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ll special! Dungeon Master RAW novel - Chapter 37
37
수풀을 해치고 나타난 것은 야만족들이었다.
젠장, 밤이면 몰라도 해가 떠오른 시점에는 그림자 마수의 감각이 미치는 범위가 좁아진다는 것을 간과한 탓이다.
육안으로 구분을 할 수 있는 시점에서야 깨닫게 되다니.
그나마 다행인 점이라면 도착한 야만족들의 숫자가 그리 많아 보이진 않는다는 것이었다.
대략 30명 정도.
문제는 이게 끝이 아닐 것이란 거지만.
“전군, 후방 경계 태세로! 궁수들은 적이 사정거리 안으로 들어오는 즉시 사격한다!”
내 외침에 적의 존재를 인지한 자작이 바로 명령을 내렸다.
흩어져서 지렁이 사냥을 하던 병사들이 순식간에 전투 대형을 갖추는 모습이 인상적이다.
궁수들이 짧은 소검을 집어넣고, 기사와 일반 보병이 보호해 주는 후방으로 물러났다.
야만족들도 자신들이 유리한 숲이 아닌 평지로 나와서 전면전을 해야 하는 상황이니, 절대 불리하기만 한 전장은 아니었다.
“한눈을 팔면 안 되지!”
잠시 사람들의 신경이 후방으로 가자, 반달라가 다시 한번 회전하기 시작했다.
가장 가까이서 반달라를 견제하던 기사 하나가 몸 이곳저곳에 깊은 자상을 입으며 물러난다.
“루크 경, 창을!”
리엔이 펄쩍 뛰어서 물러나면서 나에게 소리쳤다.
창?
나는 의문을 떠올림과 동시에 사용하던 창들 중 하나를 리엔의 손으로 날려줬다.
그리고 리엔에게 창이 도착하기 전에 이유를 납득했다.
반달라가 지금 버틸 수 있는 가장 큰 이유, 그리고 무기는 사정거리였다.
일부러 병사들이나 기사들과 뒤엉켜서 싸우는 것처럼 보이지만, 반달라는 귀신같이 긴 팔과 기다란 무기를 이용해서 자신에게 유리한 간격을 유지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니 일반적인 검을 무기로 사용하는 기사들이 쩔쩔맬 수밖에.
채채챙.
“크흡!”
리엔이 내가 준 창을 내밀어 반달라를 제지하려 했지만, 힘이 부족해서 반달라의 몸에 닿기 전에 칼날에 맞고 튕겨져 나온다.
하지만 공격에 실패하고도 부상을 입지 않은 것만으로도 창의 효과는 입증됐다.
나는 자작과 나머지 기사 두 명에게도 창을 쥐여 줬다.
“고맙다.”
멀리 있는 내게도 들릴 만큼 크게 외친 자작이 창을 찔러 넣는다.
쩡.
리엔이 찔러 넣을 때와는 비교도 안 되는 묵직한 소리가 울린다.
반달라의 움직임을 완전히 멈추지는 못했지만, 회전에서 힘을 뺏는 데는 성공했다.
“하압, 죽어랏!”
기사들도 그 대열에 합류했다.
물론 나도 가만히 있을 수는 없는 일.
나도 창 두 자루만을 컨트롤하며 최대한 반달라의 사각을 노려서 공격을 가했다.
합공을 하는 데는 정교한 컨트롤이 더 중요하기 때문이다.
반달라는 무려 다섯 자루의 창에 합공을 당하는 것이라고는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선전을 펼쳤다.
먼저 쓰러진 것은 리엔이었다.
그녀가 내지른 창을 아슬아슬하게 빗겨 낸 반달라가 순식간에 거리를 좁히며 그녀의 옆구리에 깊은 상처를 남겼다.
접근전을 펼치는 기사들 중에서 가장 어리고, 작은 체구 때문에 창을 들었음에도 부족한 사정거리 탓이 컸다.
하지만 반달라도 쓰러진 리엔에게 또 한 번의 공격을 하려는 욕심 탓에 리엔과 같은 부위에 공격을 허용하고 말았다.
