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ll special! Dungeon Master RAW novel - Chapter 70
70
나는 도마뱀이 준비하는 것을 보자마자 죽어라 달리기 시작했다.
어찌 된 게 오늘은 때리거나 맞는 시간보다 달리는 시간이 더 긴 것 같지만, 당장 목숨이 오락가락하는데 그런 걸 따질 겨를은 없었다.
다행히 도마뱀은 시야가 가려진 사이에 나를 놓쳤는지, 브레스를 뿜는 방향을 수정할 생각은 없어 보였다.
“으아아아!”
그런데 그 와중에 엄청난 용기를 발휘한 모험가가 등장했다.
거대한 해머를 들고 있던 그 모험가다.
그는 숨을 삼키는 도마뱀을 향해 돌진하고 있었다.
설마 턱을 올려쳐서 도마뱀의 공격을 끊으려는 건가?
나뿐만 아니라 모든 이의 시선이 그에게 집중됐다.
성공하기만 한다면……!
콰아아아아.
모두의 기대와 관심을 한 몸에 받은 모험가는 도마뱀이 뱉어 낸 검은 가스에 직격으로 얻어맞고 퍼억 하고 터져 나갔다.
얼마나 독기가 대단한지, 사람이 녹는 것도 아니고 가루가 되어 흩어진다.
그래도 용감, 아니 무모한 모험가 덕분에 브레스의 공격 범위가 제한된 게 다행이라면 다행… 은 개뿔!
잠시 방심했던 나는 뿜어내는 독기로 채찍질을 하듯 고개를 이리저리 흔드는 도마뱀을 보고 기겁을 할 수밖에 없었다.
“으아아악.”
사방이 안전한 곳이라곤 없었다.
토벌대, 모험가, 마법사 가릴 것 없이 독기의 채찍을 피하기 위해 이리 구르고, 저리 구르고 있었다.
물론 나도 예외는 아니었다.
“젠장, 뭐 저런 미친 파충류가 다 있어!”
나는 채찍질을 겨우 멈춘 도마뱀을 바라보며 외쳤다.
겨우 5초 남짓한 시간밖에 안 되는데, 사상자는 적게 잡아도 열댓 명은 될 것 같다.
“끄아아악, 파, 팔, 내 팔!”
“쿠, 쿨럭.”
팔이 녹아내린 사람, 아예 상체 절반이 날아간 사람, 가루가 되어 흩어진 사람까지.
전장은 아비규환이었다.
지금이라도 몬스터를 동원할까?
나는 잠시 고민했지만, 그러지 않기로 했다.
그건 정말 최후의 수단.
공략을 포기하고 내가 도망갈 시간을 버는 용도로 사용할 방법이었다.
저놈을 상대로 내가 준비해 뒀던 몬스터들은 시간 끌기 이상의 효과를 거두긴 힘들 것 같다.
생각하자, 생각.
지금까지 놈이 보여 준 것들 중에 약점의 단서가 될 만한 것, 아니면 공격 패턴이라도 무엇이든 좋으니 일단 저놈을 공략할 무언가를 찾아야 한다.
하지만 머리를 굴려봐도 아직 정보가 너무 부족했다.
그렇다면 조금 더 두들겨서 패턴을 뽑아내는 수밖에 없었다.
나는 다시금 공격을 시작했다.
챙챙챙.
하지만 역시나 그저 무기를 날리는 정도로는 놈의 두꺼운 비늘을 뚫을 수가 없었다.
“크롹!”
최대한 놈의 사각지대에서 공격이 들어가도록 컨트롤한 덕분에 내가 직접적인 타깃이 되지는 않았다.
다만 가까운 곳에 위치한 자들이 하나둘씩 놈의 간식거리가 됐을 뿐.
상황이 이렇게 되자 탈영이고 위약금이고 간에 일단 살고 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는지, 도망자가 속출하기 시작했다.
공격하랴, 관찰하랴 나도 정신이 하나도 없었기에 이제 와서 그런 걸 일일이 확인하고 대처할 수는 없었다.
“어?”
이제 슬슬 탐색전은 그만하고 아껴 뒀던 카드들을 꺼내려던 나는 눈앞에 펼쳐진 광경에 눈을 의심했다.
도마뱀이 하늘 높이 점프를 한 것이다.
콰앙, 하는 요란한 소리와 함께 도약한 도마뱀은 자신에게서 가장 멀리, 가장 열심히 도망치는 사람들을 향해 다시 한번 숨을 뱉어냈다.
