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ll special! Dungeon Master RAW novel - Chapter 65
65
“흑, 흑, 다시는 안 그럴게요……. 그냥 뒀다가는 저랑 연결까지 끊어질 것 같아서…….”
나는 두 손을 머리 위로 들고 훌쩍거리는 벨로제를 탐탁찮은 눈으로 바라봤다.
하지만 확실히 그녀의 헛소리 덕분에 위기를 극복한 것도 사실이다.
벨로제가 하루에 밖에서 활동할 수 있는 시간은 겨우 1시간, 그것도 10분당 1,000 네거티브 포인트를 내가 지불해야 가능했다.
내가 거의 신경을 끄고 살아서 이렇게 나오는 경우도 별로 없는데, 기껏 나와서 질질 짜고 있는 모습을 보니까 살짝 마음이 약해지긴 했다.
“또 한번 그딴 헛소리 했다가는 알아서 해.”
“네!”
방금 전까지는 질질 짜더니, 화가 조금 풀린 기색을 보이자마자 바로 대답이 날아온다.
눈치가 없는 것 같으면서도, 상대가 호의적인지, 적대적인지는 귀신같이 알아채는 모습이 꼭 눈치 없는 시골 똥개 같았다.
“난 할 게 있으니까 대충 있다가 돌아가.”
“네, 완전 조용히 있다가 갈게요.”
설마 30분 안에 크리스가 돌아올 일은 없겠지.
나는 그렇게 생각하며 상태 창을 활성화시켰다.
나는 눈앞의 상태 창을 바라보며 정령의 용광로에서 있었던 일들을 상기했다.
특성과 특성의 충돌이나 특성의 변환 같은 것들도 놀랍고 생각을 해 봐야 하는 문제지만, 그 문제들의 중심에 있는 것은 지금 내 눈앞에 떠있는 이 홀로그램 화면이다.
아까의 상황은 뭐라고 해야 할까… 그래, 시스템의 폭주에 가까웠다.
침투하는 바이러스에 대항하는 백혈구 같은 반응.
백혈구와 다른 점이라면, 내 의지에 따라 문제 해결의 방향성을 수정했다는 것 정도였다.
아직까지도 추가적인 설명을 확인할 수 없는, 계속해서 침묵하고 있는 특성, 이세계의 영혼.
이세계의 개념이 나를 돕는다는 간단한 한 줄짜리 설명뿐이지만, 나는 왠지 이번에도 저 특성이 개입을 하고 있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사악, 던전 메이커, 던전 마스터 같은 겉으로 드러난 특성도 중요하지만, 왠지 내 능력의 기저에 깔린 기반은 이 특성이 아닐까 하는 그런 예감 말이다.
이번 현상은 게임에 흔히 있는 스킬 변환이나 합성과 대입해 보면…….
우당탕.
한참을 생각에 빠져 있던 나는 갑작스럽게 들린 굉음에 깜짝 놀라 고개를 돌렸다.
“헉.”
그리고 나와 눈이 마주친 벨로제가 숨을 삼킨다.
“죄, 죄송합니다, 제가 다 정리해 놓을게요.”
와장창.
“…….”
벨로제는 어설프게 쌓인 짐들을 뒤지다가 완전히 무너뜨려 버렸다.
“후우… 일단은 뭐 하다 그랬는지 들어나 보자.”
“아, 안에서 좋은 냄새가 나서…….”
한껏 기가 죽은 벨로제는 바닥을 보면서 웅얼거렸다.
안에서 좋은 냄새?
나는 도대체 무슨 소리인가 싶어서 염동력으로 물건들을 전부 치워 봤다.
“과자잖아.”
나는 둥둥 떠 있는 물건들 중에서 디미트리 상단에서 가져왔던 과자 상자가 있는 것을 발견했다.
“이거예요.”
역시나 벨로제는 손가락으로 과자 상자를 가리키고 있었다.
“…너 먹어라.”
“정말요? 감사합니다!”
갑자기 큰 소리가 나는 바람에 났던 짜증이 어영부영 사라져 버렸다.