하지만 그 상처는 크지 않아서, 놈은 바로 몸을 튕겨서 뒤로 훌쩍 물러났다.
“리엔! 뒤로 물러나라!”
“아직 싸울 수 있습……! 꺄악!”
나는 부상당한 리엔을 뒤로 굴려 버렸고, 그녀는 갑작스런 일에 당황했는지 옆구리가 갈라질 때도 내지 않았던 비명을 내질렀다.
“루크 경! 이게 무슨 짓입니까!”
“무슨 말이에요? 전 아무 짓도 안 했습니다.”
리엔은 중심을 잡자마자 범인을 향해 노성을 터뜨렸다.
물론 나는 뻔뻔하게 대꾸하면서 리엔을 스쳐 지나갔다.
리엔의 빈자리를 내가 채워야 하니까.
“거짓말하지 마십시오! 꺄악!”
나는 억지로 몸을 일으키려는 리엔을 다시 한번 넘어뜨렸다.
괜히 부상당한 몸으로 전투를 방해하면 더 골치가 아프니까.
인간에게 직접 물리력을 행사하는 것은 힘들긴 하지만, 완전히 지치고 부상당해서 제대로 서 있기도 힘든 사람은 중심을 조금만 흩어 놓으면 바로 넘어지게 되어 있다.
후폭풍이 걱정되긴 하지만, 일단 지금은 반달라의 처리와 야만족의 소탕이 먼저다.
“합류하겠습니다.”
나는 반달라와 전투하고 있는 자작과 기사들, 그리고 반달라에게 내 존재를 알리며 달려들었다.
“루크, 자네는 떨어져 있는 게 나아!”
“아닙니다.”
자작이 나에게 말했지만, 나는 고집스레 창 두 자루를 띄우며 대꾸했다.
“창을 날려서 방해하던 주술사가 네놈이구나.”
반달라가 내 옆에 떠 있는 창을 보면서 진저리를 친다.
내 공격이 상당히 골치 아팠던 모양이다.
“이런, 루크!”
그 증거로 반달라는 정말 기괴한 움직임으로 자작과 기사들을 지나치며 내게 돌진해 왔다.
근접전이 가장 미숙해 보이고, 놔두면 가장 골치 아플 것 같은 나를 먼저 제거하려는 속셈.
반달라를 저지하는 데 실패한 자작의 다급한 외침이 들렸다.
자작은 반달라의 돌파 과정에서 다리를 베인 것인지, 한쪽 무릎을 꿇고 있었다.
하지만 이건 내가 바란 것이기도 하다.
태연한 척하고 있지만, 내 상태도 말이 아니다.
가뜩이나 염동력은 연비가 좋지 않은 기술.
밤새 이어진 전투로 인해 체력과 마력 모두 바닥을 드러내기 직전이었다.
반달라도 불리한 전투를 빨리 마무리하고 싶겠지만, 나도 속전속결이 아니면 피를 토하게 생긴 것이다.
나는 방패를 타고 빠르게 뒤로 물러나면서 거리를 벌리려 했다.
그러나 반달라도 필사적으로 거리를 좁혀든다.
그렇게 반달라의 신경이 온통 나에게 집중됐을 때, 푸욱, 하는 두 개의 소리가 겹쳐서 들렸다.
반달라가 자신의 배를 뚫고 나온 두 자루의 창을 내려다봤다.
놈과 나의 거리는 겨우 3, 4미터밖에 되지 않았지만, 이제는 영원히 좁힐 수 없는 거리가 돼 버렸다.
“어, 어떻게……? 쿨럭……!”
반달라는 의문이 가득한 눈으로 나와 창 두 자루를 바라봤다.
놈은 내가 가까이 다가와 정체를 드러냈을 때 의심했어야 했다.
어차피 멀리서도 교전이 가능한데, 굳이 거리를 좁힌 이유를 말이다.