이번에는 줄기가 아니라 구체 형태로 된 브레스였다.
파앙, 파앙, 파앙.
눈을 빠르게 굴리며 목표를 식별한 놈은 세 개의 독기 구체를 쏘아 냈다.
펑, 펑, 펑.
독기 구체는 단순히 도망자를 처단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터져 나가며 그 주변을 오염시켰다.
“미친!”
난 그 광경을 보고 소매로 코와 입을 가렸지만, 이대로 몇 번 더 저짓을 반복하면 이 주변 전체가 독기에 범벅이 될 것 같다.
제길, 이대로는 이벤트고 공략이고 간에 내가 불귀의 객이 되게 생겼다.
그렇게 머릿속에 도망이라는 단어가 급부상하기 시작할 때.
[담당 판매원이 6등급 아이템, 독조의 깃털 망토를 추천합니다. 구매하시겠습니까? 43만 네거티브 포인트가 소모됩니다.] [담당 판매원이 6등급 아이템, 아룡의 뼈를 추천합니다. 구매하시겠습니까? 55만 네거티브 포인트가 소모됩니다.]응?
나는 갑작스레 눈앞에 떠오른 메시지를 보고 무의식적으로 수락을 해 버렸다.
그러자 순식간에 100만에 가까운 네거티브 포인트가 증발해 버렸다.
“뭐야!”
나는 순식간에 증발해 버린 포인트와 갑작스레 발밑에 떨어진 장비를 보고 소리를 질렀다.
하지만 당황한 것과는 달리 나는 재빠르게 망토를 집어서 몸에 걸쳤다.
아무리 벨로제여도 지금 상황에 쓸데없는 물건을 팔려고 들지는 않을 테니까.
하지만 완전한 믿음을 주기에는 걸리는 부분이 없지 않은 것도 사실.
나는 장비의 정보 창을 띄웠다.
[이름: 독조의 깃털 망토] [등급: 레어 (6)] [평생에 걸쳐 독초를 주식으로 삼는 새의 깃털로 만든 망토.] [효과: 외부에서 침범하는 독기를 일정 부분 방어합니다.] [이름: 아룡의 뼈] [등급: 레어 (6)] [제련되지 않은 이름 모를 아룡종의 뼈이지만, 용족에 한해서는 웬만한 명검보다도 효과적인 무기가 될 수 있습니다.] [효과: 용족에 한해서 일정 부분 방어력을 무시하고, 추가 피해를 줍니다.]이럴 수가.
지옥 상점은 단계가 상승할수록 자잘한 물품이 사라지긴 하지만, 그럼에도 일일이 확인하기에는 무리가 있을 만큼 많은 물품이 판매되고 있었다.
그런데 벨로제가 그 많은 물품을 뒤져서 나도 못 본 장비를 찾아내서 가져온 것이다.
그것도 지금 이 상황에 딱 들어맞는 것을.
-이런 것도 가능한 거야?
나는 아룡의 뼈로 만들어진 창까지 집어 들면서 차단을 풀고 말을 걸었다.
-당연하죠! 제가 괜히 있는 게 아니라고요. 그러기에 왜 계속 차단을 해 놓으시는 거예요? 마스터가 죽으시면 저는 다시 지옥행이라고요.
벨로제는 차단이 풀리자마자 속사포 같은 잔소리를 뱉어 냈다.
나는 평소 같으면 바로 차단해 버렸겠지만, 이번에는 그냥 두기로 했다.
공을 세웠으니 이 정도는 너그럽게 참아 넘길 수 있었다.
-그럼 쓸모 있는 거 있으면 전부 꺼내 놔 봐, 매출 올려 줄 테니까.
-그게 말처럼 쉬운 게 아니에요. 저도 죽기 살기로 찾고 있다고요.
그럼 마냥 기다릴 수는 없겠군.
도마뱀은 어느새 바닥에 내려앉아 다시금 뛰어다니며 인간을 학살하고 있었다.
그나마 브레스는 충전하는 데 시간이 걸리는지 연속해서 뿜어 대진 않았다.
지금 여기서 저놈에게 그나마 유효한 타격을 줄 희망이나마 있는 건 나, 그리고… 마탑의 마법사들뿐이다.
나머지는 시간 끌기용 간식일 뿐.
나는 장비를 챙겨 가장 화려한 로브를 입고 있는 마법사를 향해 달려갔다.
“너… 아니, 당신 때문에 이렇게 된 거잖아요!”
