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ll special! Dungeon Master RAW novel - Chapter 72
72
[이름 : 아스모데우스의 강철 장갑] [등급 : 유니크 (7)] [지옥에서 가장 단단하고 우람하다고 평가되는 색욕의 악마왕, 아스모데우스가 애용하는 지옥 강철로 만들어진 장갑입니다. 아시겠지만 손에 끼는 장갑이 아닙니다.] [단독으로 사용하기에는 무리가 있습니다.] [효과 : 더 굵고, 더 강력해집니다. 다만 쾌락을 주는 것은 무리입니다.]터엉.
허탈함에 힘을 잃은 내 손에서 강철로 만들어진 기다란 무언가가 바닥에 떨어졌다.
그건… 콘돔이었다.
그것도 빌어먹을 배트와 정확히 맞아 떨어질 것 같은 특대 사이즈 콘돔 말이다.
“이, 이게 판매가 중단돼서 그렇지, 성능은 참 좋은 거거든요……? 제 눈에는 충분히 대박으로 보여요.”
위로를 하고 싶으면 일단 경멸을 담은 표정은 좀 고치고 해야 하지 않을까?
벨로제의 위로는 너무 흉측하게 생겨 먹어서 성능에 비해 평가 절하 됐으며, 결국에는 아무도 사질 않아서 판매가 중단됐다는 말로밖에 들리지 않았다.
“X 같네, 진짜…….”
나는 허탈하게 중얼거렸다.
벨로제는 내 분위기가 심상치 않은 것을 감지하고 은근슬쩍 도망가고 없었다.
일부러 이러는 건가?
그래, 이건 확률 조작이라고밖에 생각할 수 없다.
나는 착잡한 심정으로 아스모데우스의 강철 장갑을 지옥 주머니에 집어넣었다.
그나마 이건 쇳덩이라 덜 흉하다는 게 유일한 위로였다.
뭐 어쩔 수 있나.
비밀 병기 하나 더 생겼다고 생각해야지…….
강력해서 비밀 병기가 아니라, 남한테 보여 줄 수가 없어서 비밀 병기이지만 말이다.
“더러운 새끼들.”
그래도 욕은 나올 수밖에 없었다.
* * *
나는 달리는 마차 안에서 닥치는 대로 사들인 정보가 정리된 책자를 읽고 있었다.
이미 늦은 시간이라 조명이 있다고 해도 어둡긴 했지만, 내 시력은 이제 이 정도 제약은 별것 아닌 수준이다.
지난 며칠간 대륙 곳곳을 돌아다니는 자들이 끌어 모은 정보들을 살피면서 느낀 점은, 이런 방법으로는 절대 다른 특채자를 찾아낼 수 없다는 것이었다.
대륙 전체를 놓고 보니까 사건, 사고가 많아도 너무 많았다.
지금 이 순간에도 피 터지게 전쟁을 하고 있는 나라들도 있었고, 간카오스 따위는 도롱뇽 정도로 취급될 만큼 강력한 몬스터로 인해 마을 단위로 쓸린 곳도 있었다.
상대적으로 강력한 던전이나 몬스터가 없는 라메리안 왕국에서는 구경도 할 수 없는 유명한 모험가들이 새로운 던전을 개척한 소식들도 눈에 띄었고, 어떤 나라에서는 왕녀가 호위기사와 눈이 맞아서 야반도주를 했다는 막장 드라마 같은 이야기도 있었다.
“쯧.”
나는 혀를 차며 나만을 위해 정리된 소식지를 접었다.
특채자와는 별개로라도 이런 정보들을 알아 둬서 나쁠 건 없었지만, 마차가 목적지에 도착한 것이다.
나는 마차에서 내려서 오랜만에 도착한 집으로 들어갔다.
따라 들어온 크리스가 내가 걸치고 있던 외투를 받아 들었다.
“도련님, 오셨습니까.”
늦은 시간이라 다들 자고 있는지, 나를 반기는 건 집사인 롤랑뿐이었다.
“어머니는 주무시나?”
“예, 도련님이 오신다고 하셔서 방금 전까지 기다리시다가 방금 잠드셨습니다.”
“그래.”
혹시 깨어 있으면 인사를 하려고 했는데, 잠들었다면 내일 아침에 보면 될 일이다.
