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ll special! Dungeon Master RAW novel - Chapter 34
34
차르륵.
스윽.
지옥 주머니에서 무기와 방패를 꺼내는 사이에 사슬 소리와 함께 무언가가 베어져 나가는 소리가 들려왔다.
쿠웅.
“으, 으아아악!”
나는 반사적으로 비명 소리가 들린 곳을 돌아봤다.
비명 소리는 부상자의 비명이 아니고, 그 주변에 있던 병사들의 것이었다.
이미 쿠웅, 하는 소리를 내고 쓰러진 피해자는 목이 깔끔하게 잘려 나간 상태여서 비명조차 남기지 못한 것 같다.
나는 그림자 마수를 통해서 본 야만족들의 무기를 떠올렸다.
낫, 그리고 사슬 소리.
아마도 지금 습격한 놈들 중에서 낫을 사슬에 연결해서 쓰는 놈이 있는 게 아닐까.
차르륵.
나는 사슬 소리가 난 방향으로 고개가 부러질 기세로 시선을 돌렸다.
쿠웅.
이런, 충분히 빠르게 반응했지만, 낫을 봤다고 생각한 순간에는 이미 사냥감을 사냥하고 어둠 속으로 사라져 버렸다.
“으아아… 사, 살려 줘. 제발, 흐윽, 흑…….”
“엄마아… 끄읍, 끄흑.”
여기저기서 흐느낌과 애원 소리가 흘러나온다.
나는 높은 능력치로 인해 보정을 받고 있는데도 은신한 적들을 제대로 확인하지 못하는데, 그야말로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수준인 병사들 입장에서는 사신이 자신의 목줄을 움켜쥐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일 것이다.
지휘를 할까?
호통을 치거나 합리적인 명령을 전달하면 패배를 안 지휘관 특성의 효과가 발동될 테니, 조금은 병사들의 동요를 줄이고 사기를 유지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지금 여기서 병사들이 전투에 도움이 될까?
냉정한 평가지만, 지금 여기서 도움이 될 병사는 한 명도 없을 것이란 게 내 생각이었다.
결론을 내린 나는 최대한 눈에 띄지 않을 만한 자리에서 조용히 숨을 죽이고 집중했다.
내가 지휘관이라는 것을 인식하는 시점을 최대한 늦춰야 한다.
촤르르륵.
이번 사슬 소리는 조금 더 길게 들렸다.
그만큼 먼 거리의 먹잇감을 노린다는 뜻이었고, 그건 낫이 허공을 나는 시간이 길어짐을 의미했다.
촤악.
어김없이 내가 낫의 존재를 확인했을 때, 한 명의 병사가 바닥을 향해 쓰러진다.
하지만 나는 병사에게는 눈길 한번 주지 않고, 낫의 움직임을 좇았다.
강한 힘으로 당겨지며 주인을 향해 돌아가는 낫.
나는 그 낫에 최대한의 집중력을 발휘해 염을 집중하고, 강하게 반대 방향으로 당겼다.
“크윽!”
성공이다.
낫의 주인인 야만족 하나가 큰 나무에서 바닥으로 떨어진 것이다.
예상할 수 없는 상태에서 갑작스러운 힘에 끌리다 보니, 대처조차 못한 것이다.
하지만 바닥에 떨어진 야만족을 본 병사들은 얼음처럼 굳어서 아무것도 하지 않고 있었다.
젠장, 어지간히도 내 기대를 저버리지 않는 오합지졸들이다.
나는 야만족에게서 가장 가까운 곳에 있는 병사의 창을 끌어서 야만족에게 찔러 넣었다.
“어, 어어어?”
병사는 목숨처럼 쥐고 있던 창이 자기 멋대로 움직이자, 당황해서 멍청한 소리를 내며 끌려왔다.
야만족은 그 공격에도 당황하지 않고 몸을 굴리며 피하려 한다.
푸욱.
하지만 야만족은 자신의 옆구리에서 느껴지는 격통에 당황한 듯 몸이 굳었다.
미안하지만 병사만 믿고 있을 내가 아니다.
