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ll special! Dungeon Master RAW novel - Chapter 67
67
“후우…….”
나는 마른 입술에 침을 바르며 심호흡을 했다.
[1차 침공까지 남은 시간: 8분 12초]띄워 놓은 이벤트 공지 아래에 적힌 남은 시간은 이제 10분도 채 남지 않은 상황이었다.
정말 닥닥 긁어서 최대한 준비했지만, 그 준비가 충분한지는 아직까지도 알 수 없었다.
그저 8분 뒤 다가올 폭풍이 지나간 뒤에나 알 수 있으리라.
나는 지난 한 시간 동안 지겹도록 점검한 던전을 정말 마지막 점검이라는 심정으로 훑어봤다.
비상시를 대비에 사흘 동안 모은 108만 포인트를 제외해도 총 650만 포인트가 넘게 투자된 던전.
이 던전이 완전히 박살 난다면 정말 뼈아픈 손실이 발생할 것이다.
그러니까, 무조건 막아 내야 한다.
3, 2, 1……!
[우리 집에 왜 왔니? 1차 침공이 시작됩니다.]-마스터, 힘내세요.
시스템 메시지와 동시에 벨로제의 목소리가 울렸다.
원래대로라면 판매원인 벨로제가 이벤트 시작을 알려야겠지만, 내가 시스템 메시지를 볼 수 있는 것을 알고 있는 그녀는 응원으로 구두 공지를 대신했다.
사실 메시지조차 필요 없었다.
던전 입구에서 조금 떨어진 장소에 거대한 검은 포탈이 생긴 것이다.
저게 그 어떤 것보다 확실한 시작 신호였다.
척, 척, 척, 척.
“저건…….”
검은 포탈에서 걸어 나오는 것들을 확인한 나는 인상을 찌푸렸다.
분명 지금 발걸음을 맞춰 걸어 나오는 것들은 좀비나이트였다.
설마…….
순간 내 머릿속에 한 가지 불길한 의심이 떠올랐다.
그리고 연속해서 뜬 메시지가 내 의심이 맞았음을 알려 줬다.
[1차 침공 주제는 미러전입니다. 모든 이가 싫어하기로 유명한 그 미러전이 맞습니다! 다만 저희는 집도, 함정도, 지휘관도 없습니다. 그래서 소소하게 5배의 물량을 준비했습니다. 어디 열심히 막아 보시길.]빌어먹을 사기꾼 새끼들.
나는 속으로 욕을 내뱉었다.
이벤트를 빌미로 어마어마하게 물건을 팔아 재낀 주제에, 정작 침공해 오는 건 내가 준비한 것과 동일한 몬스터, 그것도 고정된 병력도 아니고 내 병력의 배수라니.
이럴 줄 알았으면 몬스터보다 함정 비율을 더 높이는 건데 하는 후회가 밀려들었지만, 예지능력이라도 있지 않은 이상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하지만 그런 잡념들도 포탈에서 밀려 나온 몬스터들이 던전 입구에 들어설 때까지만 할 수 있는 사치였다.
나는 좀비나이트가 첫 번째 통로로 들어서기 전에 빠르게 그곳에 배치되어 있는 땅의 정령들을 뒤쪽으로 빼 버렸다.
물밀 듯이 밀려드는 좀비나이트를 상대로 활용하기엔 숫자가 매우 부족했기 때문이다.
그나마 다행인 점은 진입로가 넓지 않다는 것이었다.
첫 번째 방으로 들어서는 진입로로는 4마리 이상의 좀비나이트가 동시에 진입하기가 힘들었다.
나는 그것을 최대한 이용하기 위해 내 몬스터들로 진입로를 반구 형태로 포위했다.
이렇게 되면 내가 준비한 다른 몬스터들은 전투에 참여를 못하겠지만, 일단은 적이 입구를 자유롭게 통과해 들어오는 것만은 막아야 한다.
지금 내게 있어서 각 방을 연결한 작은 통로들은 성벽보다 소중한 방어 지점이었다.
[우워어어어!] [우워어어어!]적을 발견한 언데드들이 서로 포효를 내지르며 돌격했다.
콰앙.
기세 좋게 돌격한 좀비나이트들이 서로 충돌했다.
퍽, 퍽, 퍽.
