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ll special! Dungeon Master RAW novel - Chapter 60
60
“이번에 불미스러운 사건이 있었지. 내 집, 내 식탁에서 독을 먹고 쓰러졌어. 나는 아팠고, 모두가 놀랐고, 내 동생은 잊기 힘든 안 좋은 기억을 얻게 됐어. 말 그대로 불미스러운 일이야.”
모인 사람들은 역시나, 하는 표정을 지었다.
올 게 왔다는 표정.
몇몇 예외도 있었지만, 대부분은 다들 그랬다.
“범인을 도운 그 하녀가 왜 그랬는지는 몰라. 돈을 받았는지 아니면 가족을 인질로 잡혀 협박을 당했는지. 그래서 결론을 내렸다. 배신할 이유를 없애자. 그리고 충성의 이유를 만들자.”
내 얘기가 계속될수록 사람들의 얼굴에서 불안이 점점 줄어들고, 그 자리를 의문이 차지하고 있었다.
모두의 표정에 ‘이놈이 지금 무슨 소리를 하는 거지?’라는 의문이 떠올랐을 때, 나는 그 의문에 대답을 해 줬다.
“지금부터 누가 돈을 주면서 무언가를 시키면, 고개를 끄덕이고 돈을 받아도 좋아. 그리고 바로 나에게 달려와서 그 내용과 시킨 자를 알려 주면 된다. 그러면 받은 돈의 두 배를 더 얹어 주도록 하지.”
“저, 정말로 받아도 됩니까?”
“너, 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 큰일 나려고! 죄송합니다, 도련님. 이놈이 워낙 눈치가 없어서.”
하인 한 명이 질문하자 옆에 있던 하녀가 화들짝 놀라서 하인의 입을 틀어막았다.
하지만 나는 피식 웃고 질문에 대답했다.
“받아. 받지 않으면 입막음을 하려고 들 테니까. 내가 뭐라고 죽어 가면서까지 충성을 해?”
“…협박을 당하면 어떻게 하죠……?”
이번에는 다른 하녀였다.
나이를 봐서는 아마도 아이가 있는 자가 아닐까 싶었다.
“죽은 하녀의 가족이 어떻게 됐는지, 다들 대충은 알고 있겠지. 돈도 아니고 목숨, 가족을 빌미로 협박하는 놈들 말에 놀아나 봐야 결국에는 그렇게 되는 거지. 그러니까 협박을 당하면 더더욱 나에게 와서 말해. 본인이나 가족이 위험에 처했다면 최대한 도와줄 거고, 이미 죽어 있다면 적어도 복수는 해 줄 수 있으니까.”
분위기는 돈 얘기를 할 때보다 다섯 배는 무거워져 있었다.
“꼭 그렇게 하겠습니다!”
무거운 분위기 속에서 뜬금없이 우렁찬 목소리가 터져 나왔다.
나는 목소리의 주인공을 바라봤다.
산적처럼… 아니, 어디선가 본 것같이 익숙한 얼굴이었다.
잠시 기억을 더듬은 결과, 나는 그가 전쟁터에서 생존해서 나와 함께 돌아온 사병이라는 걸 기억해 냈다.
넝마를 걸치고 있을 때와는 달리, 지금은… 음, 그래, 깔끔한 산적처럼 생겨서 순간 못 알아볼 뻔했다.
나는 그에게 기억하고 있다는 의미로 장난스럽게 경례를 붙였다.
“내 얘기는 여기까지다. 그럼, 해산.”
“해산!”
나를 제외한 모두가 복명복창하는 산적을 이상한 눈으로 쳐다보고 있었다.
* * *
“후아…….”
나는 방에 올라오자마자 깊은 숨을 내쉬었다.
암살자들을 처리한 검은 옷의 여자를 생각하면 아직 찜찜함이 남아 있긴 하지만, 그래도 일단은 숙제를 끝낸 기분이다.
지금 당장 거슬리는 것도 아니고, 이제는 정말로 내 일에 집중해야 할 때였다.
정신없이 지내는 와중에 시간도 많이 흘러서 언제 수도로 가야 할지 모른다.
그렇게 되면 지금처럼 온전하게 나에게 시간을 쏟을 수 없을 테니, 지금 이 황금 같은 시간을 잘 활용해야 했다.
