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ll special! Dungeon Master RAW novel - Chapter 91
91
가뜩이나 머메이드의 피륙은 젊음을 되찾아준다는 이야기가 있고, 실제로도 머메이드의 피를 정제한 약은 비슷한 효과가 있었다.
실제로 육체의 나이를 되돌리지는 못해도, 현대 의학의 힘을 빌린 피부 미용 이상의 효과를 발휘한다.
세네라는 지금 ‘세네라였던 것’이 되어 있을 확률이 높았다.
젠장, 지금 당장 그림자 마수를 집어넣어 살펴보고 싶지만, 마법사의 집이라는 게 그렇게 호락호락한 게 아니다.
마법사가 자신의 거점을 보호하기 위해 하는 짓들은 차라리 정신병이라는 표현이 어울릴 만큼 강박적이고 지랄 맞다.
그림자 마수의 은신 능력으로도 숨어들지 못하거나 들켜서 괜히 신경을 곤두서게 만들 가능성이 있었다.
상대의 역량을 확실히 파악하고 있다면 모를까, 지금 상황에서 고를 선택지로는 좋지 않은 것 같다.
차라리 충성 클럽에서처럼 돈으로 해결할까?
잠시 다른 노선을 고려해 본 나는 가능성이 없다는 판단에 도달했다.
싸구려 신념은 돈으로 살 수 있지만, 진짜 미친놈들은 돈으로도 안 움직인다.
그리고 2,000골드라는 거금을 들여서 머메이드를 사 갈 정도라면 돈이 궁하지도 않을 것이다.
머메이드로 피부 미용에 효과적인 마법 시약을 만들어 팔면 구매가 이상의 돈을 만질 수도 있을 테고.
달리 방법이 없다는 결론에 도달한 나는 다시 지옥 상점을 열었다.
은신 계열이 안 된다면 집 안에서 마주쳐도 어색하지 않은 것들로 잠입하면 된다.
나는 몬스터들 중에서 크기가 가장 작은 편인 시독충을 소환해서 잠입시켰다.
빠른 탐색을 위해서 여러 마리를 동시에 잠입시키고 시야를 연동하자 곤충 특유의 이질적인 시야가 화면에 출력된다.
“젠장… 더듬이가 화면에 잡히잖아.”
나는 열 개가 넘는 화면에 일제히 꿈틀대는 더듬이에 기겁했다.
하지만 더듬이에 대한 혐오는 곧 사라졌다.
저택에 무사히 들어간 시독충들의 시야에 비친 저택 내부의 모습이 더 혐오스러웠기 때문이다.
저택 입구에 해당하는 위치에는 가슴부터 배까지 활짝 열린 상태의 수인 박제가 방문객을 반기고 있었다.
박제된 수인의 얼굴은 산 채로 배가 갈렸다는 것을 증명하듯 고통에 일그러져 있었다.
입구뿐만 아니다.
저택의 작은 틈새로 진입한 다른 시독충들도 비슷한 것을 보고 있었다.
서로의 신체가 뒤섞여 봉합된 채로 헐떡대는 아인종들, 온갖 가학적인 기구들을 몸에 달고 있는 인간 노예들, 아무리 봐도 사람의 팔인 것으로 보이는 다리를 가지고 걷고 있는 개까지.
순간적으로 내가 남의 집이 아니라 지옥을 견학하고 있는 건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의 광경이 펼쳐진 것이다.
그리고 도를 넘은 잔혹한 광경은 내 불안감을 가중시켰다.
이런 미친 새끼의 손에서 어떤 상태가 됐을지 가늠이 안 됐기 때문이다.
나는 황급히 시독충들을 조종해 온 집 안을 샅샅이 뒤지기 시작했다.
이제는 더듬이는 눈에 들어오지도 않는다.
그렇게 얼마나 돌아다녔을까, 클램프의 저택을 뒤지면서 처음으로 신음과 비명 이외의 소리가 전달됐다.
