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ll special! Dungeon Master RAW novel - Chapter 3
3
그럼 다음으로는 루크 에슬란테, 앞으로 내 이름이 될 인물에 대한 것을 알아낼 차례였다.
“너.”
“예, 옛?”
다시 지목된 하녀는 나한테 당한 게 있어서 그런지 과도하게 깜짝 놀라며 대답했다.
얼마나 깜짝 놀라 대답했는지, 자신의 대답에 본인이 놀라 어쩔 줄 모르는 모습이다.
조금 시끄러운 대답이긴 했지만, 저렇게 놀란 것에는 내 책임이 크기 때문에 따로 책망하고 싶은 생각은 없었다.
“겁먹지 말고 이리 와서 앉아 봐.”
하녀는 잔뜩 긴장한 상태로 의자를 가지고 와서 앉았다.
“여기서 얼마나 일했지?”
“올해로 3년째 됐습니다.”
“내가 침대 신세가 된 건?”
“그게… 6개월 정도 되셨습니다.”
좋아, 합격이다.
“내가 지금 기억이 아무것도 안 나거든. 내가 누군지, 여긴 어딘지, 너는 또 누군지. 대충 분위기 봐서 어떻게 돌아가는 상황인지만 알겠어.”
“걱정 마세요, 도련님. 지금은 충격 때문에 그러시지만, 곧 기억이 돌아오실 겁니다.”
웬만하면 그럴 일이 없으니까 문제란다.
“그러면 좋겠지만, 지금 당장 답답하니까 문제야. 그래서 네가 이야기를 좀 해 줬으면 좋겠는데, 할 수 있겠지?”
내가 진지한 표정으로 말하자 하녀는 움츠러든 상태로 대답했다.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나는 그렇게 하녀에게서 다음 식사 시간이 될 때까지 긴 이야기를 들었다.
나는 저녁 식사를 마치고 하녀, 엘라가 말해 준 것들을 정리했다.
루크 에슬란테, 에슬란테 남작가의 2남 1녀 중 둘째로, 위로 형이 한 명 있다고 한다.
내가 누워 있던 방의 화려함을 봤을 때 아주 부유한 상인이나 적어도 중급 이상의 귀족을 생각했는데, 남작가라니 상당히 의외였다.
남작은 귀족 중에서는 가장 아래에 위치한 작위였고, 작은 영지를 차지하고 있는 경우가 대부분인 남작가는 부유한 상인보다도 가난한 경우가 대부분이었으니까.
물론 그 가난은 상대적인 것이지 정말 가난하다는 말은 아니다.
의문은 엘라의 설명을 듣다 보니 자연히 풀렸다.
에슬란테 남작령은 그리 크지도 않고, 기름진 땅을 가진 곡창지대도 아니어서 가난했던 영지지만, 10년 전 발견된 루비 광산으로 인해 갑자기 부유해졌다고 한다.
즉, 광산으로 졸부가 된 케이스였다.
뭐, 내 방의 화려함의 정체는 그렇다 치고, 내가 침대 신세가 된 이유가 매우 수상쩍었다.
원래부터 병약하긴 했지만, 6개월 전에 갑작스레 시름시름 앓다가 혼수상태에 빠졌다고 한다.
가장 먼저 떠오른 것은 역시 독살 시도였다.
두 번째는 루시퍼의 개입.
루시퍼는 이 세계에 자신들이 개입하는 것이 힘들다고 하긴 했지만, 멀쩡한 사람 하나 혼수상태에 빠뜨리는 정도는 가능하지 않을까 싶었다.
물론 양쪽 모두 정확한 것은 아니다.
그 이외에 쓸 만한 정보는 대부분 가족사였다.
아버지, 에슬란테 남작은 왕도에 따로 마련한 거처에서 기거한다고 한다.
갑작스레 손에 들어온 부를 이용해 왕도에서의 화려한 생활을 즐기는 것 같았다.
덤으로 실세 귀족들 사이에서 로비를 해 가며 권력을 쥐어 보려는 시도도 하면서 말이다.
그리고 가족사를 듣던 중 가장 놀란 것은 이들이 마님이라 부르는 사람에 대해서 들었을 때였다.
마님, 에슬란테 남작 부인은 24살이라고 했다.
“뭐? 24살?”
“예, 예!”
“내가 몇 살인데?”
“올해로 16세가 되셨습니다.”
“……?”
“……?”
나는 엘라를 의문 가득한 눈초리로 쳐다봤다.
“아!”
그러자 엘라는 갑작스레 무언가를 깨달았는지 손뼉을 쳤다.
“지금 마님께서는 에슬란테 남작가에 시집오신 지 8년째라고 알고 있습니다. 저 그리고…….”