뾰족한 돌을 옆구리에 선물 받은 야만족은 이어지는 병사들의 공격에 죽음을 맞이했다.
이번 병사들의 공격은 내가 개입한 것이 아니었다.
자신들 중 하나가 죽은 것에 자극받은 것인지, 야만족들의 공격이 조금 거칠어지기 시작했다.
한 번에 낫이 5~6개씩 날아온다.
그중 내가 반응할 수 있는 것은 겨우 1개뿐.
한 명의 야만족을 끄집어내는 데 네다섯 명 이상의 병사들이 소모됐다.
“으아아아! 죽어! 죽어! 제엔자… 커흡!”
내가 끄집어낸 야만족에게 달려들어 미친 듯이 난도질하던 병사 하나가 날아온 낫에 의해 목이 반쯤 잘려 나갔다.
그리고 나는 돌아가는 낫을 다시 낚아챘다.
촤라락, 툭.
하지만 이번에 끌려온 것은 야만족이 아니라, 낫에 연결된 사슬만이 허망하게 바닥에 떨어졌다.
내 전법을 파악한 놈들이 무기를 포기하기에 이른 것이다.
겨우 네 명밖에 처리하지 못했는데.
아쉬움과 안타까움에 탄식하고 있을 때, 오싹, 하는 느낌이 들었다.
그리고 후우웅, 하는 파공성이 바로 뒤를 잇는다.
나는 지체 없이 바로 몸을 굴렸다.
역시 이번에는 내가 목표였는지, 내 목이 있던 곳을 낫 하나가 지나쳐 간다.
이번에는 낫을 끌어당길 여유도 없었고, 어차피 효과가 없을 것이란 생각에 낫의 궤도를 대략적으로 파악해서 적이 있을 것 같은 위치에 단검을 뿌렸다.
최대한 넓은 범위에 흩뿌리듯 발사한 단검들이 수풀 속을 헤집는다.
일단 도박을 하는 심정으로 던지긴 했는데, 정작 적을 처리했는지를 확인할 수가 없다니.
발악에 가까운 공격이었으니, 실패했다고 보는 게 맞겠지.
[레벨이 상승합니다.] [지옥 상점의 4단계 상품이 잠금 해제됩니다.]어?
나는 갑작스레 뜬 메시지에 잠시 당황했다.
레벨이 오른 것을 보니, 방금 공격이 적을 죽이는 데 성공했나 보다.
아니, 지금 잔챙이 하나 죽고 살고가 중요한 게 아니었다.
레벨 업, 그것도 지옥 상점의 구매 등급이 한 단계 올라가는 레벨 업을 했다는 것이 중요하다.
나는 바로 지옥 상점을 열어서 4단계 장비 목록 중에 가장 처음 눈에 띄는 것을 구매했다.
이미 한차례 화려한 퍼포먼스를 선보였으니, 나를 향할 공격은 유명 레스토랑 예약처럼 꽉 찬 상태일 것이다.
팔자 좋게 아이쇼핑을 즐길 시간도, 가격을 확인할 여유도 없는 상황.
무작위로 구입한 무기들 중에서 이 상황을 타개할 것이 들어 있기를 바라는 수밖에 없다.
치이이익.
파지지직!
그리고 구매한 장비가 나타나기 무섭게 주변이 밝아질 정도의 스파크가 튀고, 빗물이 요란한 소리를 내며 증발한다.
나타난 무기는 각각 옅은 화염과 열기를 뿜어내는 창과 푸른 스파크가 튀는 창, 그리고 아직 무슨 특징이 있는지 모를 창까지, 총 세 자루의 창이었다.
새로운 무기의 모습을 확인하기가 무섭게 나에게 저승행 특급열차표를 선물하려는 사슬낫들이 날아들었다.
적어도 3~4개는 되어 보이는 낫들의 향연.
나는 창들을 세 방향에 세우고 풍차 돌리듯 회전시켰다.
내가 생각해도 꽤나 괜찮은 임기응변이다.
나를 노리던 낫들과 연결된 사슬들이 회전하는 창에 얽혀들며 힘을 잃었다.
