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lmut: The forsaken RAW novel - Chapter 122
121
헬무트
121화
“다음으로 상을 발표하겠다. 5등까지 상이 있다. 5등은 아카데미 식권 10장, 4등은 고급 깃펜과 잉크, 3등은 아카데미 서점 10권 증정권, 2등은 개인 수련장 이용권, 1등은 이 모든 혜택을 얻을 수 있다. 드웨인 교수님이 야영지에 계실 테니, 너무 멀리 가지 말고 다친 사람이 있으면 바로 돌아와 말씀드리도록, 이상!”
알란 교관이 마지막으로 선언했다.
“지금부터 사냥 대회를 시작한다!”
모두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좀 더 괜찮은 사냥감을 찾으려면 야영지에서 먼 곳까지 가야 한다.
도보로 이동한다면 한계가 있을 테니, 오후 5시 전에 돌아오려면 시간 안배가 필요했다.
사냥감이 큰 놈이면 비스를 써서 끌고 올 수는 있겠지만, 오래 걸릴 거다. 서둘러야 했다.
눈 높고 부유한 학생들은 야영지를 떠나자마자 불만을 토해 냈다.
“상품이 참 약소하네.”
“학생 대상으로 하는 건데 돈을 걸 수는 없잖아. 2등은 좀 탐나는데.”
“난 1등.”
“당연히 1등이 가장 좋은 거 아니냐? 그래도 개인 수련장이 어디야.”
“땀내 나는 놈들과 한곳에서 수련하는 것보다야 혼자서 호젓하게 수련하는 게 좋지.”
“이번 학기 성적 좋으면 다음 학기에는 개인 수련장 쓸 수 있지 않아?”
“맞아. 하지만 어차피 넌 성적이 좋기는 어려울 텐데, 사냥에서라도 천운을 기대해 보지그래?”
“뭐야? 이 자식이! 남 말 하듯 하네.”
“난 오늘 운이 좋을 거야. 좋은 꿈을 꿨거든. 숲에서 금을 줍는 꿈.”
“금처럼 누런 새똥이나 맞아라!”
왠지 모르게 시비조로 말을 내뱉는 녀석들이 있는가 하면, 동정심 많은 녀석들도 있었다.
“잔인한 짓이야. 난 안 할래.”
“고상한 척하기는.”
“고상한 척하다니. 넌 엄마 잃은 새끼사슴 눈망울을 본 적 있어? 그게 얼마나 불쌍해 보이는지 모르니까 그렇지.”
“그건 본 적 없는데 아는 건 있다. 새끼사슴이 고기가 연하고 맛있지. 통구이가 일품이던데.”
“이 짐승 같은 자식!”
다행히 헬무트와 아스카 사이에는 이견이 없었다. 둘 다 사냥 대회에 적극적으로 참가할 셈이었다.
특히나 아스카는 의욕적이었다. 그는 눈을 빛내며 외쳤다.
“좋아, 최소 2등이다. 개인 수련장 확보!”
아스카는 곧바로 헬무트에게 물었다.
“사냥할 만한 적당한 장소가 있을까? 이 근처는 사람 수가 많아서 도망가 버릴 것 같은데.”
“물가 쪽에 사냥감이 있을 거야. 물을 마시러 올 테니까.”
“오는 길에 물가가 있지 않았나? 좀 멀긴 하지만, 갔다 올만은 할 거야. 왕복 두 시간 정도 걸리려나.”
“그리로 가 보지.”
9조의 조원들은 헬무트와 아스카의 뒤를 따랐다. 조별로 움직이는 게 규칙은 아니었지만, 왠지 모르게 그렇게 되었다.
둘은 가볍게 숲을 가르며 뛰었다. 가볍게 뛰었다지만, 제법 빠른 속도였다. 그들은 따르기 위해서 9조의 조원들은 이를 악물어야만 했다.
힘들다고 뒤처지기에는 그들도 검술 학부다.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았다.
“아, 좀 힘들다. 슬슬 다 오지 않았어?”
한참 뒤 아스카가 멈춰 서며 이마의 땀을 훑었다. 콧잔등에도 물기가 배어났다.
곧 도착한 9조의 조원들은 진작 숨이 턱 끝까지 찼다. 오기로 따르던 그들은 나무에 기대거나 바닥에 쓰러지듯 주저앉았다.
“헉헉, 어째 한 번 쉬지도 않냐!”
“따라오다가 죽는 줄 알았네.”
사냥이고 뭐고 이대로 드러눕게 생겼다. 널브러진 조원들을 향해 아스카가 콧방귀를 뀌었다.
“누가 따라오랬나.”
그들을 슥 훑어보는 헬무트는 산책을 나온 것처럼 멀쩡했다. 얄밉게도 그의 얼굴에는 땀 한 방울도 맺히지 않았다.
“물가는 여기서 5분 정도 걸어가면 돼. 이 근방에서 기척을 죽이고 걷는다. 슬슬 사냥감이 눈에 띌 테니까.”
“좋아, 빨리 해치우자고!”