괜히 이렇게 늦은 시간까지 날 기다리는 게 더 불편했다.
“크리스, 너도 피곤할 텐데 나는 신경 쓰지 말고 가서 쉬어.”
이 늦은 시간까지 모험가 조합과 상인 조합을 따라다녔으니 크리스도 많이 피곤할 것이 뻔했다.
“도련님이 잠드시는 것까지 확인하고 쉬어도 충분합니다.”
“너 성실하고 철두철미한 거 잘 알고 있으니까 내 말 들어.”
“그래도…….”
나는 고집을 부리려는 크리스를 하녀들의 방이 있는 방향으로 떠밀었다.
“도, 도련님, 저 넘어져요, 넘어져. 알겠습니다. 들어갈게요. 그러니까 그만 미세요.”
크리스는 내 우악스러운 힘에 인형처럼 떠밀리기 시작하고서야 고집을 꺾었다.
“푹 쉬어. 롤랑도 들어가서 쉬고. 앞으로는 늦는다고 기다릴 것 없어. 내 방 정도는 혼자서 찾아갈 수 있으니까.”
“도련님께서 올라가시는 것까지만 보고 가겠습니다.”
뭐, 크리스처럼 올라와서 시중을 들겠다고 드는 것도 아니고, 이 노인을 빨리 침상에 들게 하려면 내가 빨리 올라가야겠다.
솔직히 오랜만에 집에 와서 그런지 더 피곤하고 나른한 기분이 들기도 하고 말이다.
아카데미도 불편한 건 없지만, 역시 집과는 조금 느낌이 다르다고 해야 할까.
아마 치열하다고 해도 좋을 만큼 바쁘게 살고 있는 것도 이런 느낌에 한몫하고 있을 것이다.
내가 그렇게 새벽 감성에 젖어 이런저런 생각을 하며 계단을 오르고 있을 때, 갑자기 뒤에서 다급한 발소리가 들려왔다.
작은 체구의 여자가 잰걸음으로 걸어오는 소리였다.
크리스인가?
혹시 뭔가 잊은 게 있어서 크리스가 돌아오는 건가 싶어 뒤를 돌아봤지만, 급한 발소리의 주인은 크리스가 아닌 엘라였다.
“엘라? 무슨 일이야? 꼴은 그게 뭐고?”
나는 잠옷 차림으로 내 앞까지 급하게 다가온 엘라에 적지 않게 당황했다.
“도련님, 저 좀 잠깐 봐요.”
엘라는 거의 첩보 영화 속 스파이라도 된 것처럼 주변을 살피며 속삭였다.
정작 그런 우리 둘을 보고 있는 건 의아한 눈을 한 롤랑뿐인데 말이다.
“무슨 일이야?”
나는 엘라를 방으로 데리고 와서 물었다.
도대체 무슨 일이기에 다 큰 처녀가 오밤중에 잠옷 차림으로 뛰쳐나와 나를 찾은 건지.
짐작이 아예 가지 않는 건 아니지만…….
“혹시 루시아 일이야?”
“어, 어떻게 아셨어요?”
정답이었다.
“네가 날 급하게 찾을 일이 그거 말곤 없으니까. 근데 무슨 일인데? 심각한 일이야?”
“심각한 일은 아니고요. 도련님, 혹시 일주일 뒤가 무슨 날인지 아세요?”
“일주일 뒤?”
내가 전혀 모른다는 얼굴로 대답하자 엘라는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그리고 눈을 가늘게 뜨고 나를 쳐다봤다.
“아가씨 생일이에요. 모르셨어요?”
“뭐?”
생일이라고?
그런데 그게… 이렇게 비밀스럽게 얘기해야 하는 건가?
“이제라도 알았으면 됐지. 선물이야 사면 되는 거고, 파티 준비는 어차피 하고 있을 거 아냐.”
루시아도 나름 귀족 영애인데, 생일 일주일 전쯤 되면 요란하게 생일을 챙겨 주려고 움직이고 있을 때 아닌가?
나는 그런 상식적인 선에서 대답했다.
하지만 엘라의 표정은 더더욱 안 좋아졌다.
더 화가 난 것 같지는 않고… 안타까워하는 것 같았다.