“끄어어어……!”
“응?”
나는 갑작스레 나무 위에서 들려오는 비명에 고개를 돌리자, 쿠웅, 하고 떨어진 야만족 두 명이 손에 쥔 사슬을 놓지도 못하고 부들부들 떨며 게거품을 토해 내고 있었다.
놈들이 쥔 사슬이 연결된 곳은 지금도 열심히 스파크를 튀기는 창이었다.
“뭐해? 쓰러진 놈들이라도 빨리 처리해!”
나는 내게 공격이 집중된 탓에 잠시 안전해진 병사들에게 소리치고, 그들이 움직이는지 확인하기도 전에 나머지 두 개의 창을 적이 있을 법한 곳에 날려 버렸다.
화염창은 제대로 된 성과 없이 허망하게 허공을 갈랐지만, 무슨 특징이 있는지 확인 못 했던 창은 달랐다.
촤촤촤촥!
창이 날아간 방향에서 넓은 범위로 물방울과 나뭇잎이 비산한다.
공기로 만들어진 칼날이 허공을 난도질한 것이다.
그러나 애석하게도 요란한 공격과는 다르게 야만족은 그곳에 없었는지, 기대하던 피나 시체는 눈에 띄질 않는다.
나는 날아간 창을 회수하기도 전에 전격창 두 개를 추가로 구매했다.
지금 놈들의 사슬낫을 무력화시킬 가장 쓸모 있는 무기였기 때문이다.
창을 구매하면서 동시에 빈 공간을 방패를 세워 막는다.
방패가 세워지기 무섭게 터덩, 하는 소리와 함께 투척 무기들이 방패를 때린다.
그림자 마수가 없는 정도로 이렇게 전투가 힘들어질 줄이야.
하지만 지금 귀환시키기에는 이미 늦었다.
나는 허공을 나는 쇠사슬들을 노리고 전격창을 휘둘렀다.
찔러서 맞추는 것은 힘들어도, 휘둘러서 닿게 만드는 것은 비교적 쉬운 일.
역시 전격창이 쇠사슬과 만나는 순간, 고통에 찬 비명이 어둠 속에서 들려온다.
계속해서 이어진 치열한 전투는 내 몸에 흐르는 게 빗물인지, 아니면 땀인지 구분하지 못하는 사이에 짧지 않은 시간을 흐르게 했다.
아이러니하게도 병사들의 숫자가 절반 이하로 줄어들자 야만족의 공격은 성공하기가 더 어려워졌다.
내가 커버할 수 있는 범위에 대부분의 병사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내 안전을 최우선으로 방어적인 전투를 하는 나를 처치할 전력은 야만족에게 없는 상황.
야만족과 병사의 교환비가 1:2 정도로 비슷해지자, 야만족의 공격이 멈췄다.
다시금 숲속에는 다친 병사들의 신음 소리, 격해진 숨소리, 그리고 풀벌레 소리만이 남았다.
워낙 은신에 능한 놈들이라 확신할 수 없었지만, 적어도 이번 전투는 포기한 것처럼 느껴진다.
하지만 그 변화를 느낄 수 있는 정도의 이성을 유지한 사람은 나뿐인지, 병사들은 아직도 허공을 향해 두려움에 찬 눈빛을 보내며 전투를 계속하고 있었다.
그들에게 있어서 전투란 어떻게든 살아남기 위해 몸을 굴리며 공격을 피하는 게 다였으니까.
그나마도 한두 번이라도 공격을 피하는 데 성공한 병사는 정말 드물 것이다.
멀쩡히 서 있는 병사는 겨우 15명.
야만족의 피해는 겨우 9명.
이 숲이 우리를 습격한 야만족에게 얼마나 유리한 전장인지를 단적으로 보여 주는 수치다.
“은신이라는 거, 정말 좆 같네.”
제대로 실체를 확인할 수 없는 놈들이 주변에서 던져 대는 공격은 정말 진절머리 날 정도의 스트레스였다.