아스카가 주먹을 치켜들자, 9조의 조원들은 낯빛이 어두워졌다.
“당장 가자는 거야?”
“야, 좀 쉬었다가…….”
“아니, 여기서부터는 따로 행동하지. 수가 너무 많으면 사냥에 방해돼.”
어차피 하나의 사냥감을 잡을 수 있는 건 한 명뿐이다. 여기 있는 모두는 어디까지나 경쟁자다. 아스카도 포함해서지만, 당장은 그를 떨쳐 낼 수 있을 것 같지가 않다.
‘떨쳐 내는 편이 낫지만.’
블랙 호크가 그에게 접근하게 하려면, 아스카가 없는 편이 낫다. 혼자서 자유롭게 상대할 수 있을 테니까.
일단 여기선, 다른 녀석들을 떨궈야 했다.
헬무트가 바라는 건 전투였다. 오랜만의 전투! 살인을 하면 안 되니 피해야 한다는 걸 알면서도 어쩔 수 없이 바란다. 피치 못할 전투가 그를 찾아오기를.
헬무트가 덧붙였다.
“너희들도 인원을 갈라. 너무 많은 수가 몰려다니면 오히려 사냥하는 데 방해될 거야.”
9조의 조원들은 서로를 쳐다봤다.
“좋아.”
“우리 둘은 따로 움직이지.”
“둘둘 갈리면 되겠네.”
“급할 거 없으니 좀 쉬다 움직이자고.”
“그러지.”
대화를 나누는 그들을 두고 헬무트는 바로 자리를 떴다.
좀 더 거리를 벌려야 했다. 아무도 싸움을 감지하지 못할 먼 곳으로.
마침 아스카를 처리할 좋은 방법이 생각났다.
‘사냥감을 들려 주면 되겠군.’
묵직하고 거대한, 우승을 바라볼 수 있는 사냥감. 일찍부터 먼저 들려 보낼 수 있을 테니까.
헬무트는 사냥 대회에는 연연하지 않기로 했다. 물가까지 그는 유심히 흔적을 살피며 이동했다.
커다란 짐승은 반드시 흔적을 남긴다. 물가 근처까지 가자 코끝에 진한 향기가 밀려들었다.
상처 입은 나무에서 송진이 배어나고 있었다. 아직 굳지 않은 걸 보니, 얼마 전에 난 상처다.
‘발톱 자국이로군.’
뒤따르던 아스카가 지루한 듯 물었다.
“뭐야, 뭐가 있는 거야?”
사냥감을 발견한다면 미친 듯이 쫓아가서 화살을 박아 넣지, 인내심 있게 기다리진 못할 녀석이었다.
“아아, 이 자국. 곰 같은데.”
딱 몸을 일으켜서 나무를 득득 긁은 높이였다.
“곰이라고? 그거 잡으면 1등은 따논 거 아니야?”
아스카가 눈을 휘둥그레 뜨며 물었다. 희망에 부푼 기색이다.
“그럴 수도.”
더 좋은 사냥감을 잡아 오는 녀석이 없으리란 보장은 없다.
하지만 헬무트는 빨리 아스카를 보내 버리고 싶었다. 잘하면 그럴 수 있을 것 같기도 했다.
‘발톱을 긁은 높이를 보건대 큰놈이야.’
“야, 근데 우린 둘이잖아. 네가 곰이 있다는 걸 알았으니 추적해서 잡으면 네 거 아닌가?”
답지 않게 경우를 따진다. 헬무트가 뭐라 말하기도 전에 아스카는 빨리 결론을 지었다.
“아니지, 일단 나도 같이 행동하는 거고 내가 먼저 발견할 수도 있으니까. 둘 다 화살을 쏴서 목숨을 끊는 쪽에게 소유권이 있는 걸로 하자.”
“……좋을 대로.”
욕심이 가득 드러난 눈빛을 마주하며 헬무트는 건성으로 답했다.
헬무트가 활 쏘는 걸 본 적 있는 아스카한테 유리할 것 없는 경쟁이었다. 그나마 양심이 있긴 했다.
운도 따라 줬다. 흔적을 따라나설 것도 없이, 그들은 곧 표적을 발견할 수 있었다. 아스카가 눈을 가늘게 떴다.
“저거, 곰 아니야?”
네발로 느릿느릿 걸어서 물가로 다가오고 있는 갈색 곰 한 마리가 보였다.
몸집을 보아하니, 발톱으로 나무에 자국을 내놓은 녀석이다. 아무것도 모르고 느긋하게 걸어오고 있다.
바로 활을 겨누며 아스카가 내뱉었다.
“숨을 끊는 쪽한테 권리가 있는 거다.”
헬무트도 형식적으로 활을 겨누었다. 팽팽하게 활시위가 당겨졌다. 이 손을 놓기만 하면, 화살은 곰의 목덜미를 꿰뚫을 것이다. 고통 없이 절명할 터.
헬무트는 문득 궁금해졌다.
‘짐승을 죽이는 것에도, 어둠의 씨앗이 반응할까.’
