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lmut: The forsaken RAW novel - Chapter 117
116
헬무트
116화
“이 녀석, 이름이 평민은 아닌 듯한데, 귀족인가 왕족인가 그 스승은 누군가.”
“본부에 넘긴 그대로, 대지의 기억에서 추출한 그 영상이 녀석의 실력에 대한 전부입니다. 대외적으로 알려진 신분은 평민으로, 그를 접한 자들에 따르면 귀족처럼 행동하지는 않았다고 했습니다.”
“그 영상으로는 알 수 있는 게 별로 없어. 따로 추적한 것은?”
“놈이 의뢰를 맡은 뷰탄 상회와 페이스 용병단을 추적하여, 알아본 바에 따르면 페이스 용병단 쪽에서 의뢰를 위해 이동하던 중, 녀석과 우연히 마주쳐서 합류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그 외에 과거도 신상도 알려진 게 없습니다.”
페이스 용병단은 헬무트에 대해서 떠벌리고 다니지 않았다. 알려진 것은 뷰탄 상회에 전달된 단편적인 사실뿐.
헬무트가 부상을 입고 쓰러져 있었다는 것도, 그와 마주친 게 어디인지도 모두 침묵했다.
그것은 위험한 상대와 거리를 두는 용병의 습성에 따른 것이기도 했다.
헬무트라는 범상치 않은 녀석은, 분명히 어떤 식으로도 위험한 일과 엮일 테니까.
그 때문에 헬무트가 자신이 어디로 가는지 알려주지 않고 떠났다는 걸 그들도 눈치챘던 것이다.
“하늘에서 뚝 떨어진 괴물인가? 그렇다면, 내가 직접 물어보지.”
“놈을 처리하러 오신 겁니까.”
“그래, 일단은 대화를 해 봐야겠지만.”
그것은 형식에 불과하다는 듯 가면 틈새로 섬뜩한 미소가 엿보였다.
“그만한 녀석은 세력을 거느리기 마련이지. 홀로 세상에 나타났다면, 건드려선 안 되는 녀석은 아닐 테지.”
“만약 건드려선 안 되는 녀석이었다면요?”
그 때문에 안톤은 상부의 지시를 기다렸다.
만약 상대가 숨겨진 어떤 세력에 소속된 자라거나, 엄청난 검가의 후손이거나, 대단한 검사를 스승으로 뒀다면.
정보가 너무 없었다.
“죽여서 입을 막아야겠지. 죽은 자는 말이 없는 법이니까.”
죽은 자에게서 말을 이끌어 내는 방법도 있기는 있다. 하지만 그것도 시체가 있어야 쓸 수 있는 방법. 죽여 시체조차 찾지 못하게 한다면 무슨 소용일까.
“필요하신 것이 있다면, 제게 말씀해 주십시오.”
이제는 그의 손을 떠났다. 안톤은 꾸벅 고개를 숙여 보였다. 이번에야말로 틀림없이 헬무트란 녀석과 블랙 호크의 인연은 종결될 것이다.
*
“다들 모였나?”
사냥 소풍이 시작되는 아침, 교정에는 드물게도 말이 가득 들어서 있었다. 학생들이 각자 말을 끌고 왔기 때문이다. 말에는 잔뜩 짐이 실려 있었다.
알란 교관과 페트리샤 교관을 비롯하여 십여 명이 짐을 풀어 보며 금지 품목이 있는지 검사했다.
개중 몇 명은 술과 음식을 빼앗기고 울상을 지었다.
“아, 그 술 비싼 건데!”
“교관님, 제발!”
“누가 이런 걸 가지고 오랬지? 잘 됐군. 우리 직원들이 호사를 누리겠어.”
학생들의 호소에도 교관 둘 다 눈썹 까딱하지 않았다.
압수당한 물건들이 한쪽에 쌓였다. 말 그대로 압수였다. 보관해 놨다가 돌려주지도 않을 모양이다.
요주의 인물인 아스카의 짐을 살펴본 페트리샤 교관이 어처구니없는 표정을 지었다.
“아스카, 우린 지금 사냥 소풍을 가는 거지, 상행을 가는 게 아니란다.”
“알아요. 하지만 뭐 혹시 모르잖아요? 이것저것 사가면 유용할지도?”
“그래, 의욕이 있는 것도 좋다만, 아스카. 부디 가서는 조용히 지내다 오기를 바란다. 사고 치지 말고.”
만약 아스카가 사정상 그레타 아카데미에 남아 있겠다고 했다면 페트리샤 교관이나 알란 교관이나 쌍수를 들고 환영했을 것이다.
하지만 아스카는 그렇게 하지 않았다. 처음에 싫어했던 게 언제냐는 듯이 기대에 찬 얼굴이다.
