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ll special! Dungeon Master RAW novel - Chapter 54
54
관리소장 터커가 독점적으로 루비를 거래할 수 있게 해 준 곳은 디미트리 상단이었다.
2년 전에는 보부상 집단이나 다름없던 곳이, 최근 2년간 루비 거래에서 나온 이익을 기반으로 급성장, 이제는 어엿한 상단의 모양새를 갖추게 됐다.
아직도 규모로 따지자면 대규모라고 부르지는 못하는 수준이지만, 단 2년 만에 이룬 결과라고 생각하면 충분히 대단했다.
물론 나는 일개 상단의 성공 신화 따위는 관심 없었다.
그 놀라운 성장 배경이 에슬란테 영지와의 루비 독점 거래 계약에서 발생한 것이라는 게 중요했고, 그보다 더 중요한 점은 그 계약이 온갖 비리를 일삼아 온 관리소장이 진행한 일이라는 것이었다.
터커의 자백에 의하면 디미트리 상단을 선택한 이유가 관리소장인 자신도 제어할 수 있을 만큼 작은 규모여서라고 했지만… 이면 계약이 있었을 확률이 큰 만큼, 철저히 털어야 했다.
나는 관리소장을 처리한 직후, 바로 루비를 거래하는 상단에 현재 상황을 통보했다.
루비 거래의 전면적인 동결은 물론, 내가 이면 계약의 존재 유무를 의심하고 있는 것까지 말이다.
디미트리 상단의 반응은 재빨랐다.
루비 거래를 담당하던 간부를 건너뛰고, 디미트리 상단주의 삼남이 직접 나를 찾아왔다는 것이 그 증거였다.
나는 창밖으로 보이는 엄청난 숫자의 수레와 마차를 바라봤다.
전부 디미트리 상단에서 가져온 선물들이었다.
디미트리 상단의 짐꾼들이 열심히 선물들을 나르는 것을 엘라의 손을 잡고 있는 루시아가 신기하게 바라보는 모습이 보여서 나도 모르게 입가에 작은 웃음이 번졌다.
하지만 디미트리 상단주의 삼남, 체스터 디미트리를 향해 돌아섰을 때는 다시 웃음기 없는 얼굴을 만들었다.
“많이도 가져왔군.”
“그동안 입은 은혜에 비하면 약소합니다. 갑작스럽게 찾아뵙느라 오히려 준비가 미흡한 것 같아 송구스럽습니다.”
“내 말은 저렇게 선물을 가져다줄 만큼 우리 영지에서 많이 남겨 먹었구나, 하는 뜻이었네.”
“…부정하기는 힘들군요. 확실히 에슬란테 영지의 루비를 독점적으로 공급받을 수 있었기에 저희 상단이 이만큼 커질 수 있었으니까요.”
내 공격적인 말에도 체스터는 대응이 아주 조금 늦어졌을 뿐, 표정이 무너지지 않았다.
나는 그 모습을 보고 쓸데없는 신경전보다는 빠른 일 처리를 하기로 했다.
어차피 지금 불리한 쪽은 저쪽이지, 내가 아니니까.
“그쪽이 어디까지 권한을 가지고 왔는지부터 짚고 넘어가야 이야기가 진행될 것 같군.”
“어떤 것을 말씀하시는지…….”
“나는 광산에 관해서만큼은 아버지에게 전권을 위임받은 상태야. 그 말은, 적어도 광산에 관한 내 결정은 우리 가문의 결정이나 마찬가지라는 뜻이지. 그만큼 우리는 이 일을 심각하게 생각하고 있다는 것이고. 나는 디미트리 상단도 그러했으면 하는데.”
말을 마친 나는 조용히 체스터의 눈을 응시했다.
체스터는 여전히 차분한 표정이었지만, 꽉 쥔 주먹까지 숨기지는 못했다.
하지만 그 동요도 잠시였다.
“물론 저도 디미트리 상단주 대리로서 이 자리에 온 것입니다. 원래는 상단주가 직접 와야 마땅하나, 이런 중차대한 일에는 신속한 대응이 더 우선이라는 판단을 내렸고, 가장 가까운 곳의 지부장을 맡고 있는 제가 왔을 뿐, 공자님께서 하시는 말씀은 곧 상단주에게 하고 있으신 것이 맞습니다. 편하게 말씀하십시오.”
