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lmut: The forsaken RAW novel - Chapter 114
113
헬무트
113화
“야, 정말 저래? 넌 용병이잖아.”
혐오스럽다는 듯이 만면을 찡그린 아스카가 헬무트를 쳐다봤다.
“넌 야영해 본 적 없나?”
“바덴을 오가면서 길가에서 해 본 적은 있는데 완전 숲에서 해 본 적 없어. 아 진짜 저런 거면 소름 돋는다.”
“저 정도는 아니야.”
헬무트에겐 저런 식으로 겁주는 악취미는 없었다. 그는 질색하는 아스카한테 친절하게 말해 줬다.
“모기는 향을 피워서 쫓으면 되고 배설물은…….”
헬무트는 진지하게 대꾸했다.
“난 누가 파 놓은 자린지 아닌지 구별할 수 있던데. 또 사람 수가 적으면 어디다가 쌌는지 말하면 되니까.”
“으으, 그만 말해! 나 지금 구역질 나려고 하거든!”
남이 피를 쏟는 데는 비위가 강하면서 이런 데는 또 비위가 약한가 보다. 헬무트의 친절에도 불구하고 아스카의 죽상은 나아지지 않았다.
“아이 씨, 사냥 소풍이고 뭐고 그딴 건 왜 가는 거야? 소풍 같은 걸 갈 거면 바덴으로나 갈 것이지. 별걸 다 하네.”
야생 타입인 아스카가 좋아할 줄 알았는데 이렇게 나오는 건 또 의외였다.
‘늑대와 개는 다른 건가.’
아스카가 투덜대건 말건 정해진 일이었다. 그는 그날 소풍에 참석할 수 없는 사유서를 고심했다.
하지만 건강 핑계를 대기엔 아스카는 너무나도 건강했고, 그레타 아카데미에 꼭 남아 있어야 할 이유를 만들지도 못했다.
“사고가 나서 다리라도 부러졌으면.”
투덜거리면서 아스카는 다음 주가 오는 것을 두려워했다. 헬무트는 그와는 반대였다. 숲은 그의 고향이었으니까.
‘블랙 호크라고 한들, 아카데미 학생들과 있는 나를 노리진 못하겠지.’
부담 없이 바덴을 빠져나갈 기회였다.
*
“야 너희 학년 이야기 들었어. 검술 학부 2학년들 사냥 소풍 간다면서, 재밌겠다!”
기숙사로 돌아왔을 때 시안이 말을 걸자 아스카가 노골적으로 불만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뭐가 재밌어? 어디에 쌌을지 모를 똥구덩이를 피해 다녀야 할 텐데. 저 숲, 한동안 나무 하나는 잘 자랄걸!”
“그게 무슨 소리야? 모닥불 피고 고구마도 구워 먹고 고기도 구워 먹고 재밌잖아.”
“너 숲에서 야영해 본 적 없지?”
아까 전 저도 해 본 적 없다고 한 주제에 한심하다는 듯이 묻는다. 시안이 코를 긁적였다.
“내가 살던 곳 근처에도 숲은 있는데, 뭐.”
“번듯한 집안에서 자는 거랑 이슬 맞으면서 자는 거랑 같냐?”
“마법사들은 다들 부러워하던데? 우리는 웬만하면 생활 마법으로 다 해결이 되니까. 숲이라고 해서 크게 불편하진 않을 거거든.”
굉장히 얄미운 소리였다. 마법은 생활 전반에 걸쳐서 유용한 힘이다. 전투에서는 검사보다 약한 편이지만.
“그래서 너희는 뭐하는데? 2학년들이 죄 학과 행사가 있는 거면 너네도 뭔가를 할 거 아니야.”
“우린 일주일 동안 수업이 없는 대신 지긋지긋한 수행 과제를 해야 한단다. 그다음 주가 발표야. 마법학적 특이점 연구 같은 골치 아픈 거. 어딜 가야 하는 것도 있지만, 대체로 연구실에 틀어박혀야 하는 과제들이지. 아레아는 내 정령 마법에 대한 연구를 주제로 선택할 것 같던데. 이미 연구 자료가 많아서 편하다고.”
평소라면 그런 거 듣기만 해도 머리 아프다고 할 아스카가 부럽다고 중얼댔다. 아까 들은 말들 때문에 충격이 너무 컸나 보다. 시안이 고개를 저었다.
“야, 난 네가 부럽다니까. 중간고사 끝난 지 얼마나 됐다고 머리 아프게. 바꿀 수 있다면 너와 바꾸고 싶은데 난.”
아스카는 닭목 비트는 것도 제대로 못 할 시안의 연약한 손을 쳐다봤다.
“사냥은 자신 있어?”
“어어, 글쎄? 괜찮지 않을까. 탐지 마법으로 위치를 파악해 놓고, 정령으로 유인하면 쉽게 잡을 수 있을걸.”