나는 마음을 다잡고, 가장 먼저 오늘 처리해야 할 것을 선별하기 위해 던전창을 활성화시켰다.
최근에 너무 바빠서 차지하기만 하고 방치한 던전들이 너무 많다.
나는 그런 던전들을 오늘 전부 재정비하기로 했다.
그런데 첫 번째로 선택한 던전의 관리창을 띄우려는 순간, 반투명한 홀로그램 너머로 보이는 시야에 보여선 안 되는 것이 눈에 들어왔다.
방 한가운데 지옥 주머니와 비슷한 검은 구멍에서 하얗고 얇은 기둥 하나가 불쑥 튀어나온 것이다.
“……!”
나는 너무 놀라서 그게 무엇인지 확인하기도 전에 몸을 굴리며 무기를 꺼내 들었다.
그나마 바로 꺼낸 무기를 바로 쏘아 내지 않은 것만으로도 내 침착함에 박수를 쳐 주고 싶을 정도로 갑작스런 등장이었다.
발?
순식간에 전투 준비를 하고서야 겨우 튀어나온 것을 관찰할 여유가 생긴 나는, 그것이 인간의 다리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작은 구멍이 답답한지 심하게 퍼덕거리던 다리 옆으로 손이 하나 추가됐다.
나는 당장 저 다리를 잘라 버려야 하지 않을까 고민했다.
“이익!”
이제는 다리가 비명까지 지르……?
나는 낑낑거리는 다리가 목소리까지 내는 모습에 놀라려고 했지만, 어디서 한번 들어본 소리였다.
“이, 이게 왜 이렇게 빡빡한 거지? 저, 저기 혹시 밖에 누구 안 계신가요?”
“…….”
겨우 다리 한쪽과 손 하나만 허공에 매달려서 퍼덕대고 있는 구멍에서 흘러나오는 소리는 내가 알고 있는 목소리였다.
아니, 사실 목소리는 정확히 기억나지 않는데, 저 얼빵한 말투와 억양은 확실히 기억이 난다.
그동안 정신이 없어서 잊어버리고 있었는데, 어느새 그때부터 보름쯤 지난 것 같긴 했다.
나는 그래도 혹시 모를 사태에 대비해 무장은 유지한 채로 조금 가까이 접근했다.
“뭐하냐?”
“어? 여, 역시 계셨군요. 나가지질 않아서 잘못 온 건가 싶었는데. 저 좀 도와주시면 안 될까요?”
“…….”
나는 반갑다는 듯이 퍼덕이는 다리와 손을 보며 오만가지 생각이 들었다.
아마 지금 내 표정을 분석하면 한심, 경멸, 멸시 같은 감정이 대부분을 차지할 것이다.
거울을 보지 않아도 지금 내 표정이 어떨지 눈에 훤했다.
나는 아무 말 없이 벨로제의 다리를 잡고 있는 힘껏 당겼다.
아니, 그것보다 도대체 왜 신발도 안 신고 맨다리로 돌아다니는 거야?
“꺄아악! 아파, 아파요!”
“이런 젠장! 그럼 어떻게 하라는 거야! 들어가서 살 빼고 다시 나오던가!”
나는 이게 도대체 무슨 짓인가 싶어서 비명을 지르는 벨로제에게 소리를 질렀다.
“설마… 저 살쪘나요?”
“…….”
구멍에서 흘러나온 벨로제의 목소리는 정말 진지하고, 심각했다.
그 목소리가 너무 진지해서 정말 다리를 잘라야겠다는 충동이 고개를 들었다.
“3분 준다. 아니면 내 방식대로 꺼내 주지.”
“그럼 3분만 기다리면 꺼내 주시는 건가요?”
대단히 창의적인 발상이군.
“그래. 조각내서 꺼내는 것도 괜찮으면 그렇게 하던가.”
“…노, 농담이시죠?”
나는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다.
“10분으로 늘려 주세요!”
현실을 직시한 벨로제는 협상을 시도했지만, 나는 이번에도 대답하지 않았다.
정말로 위기의식을 느낀 벨로제는 필사적으로 꿈틀거리기 시작했다.
역시 인간이나 악마나 궁지에 몰아야 노동의 효율이 올라가는 건 매한가지라는 게 증명된 것이다.
벨로제는 다리가 잘리기는 싫은지 정말 필사적으로 꿈틀거렸고, 그 처절함에 비례해서 구멍은 점차 커져 갔다.