이제 보니 처음에 마법사들을 끌어들일 때 눈이 마주쳤던 여자였다.
이런 상황에서도 경어를 쓰다니, 꽤나 예의 바른 사람이다.
나는 원래부터 예의에는 예의로 대하는 것을 신조로 삼는 사람이기에, 최대한의 예의를 갖춰 말을 걸었다.
“잔말 말고 내가 묻는 말에 대답이나 해요. 저놈이 다음 브레스를 준비할 때 내 쪽으로 방향을 꺾을 수 있겠습니까?”
“뭐, 뭐라고요? 그걸 왜 내가……!”
“당신보고 하라는 소리가 아니라, 당신들보고 하라는 겁니다. 혼자서 그게 가능할 것 같아요?”
“이런 뻔뻔한……! 우리가 왜 당신 말을 들어야 하죠?”
나는 지금도 실시간으로 학살당하는 사람들을 가리켰다.
이제 처음의 3분의 1도 남지 않았다.
“다음은 누구일 것 같습니까? 아까 봤죠? 세 방향으로 도주하는 놈들 싹 쓸리는 거. 다시 한번 그걸 당하면 여긴 독기 범벅이 될 거고, 다 죽는 겁니다.”
내 말을 들은 여자는 목구멍까지 튀어나오려는 쌍욕을 억지로 삼키는 것 같은 표정을 지었다.
지금 이렇게 실랑이를 하다가는 정말 싹 죽겠다는 생각이 든 것이다.
“…무슨 생각을 하는지 모르겠지만, 그렇게 브레스가 맞고 싶다면 소원대로 해 드리죠. 대신 장담은 못해요.”
“적어도 다 죽어 나가기 전에는 해야 할 겁니다.”
마법사가 관자놀이에 손가락을 가져다 대고 무언가 중얼거리기 시작했다.
아마도 자신들끼리의 통신 수단이 있는 것 같았다.
그럼 다음은… 명당을 찾는 일이 남았군.
나는 계속해서 날뛰는 도마뱀의 눈치를 보며 가장 적당한 자리를 찾고, 방패들을 꺼내 준비했다.
그래 봐야 여긴 어딜 가도 비슷비슷한 공터.
대충 적당한 거리를 두고 자리를 잡은 이후로는 조마조마한 기다림밖에 남지 않는다.
쏴라, 쏴라, 쏴라.
도마뱀은 이번에는 꽤나 뜸을 들였다.
설마 쏠 필요성을 만들어야 하는 건가?
그때, 내 뒤쪽에서 상당히 강한 마력이 느껴졌다.
“무슨……!”
뒤쪽을 바라본 순간 나는 얼어붙어 버렸다.
어느새 내 뒤쪽에 옹기종기 모인 마법사들이 단체로 마법을 시전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미처 반응하기도 전에 일제히 각자의 마법을 쏘아 냈다.
당연하게도 그 마법들은 내게 날아오기 시작했다.
그래도 마법들이 나를 노리는 것은 아니었다.
흉흉한 기세를 자랑하는 마법들이 내 귓가를 스치고 지나가 도마뱀에게 작렬했다.
콰아앙.
“끼에에엑.”
마법사들이 충분한 시간과 마력을 투자해서 일제히 날린 마법을 맞은 도마뱀은 전에 없이 고통에 찬 비명을 질렀다.
그리고 당연히 마법이 날아온 방향으로 고개를 팍 돌렸다.
나는 뒤통수에 있는 마법사들을 향해 예고도 없이 공격을 시작한 것을 질타하고 싶었지만, 지금은 그럴 여유조차 없었다.
한 번, 두 번…….
시간 안에 충분히 힘을 중첩시키는 것도 빠듯했기 때문이다.
돌진? 점프? 아니면 브레스?
나는 지금까지 놈이 보여 준 패턴을 머릿속에 떠올렸다.
놈이 돌진은 선택한다면 몸을 굴려 회피를 해야 한다.
점프여도 마찬가지.
내가 기다리는 건 오직 브레스 하나였다.
후우우웁.
좋아!
나는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다행히 충전이 완료됐는지, 먼 저리를 돌격하는 것보다는 편하게 브레스를 쓰기로 한 모양이다.
나는 더욱 빠르게 힘을 집중했지만, 이미 한계에 가깝게 당겨 놓은 상태.
그래도 나는 끝까지, 한 번이라도 더 힘을 중첩시키기 위해 노력했다.
그렇게 여덟 번째 시위를 당겼을 때, 오랜만에 코피 한 줄기가 흘러내렸다.