“꾸엑거리는 멧돼지를 붙잡아 피 뽑는 걸 보면 넌 기절할 텐데.”
“……어, 별로 보고 싶진 않다. 난 육포를 선택하겠어.”
“사냥 소풍이라고, 사냥! 사냥을 안 하면 안 될걸?”
“검술 학부 아니랄까 봐. 괜히 서식처 들쑤시면 불쌍한 동물들만 난리가 나겠네.”
“동물이 불쌍하면 고기를 먹지 말든지. 네 배 속에 들어간 놈들은 안 불쌍하냐?”
“난 이미 죽은 놈들을 먹은 거고. 저 숲에 있는 동물들은 살아 있는 놈들이고. 어떤 놈들이 불쌍하냐면, 아직 안 죽은 놈들이지.”
아스카가 어이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엄숙하게 말한 시안이 조언했다.
“야영 갈 거면 시내에서 물건을 좀 사두는 게 좋을걸. 며칠 안 쓸 거니까 돈 낭비하기 싫으면 좀 불편하게 생활하던가. 아, 방학 때 집으로 가려면 꽤 먼 거리를 여행해야 하는 녀석들이 이거저거 많이 가지고 있더라고.”
시안이 어깨를 으쓱해 보였다.
“빌리던가…… 라고 말하고 싶지만 너희는 빌릴 사람이 없지?”
‘이 친구도 없는 녀석들, 쯧쯧!’이라고 써 있는 표정이었다.
아스카는 아니꼽다는 얼굴을 했지만, 별로 발끈하진 않았다. 헬무트도 눈썹 하나 까딱하지 않은 건 마찬가지였다.
“뭐, 그래. 어차피 휴일에 바덴에 갈 거니까. 상점에도 좀 들리지. 일단 내일 준비물 발표 나는 거 보고 추가로 준비해 둬야지.”
얼마 전만 해도 용돈을 아끼려고 망설였을 아스카지만, 상황이 달라졌다. 그는 요새 주머니가 넉넉했다. 팍팍 돈을 지르고도 남을 정도로.
휴일에는 다음 주를 나기 위한 준비를 끝마칠 수 있을 것이다.
*
“뭐, 이래? 활과 화살, 침낭과 식량, 말 사료, 불피울 부싯돌밖에 안 준대. 나머지는 자급자족. 개별 식량은 따로 사유가 없으면 지참 불가. 술도 가져가면 안 된대.”
게시판을 들여다본 아스카가 인상을 찡그렸다. 그는 술을 가져오면 처벌하겠다는 그 항목이 가장 마음에 들지 않는 것 같았다.
“아니, 야영을 하면서 술을 못 먹다니! 너무하잖아.”
“단순히 놀러 간다기보다는, 일종의 체험 학습이니까 긴장을 풀지 말라는 거지.”
누군가가 말을 걸었다. 안드로였다. 아스카는 움찔거리며 그를 쳐다봤다.
아스카에게 누군가가 먼저 말을 거는 건 흔히 일어나는 일이 아니다.
다들 헬무트에게 말을 걸어도 아스카만 나타났다 하면 재빨리 모른척하기 일쑤였으니까.
“넌 뭐야, 편입생?”
“맞아.”
“점수에 들어가나?”
헬무트가 끼어들어 물었다. 반쯤은 네가 뭔데 말을 거냐며 발광할 아스카를 제지하기 위한 의도였다. 헬무트도 아스카를 다루는 데 익숙해져 가고 있었다.
“그건 아닐걸. 사냥이라니. 산간 지방 출신들한테 너무 유리하잖아.”
유리한 입장이었던 헬무트는 살짝 아쉬움을 느꼈다.
“아마 같은 조가 될 확률이 높은 것 같으니 잘 부탁한다.”
“어떻게 알지?”
“너희는 둘일 테고, 다른 녀석들은 필사적으로 조 인원 8명에 사람 수를 맞추고 있으니까. 남는 녀석들은 자연히 한 조에 묶이겠지. 우리 쪽은 4명이라서.”
왜 필사적으로 인원을 맞추고 있는지는 뻔했다. 아스카와 한 조가 되지 않기 위해서.
“사냥이 걱정이네. 사냥개 몰이는 안 할 테고, 덫을 놓는 것도 아마 안 될 테고 식량을 넉넉히 줄 것 같지도 않은데. 사냥감은 순수히 활로 쏘아 잡아야 할걸.”
궁술은 고학년 선택 과목이지만 검가 출신이라면 기본적으로 익혀두는 특기였다.
안드로도 활을 쏠 줄 알았다. 하지만 최근에는 거의 활대를 잡아 본 적도 없기에 숲에서 사냥감을 잡으라고 하면 그다지 자신은 없었다.
“활을 쏘다가 누가 맞으면 어떡하지?”
아스카가 불현듯 생각났다는 듯이 물었다.