“좋아. 그럼 그렇게 믿고 우리 쪽 요구 사항을 전달하도록 하지. 먼저, 나는 디미트리 상단이 우리 영지의 루비를 독점하는 계약 자체의 의문이 많아. 굳이 상단을 끼고 팔아야 했나 하는 생각부터, 만약 그래야 했다 해도 당시에는 작은 구멍가게나 다름없었던 디미트리를 왜 골랐을까 하는 생각까지 말이야.”
나는 체스터가 들어오자마자 올려놓은 서류 더미를 가리켰다.
“이 서류에는 없는 무언가가 있다. 그것이 내 결론이야.”
내 결론을 들은 체스터의 입가가 경련을 일으켰다.
디미트리 상단이 아무리 커졌다고 해도, 귀족과의 대립은 절대 달가운 일이 아니다.
특히 이런 경우에는 더더욱.
지금 디미트리 상단은 단순히 금전적인 피해를 생각하기 이전에, 귀족의 뒤통수를 치고 재산을 빼돌린 자와 엮여 있는 상황이다.
다른 나라들도 마찬가지지만, 라메리안 왕국은 귀족에게 한없이 유리한 법을 가지고 있고, 귀족의 이권은 철저하게 보호하고 있었다.
남작이 별 볼 일 없는 귀족이니까 쉽게 넘어가겠지, 이런 생각은 통용되지 않는다.
이런 문제는 귀족과 평민의 문제였고, 귀족들은 자신의 이권이 침해되는 전례를 남기는 것 자체를 용납하지 않는다.
무죄 추정이 아닌 유죄 추정의 원칙이 적용되고, 상단은 철저한 조사를 피하기 어렵다.
그리고 털어서 먼지 안 나는 상단은 없다.
“…이번 말씀도 부정하지 않겠습니다. 지금 드린 것은 단순히 지금까지 루비 거래를 하면서 작성된 자료들입니다. 그것 이외에도 저희 상단에서 약속드렸던 것들이 많이 있습니다.”
“자수인가?”
“아닙니다. 저희는 그 많은 약속들이 관리소장 뒤에 계신 남작님과 한 것이라고 믿고 있었을 뿐입니다. 저희도 관리소장에서 속은 것이지요.”
“디미트리 상단은 속았을 뿐이고, 모든 것은 관리소장의 소행이다, 이 뜻인가? 그 말을 나는 믿어야 하고.”
내가 마지막 말에 담아낸 비아냥이 결정타였는지, 겨우겨우 침착함을 유지하던 체스터의 목소리에 약간의 다급함이 묻어나왔다.
“저희가 여러 가지를 약속하고, 그동안 제공한 것은 사실입니다. 하지만 관리소장에게 준 것이라고는 몇 푼 안 되는 돈이 전부였습니다. 깨끗하게 세탁한 거액의 돈이나 귀한 선물들, 그리고 상단의 지분은 남작님께 전달됐으리라 믿었습니다. 관리소장은 늘 남작님께서 흡족해하셨다 했으니까요.”
“2년간 거래하면서 아버지의 얼굴 한번 보지 못해 놓고서 그 말을 곧이곧대로 믿었다는 말인가?”
“저희 같은 상인이 돈 몇 푼 있다고 해서 어깨에 힘을 줄 수 있는 건 평범한 사람들 사이에서나 그렇습니다. 예, 돈이 귀한 귀족님들은 다르겠지요. 하지만 남작님께서는 저희보다 돈도, 지위도, 명예도 넘치도록 가지고 계십니다. 저희도 뵙기를 원했으나, 남작님께서 장사치를 직접 보기를 원치 않으신다 하는데, 방법이 없었습니다.”
체스커의 주장은 관리소장이 중간에서 열심히 벽을 치고 있었다는 뜻인데…….
확실히 관리소장도 디미트리 상단과의 이면 계약은 없었다고는 했지만, 그건 자신의 죄를 축소하려는 시도일 가능성도 있었다.
이들이 말하는 금품, 선물, 지분을 받았다는 이야기도 하지 않았으니 말이다.
뭐, 실제로 결백하다고 해도 아무 상관 없지만 말이지.
“서로 죄를 뒤집어씌우려고만 하니 어느 쪽 말이 맞는 건지 모르겠군. 아니면 둘 다 거짓말을 하는지도 모르는 일이고.”
나는 슬쩍 터커가 무언가를 이실직고했다는 식의 뉘앙스를 풍겼다.
반응은 즉각 돌아왔다.
“하, 설마 그자가 그렇게 말했습니까?”
“그거야 그쪽이 제일 잘 알 거 아닌가.”
나는 잔에 음료를 따르며 무심하게 대답했다.
