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lmut: The forsaken RAW novel - Chapter 121
120
헬무트
120화
질문은 거기서 멈추지 않았다. 검술 학부 화제의 인물이자 수상하기 짝이 없는 헬무트란 녀석에 대해서 캐낼 기회였다.
“부모님은? 왜 스승님이 널 키운 거야?”
“여기까지.”
호기심을 드러내는 웨슬리를 헬무트는 단칼에 잘라 냈다.
부모님은 아마 살아 계실 것이다. 하지만 장담할 수는 없었고, 그들이 누군지 알지도 못했다.
웨슬리는 흔쾌히 자신의 구매 정보를 말해줬다.
“좋아, 난 이 망토 3만 마르크를 주고 샀어. 나는 뷰탄 상회의 정식 매장에서 샀으니까 바덴에서는 더 비쌀걸? 여기까지 들여오는 비용도 있을 테니 말이지.”
“3만 마르크면 뭐.”
“좀 비싸긴 한데, 살 만하네.”
안드로를 비롯한 몇몇 귀족 녀석들이 고개를 끄덕거렸다. 귀족답게 다들 부자로 자라서 별로 돈 개념 없는 녀석들이었다. 아스카가 옆에서 투덜거렸다.
“새로운 거 좀 알 수 있나 했더니, 입도 더럽게 무겁네.”
웨슬리가 술병을 높이 쳐들었다.
“아무튼, 이제 술이나 마시자.”
헬무트는 제 앞에 놓인 작은 술잔을 빠르게 비웠다. 훅 뜨거운 열기가 밀려 올라왔다.
목구멍에서 위장까지 불덩이를 삼킨 듯 뜨거웠다. 미리 배를 채워두지 않았다면 위장에 구멍이 났을지도 모른다.
‘꼭 독 같군.’
정신을 마비시킨다는 점에서 독이라고 해도 이상하지는 않을 거다.
블랙 호크한테 노려지는 상황, 술에 취해 있을 수는 없었다.
헬무트는 밀려오는 취기를 비스를 끌어올려 티 나지 않게 해소했다.
자기 자신을 지킬 수 있는 건 자신뿐이다. 누구보다도 헬무트는 그 사실을 잊지 않았다.
“아우우우우, 뭐 이리 독해.”
술이 쎈 아스카가 제 양 뺨을 후려쳤다. 그는 물을 벌컥벌컥 마시며 취기를 달랬다. 다른 녀석들은 약을 먹은 듯 테이블에 머리를 박았다.
기회였다. 헬무트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섰다.
“어디가?”
“토하러.”
“잘 갔다 와.”
아스카는 질색하는 표정으로 헬무트가 떠나가도록 내버려 뒀다.
자유를 찾은 헬무트는 곧장, 목표한 곳으로 향했다. 야영지로 들어오는 길에 보았던 관리인의 처소였다.
야영지 근처에서 이상한 점을 목격했다면, 가장 잘 알고 있을 사람이기도 했다.
처소에는 불이 켜져 있었다. 똑똑. 문을 두드리자 금세 열렸다.
“아, 검술 학부 학생분? 어쩐 일이신지.”
귀족들이 많이 다니는 아카데미였기에 늙수그레한 관리인은 공대를 썼다. 그는 고작 두 걸음 앞에 있었다.
“묻고 싶은 게 있는데.”
“말씀해 보시지요.”
“제가, 요새 꿈자리가 좋지 않아서. 야영지에서 사고가 일어날 것 같은 느낌이 들더군요.”
아카데미 학생들이 꿈자리가 좋지 않다는 둥, 악몽을 꿨다는 둥 하는 대사를 응용한 거였다. 물론 헬무트는 어젯밤에도 꿀잠을 잤다.
관리인이 허허 웃었다. 담담한 표정이다. 대체로 이럴 때는 ‘뭐 이런 놈이 다 있어. 제가 사제라도 되나?’라고 어이없어하기 마련인데 별로 신경 쓰는 것 같지 않았다. 귀족을 상대한다고 생각해서 티 내지 않는 것일까.
“뭐, 과민하신 걸 겁니다. 바덴에서 생활하시는 분이 이 어두컴컴한 숲에서 며칠이나 보내야 하다 보면 그럴 수도 있지요.”
“요새 이 근처에서 이상한 일이 일어나진 않았는지요. 누군가를 봤다든지, 흔적을 발견했다든지.”
“글쎄요, 잘 모르겠군요. 이 숲을 이용하는 건 대개 아카데미 학생들인데, 학기 중에는 밀렵꾼들도 안 나타납니다. 괜히 학생들에게 걸렸다간 호된 꼴을 볼 수 있거든요. 페디카 숲에서의 밀렵은 벌금이 엄청나거든요.”
“오다가 덫을 봤는데. 새로 설치한 것 같았어요.”
“좋은 덫은 오래돼도 멀쩡해 보일 수 있지요. 거두셨나요?”
“제가 덫을 다시 확인하려고 하니, 사라졌더군요.”