페트리샤 교관의 잔소리에 슬며시 표정이 바뀌었다. 녀석은 퉁명스럽게 말했다.
“저 검술 학부 2학년 차석이에요. 저 같은 우등생한테 무슨 소리를 하시는 건데요.”
“우등생이 문제아가 아니란 법은 없지. 사냥을 한답시고 학우에게 화살을 쏘아 맞히지 말고!”
“아, 안 그런다니까요.”
“그래, 헬무트. 잘 부탁한다.”
“네.”
문제아를 떠맡는 것도 이제 익숙해진 일이었다. 투덜대는 아스카의 머리통을 바라본 헬무트는 제 말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오랜만에 보는 백마였다. 체링겐에서 의뢰의 대가로 받은 녀석. 푸르릉거리며 콧김을 뿜는 게 기분 좋아 보였다.
쿠드로 저택에서 호사를 누리고 있었다지만, 말이라면 밖에서 달리는 쪽을 선호할 거다.
“이 녀석 이름이 뭐야?”
아스카가 묻자 헬무트는 잠깐 망설였다. 이름을 지었나? 그런 기억은 없는데.
“뭐가 좋을까?”
“뭐야, 네 말 아니야?”
“내 말은 맞는데 이름을 안 지었어.”
“무심한 녀석이네. 지금이라도 지어 줘.”
“이름이라고.”
평생 뭔가의 이름을 지어 줘 본 적 없는 헬무트에겐 어려운 숙제였다.
고민하는 그를 두고 아스카가 비뚜름하게 웃었다.
“아레아라고 짓는 게 어때.”
아레아가 엄청나게 싫어할 거란 계산이었다. 헬무트는 백마를 뚫어지게 쳐다봤다.
아무래도 아레아와는 별로 닮지 않았다. 잘 길들지 않는 사나운 성격의 백마에겐 더 어울리는 이름이 있었다.
“아스카라고 짓는 건?”
아스카가 얼굴을 일그러뜨리며 화를 냈다.
“왜 내 이름으로 지어? 소름 끼치게!”
“왜 소름이 끼쳐? 아레아 이름으로 지으라면서.”
헬무트는 아스카에게서 상식 없는 녀석이란 비난을 들으면서 한 가지 사실을 알게 되었다.
누군가의 이름을, 키우는 동물 이름으로 붙이는 건 그 사람과 특별한 사이일 경우에서다. 연인이라던가, 가족. 그 이야기를 들으니 소름이 일었다.
‘아스카라니, 큰일 날 뻔했군.’
이쪽도 절대적으로 사양이다. 후에 알게 되었다면 아스카든 말이든 어느 하나를 죽이고 싶어졌을 테니까.
약간의 고민 끝에 말의 이름은 화이트로 정해졌다. 백마니까, 화이트. 엄청나게 단순한 작명 센스라고 아스카가 투덜거렸다.
“네 말 이름은 뭔데.”
“위스키.”
“……술 이름?”
“맞아, 멋지지?”
아스카가 어깨를 으쓱댔다.
‘멋지다고? 어디가.’
자신의 것과 별다를 바 없다고 생각했지만 헬무트는 애매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짐 검사가 끝나자마자 약간의 브리핑이 이어졌다. 곧바로 모두 말 위에 오르게 되었다. 일정을 서둘러야 했다.
“자, 출발한다! 야영지에 도착하려면 오늘 하루 부지런히 달려야 하니, 늦지 않게 따라오도록!”
일정은 그리 복잡하지 않았다. 검술 학부의 행사는 투박한 감이 있다. 호화롭지도 떠들썩하지도 않다. 일단 교관들부터 대단한 계획을 짤 의욕이 없었다.
첫날은 종일 말을 달려, 바덴에 인접한 페디카 숲의 야영지에 입성한다.
2학년의 수는 총 백여 명에 달한다. 이만한 인원이 머물 수 있는 야영지는 흔하지 않았다.
아카데미 체험 학습이니 뭐니 바덴에서 우르르 학생들이 몰려오는 일이 잦은 페디카 숲의 야영지는 시설이 꽤 잘 갖춰져 있었다.
첫째 날은 이동하여 오후까지 야영지에 입성한다. 그때 약간의 자유 시간이 주어진다.
야영 준비를 마치고 저녁에는 바베큐 파티를 한다. 첫째 날까지는 정말로 소풍 느낌이다.
하지만 둘째 날부터 고생이 시작되었다. 둘째 날에는 사냥 대회가 열린다.
가장 훌륭한 사냥감을 잡아 오는 녀석이 우승이다. 순위에 따라 별도의 상도 주어진다고 했다.
