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ll special! Dungeon Master RAW novel - Chapter 69
69
“그렇다고 마냥 이러고 있을 수는 없으니 준비부터 하도록 하죠. 어찌 됐든 저희는 영주님의 허락을 받고 움직이는 입장 아닙니까. 저들이 저희를 막을 권리는 없습니다.”
“맞는 말씀입니다. 저희도 전투 준비를 하도록 하겠습니다.”
고개를 끄덕인 라마지는 자신이 이끌고 온 병사들에게 명령을 내렸다.
편하게 휴식을 취하던 병사들은 라마지의 명령에 맞춰 장비를 착용하기 시작했다.
“우리도 준비한다. 언제든 던전에 진입할 수 있도록 준비하도록.”
내 명령에 모험가들 사이에도 긴장감이 돌기 시작했다.
물론 우리 쪽 눈치를 살피는 마탑 진영도 마찬가지였다.
설마 우리가 던전에 진입한다고 공격을 할 리는 없지만, 적어도 우리를 먼저 보내지는 않을 기세였다.
나는 마지막으로 던전 마스터 능력치 보정이 적용된 것을 확인했다.
능력치 세 배 보정 범위는 던전 입구까지 적용이 됐었는데, 던전 주변 탐색 기능이 생긴 이후로는 던전 마스터의 적용 범위도 꽤나 유의미하게 넓어져 있었다.
덕분에 입구에서 멀찍이 떨어져 있는 지금도 온몸에 힘이 넘친다.
[2차 침공까지 남은 시간: 12초]어느새 남은 시간은 거의 사라져 있었다.
10… 9… 8…….
나는 속으로 남은 시간을 헤아리며 1차 침공 때 검은 포탈이 생겼던 자리를 주시했다.
5… 4… 3…….
적당한 긴장이 감각을 날카롭게 만든다.
2… 1!
[우리 집에 왜 왔니? 2차 침공이 시작됩니다.]숫자가 0이 되는 순간, 예의 그 검은 포탈이 생성됐다.
이번 검은 포탈은 전과 비교했을 때 두 배는 크기 차이가 날 정도로 거대했다.
갑작스럽게 검은 포탈이 등장하자 이 상황을 미리 알고 있던 나를 제외한 모두가 당황하기 시작했다.
쿵쿵쿵쿵.
거기다 포탈 안쪽에서 들려오는 발소리는 당황을 공포로 바꾸기에 충분할 정도로 육중했다.
이윽고 발소리의 주인이 밖으로 튀어나왔을 때 토벌대의 병사 몇몇은 털썩 주저앉고 말았다.
“요, 용이잖아!”
겁에 질린 모험가의 말대로 검은 포탈을 뚫고 나온 것은 용이었다.
아니, 정확히는 용이 되다 만 것처럼 생긴 도마뱀이었다.
체고만 3미터는 족히 되어 보이는 거대한 도마뱀은 기분 나쁠 정도로 윤기가 흐르는 검은 비늘로 온몸을 덮고 있었다.
“그워어어어!”
도마뱀이 포효하는 것만으로 기파가 몰아쳤다.
그 엄청난 기세에 모험가와 토벌대, 그리고 마탑의 마법사들은 바짝 기가 질려 움직임을 멈췄다.
도마뱀의 포효가 움직이면 바로 잡아먹힐 것 같은 공포를 심어 준 것이다.
완전 뱀 앞에 굳어 버린 생쥐 꼴이었다.
그런데 정작 요란한 포효를 내지른 도마뱀은 맛있는 먹잇감이 사방에 널렸는데도 별다른 관심이 없어 보였다.
놈은 시선을 던전 입구에 고정한 채 슬슬 몸을 풀고 있었던 것이다.
어디까지나 저놈의 목표는 던전 침공이라는 뜻이리라.