최전열의 좀비나이트들을 서로 몸을 부대끼며 서로 타격을 주고받았지만, 원래부터 공격보다는 방어에 치중된 능력치를 가진 놈들이다.
커다란 방패에 비해 빈약한, 검이라기보다 단검에 가까운 무기는 서로에게 치명상을 입히지 못하고 있었다.
상대가 생명을 가진 적이라면 그 정도 무장으로도 충분히 위협적인 공격이 가능했겠지만, 자상이나 출혈은 거의 의미가 없는 언데드를 상대한다는 게 문제였다.
쿠웅, 쿠웅, 쿠웅.
4, 5마리밖에 전면에 나서지 못하는 상대와 달리, 그 두 배 이상의 숫자가 적을 둘러쌀 수 있는 나였지만, 압도적인 적들의 숫자는 점차 물리적인 힘으로 통로를 뚫어 버리려고 하고 있었다.
덕분에 중간에 낀 놈들은 짓이겨져 가고 있었지만, 이대로 입구가 뚫리는 순간, 압도적인 병력 차이를 극복하기 힘들어질 것이다.
하지만 나는 최대한 때를 기다렸다.
조금만 더, 조금만…….
지금이다!
나는 더 이상 압축될 수 없을 정도로 통로에 적이 들어찼을 때, 설치된 함정을 발동시켰다.
파바바바박.
함정이 발동되자 길게 이어진 통로 천장에서 물줄기가 뿜어져 나오기 시작했다.
마치 스프링클러를 연상하게 만드는 그 물줄기들은 겉보기로는 시원함을 선사했지만, 그 정체는 강산성을 띤 용액이었다.
에일리언의 침 정도는 아니겠지만, 그걸 물에 희석시킨 정도는 될 용액이 적들의 머리 위로 뿜어져 나오기 시작한 것이다.
치이이이익.
용액이 좀비나이트들을 덮치는 순간, 요란한 화학 반응과 함께 연막탄이라도 터진 듯이 통로가 연기에 휩싸였다.
아마 인간이라면 저 연기만 들이켜도 몇 초 안에 죽어 나자빠질 만큼 치명적인 유독 가스이리라.
그래서 이 함정만큼은 유독 가스까지도 효율적으로 통하는 상대에게 쓰고 싶었지만, 지금은 그런 것을 따질 여유가 없었다.
일단은 탱커를 담당하는 좀비나이트의 숫자를 줄일 필요가 있었기 때문이다.
압도적인 병력 차이가 날 때 승리를 위해서는 적의 조합 균형을 무너뜨릴 필요가 있다.
나는 산성 용액을 맞아 가면서도 끊임없이 뚫고 들어오려는 적들을, 내 전열을 희생해 가면서까지 철저하게 통로에 가둬 놓는 데 열중했다.
퍼퍼퍽.
시간이 어느 정도 지나고 통로에 있던 좀비나이트들이 무력화되기 시작했는지, 가해지던 압박감이 순식간에 확 줄어들었다.
나는 그 기회를 놓치지 않고 좀비나이트들을 전진시켰다.
역시나 연기가 걷힌 통로에는 입고 있던 갑옷은 물론이고, 관절과 근육이 녹아내려 바닥에서 꿈틀대는 좀비나이트들이 가득했다.
언데드의 끈질긴 생명력을 자랑하듯 아직까지도 꿈틀대는 놈들이 대다수였지만, 이미 전투력을 상실한 놈들은 내가 진입시킨 좀비나이트들의 방패에 비참하게 짓이겨지기 시작했다.
하지만 바닥에 고인 산성 용액 때문에 오래 머물 수가 없었다.
나는 급히 좀비나이트들을 다시 방 안으로 후퇴시켰다.
빠르게 뺀다고 뺐는데도, 가장 멀리까지 통로 안으로 진입한 좀비나이트 하나가 그사이에 발목이 녹아내려 바닥에 쓰러졌다.
하지만 그런 희생까지 일일이 챙길 겨를은 없었다.
나는 좀비나이트를 후퇴시킴과 동시에 방 안의 몬스터 배치를 바꿔 나갔다.
방금 작전의 대성공으로 적의 탱커 라인인 좀비나이트의 대부분을 무력화시켰기 때문일까, 적들도 무턱대로 진입하는 대신 진형을 짜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지휘관도 없다고 하더니 긴급 상황에 대처할 최소한의 조치는 취해 놓은 모양이다.