나는 더운 여름날 모기처럼 짜증 나는 존재가 나라는 것을 인식시켰고, 그것에 더해서 창 두 자루를 옆에 띄워 놓음으로써 내 무기가 이곳에 있다는 인식을 반달라에게 심었다.
정작 반달라를 공격하던 창들은 진창 아래에 숨겨 둔 채로.
그리고 나를 노리고 달려드는 놈의 등 뒤에서 어뢰같이 바닥을 통해 날아온 창을 꽂아 넣는 것으로 마무리.
그렇게 반달라의 복부를 장식하게 된 창에서는 그사이에 충전됐는지, 약한 전격이 바지직, 하고 흐르고 있었다.
나는 옆에 떠 있는 창도 추가로 꽂아 넣어 줬다.
“커, 커헉……! 역시, 하얀 돼지 놈답게 교활하기 짝이 없구나.”
반달라는 그렇게 말하면서도 킥킥, 하고 웃고 있었다.
“교활? 그런 표현은 좀 그런데. 비겁하거나 교활한 건 너 같은 놈에게나 어울리는 거야. 똑같은 짓을 해도 내가 하면 똑똑하고 기발한 거고, 너 같은 놈들이 하면 비열하고 저열한 거거든. 잘 모르겠으면 외워. 이런 걸 두고 내로남불이라고 하는 거다.”
“…내로, 뭐라고?”
반달라는 나를 비난하려다가 내 대답에 얼마나 당황했는지, 통증조차 잊은 듯 멍청한 표정을 지었다.
밤새도록 나를 괴롭힌 사건의 원흉이 저런 표정을 짓는 걸 보니, 겨우 속이 시원해지는군.
“괴롭나?”
“개, 개소리, 우리는 태어나는 순간부터, 흐읍, 죽음을 두려워, 하지, 허억… 않는다. 어서 죽여라……!”
“그런 소리를 하려면 표정도 좀 펴고, 입에서 침은 그만 흘려야 할 것 같은데.”
하긴, 복부에 크고 굵은 창이 네 자루나 꽂혀 있고, 그 창에서는 갈수록 강한 전격이 흘러나오는데 멀쩡할 수가 있나.
내장을 전기로 지지는 격인데.
[반달라가 극한의 고통을 참아 넘기려고 용을 씁니다. 5,000 네거티브 포인트를 획득합니다.].
.
.
[반달라가 극한의 고통에 실금, 그 수치를 견디지 못합니다. 7,000 네거티브 포인트를 획득합니다.].
.
.
“으아아아!”
쓰윽.
툭.
[반달라가 실금의 수치를 견디다 못해 자결했습니다. 35,000 네거티브 포인트를 획득합니다.] [레벨이 상승합니다.]“…….”
만투보다도 더 무시무시한 전투력을 자랑하던 놈의 최후치고는 너무 비참한 최후잖아.
“정말 지독한 놈이군요. 정보를 발설하지 않기 위해서 자기 목을 직접 치다니.”
뒤늦게 다가온 기사가 질렸다는 얼굴로 목 없이 서 있는 반달라의 시체를 바라봤다.
나머지 기사 한 명은 부상당한 자작을 부축하고 있었다.
[반달라의 부족원들이 반달라의 시체를 보고 망연자실합니다. 37,850 네거티브 포인트를 획득합니다.]“야만족들이 더 나타났습니다!”
메시지와 함께 병사들의 외침이 여기저기서 들려왔다.
이번에도 30명 남짓 되는 야만족들이 숲을 뛰쳐나오고 있었다.
아마도 소규모 집단을 습격하기 위해서 돌아다니던 놈들이 조금씩 합류하는 것 같다.
“이대로는 끝이 없겠는데…….”
나는 피곤함을 넘어서 노곤해지려는 정신을 다잡았지만, 감각이 무뎌지는 것이 실시간으로 느껴질 정도였다.
그건 병사들과 함께 뒤엉켜 싸우고 있던 그림자 마수도 마찬가지였다.
지금은 밤도 아니었으니 더더욱.
그런데 그때.