하지만 이 자리에서 그 사실을 알고 있는 것은 나 혼자였고, 다른 이들은 이 기묘한 침묵이 먼저 움직이는 그룹부터 먹혀 나갈 것이라는 생각인지, 눈알을 굴리는 것조차 조심스러워하는 것이 보인다.
이대로 있다가는 저 용이 되다 만 놈이 던전을 향해 돌격할 것이고, 그렇게 되면 내 시나리오대로 일이 풀리지 않을 가능성이 높았다.
그렇게 둘 수는 없지.
나는 바로 지옥 주머니에서 검을 사출해 도마뱀의 등을 공격했다.
파바바박.
급하게 날린 검들은 도마뱀의 등에 제대로 된 생채기 하나 남기지 못했지만, 어차피 주의를 끌기 위한 공격이었기에 별로 상관없었다.
“크르르……!”
도마뱀의 고개가 검이 날아온 방향을 향해 꺾인다.
“이게 무슨 짓입니까!”
그 광경을 본 라마지는 물론이고 주변 모든 이들의 시선이 내게 꽂혔다.
모든 이들의 눈에는 내가 미쳤다는 확신이 담겨 있었다.
“그럼 저대로 둘 겁니까! 여기서 못 막으면 어떻게 될지 뻔한데.”
“그, 그거야……!”
라마지는 말문이 막혔는지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다른 자들은 몰라도 라마지는 이 영지를 지켜야 할 영주의 기사.
이런 위험한 몬스터를 두고도 도망칠 입장이 아니었다.
물론 모두가 자신의 책임을 다 하는 것은 아니었고, 라마지도 그렇지 않은 부류일지 모르지만, 오늘만큼은 내가 친절하게 그 책임을 다하도록 해 줄 생각이다.
“너희들도 마찬가지야. 여기서 도망치면 살 수는 있겠지. 하지만 날 호위해야 할 상황에서 도망치는 건 명백한 계약 위반. 위약금이 얼마일지는 생각하고 도망쳐야 할 거야.”
엉덩이를 뒤로 빼고 있던 모험가들의 얼굴이 사색이 됐다.
높은 가치의 전리품을 조건으로 건 전리품이 있을 경우에 발생하는 추가금을 제외해도 이번 임무의 보수는 20골드.
임무를 포기하는 것도 모자라서 고용주를 버리고 도망치는 경우는 모험가 조합에서 제명되는 것은 물론, 10배의 위약금을 토해내야 한다.
그 엄청난 금액은 목숨이 왔다 갔다 하는 상황에서도 발걸음을 잠시 붙여 놓기에 충분했다.
그리고 인생에서, 특히 이렇게 급박한 상황에서의 망설임은 아무리 찰나의 순간이라고 해도 돌이키기 힘든 상황을 불러오기 마련이다.
“크아아앙.”
떠들면서 시간을 낭비하는 사이에 도마뱀이 우리를 적으로 인식하고 돌진해 온 것이다.
“으아아악!”
모험가들은 혼비백산해서 흩어졌지만, 엄청난 덩치에서는 상상하기 힘든 속도의 돌진에 미처 피하지 못한 모험가 세 명이 휩쓸렸다.
“고, 공격!”
라마지 또한 이미 틀렸다고 판단했는지, 떨리는 목소리로 공격을 명령했다.
그 명령에 대한 토벌대의 반응은 절반으로 갈렸다.
창을 쥐고 돌격한 겁 없는 병사가 있는 반면, 비명을 지르며 뒤로 돌아 도망치는 병사가 반이었다.
나는 도마뱀이 주변에 있는 모험가와 병사에 정신이 팔린 틈에 몸을 뒤로 뺐다.
그리고 가장 선두에서 도망치는 병사들을 향해 검을 날렸다.
필사적으로 달아나던 병사 넷의 목이 깔끔하게 날아갔다.
“으아악, 뭐, 뭐야!”
나는 당황한 병사들을 향해, 그리고 전장에 있는 모든 이들을 향해 외쳤다.