아니면 사기꾼 같은 놈들이 거짓말을 한 거거나.
뭐도 없고, 뭐도 없고, 지휘관도 없다고 주둥이를 나불대던 놈들이 일사분란하게 위치를 바꾸며 진형을 갖추는 모습은… 역겨웠다.
가장 전열에 몇 남지 않은 좀비나이트, 스캐빈저 소수, 스켈레톤 워리어.
나는 새로이 진입하는 적의 조합을 확인했다.
그나마 적들이 내가 원거리 공격을 위해 준비한 스켈레톤 아처, 그리고 포이즌 웜을 활용하지 못하는 것이 다행이었다.
궁수도 문제지만, 독극물이 섞인 점토덩어리를 곡사로 발사하는 포이즌 웜 50마리가 일제히 사격을 한다고 생각하면 끔찍했다.
통로에 가둬 둔 채 전투를 지속하면 나도 활용할 방법이 요원하긴 하지만, 어쩔 수 없었다.
이번까지만 막아 내고, 다음 방으로 후퇴해서 싸워야겠어.
나는 다음 행동을 정하고, 몰려드는 적을 맞이했다.
[커커커컹.]퍼버버벅.
요란하게 들이닥친 스캐빈저 무리와 좀비나이트, 스켈레톤 워리어, 그리고 원래 상주하던 오크들이 격돌했다.
오크들은 저단계 몬스터임에도 훌륭한 장비로 무장한 채 스캐빈저들을 상대로 선전하고 있었다.
그중에서도 창을 자유자재로 휘두르며 후속으로 등장한 스켈레톤 워리어마저 압도하는 오크가 보였다.
만들어 놓고도 잊고 있던 정예 몬스터가 저만큼이나 성장한 것이다.
아마 일정 수준 이상 강해진 이후로는 내 지침에 따라 모험가와 마주치는 일을 삼가면서, 던전에서 지속적으로 제공되는 경험치를 받아먹고 저렇게 된 것 같았다.
좋아, 이번까지는 무난히 막아 낼 수 있겠고, 타이밍을 봐서 뒤로 물러나기만 하면… 이런!
전투를 관망하며 후퇴할 타이밍을 재던 나는 갑자기 발생한 돌발 상황에 나도 모르게 벌떡 일어났다.
잘 싸우던 내 몬스터들이 디디고 있던 바닥이 솟아오르면서 공격해 온 것이다.
젠장, 땅의 정령이다.
첫 번째 통로에서 함정과 함께 허를 찌르려고 준비했던 5마리의 땅의 정령이 발목을 잡은 것이다.
내가 5마리를 보유했으니, 적에게는 25마리나 되는 땅의 정령이 있다는 것을 간과한 것이 실수였다.
그리 효과적인 공격도 아니었고, 바로 이어진 반격에 절반 이상의 정령들이 소멸했지만, 그 정도 틈도 이런 팽팽한 대치에선 치명적이었다.
정령을 상대하는 그 짧은 순간에 꽉 막아 뒀던 통로가 뚫려 버린 것이다.
나는 어쩔 수 없다는 판단을 내리고, 좀비나이트를 제외한 모든 몬스터에게 무조건적인 후퇴를 명령했다.
적지 않은 피해를 입긴 했지만, 다음 방으로 이어지는 통로 입구를 좀비나이트로 틀어막은 덕분에 다른 병력이 후퇴할 시간을 벌 수 있었다.
그리고 나는 첫 번째 방에 최대한 많은 적들이 들어차길 기다렸다.
그리고.
콰아아앙.
거대한 폭발이 일어났다.
첫 번째 방에 설치해 둔 5단계 폭발 함정이 발동된 것이다.
그것도 3개가 동시에.
그 효과는 엄청났다.
물론 이것에서 마무리할 수는 없었다.
1차 침공에서 두 번째 방까지 적을 진입시킬 수는 없다.
사실상 포인트의 한계 때문에 첫 번째 방에 대부분의 전력이 몰려 있었고, 나머지 방들은 각각 함정을 설치하는 방식으로 방어 계획을 짜놨기에, 이 뒤로 밀리는 순간 너무 많은 함정을 소모하게 된다.