“뜸 들이지 말고 말해. 나 피곤해.”
도대체 루시아의 생일에 관련해서 말하기를 왜 이렇게 망설이는지 모르겠다.
“그게… 아가씨는 지금까지 한 번도 생일을 챙겨 보신 적이 없으시거든요…….”
“뭐라고? 그게 말이 돼?”
나는 이번에는 정말 놀랐다.
졸부 귀족 가문, 그것도 그 집안에서 유일한 딸에다가 늦둥이 막내라는 포지션을 차지하고 있는데 생일을 챙겨 준 적이 없다고?
“네… 그냥 마님께서 작은 선물을 챙겨 주는 것 말고는요.”
엘라는 말하면서도 계속 내 눈치를 살폈다.
젠장, 이제야 왜 이 얘기가 나왔는지 알 것 같았다.
루시아가 태어나서 한 번도 생일 파티를 해 본 적이 없는 이유를 말이다.
다 지랄 맞은 루크 에슬란테와 무관심한 남작의 콜라보 때문이겠지.
“하아… 나 때문이야?”
“지, 지금 도련님 때문은 아니고요.”
“결국 옛날 나 때문이란 거네.”
도대체 왜 나랑 상관없는 놈이 싸 놓은 똥 때문에 내가 어린애한테 미안함을 느껴야 하는지…….
엄밀히 말하면 상관없는 놈은 아니지만.
“아버지는?”
“안 계시는데요.”
“아니, 루시아 생일 때 아버지가 한 번은 집에 있었을 것 아냐.”
“그게… 제가 있는 동안은 아가씨 생일에 남작님이 계셨던 적이…….”
“하아…….”
나는 땅이 꺼져라 한숨을 쉬었다.
하긴, 지금도 이 인간이 어디서 뭘 하고 있는지 알 수 없는데, 예전이라고 다를 게 없었겠지.
두 집 살림을 차린 건지, 아니면 세 집, 네 집 되는 건지.
“마님께서는 이번에도 그냥 넘어가실 생각이신 것 같아요. 도련님이 아직 기억도 못 찾고 계시는 데다 최근에 안 좋은 일도 있었다고……. 그래도 생일이 다가오는데도 아무 기대도 안 하시는 아가씨가 너무 불쌍해요. 오늘도 생일은 신경도 안 쓰시고, 창밖에 마차가 오는지만 보셨다니까요.”
“왜 네가 울려고 그래.”
엘라는 말하던 중간에 울컥했는지, 입술을 움찔움찔 떨면서 울먹였다.
하아… 두 모녀가 왜 이렇게 짠 내를 풍기는 거야, 짜증 나게.
“죄송해요. 도련님께 말씀드리면 해결될 것 같은데, 아무리 생각해도 이런 얘기를 할 사람이 저밖에 없더라고요.”
“그래, 잘했어.”
아무리 생각해도 귀족 영애인 루시아보다 부모님도 없이 여동생을 부양하던 자신이 더 불쌍한데도 루시아를 위해 이렇게까지 마음을 쓰다니.
엘라는 자신의 불행에 둔하고, 타인의 불행에 민감한 사람이었다.
정말 천연기념물보다도 보기 드문 호인이다.
엘라는 다음 주에 있을 루시아의 생일을 꼭 챙겨 주겠다는 약속을 받고서야 다시 잠을 청하러 내려갔다.
그나저나 뭘 해 줘야 할까.
나는 그냥 에일라에게 나는 신경 쓰지 말고 루시아를 챙겨 주라고 얘기를 할까 하다가 생각을 바꿨다.
루시아도 루시아지만, 아직까지도 내 눈치를 보느라 딸 생일도 거르려고 하는 에일라까지 한 번에 챙겨야겠다.
생각해 보니 여자애 생일에는 뭘 해 줘야 할지 전혀 모르겠군.
나는 피곤한 와중에도 상당히 긴 시간을 여동생 생일에 대한 생각을 하다가 잠들었다.
사소하다면 사소하고, 쓸데없다면 쓸데없을 이런 고민들은 의외로 따뜻하고 즐거웠다.
나 같은 인간이 이런 감정을 가져도 될까 싶을 정도로.
