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ll special! Dungeon Master RAW novel - Chapter 71
71
전투가 끝났다.
그것도 아주 이상적인 형태로 이벤트를 성공시키면서 말이다.
하마터면 던전만 잃고 끝날 수도 있던 이벤트를 성공시켜서 보상을 받았지만, 내 기쁨은 길게 이어지지 않았다.
쓰러진 모험가들과 병사들이 눈에 들어온 것이다.
내가 저질러 놓은 주제에 이제 와서 슬퍼할 생각도 없었고, 나란 놈이 이런 걸로 슬퍼할 수 있는 인간도 아니지만, 승리의 기쁨이 희석되기에는 충분한 광경이었다.
나는 살아남은 모험가와 토벌대가 있는 곳으로 갔다.
모험가들은 그나마 덜했지만, 토벌대는 원망이 가득한 눈으로 나를 힐끔거리고 있었다.
“라마지 경은… 없나…….”
나는 라마지를 찾으려고 했지만, 몇 남지 않은 생존자 무리에 라마지는 없었다.
차상급자를 찾아봐야 하나…….
그때, 아직 독기가 채 가시지 않은 곳에서부터 짓이겨진 시체 한 구를 끌고 오는 자가 눈에 들어왔다.
시체는 완전히 짓이겨져 있었지만, 누군지 알아볼 수는 있었다.
찌그러지긴 했지만, 시체가 입고 있는 갑옷은 라마지의 것이었다.
라마지가 죽었다면 라마지의 종자가 토벌대의 임시 대장이 된 것이나 마찬가지.
그래서 나는 라마지 대신 그를 데리고 마탑 조사단 쪽으로 이동했다.
조사단 책임자는 가장 화려한 로브를 입고 있던 여자 마법사, 젠마 어거스틴이었다.
“영주님은 마탑과 부딪혀가면서까지 욕심을 부릴 분이 아니오. 당신들처럼 저런 시체에 환장하시는 분도 아니시고. 저게 얼마나 가치가 있는지 모르겠지만, 당신들이 생각하기에 찔리지 않을 정도만 돈을 드려도 영주님은 만족하실 거요.”
종자의 목소리에는 짜증과 분노가 섞여 있었다.
자신들의 영지에 나타난 몬스터를 처리한 것이니 희생 자체는 감수하는 것 같았지만, 이런 상황에서 전리품에 대한 담판부터 지으려는 게 마음에 안 드는 것 같았다.
“그럼 나는 가 보겠소. 나한테는 저런 역겨운 도마뱀 시체보다는 상관의 시체를 수습하는 것과 살아남은 병사들을 돌보는 게 더 중요하니까 말이오.”
종자는 찬바람이 쌩쌩 부는 태도로 휙 돌아서서 걸어가 버렸다.
“…….”
“…….”
당연히 남겨진 우리 둘은 뻘쭘해질 수밖에 없었다.
백 번, 천 번 맞는 소리이다 보니 반박을 할 수 없다.
거참, 아주 훌륭한 기사가 될 강직한 사람이었다.
“저, 저도 부상당한 동료들 때문에 길게 얘기는 못 하겠네요. 우리도 굳이 당신과 날을 세울 생각은 없어요. 괘씸하긴 하지만, 상황을 살피다가 이길 것 같으면 끼어들려고 했던 우리 잘못도 있으니까요. 이 정도 희생으로 건진 수확치고는 엄청나기도 하고.”
젠마는 시선이 슬쩍 도마뱀의 시체를 향했다.
부상당한 동료 어쩌고 한 사람의 눈빛이 아니다.
“앞에 건 거짓말이지만, 뒤에 건 솔직해서 좋군요. 그런데 나와 날을 세우기 싫다는 건 무슨 뜻입니까? 내가 누군지 알고 있다는 것처럼 들리는데.”
잠시 도마뱀으로 향했던 젠마의 시선이 다시 내게 고정됐다.
그것도 이상한 사람을 쳐다보는 눈빛을 담아서.
“…자기가 얼마나 유명한지 모르는 거예요, 아니면 모른 척하는 거예요? 당신이 누군지도 모르면서 제가 당신 말을 들었다고 생각해요?”
듣고 보니 그렇긴 하군.
이번에는 꺼내는 족족 바로 터져 나갈 것 같아서 그림자 마수나 몬스터를 꺼내지 않았지만, 염동력으로 무기를 날려 대면서 싸우는 사람은 그리 흔하지 않다.
거기에 마탑이라면 비올카와 관련된 인물에 대해서 빠삭한 건 어찌 보면 당연하기도 하고.