말을 하던 엘라가 내 눈치를 본다.
“그냥 말해. 눈치 보지 말고.”
“루크 도련님의 어머님이신 전 에슬란테 남작 부인께서는 8년 전에 돌아가셨다고…….”
엘라의 목소리는 끝에 가서는 아예 들리지 않을 정도로 작아졌다.
친어머니는 죽고, 지금의 남작 부인은 새로 들여온 부인이란 소리.
잠깐, 그럼 시집올 때 나이가 나랑 똑같았다는 얘기잖아.
“저… 루크 도련님의 어머님은 둘째 부인이셨습니다.”
“…….”
엘라의 말에 따르면 에슬란테 남작은 세 번의 결혼을 했고, 첫째인 형을 낳고 첫 번째 부인과 이혼했으며, 내 어머니와 재혼, 그리고 사별 후에 지금의 부인과 결혼했다고 한다.
“그래서 그렇구나. 아무리 안정이 중요하다고 해도 친아들이면 고집을 부려서라도 보러 왔겠지.”
하녀장이 말렸다고 해도 친모였다면 얼굴이라도 보겠다며 우겼을 것이다.
애초에 6개월 만에 깨어난 자식을 보겠다는 어머니를 하녀장이 말릴 수도 없었을 것이고.
나는 아무 감정 없이 그저 상황을 납득한 것이었지만, 내 말을 들은 엘라는 얼굴이 하얗게 질리다 못해 시체같이 보일 정도였다.
“아, 아닙니다. 마님께서는 지난 6개월간 도련님 걱정에 잠도 못 이루시고…….”
나는 어떻게든 수습해 보려는 엘라를 손바닥을 펼쳐 막았다.
나로서는 오히려 이런 시간이 주어져서 편할 정도지, 불만 따위 없었다.
친부모가 아닌 편이 대하기도 더 편하고.
“난 괜찮으니까 신경 쓰지 마. 엘라라고 했던가? 정말 고마워. 이번 일은 잊지 않도록 하지.”
“그런, 당치도 않습니다.”
엘라는 손사래를 쳤지만, 혈색이 돌아오는 것이 안정을 찾은 것 같았다.
방금 전에 남작 부인에 대해 이야기할 때는 오히려 엘라가 죽을병에 걸린 게 아닐까 싶을 만큼 안색이 창백했으니까.
[로멜론 영지의 고블린 동굴에 침입자가 발생했습니다.]아직도 물어볼 것이 남아 있나 생각하던 중에 메시지가 떠올랐다.
침입자? 아마도 모험가들이 내 던전에 발을 들인 것 같았다.
이렇게 빠르게 첫 번째 전투 상황이 찾아오리라곤 생각지 않았기 때문에, 잠시 당황하는 것까지는 어쩔 수 없었다.
얻은 능력을 포기하고 평범한 삶을 살아갈 것인지, 아니면 힘을 얻기 위해 다른 사람들을 희생시킬 것인지. 두 가지 선택지 중 하나를 고를 시점이 갑작스레 닥친 것이다.
내가 평범한 삶에 만족하며 살 수 있을까?
졸부가 된 남작가의 차남이니 돈 걱정은 없이 살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법이나 질서를 무시할 수 있는 압도적인 힘을 가진 존재들이 있는 이 세계에서 평화롭게 살아가기에는, 남작가의 차남이라는 배경은 부실해도 너무나 부실하다.
하다못해 혼수상태에 빠진 이유가 루시퍼의 개입이 아니라 다른 누군가의 음모라면, 기껏 깨어나서 며칠 지나지 않아 다시 지옥에서 눈을 뜨게 될지도 모른다.
그리고 전생에 느낀 공허함을 견뎌 가며 숨만 쉬는 인생을 반복하고 싶지도 않았다.
그런 식으로 생각하니 마음을 정하기까지 그리 오랜 시간이 필요하지도 않았다.
마음속에서 망설임을 내려놓은 나는 속으로 한숨을 한 번 내쉰 뒤 던전 창을 띄웠다.
던전 창이 활성화되자 3인칭 시점으로 던전을 둘러볼 수 있었다.
던전 입구 쪽으로 이동해 보니 네 명의 인물이 보였다.
전부 어설프게 기운 가죽 갑옷을 입고 있는 남자들이었다.
무기는 대부분 검이라 부르기도 민망한 투박한 칼이었다.
[여기 고블린만 있는 것 맞지?] [아, 그렇다니까. 이 근처에서 여기가 제일 만만한 곳이라고 했어.] [우리 네 명으로는 위험하지 않을까?] [젠장, 닉! 겨우 고블린 몇 마리 나오는 동굴이야. 차라리 우리 밭을 습격하던 멧돼지가 더 위험한 놈이라고.] [이런 곳부터 시작해서 힘을 키워 모험가로 성공하는 거야. 우리까지 농사만 짓다가 죽을 수는 없잖아?]시점을 가까이 당기자 대화 소리까지 들을 수 있다.