“이런 상황에서 도망은 탈영이나 다름없다. 탈영병이 될지, 목숨을 걸고 싸워서 살아남을지 선택하는 건 각자의 몫이지만, 등을 돌리는 순간 검이 꽂힐 건 각오해야 할 것이다.”
멀리서 라마지가 황망한 눈으로 나를 바라봤다.
탈영병을 즉결처분하는 것은 맞지만, 나는 로멜론 영지와는 아무 관련이 없는 인물.
즉결 처분 권한이 있을 턱이 없었다.
한다면 라마지가 해야 할 일이지.
그러니까 아마도 저 눈빛은 자신이 해야 할 일을 대신해 준 것에 대한 감사의 눈빛이 아닐까.
나는 그렇게 합리화를 한 후에 다시 움직이기 시작했다.
전장은 혼란 그 자체였다.
그나마 가리고 가려서 뽑은 모험가들은 상황이 조금 나았다.
근접 무기를 사용하는 자들은 이리저리 피하며 어떻게든 공격을 욱여넣으려 했고, 원거리 무기와 마법을 사용하는 자들은 최대한 도마뱀의 약점을 찾으려는 듯 이곳저곳을 두드리고 있었다.
문제는 토벌대였다.
작은 영지의 사병들은 제대로 된 공격을 해 보기도 전에 도마뱀의 간식거리가 되고 있었다.
“끄으아아악”
또 한 명이 도마뱀의 우악스런 턱에 씹히고 있었다.
치이이익.
침이 탄수화물을 1차적으로 소화시키는 성분을 포함한다지만, 도마뱀은 그 1차 소화 과정이 과했다.
씹혀 나가는 병사의 몸이 씹히는 건지, 아니면 소화되는 건지 모를 정도로 빠르게 녹아내리고 있었던 것이다.
도마뱀에게 물린 병사는 하체는 먹히고 상체는 허리가 녹아내려 밖으로 떨어졌다.
퍼억.
그리고 그 상체마저도 도마뱀의 발에 밟혀 으깨졌다.
독? 아니면 산성 용액인가.
나는 그 모습에서 도마뱀의 특성을 유추했다.
독이나 산성 용액을 뱉어내는 것 같은 모습에 아무리 봐도 뭔가 코팅 된 것 같은 검은 비늘.
보면 볼수록 내가 사용했던 함정을 저격하기 위해 선택한 놈이란 생각을 지울 수가 없었다.
“흐아아압!”
콰앙.
그나마 모험가들의 공격이 끊이지 않는 것이 다행이었다.
병사를 씹는 사이에 생긴 틈을 노리고 거대한 해머로 도마뱀의 뒷다리를 후려친 공격은 잠시 도마뱀의 주의를 끌었다.
나도 그것에 맞춰 각 속성별로 꺼낸 무기들을 사출했다.
어느 것이 효과적일지 모르니, 주로 쓰던 속성들을 전부 꺼내 든 것이다.
“젠장, 마법사 놈들은 구경만 할 건가?”
나는 마법무기들이 별다른 타격을 주지 못하는 것을 보고 올라오는 짜증을 마법사들에게 돌렸다.
놈들은 당장 나서도 모자랄 판에 상황을 지켜보고만 있었던 것이다.
우리와는 반대편에 있어서 내가 도마뱀을 끌어들인 게 저들에게는 안전이 확보된 꼴이 된 것이다.
도망칠 준비를 하면서도 호기심에 상황이 어떻게 돌아가나 바라보는 모습이 가증스럽기 짝이 없었다.
“전부 비켜!”
나는 고함을 치는 동시에 창 한 자루를 꺼내 최대한 힘을 집중시켰다.
몰라보게 강력해진 염동력과 마력 컨트롤 능력은 하나의 무기에 여러 겹 힘을 중첩시키는 것을 가능하게 했다.
한 번, 두 번, 세 번, 네 번, 다섯 번.
튀어나가려는 창을 다섯 번 억제함으로써 그 안에 힘을 충전하는 것이다.