마탑은 대륙 전체에 영향력을 행사하는 강력한 집단이지만, 결국 마법사들의 모임.
마법의 비밀 한 자락을 걷어 내기 위해서라면 목숨도 기꺼이 거는 마법사들에게 있어서 마도의 정점에 선 존재들 중 하나인 비올카는 특별한 존재일 것이다.
그러고 보니 마탑의 수장이…….
나는 책에서 읽었던 토막 지식을 떠올리려고 했지만, 그 시도가 이어지진 못했다.
젠마가 다시 말을 걸어온 것이다.
“저기… 시작은 서로 삐걱댔지만, 이제부터라도 협력하는 게 어때요?”
협력? 다 끝난 마당에 무슨…….
젠마가 도대체 무슨 소리를 하는 건가 했던 나는, 그게 던전 탐사에 관한 이야기라는 것을 깨달았다.
“알고 있겠지만, 갑작스럽게 대량의 언데드가 나타난 것이나 이런 몬스터를 인위적으로 소환했다는 건 분명 뭔가를 꾸미고 있는 거예요. 언데드는 여기서 만들어진 걸까요, 아니면 저것처럼 다른 곳에서 만들어서 옮긴 걸까요? 너무 궁금하지 않아요?”
이 여자… 지금 음모를 막고 싶다는 건지, 그저 궁금해 미치겠다는 건지 모르겠다.
눈이 초롱초롱하다 못해 광기가 흐르는 게 정말 정신병자 같았다.
그런데 이 여자, 왜 이렇게 들이대는 거지?
나는 부담스러울 정도로 변해 버린 태도에 위화감을 느꼈다.
“그런데 말이에요… 혹시 그분도 여기에서 벌어진 사건에 대해서 관심을 가지고 계신 건가요?”
이래서 나한테 그 봉변을 당하고도 우호적인 태도를 취한 거였나.
나는 젠마의 은근해진 목소리에 그녀의 관심사가 비올카라는 걸 알 수 있었다.
나도 나름 전쟁 영웅이라면 전쟁 영웅인데, 마법사들에게는 전쟁 영웅이라는 타이틀보다 비올카와 이어진 실낱같은 인연만 눈에 들어오나 보다.
“글쎄요, 스승님은 이런 사소한 일에는 별로 관심이 없어서요.”
“스승님…….”
젠마의 눈에 부러움이 깃들었다.
그 눈빛이 너무 진해서 내가 다 부담스러울 지경이다.
“음, 그리고 나도 더 이상 조사를 할 생각은 없습니다. 마탑이야 사법이나 사술에 민감하니까 진상 조사를 하겠지만, 언데드가 자연 발생한 게 아니라면 그다지 신기한 일도 아니니까요.”
“아… 언데드가 자연 발생했을 가능성을 염두에 둔 거군요.”
젠마는 내가 대충 둘러대는 말에도 아주 적극적면서도 긍정적인 반응을 보였다.
도마뱀과 싸울 때 소리를 지르며 날을 세운 지 얼마나 됐다고 이렇게까지 살갑게 굴다니…….
지금 이 순간 별로 상관이 없는 말일지도 모르겠지만, ‘유명해져라, 당신이 똥을 싸도 박수를 쳐 줄 것이다.’라는 말이 떠올랐다.
“그것보다, 저걸 어떻게 할지부터 정하는 게 먼저인 것 같은데요.”
나는 부담스러운 눈빛과 화제에서 벗어나기 위해 말을 돌렸다.
“마음 같아서는 다른 경우처럼 돈을 주고 우리가 전부 가져가고 싶지만, 그건 내키지 않겠죠?”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뭐, 금액만 맞으면 돈도 상관은 없지만, 실물로 손에 넣을 수 있으면 그 편이 낫다.
다른 활용 방안이 있을지도 모르는 일이고, 경매를 붙이면 돈을 더 받을 수 있을 테니까.
“원래 이런 걸 넘겨주면 징계를 받을 수도 있겠지만, 특별히 징계를 감수하고 가공된 소재의 40%를 떼어 드릴게요. 대신 로멜론 영지에 줄 금액은 저희가 더 부담하도록 하고요. 운송이나 소재 가공도 저희가 대신해 드릴 테니, 그리 손해 보는 건 아닐 거예요.”
“저 정도 몬스터의 소재면 돈으로만 따져도 20%나 더 가져가면서 생색을 냅니까? 대단함을 넘어서 뻔뻔한 협상이군요.”
내 말을 들은 젠마는 재미있다는 듯이 입꼬리를 올리며 웃어 보였다.