쿠웅.
그리고 그녀는 2분 41초 만에 구멍에서 빠져나오는 쾌거를 이뤄 냈다.
“돼, 됐다!”
바닥에 철퍼덕하고 떨어진 벨로제는 기쁨의 외침을 내질렀지만, 나는 눈을 의심하고 있었다.
맨다리일 때부터 의아하긴 했지만, 구멍에서 떨어진 벨로제의 복장은… 비키니 차림이었던 것이다.
차라리 알몸이었다면 어렵게 납득은 했을지도 모른다.
지옥에서 옷을 입고 돌아다니는 죄인은 없을 테니까.
그런데… 비키니라니?
“…너 복장이 왜 그래?”
나는 어느새 잽싸게 일어나서 발갛게 부은 허벅지를 문지르고 있는 벨로제에게 물었다.
“아, 이거요? 마스터께서 좋아하실 것 같아서 준비했어요.”
“…….”
나는 벨로제의 당당한 모습에 할 말을 잃었다.
“연수가 끝날 때 세 달치 월급을 담보로 샀죠. 첫인상이 중요하니까 이런 걸 입어 줘야 한다고 하더라고요. 어떤가요?”
나는 조용히 눈을 감았다.
벨로제의 흰 피부가 눈이 부셔서는 아니었다.
“받지도 않은 월급을 세 달치나 담보로 잡고 그걸 샀다고?”
“네, 이걸 입으면 팁으로 그것보다 더 많이 벌 수 있다고 하던데요?”
“팁? 누구한테 팁을 받아?”
벨로제는 당연하다는 듯이 손가락으로 나를 가리키고 있었다.
나는 그 손가락을 사정없이 꺾어 버렸다.
“아아악, 왜, 왜 이러시는 거예요!”
나는 벨로제가 비명을 지르든 말든 꺾은 손가락을 아래로 눌러서 그녀를 무릎 꿇렸다.
“야.”
“네?”
꺾인 손가락을 쥐고 끙끙대던 벨로제는 내 목소리가 들리자마자 손을 뒤로 숨겼다.
“더 이상 멍청한 소리는 작작하고, 네가 할 수 있는 걸 읊어 봐. 아니다, 여기다 적어.”
나는 벨로제에게 펜과 종이를 던졌다.
“음, 제가 할 수 있는 거 말이죠?”
“그래.”
벨로제는 무릎 꿇은 자세로 종이에 이것저것 적어 나갔다.
그 모습을 책상에 기댄 채 바라보던 나는, 문득 든 불안함에 다시 한번 말했다.
“거기도 뭐, ‘사과 파이를 만들 수 있습니다.’ 같은 헛소리나 적으면 넌 환불이야. 바로 지옥행이라고. 지옥 상점과 관련해서, 지옥에 대한 정보에 관련해서 나한테 도움이 될 걸 적으란 말이야.”
내 말을 들은 벨로제의 등이 움찔했다.
그러더니 적어 놓은 대부분의 것들을 급히 지워 나간다.
그리고 나는 그 꼴을 보고 손으로 눈을 덮었다.
그때.
누군가가 방문을 노크했다.
“도련님, 다과를 준비했습니다.”
젠장, 크리스였다.
그러고 보니까 곧 루시아도 올 시간이었다.
“크, 크리스, 잠깐만 지금 뭘 좀 하고 있어서.”
나는 황급히 크리스를 들어오지 못하게 말리는 동시에, 벨로제에게 날카로운 눈빛을 보냈다.
‘빨리 사라져.’
“왜… 읍읍!”
이 멍청이가!
나는 눈치 없이 되물으려는 벨로제의 입을 막고, 귀에 속삭였다.
“빨리 돌아가. 지금 사람 온 거 안 보여?”
“아, 아직 다 못 적었는데요……?”
“거짓말하지 마. 벌써 3분째 종이만 쳐다보고 있었으면서.”
나는 벨로제의 손에 들린 종이를 강제로 빼앗았다.
“저 잘리는 거 아니죠……?”
“안 자를 테니까 빨리 사라져. 아니면 진짜 반품해 버릴 거니까.”
“아, 알겠습니다.”
벨로제는 내 엄포에 겁을 먹고는 나올 때와 같은 구멍을 만들더니, 쏘옥 하고 들어갔다.