“이 많은 사람이 숲에서 사냥을 하겠답시고 화살을 쏘면 누군가 맞을 수도 있잖아.”
“사상자가 나오지 않게 조심해야지. 목표를 보고 쏘면 문제는 없어. 일부러 누군가를 맞출 생각하는 게 아니면.”
찔리는 데가 있는지 아스카는 입을 꾹 다물었다.
“활 쏘는 연습을 하고 싶으면, 아카데미 좌측 끝쪽에 수련장이 있으니 거길 찾아가 봐.”
안드로는 그 말을 마지막으로 등을 돌렸다.
“야, 연습하러 갈래? 숲에 가서 굶으면 곤란하잖아. 난 감자만 먹기 싫단 말이야.”
“고기 손질할 줄은 알아? 요리할 줄은?”
헬무트는 그게 마음이 쓰였다. 사냥에 자신이 있다지만, 그는 취사엔 꽝이었다. 뭘 만들든 인간이 먹을 수 없는 걸 만들었다.
차라리 닷새쯤 구운 감자만 먹는 게 나았다. 그 정도는 체력적으로도 아무 문제없을 테니까.
“요리는 할 수 있는데, 고기 손질은 뭐, 나도 모르겠다. 하지만 8명이나 되면 누군가는 할 줄 알겠지.”
맞는 말이었다. 아스카가 재차 제의했다.
“이따가 활 쏘는 연습 하러 가자고. 뭐라도 잡아야 먹을 거 아니야.”
“좋아.”
*
수업이 끝난 후, 헬무트는 아스카와 나란히 궁술 수련장을 찾았다.
수십 개의 과녁이 일렬로 나열된 수련장은 주로 관련 수업을 듣는 고학년들이 이용했다.
용병이나 기사 중에는 백발백중의 활 솜씨를 지녀 유독 명궁으로 소문난 자도 있다지만, 그레타 아카데미에서 궁술은 정식 과목으로 채택되진 않았다.
검 외에도 창이나 도끼 같은 것들을 다루는 이들이 있었지만, 마찬가지로 그레타 아카데미에선 다루지 않는다.
관리인에게 다가가자 그가 물었다.
“활은 따로 가져오시지 않은 것 같군요.”
“따로 가져와야 하나?”
“아니요, 대여해드립니다. 상태는 최상이 아닐 수도 있습니다. 화살은 몇 개나 필요하시죠?”
“50개.”
“너무 적은 거 아냐?”
“나는 충분해, 너는 더 하던지.”
간단히 몸을 풀기 위해서 하는 것일 뿐. 헬무트는 수많은 살아 있는 표적들을 꿰뚫어 본 명사수였다.
“아니, 됐어. 나도 50개로 하지.”
투덜대면서도 아스카는 화살을 더 달란 소리는 하지 않았다. 왠지 모르게 경쟁심을 느꼈던 탓이다.
활과 화살을 받아든 그들은 거의 빈 수련장 적당한 곳에 자리를 잡고 섰다.
저 먼 곳에 있는 과녁에는 이미 몇 대의 화살이 꽂혀 있었다. 위치는 제각각이다.
“좋아, 이렇게 하는 건가?”
헬무트는 힐끗 그를 쳐다봤다. 아스카는 어설픈 자세로 활대를 쥐고 섰다.
팽팽하게 줄을 당긴 채 과녁을 겨누다가 놓았다. 화살이 과녁판에 명중했다! 면 좋았을 텐데, 날아가다 말고 땅에 박혔다.
화살대까지 반쯤 땅에 박힌 화살이 부르르 떨렸다. 힘만은 넘치도록 충분했다. 비록 목표에는 닿지 못했을지라도.
아마, 활을 거의 처음 만져 본 모양이다.
“뭐야, 왜 이래.”
투덜대면서 아스카는 몇 번이나 활줄을 잡아당겼다. 조금 더 위쪽으로 노리고 쏘니 과녁판을 스치고 지나갔다.
몇 번의 시도 끝에 아스카는 화살을 과녁에서 두 번째로 작은 원 안에 명중시키는 데 성공했다.
그에게 바람의 작용은 크게 중요하지 않았다. 비스를 담아, 힘으로 바람을 뚫어 버렸으니까. 헬무트는 그가 비스를 운용하는 것을 느꼈다.
‘제법이로군.’
이만한 비스의 운용, 그의 검술 실력에 비해선 뛰어난 편이었다.
검술의 경지가 높아질수록, 비스 운용법이 중요해진다. 아스카는 검술 학부의 다른 녀석들보다 위로 올라갈 가능성이 높았다.
그건 단순한 노력을 넘어선, 재능의 차원이었다.
“헬무트, 이거 봐!”
꽤 그럴듯하게 화살을 과녁에 적중시킨 아스카가 신이 나 소리쳤다.
“잘 맞혔네.”
헬무트는 형식적인 투로 칭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