[음, 오늘은 이 정도만 뽑아야겠군. 아직은 죽으면 안 되니까 말이야. 그나저나 나이가 좀 있었으면 좋았을 것을… 너무 작아서 용량이 별로 안 나오는 게 아쉽단 말이야.]아마도 클램프가 아닐까 싶은 목소리.
나는 그 목소리가 흘러나오는 방으로 시독충을 조심스레 집어넣었다.
그러자 꽤나 신사적으로 생긴 중년 남성의 얼굴, 그리고 작업대로 보이는 철제 탁자 위에 힘없이 널브러진 소녀가 화면에 잡힌다.
클램프는 소녀의 쇄골 쪽에 연결된 호스에서 받아 낸 피가 담긴 병을 조심스레 다른 곳으로 옮기고 있었다.
나는 창백한 얼굴을 한 소녀를 보고 속으로 욕설을 내뱉었다.
살아 있어서 다행이라는 말이 나오지를 않는다.
세네라는 지난 며칠간 지옥이 따로 없는 저택에서 미친 마법사에게 꼬박꼬박 피를 뽑히고 있었던 것이다.
이성을 잃고 인간을 공격하는 와중에도 딸의 이름을 울부짖던 트리시아가 떠오른 나는 오랜만에 심장이 차갑게 식는 기분이 들었다.
나는 오랜만에 백면마의 가면을 꺼내 얼굴을 가렸다.
원래는 내 신분이 노출된 것을 고려해서 세네라만 살짝 빼낼 궁리를 하고 있었다.
하지만… 오늘은 노선을 조금 변경해야 할 것 같다.
* * *
안의 광경을 이미 알고 있어서일까, 가까이서 본 클램프의 저택은 멀리서 볼 때보다 더욱 을씨년스러웠다.
“여기쯤인가.”
나는 클램프가 설치한 결계 앞에 섰다.
고위 마법사라면 전혀 눈치채지 못하도록 만들었겠지만, 이 결계는 내 마력 감지 능력으로도 뻔히 위치를 특정할 정도로 조잡했다.
그만큼 클램프의 마법 실력이 수준 미달이란 뜻이다.
“신비.”
“예! 형님!”
내 호출에 언제나와 같이 듬직한 목소리로 대답하는 신비.
나는 그 대답을 들으면서 지옥 주머니를 열어 창 한 자루를 사출했다.
콰아앙!
창은 넓지 않은 정원을 가로질러 저택의 정문에 착탄했다.
그래, 착탄이라는 표현이 어울리는 것 같다.
문이 말 그대로 폭발했으니 말이다.
나는 박살 난 문을 바라보며 내 명령을 기다리는 신비에게 말했다.
“불쌍한 것을 제외한 모든 것을 부숴라.”
“얼쑤!”
흥이 느껴지는 대답과 함께 노리개가 푸른 불꽃으로 화해 거대한 도깨비로 돌아갔다.
그리고 내 주변에서 일제히 일어나는 그림자 마수과 망령들.
나는 충직한 부하들 가운데를 걸으며 천천히, 천천히 저택으로 다가갔다.
“캬아오!”
퍼억!
조잡한 키메라가 튀어나와 나를 향해 달려들었지만, 신비의 가벼운 주먹질에 머리가 터져 버린다.
다음에는 더 많은 숫자가 달려들지만, 수십, 수백 가닥의 검은 가시들이 불행한 키메라들에게 안식을 선물했다.
인간과 짐승을 기운 슬픈 누더기들.
그것들을 본 나는 클램프가 지옥 특채자였다면 강적이 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 생각을 하면서도 나는 급하지 않게, 아주 느긋한 태도로 저택의 계단을 올랐다.
키메라보다 더 조잡한 함정들은 내가 걸친 지옥 상점표 방어구는 고사하고, 내 순수한 마력 저항조차 뚫지 못했다.
그야말로 한숨밖에 나오지 않는 저급한 마법사의 공방.