숲 끝자락에서 대치하던 야만족들의 뒤쪽에서 소요가 일어났다.
“저건… 저건, 아군입니다!”
눈을 찡그려 가며 정체를 가늠하던 기사가 기쁜 목소리로 외친다.
물론 그가 확인할 수 있었으니 나도 확인할 수 있었다.
뒤쪽에서 나타난 병력의 선두에는 왕국군의 깃발과 함께 이름이 기억나지 않는 영지의 깃발이 함께 휘날리고 있었다.
병력 자체만 놓고 보면 우리보다도 많은 숫자가 살아남은 것 같은 그들은 순식간에 야만족들의 후방을 치고 나왔다.
나는 바닥을 드러내는 마력을 긁어모아 전투에 참전했다.
그리고.
[마력 감응의 레벨이 상승합니다.] [마력 운용의 레벨이 상승합니다.]반가운 메시지를 봤지만, 그것을 기뻐할 정도의 기운도 남지 않았을 때 전투가 겨우 끝이 났다.
* * *
일단은 전투도 마무리됐고, 조금 더 큰 규모의 아군 생존자 그룹과 합류도 했지만, 상황이 완전히 종료되지 않았기 때문에 그다지 긴 휴식을 얻지는 못했다.
그나마 합류한 이들 중에 사제들이 있어서 중요한 부상자들이 당장 움직일 수 있는 여건이 마련된 것이 다행이라면 다행이었다.
그렇게 겨우 숨을 돌릴 정도의 휴식 시간이 지난 후에 자작은 병력을 재정비해서 바로 숲으로 진군했다.
아직 정오도 되지 않은 시간이지만 흩어져 있을 아군 생존자의 수색과 남아 있을 야만족 잔당을 생각하면 시간을 얼마나 잡아먹을지 알 수 없으니 느긋하게 피로를 풀 시간은 없었다.
그나마 다행인 점은 의외로 더 이상의 전투는 벌어지지 않고 있다는 점이었다.
대신 적은 규모, 그리고 큰 규모의 전투가 있었던 것 같은 곳에서 대량의 시체들이 발견됐다.
야만족의 시체도 더러 눈에 띄었지만, 대부분은 아군의 시체였다.
피를 많이 흘려서 평소보다 창백한 리엔의 얼굴은 시종일관 딱딱하게 굳어 있었다.
“생존자가 발견됐습니다.”
척후병에게서 처음으로 희소식이 들려왔다.
“몇 명이나 되나!”
처음으로 리엔의 입이 열렸다.
“두, 두 명입니다. 한 명의 부상이 심각합니다. 사제님을!”
척후병이 다급한 목소리로 사제를 찾는다.
그것은 부상자 중에 귀족으로 보이는 자가 있다는 것을 뜻했다.
나는 처음으로 발견된 생존자를 확인하기 위해 다급히 뛰쳐나가는 사제를 따라서 앞으로 나갔다.
“이런…….”
“으으으……!”
생존자 중 한 명은 레온이었다.
솔직히 잊고 있었는데.
레온은 손목이 잘려 나간 자리를 부여잡고 부들부들 떨고 있었다.
지혈대는 이미 피범벅이었고, 의식은 이미 없는 상태.
그리고 레온 옆에는 병사들이 건네는 물을 허겁지겁 받아 마시는 병사가 한 명 보였다.
별다른 부상은 없어 보였지만, 겪은 고생이 꽤 심한 듯 눈 밑이 퀭한 것이 이미 정상이 아니다.
아마 저 병사가 부상 당한 레온을 살려 놓은 것 같다.
“어떻게 발견됐나?”
나는 레온을 발견한 척후병을 붙잡고 물었다.
“그, 그게 나뭇잎을 쌓아서 완전히 위장을 하고 있다가 나타났습니다. 얼마나 놀랐는지 하마터면 제 손으로 죽일 뻔했습니다. 살려 달라는 말이 먼저 들려서 망정이지…….”
척후병은 십 년은 감수했다는 표정이었다.