* * *
다음 날, 나는 거의 찹쌀떡처럼 내게 붙어 있는 루시아를 겨우 잠깐 떨어뜨려 놓고 엘라와 작당을 시작했다.
짠한 두 모녀를 위한 이벤트를 기획하기 위해서.
역시 엘라는 하루 종일 루시아와 붙어 있는 만큼, 다른 누구보다 루시아에 대해서 빠삭했다.
“딱히 좋아하거나 갖고 싶어 하시는 건 없고요, 요즘 제일 아끼시는 건 도련님이 주신 곰 인형이긴 한데, 인형을 좋아하시는 건 또 아니에요.”
“그럼 뭘 해 줘야 할까?”
“음… 최근은 아니고 꽤 된 일이긴 한데요. 도련님이 아카데미에 들어가실 때 아가씨도 가셨잖아요. 그때 공연을 보고 참 마음에 들어 하셨어요.”
아, 그 짤막했던 음악회를 말하는 건가?
메모… 루시아는… 음악회 같은… 공연을… 좋아함.
“다른 건?”
“도련님이 보시던 책들 중에서 오페라에 관한 책을 유심히 보시는 것도 본 것 같아요.”
메모… 오페라를… 좋아할… 가능성이… 높음.
나는 엘라의 입에서 나오는 정보를 전부 메모했다.
“아, 어머니가 좋아하는 것도 혹시 알고 있어?”
“어… 마님이 딱히 무언가를 하는 걸 본 적이 없어서요. 저도 잘 모르겠는데요.”
돈이 없어서 아무것도 안 하는 건 아닐 것이다.
남작의 유일한 장점이 가족들이 돈을 쓰는 것에도 무신경하다는 것 하나였으니까.
실제로 암살 미수 사건 때는 엄청난 금액의 돈을 펑펑 써 대며 범인을 잡겠다고 난리를 치기도 했었고 말이다.
워낙 방법이 어설퍼서 어중간한 모험가들 배만 불려 줬지만.
“그럼 나는 나대로 준비를 할 테니까, 너도 뭔가 더 건지면 나한테 바로 알려 줘. 아카데미로 하인을 보내도 되니까.”
“맡겨 주세요.”
엘라는 아주 적극적이었다.
이제는 자신의 여동생도 같은 저택에서 하인으로 일하고 있는데, 자기 여동생보다 루시아를 더 챙기는 것 같다.
“그러고 보니까 여동생은 잘 지내?”
나는 조금 뜬금없지만, 여동생의 안부를 물었다.
역시나 예상 못 했던 질문인지, 엘라의 동그란 눈이 똥그래졌다.
“도련님 덕분에 잘 지내고 있어요. 정말 저희 둘 모두 너무 감사드리고 있습니다. 서로 바빠서 오래 보지는 못하지만 숙소도 같이 쓰고, 같은 저택 안에 있는 것만으로도 안심이 되거든요.”
엘라는 크리스랑 비교하면 비교라는 단어가 미안할 정도로 표정이 풍부했지만, 지금까지 이렇게 활짝 웃는 모습은 본 적이 없었다.
내 기분까지 덩달아 좋아지는 웃음이었다.
이런 상황에서도 내 아무것도 아닌 호의가 누군가의 인생에 큰 의미를 갖는다는 것, 그 우월감에 젖어 드는 내 인간성은 어디까지 바닥인지 모르겠지만 말이다.
내 악의는 순수하지만, 선의는 언제나 편파적이고, 이해타산이나 우월감이 묻어 있다.
하지만 그런 걸로 자괴감을 느끼면 내가 이런 놈이 아니겠지.
“잘됐네.”
나는 빙글빙글 웃고 있는 엘라에게 작게 웃어 줬다.
“이만 루시아한테 돌아가자. 따돌린다고 시무룩해지기 전에.”
“네.”
나는 메모한 종이를 고이 접어서 품에 갈무리했다.
졸부면 뭐하고, 돈이 썩어 나면 뭐하나.
즐기질 못하면 아무 소용도 없는 것을.
좋아하는 걸 모르면 몰라도, 해 줘야 할 것이 명확하기만 하면 일은 간단하다.
나는 남작이, 아니 루비가 벌어 놓은 인생 만능키, 돈을 펑펑 써서 루시아가 평생 추억거리로 삼을 만한 생일을 선물하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