왜 이런 상황에서 술을 따르면서 대답하나 했는데, 이게 또 해 보니 나름의 맛이 있었다.
상대는 땀을 뻘뻘 흘리는데도, 나에게는 이게 별일 아니라는 것을 온몸으로 보여 주는 기분. 정말 최고였다.
한마디로 갑질하는 맛이 짜릿짜릿했다.
“관리소장을 직접 만나게 해 주십시오. 오해를 풀어 드리겠습니다.”
나는 체스터에게 고개를 저어 보였다.
“만나서 서로 입을 맞출지도 모르는데? 나는 그저 제대로 된 진실을 밝히고 싶을 뿐이야. 빚이 있다면 어떻게 받아 낼지는 그다음 이야기지. 그래서 말인데, 특무대에 부탁을 해 볼까 생각 중이네. 운이 좋게도 내가 그쪽을 동원할 연줄이 좀 있어서 말이야.”
“공자님, 그건……!”
체스터는 이번에야말로 침착함을 완전히 잃었다.
얼마나 놀랐는지, 급히 꺼낸 목소리는 심하게 갈라져 나왔다.
“뭘 그렇게 놀라나. 우리 가문은 돈만 많지 인재는 없어. 지금 당장 이 서류를 보고 이해할 수 있는 사람도 몇 없을 정도지. 그런 상황에서 우리가 직접 조사를 할 수는 없지 않나. 그렇다고 그쪽에서 내미는 자료를 그대로 믿을 수도 없는 일이고.”
나는 태연하게 말했지만, 체스터 입장에서는 절대 태연하게 들을 수 없는 내용일 것이다.
특무대에 조사를 맡기겠다는 말은 곧, 왕실의 사냥개라 불리는 냉혈한들에게 상단의 긴밀한 정보까지 탈탈 털린다는 뜻이었으니까.
아무리 떳떳한 상단이라고 해도, 자신들도 모르고 지나친 먼지 한 톨이라도 나오게 되는 순간 진정한 지옥이 뭔지를 보게 되는 것이다.
“남작님, 아니 공자님께서 만족하실 때까지 얼마든지 조사하셔도 좋습니다. 필요한 비용부터 인원까지 전부 저희가 지원하겠습니다.”
“흠… 그 말은 왠지 내가 있는 고생, 없는 고생을 다 해야 할 것처럼 들리는군. 그다지 내키지 않는 제안이야.”
상대의 명줄을 쥐고 흔들 수 있는 명분이 생긴 지금, 내게 디미트리 상단의 결백 여부는 전혀 관심 밖의 이야기다.
쓸모가 있어 보이면 숨을 붙여 놓을 것이고, 쓸모가 없다면 지금까지 얻은 이득을 다 토하게 해서 쓸모를 만들 뿐이다.
그 방법이 디미트리 상단을 공중분해 하는 것이라고 해도 말이다.
그러니, 지금 디미트리 상단은 무죄를 주장할 것이 아니라 자신들의 쓸모를 증명해야 한다.
그것을 눈치챈다면 살 것이고, 그런 것마저 캐치하지 못할 놈들이라면 관리소장이 만든 손해를 메우는 제물이 되는 것이고.
디미트리 상단을 공중분해 하고, 그 시체를 수거할 방법은 아주 많이 있었다.
이를 테면… 관리소장의 입에서 디미트리 상단이 자신에게 사주한 것이라는 자백이 나온다던가 하는 것 말이다.
나는 안절부절못하는 체스터에게도 음료가 담긴 잔을 하나 내밀었다.
“…감사합니다.”
이런 자리에 보냈다는 것은 그만큼 능력도 있고 노련하다는 평가를 받는 인물이라는 뜻이겠지만, 아무리 뛰어난 협상의 귀재라고 해도 이렇게까지 아무런 카드가 없으면 협상 자체를 할 수가 없는 법이다.
체스터의 답답한 얼굴에는 그의 막막한 심정이 그대로 드러났다.
“사흘 주지. 그 안에 나를 납득시킬 방법을 찾아와.”
체스터는 대답에 앞서 차가운 음료를 꿀꺽꿀꺽 삼켰다.
“…사흘 뒤에 뵙겠습니다.”
“그러지.”
그 말을 마지막으로, 협상의 기회조차 얻지 못한 협상가는 쓸쓸히 돌아갔다.
* * *
작은 입에 음식을 넣고 오물거리는 루시아, 언제나 온화한 표정을 보여 주는 에일라, 그리고 이 자리에 없는 남작과 레온까지.