두 2급 용병을 죽이고 후유증을 겪은 이후로 살생을 피해 왔다.
발아래 짓밟혀 죽었을지 모르는 개미나 풀까지는 신경 쓰지 못했지만, 그 이후로 그의 손에 죽은 건 아무것도 없었다.
‘시험할 상황은 아니지.’
아스카가 먼저 활시위를 놓았다. 파삿! 날카로운 파공음과 함께 표적을 향해 화살이 쏘아져 나갔다.
퍽! 화살이 아슬아슬하게 곰을 빗나가 나무에 꽂혔다. 갑자기 놈이 속도를 높인 탓이다.
-크르르
곰은 경계심에 소리를 냈다. 헬무트는 활시위를 놓았다.
파삿! 화살은 어김없이 놈의 앞다리를 스치고 지나갔다. 피가 줄줄 흘러내렸다.
-크아아아앙!
곰이 고통에 울부짖으며 곧바로 바닥을 박차고 뛰었다. 화살이 날아온 반대 방향이었다.
포악한 녀석이라면 그들에게 달려들 만도 하건만, 덩치도 큰 녀석이 바로 내빼고 본다.
하지만 다리를 다쳤으니 도망엔 한계가 있다.
“좋았어!”
사냥감을 쫓는 맹수처럼 아스카가 눈을 번뜩이며 달리기 시작했다. 헬무트도 바짝 뒤를 따랐다.
아스카는 뛰면서 활을 겨누고 닥치는 대로 화살을 쏘아댔다. 조급하게 쏴대는 것치곤 제법 정확했다.
세 번째 화살이 도망가는 곰의 몸통을 맞추는 데 성공했다.
“크아앙!”
쓰러져 뒹구는 곰에게로 다가가며 아스카가 재빨리 화살을 재었다. 이번에는 정확히 머리를 겨누고, 활시위를 놓았다.
퍽! 곰의 움직임이 멎었다. 부르르 떠는 몸에서 생명의 기운이 가셨다. 숨이 끊어진 것이다.
아스카가 신나서 소리를 내질렀다.
“이야, 잡았어! 봤어?”
혹시 어둠의 싹에 영향을 미칠까 봐 멀찍이 서 있었던 헬무트는 제 가슴을 내리눌렀다. 다행히, 이상이 있는 것 같지는 않다.
‘직접 죽이지 않으면 되는 건가. 짐승 정도는 괜찮은 것 같기도 하고.’
마물을 잡을 때는 마기 때문에 약간은 영향이 있었다. 하지만 어둠의 싹을 그렇게까지 자극하지는 않았던 것 같다.
‘일단은, 직접 살인만 피하면 된다는 거로군.’
헬무트는 결론을 얻었다. 아스카가 곰의 사체 주변을 빙글빙글 돌며 감탄했다.
“히야, 이 정도면 진짜 1등도 하겠네.”
막무가내로 쐈다지만 어쨌든 화살로 잡은 그의 첫 사냥감이다.
하지만 그는 곧 이상한 점을 깨달았다.
“근데 왜 넌 내가 계속 쏠 동안 한 대도 못 맞췄어?”
아스카가 의심스러운 눈으로 쳐다봤다. 마침 좋은 핑곗거리가 생각난 헬무트는 무심히 답했다.
“네가 내 앞에 있었잖아. 가로막고 있으니 화살을 못 쏘지.”
“뭐야? 그랬나. 누가 그렇게 느리래. 날 제쳤으면 되잖아.”
생각 없이 먼저 뛰쳐나간 아스카가 콧잔등을 긁었다.
“근데 잡은 건 좋은데 말이야, 이 곰 어떻게 들고 다니지? 난 이거면 된 것 같지만, 너도 뭔가를 사냥해야 하지 않겠어?”
그렇게 말하면서 혹시 자기 곰보다 더 좋은 사냥감을 건질까 봐 경계하는 눈빛이다. 속이 뻔히 들여다보이는 녀석이었다.
“너 먼저 야영지로 돌아가든지. 난 좀 더 사냥해 볼 테니까.”
“그럼 안되지. 무슨 일이 있을지 모르니 둘 이상 같이 행동하랬잖아.”
“나한테 무슨 일이 있을 것 같아?”
“야야, 자만하지 말라고. 이런 숲속이니 뭔가 위험한 게 숨어 있을 수 있잖아.”
별생각 없이 던진 말일 테지만, 감이 날카로웠다.
“그러면…….”
그 순간, 오싹하는 감각이 일었다. 헬무트는 불현듯 뒤를 돌아봤다. 그들이 떠나온 방향이었다.
“으아아악!”
비명이 터졌다. 꽤 먼 거리, 희미하게 들렸다. 하지만 귀에 익은 목소리였다.
“뭐야? 무슨 일 있나.”
아스카가 혀를 찼다. 별 위기감 없는 표정이었다.
“바실!”
저편에서 누군가가 목청껏 이름을 불렀다. 9조의 조원이다. 연달아 외침이 터져 나왔다.
“맙소사, 괜찮아?”
“바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