당당한 공격이다.
튼튼한 창 한 자루를 쥐었다.
지금 내게는 다른 자질구레한 능력이 포함된 병기는 필요 없었다.
그저 내 힘을 감당할 수 있는 내구성만 갖춘다면, 그것이 가장 좋은 무기다.
창에 악의를 구겨 넣어 까맣게 물들였다.
동시에 염동력으로 과부하를 걸기 시작한다.
겨우 다섯 번만 중첩시켜도 피가 역류하는 것처럼 힘들던 기억이 아득할 정도다.
활시위를 아무리 당겨도 부담이 되지 않았다.
오히려 부담을 느끼는 것은 창이다. 감당하기 힘든 힘이 계속해서 중첩되자 창이 비명을 지르기 시작한다.
끼이이잉.
금속이 비명을 질렀다. 지금 당장 펑 하고 터져서 금속 파편을 흩날려도 이상하지 않으리라.
그럼에도 나는 꾸역꾸역 담을 수 없는 순간까지 힘을 집중했다.
어차피 한 번 던지는 것으로 수명이 다 할 테니까, 뽑아 쓸 수 있는 모든 걸 뽑아내야지.
나는 창을 쥐고 마몬의 손아귀 능력을 발동했다.
물건의 잠재능력을 한계까지 끌어내는 대신 수명을 극단적으로 짧게 만드는 능력.
창은 남은 수명의 대부분을 희생하는 대가로 몇 단계를 건너 뛴 내구성과 파괴력을 손에 넣을 것이다.
활시위를 놓았다.
콰-
소리의 시작을 제외한 뒷부분은 잘렸다.
날아가서 주디스에게 박히는 순간까지의 수명만 허락받은 창은 꽂히는 동시에 터졌다.
당연히 그 안에 담긴 엄청난 힘은 거대해진 주디스의 육체 안에서 해방됐고, 무자비하게 놈을 헤집는다.
“크어어어!”
고통에 찬 몸부림. 붉은 촉수가 내게 날아오며 경로상의 모든 것들을 뒤집어엎었다.
콰아앙.
그것을 막은 것은 강철이였다. 온몸을 던져 붉은 촉수를 막아 내는 강철이.
철썩, 철썩.
소름 끼치는 소리를 동반한 촉수는 강철이의 단단한 비늘에 길고 깊은 상처를 연속적으로 남겼다.
그러나 강철이는 그대로 주디스를 감싸서 고립시키려는 시도를 한다.
아무리 주디스의 덩치가 커졌다 한들 용의 몸을 가진 강철이에 비견할 정도는 아니다.
나는 그사이 지옥 상점에 있는 무구들 중 가장 비싼 것들을 사 모았다.
촤아아악.
빈틈을 뚫고 나온 촉수들의 움직임에서 증오와 분노가 느껴진다.
걸리는 대르 끌고 가서 포식하는 게걸스러움.
나는 완성되는 족족 빈틈을 통해 주디스를 향해 쐈다.
소모되는 네거티브 포인트가 어마어마하다.
-마스터! 이대로면 고급 몬스터를 소환할 네거티브 포인트가 모자라게 돼요!
나도 안다. 지금 시야 구석에 빠르게 줄어드는 잔여 포인트가 표시되고 있으니까.
하지만 멈출 수 없다.
이 대결은 여기서 끝난다.
팽팽하게 당겨진 운명의 끈이 먼저 끊어지는 쪽이 무너질 것이다.
파악.
강철이의 긴 동체의 일부가 터져 나갔다.
그곳을 통해 괴물이 기어 나오고 있었다.
콰앙.
정확히 이마에 꽂힌 공격. 고개가 부러질 것처럼 뒤로 넘어갔지만, 뿌드득, 뿌드득 하며 부러진 뼈가 맞춰지는 소리가 들린다.
-몬스터들 전부 풀어!
-그게 무슨 말씀이세요?
-던전에 있는 몬스터들 전부 풀어놓으라고!
벨로제에게 시켰지만, 그녀가 할 일이 없어졌다.
내 휘하에 있는 모든 몬스터들에게 내 의지가 전달됐기 때문이다.
내 명령을 받은 모든 던전의 몬스터들이 눈을 떴다.
그러고는 던전을 박차고 나가 인간의 영역을 침범하기 시작했다.
[고블린에게 습격 받은 화전민들이…….] [거대 거미에 물려 죽은 마을 처녀가 절규…….] [약초를 캐던 소녀가 오크에게…….].
.
.
[갑작스런 몬스터의 폭주를 막으려던 병사들이…….]남자가, 여자가, 노인이, 어린아이가.
인간의 영역과 가까운 곳에 인접한 던전에서부터 시작된 메시지의 향연.
엄청난 속도로 줄어들던 네거티브 포인트가 잠깐 멈칫하더니, 소모되는 속도가 줄었다.
아니, 소모되는 속도는 그대로였으나, 충원되는 양이 늘어난 것이다.
그 간극은 점점 줄었다.
그럴수록 몸에 활력이 돌아오고, 힘이 넘치는 것이 느껴진다.
내가 필사적인 만큼 세상이 미워서 재앙이 된 소년도 필사적이다.
큰 부상을 입고도 자신을 잡아 두려는 강철이의 비늘과 살을 우악스런 손톱으로 저미며 탈출을 시도하고 있다.
그런 놈에게 한 발.
콰아앙.
어김없이 극단적으로 단축된 수명을 다하고 터지는 무구. 그 안에서 폭발하는 힘.
이 공격 한 번에 셀 수 없을 정도로 많은 약자의 목숨이 담겼다.
드디어 강철이가 축 늘어졌다.
죽지는 않았으나 부상이 너무 심각해서 움직이는데 한계가 온 것이다.
자유로워진 주디스는 맹목적으로 나를 향해 돌진해 왔다.
나는 그런 놈을 향해 쏘고, 쏘고, 또 쐈다.
놈은 한 걸음 밀려나면 또 한 걸음을 내딛고, 집어삼켜 회복하고, 밀려나고 내딛고를 반복했다.
퍼퍼퍼퍼퍼펑.
마리아의 융단폭격이 주변을 뒤덮는다. 먹을 걸 남겨두지 않으면 연료가 바닥나는 게 더 빨라지겠지.
“너는 혼자 분노하고, 모든 걸 전부 부수고 싶어 했지? 아무 이유 없이. 그냥 세상을 부수는 것이 목적이니까. 그런 운명을 타고났으니 어쩔 수 없었겠지만…….”
나는 다르다. 내가 죽이고, 빼앗고, 부수는 것은 목적이 아니라 수단일 뿐이다.
“얼마든지 와 봐. 나는 아직 죽일 게 산더미처럼 남았으니까.”
나는 혼자가 아니다.
내게 힘을 주는 사람들이 남아 있는 한, 하루 종일도 할 수 있다.
그러니까 모두들, 내게 힘을 나눠 줘.
부탁은 했으나 허락은 구하지 않았다.
끝내 주디스는 내게 닿지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