움찔할 만한 소리였다. 하지만 관리인은 태연하게 대답했다.
“신기한 일이로군요. 잘못 보신 거겠지요.”
“저는 검술 학부예요. 시력이 아주 좋죠. 정신도 멀쩡하고요.”
“마법 학부 학생들이 장난을 쳐 놨을지도 모르지요. 마법사들이 숲에 이상한 마법을 부려 놓거든요. 저도 가끔 깜짝깜짝 놀랍니다. 그들은 이 늙은 관리인이 심장마비로 쓰러지길 바라나 보더군요.”
너털웃음을 터뜨리는 그를 헬무트는 냉정하게 주시했다.
“마법이라기엔 마력이 느껴지진 않았어요.”
“뭐, 그럼 재빠른 밀렵꾼이 덫을 발견 당한 걸 알고 회수해 갔나 보군요. 있을 수 있는 일입니다.”
관리인이 강조해서 말을 맺었다. 집요하게 대화를 끌던 헬무트는 입을 다물었다.
뭘 그리 꼬치꼬치 따져 묻냐고 얼굴을 찌푸릴 만한 상황. 하지만 관리인의 대답도, 표정도 여유로우면서도 사무적이었다.
하지만 그의 응대에는 딱히 꼬집어 말하기 힘든, 이상한 느낌이 있었다.
“그렇다면, 내 착각이라는 거군요.”
“숲은 원래 위험을 품고 있는 장소지요. 산맥을 타고 그새 저 먼 곳에서 위험한 뭔가가 나타났을지도 모릅니다. 그것까진 제가 어쩔 수 있는 문제는 아니니까요.”
관리인이 어깨를 으쓱거렸다.
“하지만 제가 아는 한은 별일 없었습니다. 대답이 되셨는지요?”
“네.”
헬무트는 얼른 덧붙였다.
“교관님들한테는 말씀하지 않으셨으면 좋겠군요.”
“예, 물론입니다.”
과민한 학생이 관리인에게 와서 진상을 부렸다. 그러니 입을 다물어 달라. 그렇게 해석하기에 충분한 상황이었다.
돌아서려던 헬무트가 문득 물었다.
“아, 그리고 한 가지.”
“말씀하십시오.”
“내일 사냥 대회를 펼칠 곳이나 조별 활동 구역에 대해서 아시는 게 있는지요?”
“매년 비슷한 시기에 아카데미 학생분들이 이곳에 옵니다. 그때와 다를 게 없지요. 제가 페디카 숲의 지도와 이전의 이용 자료를 교관님들께 보여드렸습니다. 그대로 결정되었을 겁니다.”
“아아, 그렇군요.”
“살펴 가시길.”
헬무트는 말끔히 돌아섰다. 등 뒤에서 바로 문이 닫혔다. 꼭 차단하려는 듯이 성급하게. 그 소리가 헬무트의 본능을 불렀다. 먹이를 쫓는 포식자의 본능.
헬무트는 그 자리에 멈춰선 채 날카롭게 눈을 빛냈다.
‘비스를 가지고 있진 않아. 관리인은 평범한 자다.’
손을 뻗어 목을 꺾으면 죽을 것이다. 그 정도로 약하니 협박한다면, 캐낼 수 있을지 모른다.
수상한 낌새가 느껴진다. 참아야 할까. 살벌한 발상이 뇌리를 스쳤다.
하지만 헬무트는 주먹을 움켜쥐었다. 그는 제 안의 사나운 충동을 다스렸다. 참아야 했다.
그는 그레타 아카데미 검술 학부 학생이고, 바로 근처에 교관과 학우들이 있었으므로.
‘알아낼 건 알아냈으니.’
헬무트는 멈춰선 발을 움직였다. 그에겐 제약이 있었다. 아직 그 제약을 깨고 움직일 근거가 없었다.
*
“이 녀석들, 대체 어디에다가 술을 숨겨온 거야?”
헬무트가 돌아왔을 때, 이미 9조의 테이블은 난장판이었다. 페트리샤 교관이 뻗어 있는 웨슬리의 목덜미를 부둥켜 쥐고 흔들었다.
“교, 교관님. 토할 것 같…… 우욱!”
번개 같은 손놀림에 웨슬리는 테이블에 토사물을 뱉으며 동시에 거기에 머리를 박았다.
척 보기에도 역겨운 광경에 지켜보던 옆 조 녀석들이 안면을 찌푸렸다.
“그 웨슬리 녀석이 술을 가져왔어요. 조원들을 타락의 길로 이끈 주모자죠”
턱을 괴고 지켜보던 아스카가 고자질했다. 술에 강한 그는 물을 좀 마시고 나자 정신을 차린 모습이었다.
그에 반해 다른 녀석들은 쓰러져 잠들어 있거나 비실거리거나 구역질을 해댔다. 가지가지였다.
“너도 공범이야!”
딱! 오늘도 어김없이 머리를 얻어맞은 아스카가 눈을 부라리며 항의했다.