“도련님, 혹시 몸이라도 안 좋으신 건가요?”
“아냐, 아냐, 이제 들어와도 돼.”
나는 걱정스럽게 말하는 크리스를 안심시켰다.
젠장, 하마터면 온 집안에 변태 새끼로 낙인찍힐 뻔했네.
벨로제의 존재를 들키는 것 자체도 문제인데, 저 꼴을 하고 들키는 건 더 문제였다.
나는 가슴을 쓸어내리며 벨로제한테 뺏은 종이를 봤다.
“도련님, 표정이 많이 안 좋으신데, 정말 괜찮으신 거죠?”
접시를 내려놓은 크리스가 심각한 표정으로 물어온다.
“어… 정말 괜찮아, 정말로…….”
말로는 괜찮다고 했지만, 내 심정은 착잡했다.
무려 5분 동안 적어 놓은 게 이게 다라니…….
한편으로는 3번에 찍혀 있는 점들이 짠하기까지 했다.
그리고 1번 위로 지워져 있는 8개의 검은 덩어리들은 도대체 뭘 적었다가 지웠는지 짐작도 안 갔다.
-죄송합니다……. 갑자기 적으라고 하시니까 뭘 적어야 할지 모르겠어서요……. 그래도 저 정말 열심히 교육받았으니까, 궁금한 거 물어보시면 대답해 드릴 수 있어요. 정말이에요.
응?
나는 머릿속에서 울리는 시무룩한 벨로제의 목소리에 깜짝 놀랐다.
설마…….
나는 몬스터들에게 명령할 때처럼 정신을 집중해서 의사를 전달하려고 해 봤다.
-들리냐?
-네, 당연하죠.
-…이렇게 의사소통이 되면 왜 굳이 튀어나온 거야?
-에이, 그래도 첫 대면인데 어떻게 얼굴도 안 보고 인사를 드려요.
쓸데없이 예의가 바른 악마군.
-그래, 내가 질문을 하면 대답을 해 보겠다, 이거지?
-네, 저 아는 거 되게 많아요.
나는 벨로제의 잘난 척은 싹 무시하고, 시험 삼아 뭘 물어볼까를 고민했다.
복잡한 건 이 바보가 어차피 모를 거고, 지옥 상점을 쓰면서 느꼈던 의문들 위주로 물어야 할 텐데…….
아.
-그러고 보니까, 지옥 상점에서 스킬도 팔던데, 왜 4단계도 그렇고, 5단계도 그렇고, 스킬이 없거나 쓸데없이 자잘한 것만 파는 거야? 더 단계가 올라가야 하는 건가?
-아, 그거, 그게…….
어째 눈에 안 보이는데도 매뉴얼인가 뭔가 하는 걸 뒤적이는 모습이 보인다, 보여.
뭐, 뒤져서라도 대답을 할 수 있으면 다행이지만.
-아, 여기 있네요. ‘지옥 상점의 상품은 해당 고객의 재능에 맞춰 판매 물품의 단계 및 종류가 결정된다. 재능이 없는 자는 그 수준에 맞는 상품만을 구매할 수 있다.’
아는 게 많다더니, 결국은 매뉴얼을 읽어 내려가는 건가.
그런데 그 내용이랑 유독 명랑하게 들리는 벨로제의 목소리가 가슴을 후벼 판다.
-…그러니까 네 말은 내가 쥐뿔 재능이 더럽게 없어서 제대로 된 스킬은 구경도 못하고 있다는 말이네?
-제가 아니라 여기 매뉴얼이 그랬어요. 혹시 기분 나쁘시면 매뉴얼 드릴 테니까 찢거나 태우시겠어요?
-됐다…….
나는 벨로제에 대한 평가를 굳혔다.
얘는 멍청하지만 모자란 애였다.
젠장, 궁금한 게 하나 해결됐는데도 전혀 시원하지도, 기쁘지도 않았다.
오히려 조금 가슴이 아프다고 해야 하나.
그냥 못 구한다고 하면 그냥 아쉽고 말겠는데, 대놓고 더럽게 재능 없다는 판정을 받으니까 아무리 나라도 기분이 영 안 좋았다.
그래, 그래도 아예 불량품을 주문한 게 아닌 게 어디야.
지금은 벨로제가 쓸모 있을 수도 있다는 작은 희망을 발견한 걸로 만족하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