그것이 이 을씨년스런 저택의 실체였다.
하지만 힘없는 자들에게는 지옥과 전혀 다를 바 없는 끔찍하고 무서운 공간이었으리라.
“너, 너는 누구냐! 마, 마탑에서 보낸 것이냐? 역시 마탑 놈들! 나를 안 받아 주는 척하더니, 뒤로는 내 연구 결과를 탐내고 있었구나!”
저택 최고층에 올라오자마자 클램프의 악에 받친 목소리가 들렸다.
목소리가 들린 방향을 돌아보자, 내 얼굴을 마주한 클램프가 엘프들과 비슷한 반응을 보인다.
“그, 그 면상은 뭐냐!”
잔뜩 겁에 질린 클램프를 본 나는 아주 해맑게 미소 지었다.
아, 젠장, 가면 때문에 어차피 안 보이겠군.
뭐, 아무래도 상관없나.
“포교 활동 하러 왔습니다.”
나는 최대한 친절한 목소리가 나오길 바라며 말했다.
하지만 역시나 백면마의 가면 효과 때문에 백 명의 인간이 고통에 차 신음하는 것 같은 목소리가 나왔다.
그것을 들은 클램프의 얼굴이 표백제를 잔뜩 마시기라도 한 듯 새하얗게 변한다.
“모, 목적이 뭐냐? 아니, 그 전에 네놈, 인간이긴 한 거냐!”
인간이냐고? 나도 잘 모르겠다.
지옥 특채자는 인간인가, 아니면 악마인가.
너와 비슷한, 아니 더 많은 인간을 죽였고, 더 죽여 나갈 예정인 구제 못 할 쓰레기 주제에 너를 혐오하는 나는 인간일까 아니면 악마일까?
이런 생각이 떠올랐지만, 나는 묻지 않았다.
이 질문에 대한 대답은 얻을 필요가 없는 것이기 때문이다.
나는 앞으로도 내가 살고 싶은 대로 살 것이고, 그건 인간이어도, 악마여도 마찬가지다.
그러니 나는 악마일지도 모르는 새끼답게, 나쁜 짓은 나만 할 수 있다는 이기심을 부려 보기로 했다.
“많이 흥분하셨군요, 형제님. 일단은 진정하시고, 좋은 말씀 좀 들어보시죠.”
“지금 도대체 무슨 헛소리를 하는 거냐!”
“헛소리라니요. 저는 돈만 내면 천국으로 보내준다는 그런 저급한 사기꾼들과는 다릅니다. 확실한 것만을 추천하고, 약속을 이행하는 진정한 포교자랍니다. 헛소리는 저와 가장 거리가 먼 단어이죠.”
나는 여전히 웃는 얼굴을 유지한 채 클램프에게 걸어갔다.
그리고 내 뒤로는 신비, 그림자 마수들, 망령들이 따라온다.
그 모습을 본 클램프는 복도 끝에 다다를 때까지 물러서다가 으아아, 하는 추한 비명을 지르고 있었다.
나는 그런 클램프의 코앞까지 다가가 내 미소를 철저히 가리고 있는 가면을 들이댔다.
“흡!”
도를 넘은 기괴함을 직면한 클램프의 호흡이 순간적으로 멈췄다.
“혹시 지옥이라는 곳을 아시는지요. 저나 형제님 같은 분께 딱 어울리는 곳이랍니다. 이런, 저를 다른 사기꾼들과 비교하는 실수는 하지 마시길. 천국을 경험했다고, 지옥을 경험했다고 하는 자들은 아마 대부분이 사기꾼이겠지만, 저는 다릅니다.”
계속해서 말을 잇던 나는 분위기에 취해 과장된 몸짓으로 팔을 벌렸다.
“저는 정말 지옥을 보고 왔으니까요.”
가면을 쓴 덕분인가?
지금의 나는 평소의 내가 아니었다.