정말 완벽한 식탁이었다.
거기에 더해 내일로 다가온 디미트리 상단과의 담판을 생각하느라 괜히 좋아지는 기분까지 겹친 나는 콧노래가 절로 나올 지경이었다.
“루크, 오늘은 기분이 좋아 보여요. 요즘 너무 바빠서 건강이라도 해칠까 걱정했는데.”
“과하게 튼튼해서 걱정이라면 몰라도 잔병치레를 할 정도로 허약하지는 않아요. 어머니.”
“정말 다행이에요… 기억까지 돌아오면 좋을 텐데…….”
이제는 에일라도 내가 어머니라 부르는 것에 익숙해졌지만, 내가 기억을 찾지 못하는 것을 걱정하고 있는 건 여전했다.
정말, 기억을 찾으면 자신에게 좋을 게 없을 확률이 높은데도 저러는 것을 보면 착한 것을 넘어서 멍청하다 싶을 정도다.
“루시아, 요즘 오라버니를 많이 귀찮게 하는 것 같아 보이던데, 남작님이 맡긴 일만으로도 바쁠 텐데, 너까지 그래서야 되겠니?”
음식을 오물거리던 루시아는 갑자기 불똥이 자신에게 튀자, 주눅 든 눈으로 내게 구조 신호를 보내왔다.
그 귀여운 구조 신호는 무시하기에는 너무 간절했다.
“전혀 방해되지 않습니다. 지금 당장은 그리 바쁠 것도 없고요. 같이 있을 때 봐 둬야죠.”
“정말… 루시아, 너무 어리광부리고 그러면 안 되는 것, 알고 있지?”
“예, 어머니.”
나는 루시아를 향해 한쪽 눈을 찡긋거려 보였고, 그것을 본 루시아는 밝게 미소 지었다.
정말, 유전자의 승리라고 해야 할까.
남작의 유전자만 있었다면 외모는 반반해도 레온처럼 싸가지와 재수가 동시에 결여된 꼬맹이가 됐을지도 모르는데, 에일라의 유전자 하나로 이렇게 착하고 귀여운 꼬마 숙녀가 탄생하다니.
나는 속으로 에일라에게 심심한 감사를 표했다.
화기애애한 식사가 끝나갈 때쯤 하녀들이 후식을 가져왔다.
보기만 해도 상큼한 딸기 타르트였다.
하지만 딸기 타르트는 내 앞에만 놓여졌다.
에일라는 귀족 부인답게 몸매 관리를 위해 단것을 멀리했고, 루시아도 조기 관리를 중요시하는 에일라 덕에 당연스럽게 못 먹는 신세였다.
루시아는 최근에 내 방에 숨어서 군것질을 마음껏 하는데도, 딸기 타르트를 부러운 눈초리로 보고 있었다.
“루시아, 너도 조금 먹을래?”
“그래도 되나요?”
내 물음에 루시아가 반색을 했다.
“루시아.”
하지만 바로 단호한 에일라의 목소리가 이어졌고, 루시아는 시무룩한 얼굴로 물러났다.
나는 그 모습에 피식 웃으면서 조각낸 타르트를 입에 넣었다.
하지만 바삭한 식감과 상큼한 딸기의 과즙, 달콤한 크림이 입을 즐겁게 한 것도 잠시, 목으로 그것을 넘기는 순간, 이질적인 마력이 새어 나왔다.
두근.
그 마력이 생성되는 것에 맞춰 심장이 한번 크게 박동하자, 이질적인 마력이 흔적도 없이 흩어졌다.
나는 의아함에 가슴에 손을 얹었다.
이 느낌은… 설마 파마의 인이 발동된 건가?
그런 생각을 하는 순간.
“쿨럭……!”
“루, 루크!”
“오, 오라버니!”
입에서 피를 토해 냈다.
“컥, 컥.”
젠장, 무슨 일인지 생각할 여유가 없었다.
통증이 전혀 느껴지지 않는데도 입에서는 끊임없이 피를 토해내고 있었고, 몸을 전혀 내 마음대로 움직일 수가 없었다.
게다가 가눌 수 없는 몸과는 달리, 내 마력은 미친 듯이 요동치기 시작했다.
쿠웅.
나는 어떻게든 버티려고 했지만, 결국 바닥에 쓰러지고 말았다.
“오라버니! 오라버니!”
나를 잡고 흔드는 루시아의 하얀 드레스가 붉은색으로 물들었다.
점점 시야가 어두워지고, 주변 사람들의 소란스러운 비명 소리도 멀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