“마탑이라는 이름 앞에서 협상이라는 단어를 꺼낼 만큼 용기 있는 자들이 드물다 보니 대단한 협상가가 되는 게 그리 어렵진 않더라고요.”
40%라…….
나는 고민을 하긴 했지만, 그리 길게 하진 않았다.
목에 철근을 박아 넣은 것보다 더 뻣뻣하고 오만한 태도로 유명한 마탑에서 전부 꿀꺽하겠다고 나서지 않는 것만 해도 저들치고는 아주 신사적인 경우였다.
거기다 대고 굳이 더 받아 내겠다고 자극을 할 필요는 없다.
괜히 세계에서 손꼽히는 징글징글한 집단과 척을 질 필요는 더더욱 없고.
“좋습니다. 그렇게 하는 걸로 하죠. 다만 소재 가공은 필요 없습니다. 각 부위별로 해체해서 무게를 달아서 넘겨받겠습니다.”
“음, 저 사체는 마법적인 연구 가치는 별로 없을 텐데요. 아니면 저희를 못 믿는 건가요?”
“네.”
“…….”
내 단호한 대답에 젠마는 잠시 멈칫했다.
그러게 왜 그렇게 당연한 질문을 하고 있어.
마법사한테 저런 귀한 몬스터의 사체를 맡기느니 고양이에게 생선을 맡기는 게 훨씬 더 안전할 것이다.
“후후, 확실히 저 같아도 못 믿기는 하겠네요. 그래도 나름 징계를 감수하면서까지 최대한 양보하는 거라는 건 알아 줬으면 좋겠어요. 루크 님과는 앞으로도 우호적인 관계를 유지하고 싶거든요. 서로 안 좋았던 건 여기에 묻어 두고 말이에요.”
젠마는 매력적인 웃음을 입에 걸고 손을 내밀었다.
나로 인해 동료를 잃은 자의 얼굴이라고는 절대 생각할 수 없을 만큼 시원한 웃음이었다.
그래서 나는 앞으로 이 여자는 절대 신뢰하지 않기로 마음먹었다.
“이미 충분히 우호적입니다.”
그럼에도 나는 젠마가 내민 손을 잡고 악수를 나눴다.
마음에 없는 소리도 태연하게 할 수 있어야 비로소 어른이 되는 법이다.
협상을 마무리한 나는 살아남은 모험가들을 데리고 소바니 마을로 귀환하며 마무리 작업에 들어갔다.
이 정도 대규모 사건을 벌였으니, 대규모 토벌대가 조직되어서 내 던전에 들이닥치는 건 확정적.
어쩌면 왕실까지 나설 수도 있다.
나는 몬스터라는 걸 소모품의 개념으로 사용하고 있지만, 전부 잃기에는 너무 많은 포인트를 투자했다.
그래서 나는 미리 계획했던 대로 던전에 있는 모든 몬스터를 지하 깊숙한 곳에 만든 공간으로 집어넣었다.
그리고 유일한 입구이자 출구를 막아 버렸다.
네거티브 포인트를 사용한 던전 지형 변형은 아무런 흔적도 없는 완벽한 밀실을 만들어 냈다.
아무리 탐색 마법을 사용한다고 해도, 지하 30미터 깊이까지 파놓은 공간을 발견할 수는 없을 것이다.
공사에 들어간 포인트가 워낙 막대해서 조삼모사에 가깝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하지만, 이런 은밀한 공간이 하나쯤 있는 것이 나쁘지는 않을 것 같다.
마무리 작업을 끝내고 소바니 마을에 도착할 때쯤에는 이미 해가 저물고 있었다.
돌아간다면 갈 수 있겠지만… 이미 이 짓을 하고 돌아다니느라 열흘 넘게 결석을 한 몸.
나는 하루를 더 땡땡이치기로 하고, 여관으로 들어갔다.
* * *
다시금 일상으로 돌아온 내가 가장 먼저 한 것은 정보를 모을 준비를 하는 것이었다.
이번 이벤트를 진행하고 나서야 깨닫게 된 것이 있는데, 그건 바로 이 정도 규모의 이벤트는 주변의 시선을 끌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나 말고 다른 특채자도 이벤트를 진행할 텐데, 그 순간만큼은 아무리 얌전하게 지내는 자라도 표면에 떠오르지 않을까?
그렇게 생각한 나는 모험가 조합과 상인 조합을 찾아가 정보를 사는 동시에, 지속적인 정보 수집을 의뢰했다.
지속적으로 눈에 띄는 사건들에 대한 정보를 수집하고, 그걸 분석하다 보면 무언가 보일지도 모르는 일이라고 생각한 것이다.
어느 정도 소득이 있을지 모르겠지만, 아무것도 안 하고 있는 것보다는 나았다.