그나저나 저런 부상을 입고 젖은 나뭇잎 더미 밑에 깔린 채로 숨어 있을 생각을 하다니.
대단한 생존 욕구가 아닐 수 없다.
처음으로 형에 대한 존경심이 조금 생겨날 것 같은 기분이다.
“저, 저, 저, 고, 공자님.”
“응?”
레온을 질린 눈으로 바라보던 나는 갑자기 나를 부르는 소리에 돌아봤다.
“아악!”
그리고 너무 깜짝 놀라서 뒤로 세 걸음을 물러나면서 지옥 주머니를 열었다.
날 부른 것은 레온과 함께 발견된 병사였다.
“죄, 죄송합니다. 하지만 이걸 꼭 사제님이나 공자님께 전해 드리라고…….”
내가 놀란 이유, 그리고 병사가 내민 것은 잘린 레온의 손이었다.
“그건 왜?”
“다, 다시 붙여야 하, 한다고.”
정말 오랜만에 루시퍼가 넣어 준 ‘상식’이 떠오른다.
더럽게 많은 돈을 들여야 하지만, 고위 사제에게 치유 마법을 받으면 잘린 사지도 이어 붙일 수 있는 것 같았다.
문제는 썩기 전에 가져가야 한다는 것이지만.
“네가 가지고 있어라. 형이 깨어나면 직접 전해 줘.”
우리가 그러고 있는 사이에 병력이 다시 움직이기 시작했다.
어디에 또 이런 부상을 당한 생존자가 있을지 모르는 만큼, 응급처치만 해서 숨만 붙여 놓는 데 성공하면 바로 이동해야 하기 때문이다.
야만족은 자취를 찾을 수 없었지만, 수색 작업 끝에 생존자들은 꾸준히 찾을 수 있었다.
그렇게 세렌힐 숲을 벗어났을 때 왕국군의 수는 대략 500명 남짓.
처음의 1/4도 안 되는 초라한 숫자였다.
사실상의 전멸이라고 봐도 될 처참한 피해를 입고 만 것이다.
“이 병력으로 세렌힐 관문을 공략하는 것은 불가능하겠군. 그렇다고 마냥 병력이 충원되기를 기다릴 수도 없는 일. 우리는 2왕자님의 부대와 합류하고, 세렌힐 관문부터의 공략은 후속 부대에게 맡기는 수밖에.”
스틸호크 자작이 착잡한 얼굴로 몇 안 남은 지휘관들에게 전달했다.
토를 다는 사람은 없었다.
이 부대를 지휘하는 부대장은 스틸호크 자작.
그가 결정한 사안이었고, 다른 대안도 없었다.
병력보다도 화재와 전투로 잃은 보급품의 부재가 가장 큰 문제였다.
지금 상황에서는 전선을 떠나서 후퇴를 할 게 아니라면 가장 가까운 곳에 위치한 큰 규모의 아군과 합류하는 것이 가장 바람직하다.
그리고 이끄는 부대가 전멸에 가까운 피해를 입은 시점에서 왕족이 이끄는 부대에 합류하겠다는 말은, 곧 자작이 패장으로서의 책임을 지러 가겠다는 말과 같았기에 분위기는 더욱 무거웠다.
“어두워지기 전에 세렌힐 숲에서 완전히 멀어져야 한다. 준비하도록.”
아직 해가 지기엔 이른 시간이지만, 분명히 남아 있을 야만족들이 안 보이는 것은 후퇴했거나 기회를 노리거나 둘 중 하나일 테니 최대한 전투가 있었던 장소에서 멀어져야 한다.
가장 최악은 후퇴한 잔당이 수를 불려서 다시 돌아오는 것이지만, 가까운 곳에 임시 거점이 없다면 지원군을 불러오는데 상당한 시간이 걸릴 테니, 지금부터 부지런히 움직이면 마주칠 확률은 그리 높지 않을 것이다.
그렇게 우리는 드디어 세렌힐 숲을 등 뒤에 두고 이동을 시작할 수 있게 됐지만, 그 누구의 발걸음도 가볍지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