아마 벨로제가 지옥에 떨어진 이유를 알고 있어서일까.
지옥에 떨어진 것도 모자라서 여기 와서까지 구박을 받으면서, 뭐가 그렇게 좋은지 싱글거리며 과자 상자를 끌어안는 모습이 짠하긴 했다.
그런데 도대체 어떻게 밀봉된 상자 안에 들어 있는 과자 냄새를 맡은 거지?
눈치만이 아니라 후각까지 시골 똥개랑 닮은 건가.
[이세계의 영혼]나는 한껏 들뜬 벨로제에게서 눈을 돌려 마지막으로 상태 창에 떠 있는 글자를 노려봤다.
하지만 그런다고 숨어 있는 추가 설명이 뜨는 일은 없었다.
젠장, 일단 얻은 특성이나 살펴봐야지.
[타락한 정령의 이해(SSS 등급)] [당신의 정령에 대한 인식은 저열하게 타락했습니다.] [소유한 정령 계열 몬스터를 흡수하여 해당 정령의 대표 스킬을 사용할 수 있습니다.(네거티브 포인트를 소모합니다.)] [중첩 시에는 마지막으로 흡수한 정령 계열 몬스터만이 적용됩니다.] [모든 선한 정령들이 당신을 미워하고 배척할 것입니다.]멀쩡한 특성이 내게 오염돼서 만들어진 돌연변이 특성.
그런 만큼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정령과 관련된 능력과는 거리가 멀었다.
정령의 힘을 빌려다 쓰는 자들은 대부분 정령과의 교감, 상생을 추구하는데, 이건 어디로 봐도 그런 것들과는 상관이 없어 보인다.
뭐, 돼지고기를 먹는 게 돼지와의 교감과 상생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라면 또 다르게 보이겠지만 말이다.
나는 특성을 테스트하기 위해서 지옥 상점을 뒤지기 시작했다.
찾았다.
정령 계열 몬스터는 4단계부터 보였는데, 고유의 이름조차 갖지 못한 하급 정령들이 대다수였다.
썩은 웅덩이 정령은 비주얼에서 탈락이다.
생긴 게 시궁창에서 건진 건더기처럼 생긴 걸 흡수하고 싶지는 않다.
물이나 땅이랑 관련된 것들은 전부 생긴 것부터 끔찍한 것들이 대부분.
물이랑 땅을 제외하면… 5단계에 있는 타락한 화톳불이라는 정령밖에 선택지가 없었다.
타락한 화톳불도 검은 그을음을 잔뜩 토해 내는 지저분한 불덩이였지만, 기본이 썩어 문드러진 것부터 시작하는 것들에 비하면 천하제일의 미남이라고 할 수 있다.
나는 타락한 화톳불을 구입하고, 다시 이곳으로 소환했다.
가격만 130,000포인트에, 소환하는데 들어가는 포인트까지, 타락한 화톳불을 여기에 가져오는데 든 포인트만 총 520,000포인트가 소모됐다.
벌어들이는 네거티브 포인트가 엄청나게 늘었다고 해도 뼈아픈 지출임은 부정할 수 없었지만, 빠르게 능력을 테스트해 보고 싶었다.
[타락한 화톳불을 흡수하시겠습니까? 130,000네거티브 포인트가 소모됩니다.]그나마 흡수할 때 소모되는 건 1:1 비율이라서 다행이네.
나는 포인트를 지불하고, 흡수를 시작했다.
“끄에에에에엑.”
흡수가 시작되자, 타락한 화톳불은 원래 토해 내던 것과는 비교도 안 되는 양의 그을음을 토해 내면서 비명을 질렀다.
짓밟히는 갓난아이 같은 끔찍한 비명은 나뿐만 아니라 벨로제의 시선까지 빼앗았다.
하지만 그런 끔찍한 비명에도 이미 내려진 결정이 번복되는 일은 없었다.
화톳불은 점사 흩어져서 내 몸에 흡수되고 있었다.