대화 내용을 보니, 모험가를 꿈꾸는 시골 청년들 같았다.
그러니 이런 던전이라고 부르기도 민망한 동굴에 살금살금 들어오고 있겠지.
아무리 그래도 내 던전을 겨우 멧돼지 따위와 비교하다니, 불쾌하다.
저 청년들의 레벨이나 능력치는 볼 수 없어서 전력 파악은 불가능했지만, 시뮬레이션 게임에 인생을 갈아 넣은 내 자존심은 시작부터 패배하는 것을 용납하지 않았다.
나는 일단 지나치게 조심스레 진입하는 청년들에게 고블린 세 마리를 보내 봤다.
역시 예상대로 청년들은 갑자기 돌격하는 고블린에게 당황하긴 했지만, 그리 고생하지 않고 세 마리를 처치했다.
처음에는 불안해하던 청년도 자신들이 무리 없이 고블린을 죽일 수 있는 것이 확인되자 들뜬 모습이다.
[내가 말했지? 멧돼지만도 못하다고.] [멧돼지? 이놈들은 그냥 샘보다도 못해.]청년들은 누군지 모를 사람의 이름까지 들먹이며 낄낄댄다.
그들은 그렇게 들떠 있었지만, 이걸로 확실해졌다.
이놈들은 나머지 21마리의 고블린을 투입하면 순식간에 정리할 수 있다.
세 마리의 고블린을 상처 없이 처치하긴 했지만, 순식간에 처리한 것은 아니다.
숫자로 밀어붙여 사방에서 덮치기 시작하면 결국 죽을 수밖에 없다.
하물며 고블린의 움직임에 내가 개입할 수 있으니, 전술적인 운용도 가능하다.
하지만 나는 다른 길을 모색했다.
전면전을 하면 이기기야 하겠지만, 고블린의 피해도 감수해야 한다.
이미 세 마리를 잃은 상황. 시뮬레이션 게임을 하기 위해서는 초반부터 최소한의 피해로 이득을 취하는 것이 기본이다.
청년들의 발걸음이 빨라졌고, 조심성은 줄어들었다.
이 속도라면 나머지 고블린을 모아 놓은 동굴 안쪽에 도달하는데 5분이 채 안 걸릴 것 같았다.
나는 급히 상점 창을 열어 던전 관련 상품을 살펴봤다.
보유한 네거티브 포인트는 500.
한정된 화폐로 지금 가장 쓸 만한 무언가를 찾아야 한다.
500포인트로 살 수 있는 것은 고블린이나 그와 동급인 저급 몬스터 다섯 마리, 500포인트를 한 마리 사는 데 쓰더라도 겨우 오크 정도가 상한치였다.
그렇다면 선택지는 적은 비용으로 상대의 허를 찌를 수 있는 함정뿐이다.
함정도 기관을 설치해야 하는 기계식이나 복잡한 것들은 가격이 비쌌지만, 싼 것도 많이 있었다.
나는 함정들 중에서 금속 와이어 함정을 두 개 구매했다.
그리고 청년들을 따라 움직이기 시작했다.
청년들은 동굴 깊숙이 진입했고, 희미하게 들어오던 빛마저 사라졌다.
그들은 준비한 횃불을 들고 있었지만, 시야가 제약되는 것은 어쩔 수 없다.
나는 어둠 속에 고블린 몇 마리를 배치한 후에 타이밍을 쟀다.
그리고 적당한 위치에 청년들이 모였을 때, 고블린들에게 투척 무기를 던지게 했다.
[우와악! 뭐야!]청년들은 갑자기 어둠 속에서 날아드는 돌도끼, 돌멩이 등을 보고 식겁을 했다.
자연히 그들은 뒷걸음질 쳤고, 나는 그 타이밍에 그들의 발목 위치에 와이어 함정을 설치했다.
와이어 함정의 가격 50포인트, 설치 시간을 단축하는 데 다시 50포인트, 도합 100포인트를 소모했다.
그리고 고블린 한 마리 가격의 함정은 아주 괜찮은 효율을 보여 줬다.
[끄아악!] [왜 그래, 닉!] [바, 바닥에 칼이! 발목이!] [아악!]무려 세 명의 청년이 와이어에 발이 걸려 상처를 입은 것이다.
말이 상처지, 날카로운 금속 와이어에 걸려 넘어진 그들의 발목은 이미 반쯤은 잘렸다고 봐도 무방했다.