마탑과 나눈 간카오스의 사체는 카이네에게 넘겼다.
당연히 내 자의는 아니었다.
원래는 경매에 붙이려 했는데, 카이네가 자신이 사겠다고 나선 것이다.
경매를 하지 않고 감정가만 잡더라도 1만 3천 골드는 족히 나올 텐데, 카이네는 무려 3천 골드나 후려쳤다.
정말 뒤통수를 후려치고 싶은 심정이었지만, ‘마, 우리가 남이가’를 시전하는 카이네를 거스를 수는 없었다.
정확히는 간카오스의 비늘을 두부처럼 으깰 정도로 강력한 마력이 담긴 손을 거스르기가 힘들었다.
그래도 비올카와 마찬가지로 알마이어와 가까이 지내는 모습을 보이는 것만으로도 내게 도움이 되는 부분이 있기에, 빚을 지운다는 심정으로 1만 골드에 간카오스의 사체를 넘겼다.
그래도 속이 쓰린 것은 어쩔 수 없었지만 말이다.
그렇게 정신없는 며칠을 보내고 난 후에, 나는 이번 이벤트 보상으로 받은 랜덤 상자를 노려보고 있었다.
두 가지 이벤트 보상 중 하나는 내가 때려잡은 도마뱀, 독파룡 간카오스라는 특수 네임드 몬스터였고, 나머지 하나가 이거였다.
지옥 상점에서 판매되는 모든 물품이 나온다는 상자.
구매 자격이 없어서 확인도 못하는 아이템도 나올 수 있는 상자였다.
재능 문제로 스킬을 구하기가 어렵다는 현실에 직면한 내게는 한 줄기 빛과도 같은 물건이다.
그래서 나는 며칠째 개봉도 못하고 있는 것이다.
과거 랜덤 박스에서 염동력을 뽑지 못했다면 어떻게 됐을지…….
이번에도 그런 대박이 터져 줬으면 좋겠다는 마음이 너무 간절했다.
문득 빌어먹을 배트가 머릿속을 스쳤지만, 그래, 어떻게 보면 그것도 지금까지 정말 열심히 일을 해 줬지.
조금만, 정말 조금만 덜 흉측한 모습이었어도 애용했을 장비였다.
하지만… 이기어X술을 사용하는 미친놈이 되고 싶지는 않다.
결국 보는 눈이 없을 때만 사용하는 비운의 몽둥이가 된 것이다.
하물며 그걸 보고 놀라는 적의 눈마저 창피할 정도이니 말 다 했지.
“힘내라, 힘! 마스터 힘내세요, 할 수 있어요.”
내가 상자를 개봉한다고 하자, 벨로제는 일부러 나와서 응원까지 하고 있었다.
대박이 터지면 섭섭지 않게 보너스를 주겠다고 약속을 했기 때문이다.
내가 얼마나 간절한지 알 수 있는 부분이다.
이 세계에 있는 모든 신이시여, 그리고 지금은 이웃사촌이 된 하나님, 부처님, 예수님, 알라신이시여, 제발 한 번만 도와주십시오.
“까, 깐다.”
“네! 지르세요!”
나는 할 수 있는 기도란 기도는 전부 올린 뒤에 상자로 손을 가져갔다.
상자 안의 검은 공간 안으로 손을 집어넣었더니 차가운 금속 재질이 만져졌다.
나는 일단 스킬이 아니라는 것에 실망했지만, 그래도 대박의 희망을 놓지는 않았다.
“하앗!”
나는 눈을 감고 상자 안의 물건을 꺼냈다.
금속으로 만들어진 물건은 꽤나 묵직하고 커다랬다.
“…….”
“야, 대박이야? 대박 났어?”
나는 눈을 뜰 용기가 나지 않아서 벨로제에게 물었지만, 대답이 돌아오질 않았다.
쪽박이구나.
나는 마음을 비웠다.
그래, 어차피 스킬이 아닌 이상 대박이란 게 있기가 힘들지.
구매할 자격이 없는 스킬 종류가 아니라면 무엇이 나오든 사용하기 나름이지, 비슷비슷했다.
나는 눈을 뜨고 물건을 확인…….
“마, 마스터, 이거 대박이에요! 이제는 팔지도 않는 물건이라고요! 원래는 8등급은 받아야 하는 물건인데, 평가 절하 됐을 뿐이에요. 저희 사이에선 엄청 유명한 거거든요.”
“닥쳐…….”
벨로제의 어설픈 위로가 나를 더 괴롭게 했다.
나는 떨리는 눈으로 상자에서 나온 물건을 바라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