나는 끔찍한 비명에 소름이 돋으면서도 흡수되는 방식을 확인하고, 썩은 웅덩이 정령을 고르지 않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시궁창 건더기가 분해되어 내 몸을 덮치는 상상을 하는 것만으로도 밥맛이 떨어질 것 같았기 때문이다.
내가 그런 쓸데없는 생각을 하는 사이, 어느새 화톳불은 완전히 나에게 흡수됐다.
[타락한 화톳불이 당신에게 흡수되어 영원히 소멸하였습니다. 화염 생성 Lv.5를 사용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마, 마스터, 괜찮으세요?”
끔찍한 비명에 잔뜩 쫄아 있던 벨로제가 조심스럽게 물어왔다.
“넌 걱정을 할 거면 과자나 놓고 해.”
나는 벨로제에게 핀잔을 던지는 동시에 가슴을 쓸어내렸다.
내심 이번에도 더럽게 아프면 어쩌지 하고 잔뜩 긴장을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내 걱정과는 달리 흡수하는 과정에서 불쾌했던 점이라고는 끔찍한 비명 소리뿐이었다.
어찌 됐든 무사히 흡수도 했으니, 바로 써먹어 봐야겠다.
나는 벨로제를 향해 손가락을 튕겼다.
그것에 맞춰서 탁한 불꽃이 생성되어 손가락 끝에 맺힌다.
“누가 재능이 없다고?”
나도 모르는 사이에 많이 서러웠나 보다.
나답지 않게 이런 걸로 잘난 척을 하고 싶어지다니.
그런데 자신만만한 웃음을 짓고 있는 나와는 달리 벨로제의 얼굴을 별다른 놀람이 보이질 않았다.
아니, 오히려 표정이 애매한 것이… 동정심마저 보이고 있었다.
“엄청 요란해서 저는 훨씬 대단한 게 나올 줄 알았는데… 딱 기본 화염 마법 수준이네요……. 그, 그래도 없는 재능을 노력으로 극복하신 모습이 너무 보기 좋아요.”
“…….”
나는 비아냥에 가까운 위로를 듣고, 조용히 손가락 끝에 맺힌 불꽃을 없앴다.
더 큰 불꽃도 만들 수 있다면서 오기를 부리는 건 더 추해지는 길인 것 같아서 그만두기로 했다.
“아직도 30분 안 됐냐?”
하지만 말이 곱게 나오지 않은 건 어쩔 수 없는 일.
“아, 맞다, 빨리 다 먹어야지.”
나는 허겁지겁 남은 과자를 입에 밀어 넣는 벨로제를 노려봤다.
“볼 터지겠다, 터지겠어.”
“우어엉? 우어어어엉!”
내 타박에 고개를 들던 벨로제는 제한 시간이 다 됐는지, 몸이 투명해지기 시작했다.
어떻게든 과자를 더 집으려고 허우적대는 손도 그저 통과될 뿐, 물리적인 힘을 행사하지 못했다.
그렇게 나는 벨로제가 사라진 방에 홀로 처량하게 남았다.
이제 불도 만들 수 있게 됐는데… 새로운 특성도 얻었는데… 왜 이렇게 울적한 건지.
재능충들 다 죽었으면…….
* * *
“꺄하하핫, 어떻게 거길 다녀오고도 기껏 불덩이 하나 만드는 것밖에 못할 수가 있어? 정말 정령 소환 못하는 거야?”
“…….”
다음 날, 정령의 용광로에 다녀온 성과를 확인하는 자리에서 카이네는 숨을 헐떡이며 나를 놀리고 있었다.
“그래도 신기하긴 하다. 네가 만드는 불, 정말 정령이 만드는 불이랑 똑같아. 그렇죠? 스승님.”
“맞아, 정말 이런 결과는 생각도 못했는데……. 이렇게까지 내 예상을 뛰어넘은 건 루크, 네가 처음이야. 그런데 정작 마법으로는 불을 만들 수 없는 건 도대체… 정말 머리가 나빠서 그런 건가?”
그런 생각은 좀 속으로 해 주면 고맙겠는데요.