이번으로 끝나면 몰라도, 2차 침공까지 막아 내야 하는 상황에서 함정 하나하나는 뼈아픈 소모값이 될 수 있다.
나는 적의 근접 전투를 위한 병력 대부분이 첫 번째 방에서 폭발에 휩싸인 지금 승부를 보기로 하고, 별동대를 움직였다.
급하게 전환된 던전 입구 쪽 시야가 눈에 들어온다.
콰앙.
첫 번째 방으로 뚫린 진입로 반대쪽 벽이 요란한 소리와 함께 터져 나가고, 새로운 통로가 생겨났다.
이 던전의 마지막 방인 일곱 번째 방으로 이어지는 통로였다.
그리고 그곳에는 적의 후방을 타격하기 위해 숨겨둔 내 별동대가 준비를 하고 있었다.
이름은 별동대지만, 병력 구성은 오크, 하이오크, 홉고블린, 고블린, 그리고 새로이 소환한 몬스터들 중 몇몇을 빼낸 잡병들이었다.
하지만 완벽에 가까운 급습 타이밍, 그리고 적의 대부분이 스켈레톤 아처, 그리고 곡사에 특화된 포이즌 웜이라는 특수성이 유리한 전투를 가능하게 만들었다.
그중에서도 단연 눈에 띄는 활약을 보이는 놈들은 2마리의 정예 고블린들이었다.
작은 덩치와 빠른 속도를 이용해 현란한 움직임을 선보이는 놈들은, 스켈레톤 아처의 두개골 위로 날아올라 단검으로 목뼈를 분리해 내는 묘기를 선보이고 있었다.
원거리에 특화된 몬스터들이 별동대에 유린당하고 있었지만, 통로 안쪽으로 진입한 몬스터들의 도움은 없었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2번째 방으로 후퇴했던 병력들이 무력화된 적을 짓밟기 위해서 들이닥쳤기 때문이다.
조합은 물론이고 상성, 타이밍, 전장 선택, 함정에 의한 허를 찌르는 전략까지.
승기는 내 쪽으로 완전히 넘어와 있었다.
아쉬운 점이라면 첫 번째 방을 써먹었다는 점이었지만, 그 정도는 감수해야 할 만큼 전력 차가 큰 전투였다.
그 증거로 남은 병력 대부분이 통로에 고립된 상태에서의 마지막 전투마저도 겨우겨우 쉽지 않은 전투가 계속됐다.
그만큼 숫자의 차이는 극복하기 힘든 것이기 때문이다.
결국 모든 적을 물리치고 났을 때에는 병력의 3분의 2가 바닥에 쓰러진 후였다.
[우리 집에 왜 왔니? 1차 침공을 성공적으로 막아 내셨습니다. 베일에 싸인 첫 번째 침공을 겨우겨우 막아 내신 고객님께 다음 침공에 대한 힌트를 드리겠습니다.사실, 힌트보다는 예고장에 가깝습니다. 다음 침공에 투입될 몬스터는 단 한 마리입니다.
하하하, 왜 이렇게 당당하게 알려 드리는지 궁금하시다고요?
당연한 것 아니겠습니까. 그만큼 자신이 있다는 거죠.
다음 침공까지는 2주의 시간이 주어집니다.
부디 부서진 던전 수리에 최대한 많은 네거티브 포인트를 사용해 주시기 바랍니다.]
“젠장…….”
나는 새롭게 뜬 메시지를 보자마자 기분이 나빠졌다.
가장 우려하던 일이 발생했기 때문이다.
그나마 1차 때처럼 아무 예고도 없이 들이닥치는 것보다는 낫지만…….
승리의 기쁨을 핥아 보기도 전에 골치부터 아파 오기 시작했다.
그나마 전투 중에 흘러가서 확인하지 못했던 메시지가 그런 내 마음을 위로해 줬다.
[레벨이 상승합니다.] [지옥 상점의 6단계 상품이 잠금 해제됩니다.]전투 전에 49에 머물렀던 레벨이 어느새 51레벨이 된 것이다.
하지만 나는 새롭게 업데이트된 지옥 상점 물품을 확인하지도 않고 몸을 일으켰다.
2주, 다음 침공을 막아 내기 위한 준비를 하기에 빠듯한 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