급하게 중첩하느라 위력은 다소 떨어지겠지만, 일단은 이 정도에 만족해야 할 것 같다.
파앙.
맹렬한 기세로 날아간 창은 엄청난 굉음과 함께 도마뱀의 꼬리에 작렬했다.
콰앙.
역시 급하게 해서 그런지 치명상을 입히지는 못했다.
소리는 더럽게 큰데도 살이 움푹 파이는 데 그친 것이다.
하지만 피를 봤다는 것만으로도 도마뱀은 엄청나게 화가 난 것 같다.
“크와아아아아!”
노랗던 놈의 눈동자가 붉게 변하며 나를 향해 몸을 돌렸다.
“중간에 있는 놈들은 전부 비켜!”
내 명령은 사실 필요 없었다.
이미 분위기의 심각성을 느낀 모험가와 병사들은 볼링공보다 격렬하게 몸을 굴려서 자리를 비워 주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와 동시에 도마뱀이 나를 향해 돌진했다.
그리고 나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도망치기 시작했다.
도마뱀이 아무리 빠르다 한들 던전 근처에서 능력치 보정을 받는 나의 신체 능력도 그에 지지 않을 정도로 엄청난 수준.
나는 그 빠른 발을 이용해서 마탑의 마법사들이 있는 곳으로 미친 듯이 달려갔다.
“어, 어?”
“뭐, 뭐하는 거야!”
상황을 지켜보던 마법사들은 정말로 크게 당황한 것 같았다.
멀찍이서 싸우는 걸 팝콘을 뜯으며 구경하고 있었는데, 웬 미친놈이 몬스터를 끌고 자신들을 향해 돌진해 오니 얼마나 황당하겠는가.
그리고 나는 그렇게 당황하는 마법사들 사이에서 가장 지위가 높아 보이는 여자 앞까지 도달했다.
“뺀질거리면 안 되지.”
“뭐라고요?”
나는 황당한 얼굴로 되묻는 여자를 뛰어넘어서 뒤로 달려갔다.
“도망쳐!”
마법사들은 졸지에 나와 도마뱀 사이에 위치한 볼링핀 신세가 됐다.
그들은 도마뱀을 피하기 위해 도망쳤지만, 나는 마법사들이 흩어지는 방향을 따라 도마뱀을 유도했다.
“저런 미친 새끼가! 커어억.”
집요하게 각도를 트는 나를 본 마법사 하나가 욕지거리를 하며 도마뱀에게 치여 하늘을 훨훨 날았다.
그러게 누가 구경만 하래?
“이, 이렇게 된 이상 어쩔 수 없어! 공격해!”
드디어 마법사들은 이대로는 안 되겠다고 느꼈는지 도마뱀을 향해 마법을 날리기 시작했다.
그중 몇 발은 나한테 날아왔지만, 나는 어렵지 않게 공격을 피해 냈다.
소기의 목적을 달성한 나는 다시 모험가와 토벌대가 있는 쪽을 향해 달렸다.
그리고 마법사들도, 모험가들도, 토벌대도 이 진흙탕 같은 싸움에 휘말리게 만든 나는 최대 출력으로 화염을 생성했다.
콰아아아.
마력 운용 스킬 레벨의 한계로 가진바 마력을 전부 활용하지 못함에도, 워낙 높은 마력 덕분에 내가 만든 화염은 불기둥이라 불러도 될 만큼 요란하게 피어올랐다.
나는 그 불기둥이 잠시 도마뱀의 시야를 방해하는 사이에 모험가들 사이로 숨어들었다.
“크르?”
도마뱀은 순식간에 시야에서 내가 사라지자 잠시 당황하더니, 곧 분노하기 시작했다.
후우우웁.
그리고 자신도 용과 같은 파충류라는 걸 증명하려는 듯 숨을 삼키기 시작했다.
아마 이 순간 모두의 머릿속에는 같은 생각이 떠오르지 않았을까.
브레스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