나는 속으로나마 울부짖고 싶었지만, 카이네는 그럴 여유도 없이 나를 들들 볶았다.
“루크, 그거 해 봐, 그거!”
나는 한숨을 내쉬면서 다시 손가락 끝에 커다란 불덩이를 만들었다.
그것을 본 카이네는 다시금 숨이 넘어가라 웃기 시작했다.
“꺄하하핫, 정령이랑 친해지라고 했더니 왜 반쪽짜리 정령이 돼서 돌아온 거야, 허억, 허억, 너 나 웃겨서 죽이려고 하는 거지?”
“제발 부탁이니까 그렇게 돼 주세요.”
제발, 내일은 웃다 죽은 여자의 장례식에 참석하고 싶다.
두고 봐, 지금은 이게 다지만, 나중에 진짜 제대로 된 정령을 흡수해서 아주 코를 납작하게 해 줄 테니까.
내가 그렇게 이를 갈고 있을 때, 언제 마지막으로 봤는지 모를 메시지가 나타났다.
[지옥 상점에서 공지 사항이 도착했습니다. 확인하시겠습니까?]메시지를 확인하자마자 표정이 굳어 버렸다.
뭐, 이미 놀림 받느라 뚱한 표정이었던지라 별로 차이는 없겠지만.
“저 오늘은 이만 가 보겠습니다. 놀림 받는 것도 지겹네요.”
“삐졌어? 삐진 거야?”
나는 아예 카이네 쪽은 쳐다보지도 않았다.
“너무 상심하지 마. 네 지금 상태는 정말 희귀한 상태니까, 앞으로 어떤 식으로 발전할지 알 수 없어. 오히려 머리를 쓰지 않아도 되는 그런 방식이 너한테 어울리는 방법일 수도 있는 거고.”
“저 상심 안 했어요. 그냥 약속이 있어서 그런 거예요.”
“그래, 혹시 뭔가 변화나 부작용이 생기면 바로 말해 줘야 해.”
“네.”
나는 마지막까지, ‘한 번만 더 보여 주고 가.’라며 매달리는 카이네를 무시하고 연구실을 나왔다.
겨우 정신 사나운 광녀가 없는 곳으로 나온 나는, 바로 공지 사항을 확인했다.
[안녕하십니까, 항상 지옥 상점을 이용해 주시는 고객님께 고개 숙여 감사 인사를 드립니다.이미 우수한 고객으로서 저희의 배를 불려 주시는 고객님께 저희가 기획한 역대급 이벤트를 소개해 드리고자 합니다.
이름하여~ 우리 집에 왜 왔니?
이번 이벤트는 고객님의 던전에 두 차례에 걸쳐 몰려드는 침공군을 막아 내는 디펜스 이벤트입니다.
언제나 비겁하고 비열하게 인간만을 노려 왔던 당신! 이번에는 공평하게 몬스터와 몬스터, 악과 악의 충돌을 즐겨 보세요.
이번 이벤트에서는 두 번의 침공을 완벽하게 막아 내지 못하면 일체의 보상은 없습니다.
하지만! 모든 침공을 막아 내신다면 엄. 청. 난. 보상이 당신을 기다릴 것입니다.
저희는 당신의 던전 중 가장 견고하고, 가장 비싼 곳을 박살 낼 것입니다.
침공이 시작되기 전까지 최대한 방비를 철저히 하도록 하십시오.
★ 던전 꾸미러 가기 ★ 몬스터 구입하러 가기 ★ 몬스터 장비 구입하러 가기
※ 이번 대규모 이벤트는 고객별로 기획 내용 및 진행 기간이 상이합니다.
1차 침공까지 남은 시간: 6일 23시간 57분]
세 번째 이벤트 공지였다.
공지사항을 모두 읽은 나는 벨로제를 부르기 위해 차단을 해제했다.
-마스터, 공지 사항이에요!
차단을 해제하자마자 내가 부르는 것보다 먼저 벨로제의 외침을 들려왔다.
아마도 이번 생은 한가함과는 거리가 먼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