뼈는 붙어 있지만, 이미 그런 상처를 입고 움직일 수는 없다.
그들은 얼마 전까지도 그저 순박한 농부였을 뿐이다.
[너희들 어떻게 된 거야!]유일하게 멀쩡한 청년이 횃불을 이리저리 휘두르며 물었다.
하지만 계속되는 돌팔매질에 정신을 차리지 못한다.
[사, 살려… 컥!]바닥에서 꿈틀대던 한 명은 날아든 돌멩이에 머리를 얻어맞고 고개를 바닥에 처박는다.
아무리 성인 남성보다도 약한 고블린이라 해도, 어둠 속에서 던져지는 돌팔매질은 일반인에겐 충분히 위협적이다.
[으, 으아아!]그 한 명이 쓰러지는 것을 신호로 희망을 잃은 청년이 뒤로 돌아 뛰기 시작했다.
나머지 청년들이 살려 달라고 애원했지만, 애초에 다친 둘과 기절한 한 명을 끌고 도망칠 능력이 있을 리 없었다.
나는 고블린들에게 쓰러진 둘을 제압하라 명령한 후에 도망가는 청년을 따라 시점을 이동했다.
친구를 버리면 쓰나.
나는 정신없이 뛰어서 도망가고 있는 청년의 허리춤에 와이어 함정을 설치했다.
[커억……!]청년은 와이어가 반쯤 몸통을 자른 시점에 멈춰 섰다.
영화처럼 깔끔히 이등분되기에는 동굴 속에서의 질주는 속도가 부족하다.
청년은 갈라진 배에서 내장을 쏟으며 무너져 내렸다.
[쿠, 쿨럭!]시시한 삶이 싫어 모험가를 꿈꾼 청년들의 최후는 그야말로 시시했다.
[당신은 사악한 계책으로 침입자들을 제압했습니다. 3,000 네거티브 포인트를 획득합니다.] [당신은 자비 없이 침입자의 목숨을 빼앗았습니다. 1,000 네거티브 포인트를 획득합니다.] [당신에게 생포 당한 침입자들이 공포에 질렸습니다. 1,000 네거티브 포인트를 획득합니다.] [레벨이 올랐습니다.] [네거티브 포인트가 능력치로 전환됩니다. 획득 능력치 포인트: 5]전투가 끝나고 메시지 로그를 펼치자 메시지가 주르륵 올라간다.
겨우 어설픈 모험가 네 명을 처리한 것치고는 화려한 보상이었다.
레벨 업, 5,000의 네거티브 포인트, 그에 따르는 보너스 포인트 5까지.
서서히 가슴 속에서 흥분이 올라온다.
게임, 이건 게임과 너무나 닮아 있었다.
노력을 들이면 반드시 강해지고, 보상이 주어지는 시스템.
그렇게 좋아하던 시뮬레이션 게임이 현실이 된 것이다.
설레지 않을 수가 없었다.
문득, 루시퍼와 나눴던 대화가 떠올랐다.
그래. 루시퍼, 네 말이 옳았다.
나는 이런 능력을 갖고도 다른 사람을 죽이기 싫어서 그것을 포기하고, 곱게 늙어 죽을 만큼 선량하지 못하다.
루시퍼가 어떤 표정으로 웃고 있을지 생각을 하던 중에 생포한 나머지 세 명이 떠올랐다.
다시 던전을 확인하자 고블린들은 내 명령대로 생포해서 제압만 했을 뿐, 별다른 명령이 없어서인지 대기만 하고 있었다.
지금은 풋내기지만, 여기서 내가 개입하지 않았다면 무사히 첫 사냥을 마치고, 결국에는 베테랑 모험가가 되어서 꿈을 이뤘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어쩌면 영웅이라 불릴 만큼 위대한 모험가가 됐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결국 이들도 자신들보다 약한 고블린을 죽여서 힘을 키우고, 돈을 벌 생각으로 들어온 것이다.
그러다 운 나쁘게도 나라는 변수를 맞이했고, 그것을 극복할 힘이 모험가들에게 없었을 뿐이다.
나라고 살인이 유쾌한 것은 아니지만, 약육강식의 논리가 더욱 확실하게 적용되는 이 세계에서 약자의 입장에 처하지 않기 위한 힘을 얻기 위해서라면 기꺼이 마음의 불편함 정도는 감수할 수 있다.
나는 몬스터들을 통제하고 있던 명령을 거두었다.
그러자 고블린들이 뛸 듯이 기뻐하며 겁에 질린 나머지 청년들을 도륙하기 시작한다.
던전 창을 끈 내게는 다음 장면이 보이지 않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네거티브 포인트를 획득했다는 메시지가 남은 모험가들의 죽음을 알려 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