셋째 날과 넷째 날은 조별 활동이다. 조는 총 12개 조로, 8명 남짓한 인원으로 나누어졌다.
검술 학부 2학년 학생들은 조별로 각자 정해진 페디카 숲의 특정한 구역으로 이동하여 셋째 날에서 다섯째 날에 걸쳐 2박 3일간 야영 체험을 한다.
헬무트의 조는 9조로 출발 전에 구성원들의 이름이 적힌 종이를 각자 전달받았다.
헬무트, 아스카, 안드로, 미첼, 제임스, 바실, 디노, 웨슬리.
반은 알고 반은 모르는 녀석들이었다.
검술 학부에도 워낙 사람이 많다 보니 말 한 번 섞어 본 적 없는 녀석들이 태반이다.
물론, 그 모두가 헬무트와 아스카는 알고 있었지만.
9조의 구성원들은 아스카와 같은 조가 된 것을 숙명처럼 받아들여야만 했다.
조별 활동을 마치는 마지막 닷새째 되는 날에는 정오까지 이 야영장으로 돌아와 합류해야 한다. 모든 인원이 다시 모이면 그레타 아카데미로 복귀하게 된다.
아카데미에서 파견되는 책임자는 총 세 명. 페트리샤, 알란 교관, 그리고 마법 학부의 드웨인 교수.
바덴에 인접한 페디카 숲에는 마물이 서식하지 않는다고 알려져 있다. 하지만 절대적인 사실은 아니었다. 산맥을 타고 넘어올 수도 있다.
일단 숲이란 곳은 야생의 장소. 단련된 검술 학부 학생들이 그득하다지만, 어떤 위험한 사태가 있을지 모르니 만약을 대비하여 마법사인 드웨인 교수가 파견된 것이다.
시작은 순조로웠다. 하늘은 맑았고 햇빛이 환하게 비쳤다.
사냥 소풍 행렬은 바덴을 거칠 것도 없이, 숲과 인접한 그레타 아카데미 안쪽의 문을 통하여 바로 가도로 나아갔다. 말은 구보로 가볍게 가도를 따라 달렸다.
‘바덴을 벗어나는 건, 오랜만이야.’
시원한 바람을 맞으며 말을 달리니 기분이 상쾌해진다. 좁은 수련장에서 홀로 검을 수련할 때와는 완전히 다른 기분.
파헤의 숲은 거대한 감옥이었으나 자유로웠고 바덴을 떠나서 페디카 숲으로 향하면서도 헬무트는 자유를 느낄 수 있었다.
쳇바퀴 도는 듯한 삶. 때때로 즐거움을 느끼지 못하는 것은 아니나, 강해지기 위해서든 인간이 되기 위해서든 같은 과정을 끊임없이 반복한다.
그레타 아카데미를 다니는 건 파헤의 숲에서의 나날보단 새로움이 많았다. 하지만 거기서 벗어나 말을 달리면서 헬무트는 깨달았다.
바덴으로 오기 전, 짧은 여행이나마 자유로웠던 시간들. 그때를 자신이 즐겼다는 것을.
비슷한 기분을 느꼈는지 아스카가 소리를 내질렀다.
“햐, 바덴을 벗어나니 살 것 같다. 망할 그레타 아카데미, 아직도 4년 넘게 더 다녀야 하다니!”
“졸업해서 기사가 되면, 아카데미를 다니는 것보다 더 답답하게 살아야 할 텐데. 지금 이 순간을 즐기는 게 좋을걸.”
옆에서 안드로가 중얼거렸다. 아직은 조별로 함께 다닐 필요가 없었지만, 9조의 조원들은 왠지 헬무트와 아스카 주변에서 따르고 있었다.
아스카는 서열을 매겨서 차별하는 성격이었다. 그는 3등인 안드로 정도면 말을 받아 줄 만하다고 판단했다.
“누가 기사가 된대?”
“그럼 용병이 될 건가? 검을 배워서 할 수 있는 일은 어차피 많지 않지.”
안드로의 친구들이 말을 보탰다.
“그래, 용병도 나쁘진 않지. 어디에 묶이지 않고 자유롭게 살기엔 딱이라고.”
“어차피 아스카 넌, 졸업해 봤자 어디 가서 기사 하기 힘들걸.”
“우리 가문에서도 사양이다, 야.”
“내가 왜 기사하기 힘든데? 나 정도 실력이면 감사하게 받아야 할 거 아닌가?”
아스카는 발끈하면서도 궁금해했다. 단순히 실력만을 따질 땐 아스카는 모두가 탐낼 만한 인재였다.
헬무트가 나타난 이후로 약간 가려져 있긴 하지만 아카데미를 졸업할 때쯤, 아스카는 웬만한 기사들은 우습게 씹어 먹는 경지에 오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