마치 지옥의 광대가 된 기분이다.
조금이라도 더 기괴하게, 조금이라도 더 불안하게, 상대를 어떻게든 궁지로 몰아넣고 싶어서 안달 난 미치광이 광대.
[클램프 튜바이저가 갑작스런 습격에 당황합니다. …….] [클램프 튜바이저가 습격자의 정체를 몰라 불안해합니다. …….].
.
.
[클램프 튜바이저가 극심한 혼란 속에 공포를 느낍니다. …….]계속해서 쌓이는 상대의 공포를 알리는 메시지가 나를 더욱 광기에 몰아넣는다.
가면을 쓴 채 웃자 끼이힉, 끼히익, 하는 끔찍한 웃음소리가 흘러나온다.
그때.
“어……? 처음 보는 인간 아저씨다.”
힘이 잔뜩 빠진 목소리가 내 정신을 다시 불러왔다.
“…….”
말없이 돌아본 곳에는 루시아보다 반 뼘 정도 키가 큰 머메이드 소녀가 문틈으로 고개를 빼꼼 내밀고 있었다.
나는 내 얼굴을 본 세네라가 움찔, 하고 물러서는 것으로 보고, 조용히 가면을 벗었다.
“어……?”
세네라는 가면과는 전혀 다른 내 얼굴을 보고 다시 관심을 갖기 시작한다.
그 모습을 본 나는 클램프를 한번 돌아본 뒤, 신비의 어깨에 손을 올렸다.
“최대한 아프게 보내 드려.”
“얼쑤! 맡겨 주십시오, 형님!”
신비에게 클램프의 처리를 맡긴 나는 조심스레 세네라에게 다가갔다.
하지만 내 조심스런 태도가 무색할 정도로 세네라는 경계라는 걸 하지 않고 있었다.
마치 한없이 인간에게 호의적이고, 호기심으로 똘돌 뭉친 아기 돌고래를 보는 것 같았다.
“무서운 인간 아저씨를 혼내 준 거예요?”
나는 세네라의 순진하다 못해 바보 같은 물음에 피식 웃음이 나왔다.
어른들도 그렇게 바보 같을 정도로 순진한데, 어린아이는 오죽하겠냐 싶은 생각이 들어서였다.
“아프지는 않았어?”
나는 질문에 대답하기보다 세네라의 쇄골에 난 상처를 가리키며 물었다.
“아팠는데, 이제는 안 아파요.”
“씩씩하네.”
나는 씩씩하게 대답하는 세네라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그러면서도 저항 없이 헤헤, 하고 웃는 모습을 보고 있자니, 이 물고기 인간들, 곧 멸망하지 않을까, 하는 걱정이 앞선다.
“나랑 같이 가자. 집에 데려다줄게.”
“정말요?”
“그럼.”
“…엄마가 혼자서 인간들한테 가까이 가면 안 된다고 했는데, 돌아가면 혼나겠죠?”
상황에 어울리지 않는 걱정을 하며 울상을 짓는 세네라.
그러나 울상은 오래가지 않아 결심으로 바뀌었다.
“…혼나는 건 싫지만, 그래도 엄마가 보고 싶어요.”
나는 차마 대답하지 못하고, 그저 그녀의 손을 붙잡고 바깥으로 이끌었다.
세네라가 물갈퀴와 비늘이 어설프게 남은 두 다리로 아장아장 내 뒤를 따른다.
육지에서 걷는 것이 어색한지 서투른 걸음걸이 하며, 완전히 인간의 다리를 흉내 내지 못하는 변신까지. 전부 어린 머메이드의 특징들이었다.
아직 어리다는 것을 증명하는 것들이 하나씩 눈에 밟힐 때마다 나에게는 어울리지 않는 감정이 가슴에 맺힌다.
“아저씨, 아저씨는 우리 엄마를 알아요?”
다시 들려오는 천진한 목소리.
어미를 잃기에는 너무 어린 목소리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