여기서 더 나아가면 전처럼 탈진하거나 전투력을 상실할 가능성이 높다.
이걸로 마무리가 될 거라는 확신이 없는 이상 여기서 멈춰야 한다.
최소한 도주할 체력은 남겨 놔야 하니까.
언제 터질지 모르는 댐을 막아서고 있는 신세여서인지, 놈이 숨을 들이켜는 몇 초가량의 시간이 억겁처럼 느껴졌지만, 이윽고 숨을 삼키기 위해 치켜든 놈의 고개가 정면을 향해 벌어졌다.
파아아앙.
그 순간, 나는 쥐고 있던 힘을 놔 버렸다.
뛰쳐나가고 싶은 것을 강제로 저지당하고 있던 하얀 창 한 자루가 대기의 벽을 차례차례 부수며 날아간다.
콰아아아.
그리고 거의 동시에 독기로 범벅이 된 고압력의 기체 줄기가 놈의 입에서 뿜어져 나왔다.
나는 내 공격이 제대로 들어가는지 확인하지도 않고 방패를 일제히 끌어모아 주변을 완전히 감싼 후에 몸을 웅크린 채 망토까지 뒤집어썼다.
콰아아, 하는 요란한 소리가 주변을 뒤덮고, 염동력으로 고정한 방패들이 들썩였다.
그나마 기체여서 망정이지, 고질량을 가진 액체나 고체였다면 방패고 뭐고 한 번에 휩쓸려 버렸을 위력이다.
브레스가 방패에 적중하자마자 주변은 순식간에 독무에 휩싸였지만, 망토와 높은 마력 덕분에 당장 픽 하고 쓰러져 죽는 일은 없었다.
그리고 다행히도 이번 브레스는 길게 이어지지 않았다.
쿠웅.
육중한 무언가가 내려앉는 소리가 들린 것이다.
나는 브레스가 끊기자마자 안전 지역으로 빠르게 몸을 날렸다.
이미 완전한 안전 구역은 없을 정도로 독기가 퍼졌지만, 내가 있던 장소는 체르노빌이 따로 없었다.
“케엑… 케에에엑……!”
“파하!”
나는 참고 있던 숨을 뱉어낸 후에야 도마뱀이 바닥에서 꿈틀거리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말이 꿈틀거린다지, 저 덩치로 발작을 하고 있으니 주변으로 접근하려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
뭐, 이미 한참 전부터 다들 도망치기 바빴지만 말이다.
생선 가시 걸린 개새끼 같군.
나는 짧은 앞다리로 주둥이를 만져 보려는 시도를 하는 도마뱀을 보며 생각했다.
“케켁!”
도마뱀은 완전히 관통당해서 즉사한 것은 아니라도, 충분히 치명상을 입은 듯 입에서 독액과 피를 쉴 새 없이 토해냈다.
“뭐, 뭐해! 다들 빨리 마무리 지어!”
앙칼진 목소리가 한 번 울려 퍼지고, 마법들이 도마뱀을 향해 날아들기 시작했다.
쾅, 쾅, 쾅, 쾅.
“끼에에엑!”
도마뱀은 속절없이 마법에 유린당했다.
이리 뛰고 저리 뛰느라 제대로 시전할 시간도 없어서 그렇지, 원래부터 말뚝딜하면 마법사 아니겠는가.
마법사들의 말뚝딜에 단단하던 비늘도 뭉텅뭉텅 파여서 피를 흩뿌리고 있었다.
곧 나도 여러 차례에 걸쳐 수십 자루의 무기들을 쏟아 냈다.
3단계, 4단계, 5단계 가릴 것 없이 가진 무기를 모두 날린 것이다.
비늘이 아직 붙어 있는 곳에서는 무기가 속절없이 튕겨져 나갔지만, 이미 몸 곳곳에 빈틈이 생긴 놈은 이쑤시개 꽂힌 도마뱀 구이 신세가 됐다.
있는 고생 없는 고생 다 시킨 놈에게 검과 창으로 만든 비를 선사하니 속이 다 시원했다.
그리고.
[우리 집에 왜 왔니? 마지막 침공을 성공적으로 막아 내셨습니다.] [우리 집에 왜 왔니? 이벤트의 조건을 달성하셨습니다.] [7단계 네임드 몬스터, 독파룡 간카오스가 지급됩니다.] [7단계 랜덤 장비 상자가 지급됩니다.] [레벨이 상승합니다.]피곤을 덜어 주는 메시지가 떠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