앞으로 마음에 안 드는 놈들이 있으면 은신이 특기인 몬스터로 죽이지도 않고 끈질기게 괴롭혀 줘야겠다고 생각하게끔 만드는 경험이었다.
“적은 후퇴했다. 자기가 걸을 수 있을 정도인 병사만 일으키고, 나머지는 군번줄을 챙겨. 죽은 병사들 가족에게 보상을 해야 하니까.”
“부, 부상자들은 버리시는 겁니까?”
나는 질문한 병사를 바라봤다.
그리고 바닥에 쓰러진 병사들로 시선을 옮긴다.
대부분이 죽어 있고, 아직 숨이 붙어 있는 병사들도 대부분 치명상을 입었거나, 작지 않은 부상을 입은 상태였다.
비는 그쳐 간다고 해도 흠뻑 젖은 상태에서의 출혈. 어차피 탈진해서 죽을 확률이 높다.
후퇴한 놈들이 다른 놈들과 합류해서 돌아오기 전에 이곳을 벗어나야 하는 상황에서 그들까지 챙길 여유가 없는 것이 현실이다.
“살릴 수 있나?”
“예, 예……?”
“저기 쓰러진 저 병사를 네가 살릴 수 있냐고 물었다.”
내 손은 아래로 아무것도 남지 않은 팔꿈치를 부여잡고 가쁜 숨을 몰아쉬는 앳된 병사를 가리키고 있었다.
“그, 그건…….”
“나는 살릴 수 없다. 안타깝지만 그게 현실이야. 나는 내 능력 밖의 것을 하겠다고 무리하느라 모든 것을 잃을 정도로 멍청하지 않아.”
“아무리 그래도 아직 살아 있지 않습니까…….”
내 단호한 말에 순박한 얼굴을 한 병사가 울먹이며 반박했다.
그 분위기는 병사들에게 전염되고 있었다.
나는 한숨을 내쉬고, 팔이 잘려 나간 병사에게 다가갔다.
가까이서 보니, 입술이 파랗게 질려 있었다.
나는 징집병들에게 지급된 나무 조각으로 만들어진 조잡한 군번줄을 확인했다.
“게리만, 가족은 있나?”
“어, 어머니와 여, 동생, 이 있습, 니다.”
눈이 이미 초점을 잃어 가서 대화가 가능할까 싶었는데, 의외로 말은 또렷하게 하고 있었다.
“내 능력으로는 널 살려 줄 수 없다. 데리고 간다 해도 중간에 죽어 나갈 거야. 대신이라고 한다면 잔인하겠지만, 남은 네 가족은 적어도 돈 때문에 고생할 일은 없게 해 주겠다.”
내 말을 들은 게리만의 호흡이 갑작스레 불안정해졌다.
한계에 부딪혔나 싶었는데, 그게 아니었다.
그는 울고 있었다.
“흐윽, 흡, 흐으윽, 끄흡, 가, 가족들한테는 제, 제가, 요, 용감했…….”
“걱정 마라. 그 누구보다 용감히 싸웠다고 전해 줄 테니. 너무나 사랑했다고도 전해 주지.”
“어, 어떻게 아셨, 습…….”
“내가 죽어 간다면 그렇게 말할 것 같으니까.”
나는 그가 말을 마치기 전에 그럴듯하게 대답했다.
상황에 쫓기는 나에게도, 죽음에 쫓기는 게리만에게도 시간은 소중했으니까.
“마지막으로, 소, 속만 썩… 이는 아들… 이어서 죄송, 했다고, 전해…….”
나는 이번에는 말을 중간에 끊지 않았다.
새어 나오는 숨소리가 이것이 그의 마지막 말임을 알려 줬기 때문이다.
그리고 역시나 그는 마지막 말을 마치지 못하고 마지막 숨을 내뱉었다.
나는 조용히 군번줄을 뜯어서 품에 집어넣었다.
“뭐 하고 있어? 우리한테나 곧 죽은 놈들이나 시간 없는 건 매한가지야. 살려 줄 능력이 없으면 유언이라도 확실히 기억해 줘. 돈은 내가 낼 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