“아니, 가져온 술을 마셨을 뿐인데!”
“말렸어야지. 검술 학부 차석씩이나 되어서 비행에 동참해서 되겠어?”
정학 사유는 아니지만, 혼날 사유는 된다. 억울함을 느낀 아스카는 마침 돌아오고 있는 헬무트를 향해 손가락질해댔다.
“저 녀석도 마셨다고요! 왜 저한테만 그러세요!”
의리라는 단어를 잘도 팔아먹는 모습이다. 페트리샤 교관은 손을 올리려다가 움찔했다.
“헬무트, 넌 어디를 갔다 온 거냐.”
“속이 안 좋아서 잠깐 다녀왔어요. 죄송합니다. 헤네시의 독주라고 하길래 어떤 건지 궁금해서 그만.”
반듯하게 말하는 헬무트는 무표정했다. 어둠이 내린 숲에서 유독 까맣게 보이는 눈빛이 섬뜩했다. 왠지 머리통을 내려칠 수 없는 분위기였다.
“……그래, 좋아. 여길 수습하도록. 또 감춰 둔 술이 있는 건 아니지?”
“그런 거 없어요!”
“그래야 할 거야. 한 번 더 걸렸다간 너희는 조별 활동을 즐기는 대신 특별히 내 아래에서 훈련해야 할 테니까.”
“네, 네.”
아스카는 건성으로 대답하며 널브러진 녀석들을 걷어차 깨웠다. 정신을 못 차리는 녀석의 얼굴엔 찬물도 부어 줬다.
헬무트는 솔깃했다.
‘훈련? 괜찮은데.’
페트리샤 교관이 있다면 그 누군가도 수작질을 부리기 힘들 거다. 그녀 기준에서 고된 훈련이라고 한들 헬무트한테는 고되다고 말하긴 어려울 터.
하지만 헬무트는 그 정체 모를 누군가가 수작을 부리길 바라는 터였다.
내일은 사냥 대회가 열렸다. 오랜만의 사냥이다. 다소 위험성 있는 사냥. 기대되었다.
헤네시의 독주는 불면증에 효과가 있다고 한다. 헬무트는 그날 밤, 아주 달게 잠을 잤다. 야영지에서의 첫날 밤이었다.
*
사냥 대회의 아침이 밝았다. 각자 조별 활동을 하러 야영지를 떠나는 셋째 날 아침까지는 식사가 제공되었다. 그 후로는 거의 자급자족이다.
8시에 기상한 검술 학부 학생들은 바로 아침을 먹고 한자리에 모였다.
간밤에 사고를 치거나 이탈한 녀석은 없었다. 여긴 야영지를 나가 봤자 숲이니, 뭘 할 수 있는 게 없었기 때문이다.
체력들이 좋다 보니 다들 쌩쌩했다. 어제 말을 달린 건, 검술 학부 학생들에게 강행군이라고 할 수 없는 수준이다.
“다들 모였나?”
하나씩 호명을 하여 인원을 점검한 알란 교관이 브리핑을 시작했다.
“지금부터 사냥 대회에 대해서 설명할 테니, 잘 들어라! 모두 도보로 이동하며 출발하기 전 활과 화살, 근처의 지도, 점심 식사와 음료수가 지급된다. 개인 활을 가져왔으면 그대로 써도 된다. 화살을 사람에게 쏘지 않도록 주의하도록. 꼭 목표를 확인하고 쏴라. 사냥 대회는 오후 5시까지다. 오후 5시까지, 이 자리로 가지고 온 사냥감에 한해서만 인정된다. 시간 맞춰 미리미리 돌아와라. 숲은 금방 어두워지니까 괜히 길을 잃어서 찾아 나서게 만들지 말도록. 조별로 이동해도 상관없지만, 한 명이 부상을 당해도 알릴 수 있게 두 명 이상이 함께 행동한다. 페디카 숲에는 맹수가 있다는 걸 유념해 두도록.”
바로 페트리샤 교관이 말을 받았다.
“사냥감은 사냥해 온 것 중에서 가장 가치가 있는 것을 평가 기준으로 삼는다. 괜스레 토끼 같은 걸 많이 잡아 봐야 소용없다. 사냥하기 어렵거나 희귀한 놈일수록, 높은 점수를 매긴다. 토끼보다는 여우가, 여우보다는 곰이, 곰보다는 표범이 높은 점수를 받겠지. 회색 여우보다는 하얀 여우가 점수가 높으니 운이 따라주면 더 쉬운 사냥감으로 높은 점수를 받을 수 있을 거다. 새끼가 달린 동물은 사냥하지 마라. 사슴을 잡은 녀석이 점수도 안 되는 토끼를 잡지도 마라. 우리는 대회를 하는 거지 페디카 숲에 있는 짐승의 씨를 말리려는 게 아니니까.”
백여 명이나 되는 검술 학부 학생들이 이곳에 있다. 짐승의 씨를 말리는 것도 가능한 일이다 보니, 이래저래 제약을 거는 셈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