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lmut: The forsaken RAW novel - Chapter 176
175
헬무트
175화
12장 여름축제
바덴의 여름은 봄과 크게 다를 바 없다. 좀 더 온후해진 기온. 약간의 더위.
단지 늘 땀을 줄줄 흘릴 만큼 훈련하는 검술 학부 학생들에게는 체감이 클 만한 날씨였다.
축제 기간 동안은 모든 학부가 단축 수업을 한다. 단축 수업이라지만 검술 학부 실기 수업 시간은 오전이다. 이론 수업을 안 할 뿐이지 훈련은 다 한다고 보면 된다.
여름 축제를 일주일 앞두고, 검술 학부 2학년생들도 축제 준비에 들어갔다. 딱히 하는 게 없어도 마음부터가 준비다.
원래 축제가 열리면, 거기서 뭔가를 하는 사람이 있고 구경만 하는 사람이 있기 마련이다.
참여는 의무가 아니었다. 하지만 축제에서 뭔가를 하는 사람에겐 혜택이 있었다.
수업이 시작되기 전, 검술 학부 2학년생들 사이에서는 축제에 관한 대화가 오갔다.
“축제 때 학내에 임시 상점가가 열리는데, 참여하고 싶은 사람은 팀과 계획서를 짜서 신청하면 돼. 일곱 명 이상 참가하면 예산이 나온대. 그렇게 얻은 수익은 반은 기부고 반은 우리가 회수.”
“뭐 부자 녀석들 많으니까 이런 때 팍팍 쓰겠지.”
“축제 상점 물가가 바덴 상점가 물가 뺨치잖아.”
검술 학부에서도 의욕을 보이는 녀석들이 몇 있었다. 아카데미에 다니는 학생들은 귀족이라도 부의 편차가 꽤 났다.
학비는 그렇다 치고 이 물가 비싼 바덴에서 생활하기는 쉽지 않았다. 이런 때 바짝 벌어 두려는 녀석들이 있을 만하다.
아니면 애초에 이런 활동을 좋아하는 녀석들도 있었다. 은연중에 가문 좋은 티를 팍팍 내는 웨슬리가 후자였다. 그가 어깨를 으쓱대며 말했다.
“난 이런 거 좋아. 아카데미가 아니면 이런 경험을 또 언제 해 보겠어?”
그는 저번 학기나 지금이나 귀족티, 있는 집 티를 줄줄 냈다. 다들 그런 그에게 익숙해져 있었다.
“너 작년에도 돈 좀 만지지 않았나? 꼬치 가게 해서?”
“그거 고기 굽는 게 좀 더울 뿐이지 만들기 쉽고 많이들 사 먹는다고. 소스는 바덴의 술집에서 대량으로 구입해 오면 싸게 먹히니까. 꼬치 꿰는 건 그리 어려울 거 없잖아?”
왠지 노하우가 있는 듯한 그였다.
“이번에도 가게 할 거지? 또 꼬치 팔려고?”
“아니, 그거 고기 굽는 게 은근 더워서…… 이번에는 좀 여름다운 걸 할까 해.”
“팥빙수?”
“그래, 재료를 구할 만한 가게도 알아놨고 마법 학부 녀석들 몇 명 섭외해 놨어. 그 녀석들은 얼음을 얼리고 노가다는 우리 쪽에서 하는 거지.”
“나도 끼워 줘. 돈 좀 만지자.”
“인원 다 찼거든!”
“쳇. 상점가 자리는 선착순인가?”
“닷새 전까지 신청하면 우선권이 있고, 나머지는 추첨.”
“가게 같은 걸 하려면 빨리 팀을 짜야겠네.”
그때 웨슬리의 친구인 미첼이 헬무트를 향해 다가와 목소리를 낮춰 말을 걸었다. 웨슬리나 미첼이나 저번 사냥 소풍에서 같은 조였다.
“우리 가게 열 건데, 너도 같이 할래? 돈 좀 두둑하게 만질 수 있을 텐데. 아카데미 녀석들, 이 축제 기간엔 아무리 바가지를 씌워도 다 산다니까. 완전 호구야.”
돈을 두둑하게 만질 수 있다는 소리가 좀 매력적으로 들렸다.
하지만 헬무트는 현재 부자였다. 뭔가를 하는 것보다는 축제를 즐기는 쪽을 하고 싶은 마음이 더 크다.
“인원이 다 찼다면서.”
“어중이떠중이들일 생각 없어. 웨슬리 가게는 인기가 많아서 하고 싶다는 녀석들 천지라고. 이건 웨슬리가 따로 너한테 말하라고 한 거야.”
그는 소곤거리다시피 작게 말했다.
슬쩍 보니 웨슬리한테 인원 누구누구 있냐고 캐묻고 있는 녀석들이 있었다. 어지간히 참가하고 싶나 보다.
“웨슬리 녀석, 수익도 균등 분배하고 시키는 대로 하면 편하니까. 다들 저러는 거지.”
“그런데 나는 왜?”
사냥 소풍 때 같은 조였다는 것뿐 그다지 접점 없는 사이다. 그간 별로 말을 나누지도 않았다.
“그야 넌 잘생겼고, 나름 유명인사라고. 편입생인데 검술 학부 2학년 수석이잖아. 손님 좀 끌 수 있을 거야.”
‘평민이라는 사실은 상관없는 건가.’
의문에 답해주듯 미첼이 말했다.
“뭐 너 정도 실력이면 아카데미 나가서도 마음먹으면 작위 하나쯤은 받지 않겠어? 실력 좋은 검사는 앞날이 창창하지.”
검술 학부 녀석들도 학기가 지나면서 신분에 대해서 꽤 무뎌진 것처럼 보였다. 그들도 아스카 때문에 더 평민 평민하면서 의식하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하긴 굳이 아카데미에서 상대가 평민이고 아니고를 따질 건 없다.
잠깐 사귀는 건 별문제 아니니까. 그리고 그레타 아카데미에서 우수한 성적을 거두는 평민 정도면 신분 상승의 길도 멀지 않다.
“웨슬리 여자 친구의 친구가 너 소개해달라던데? 근데 걔는 솔직히 별로라서 소개 안 했지. 그러길 잘했어. 넌 뭐, 그 마법 학부에서 예쁘기로 소문난 테레사 선배도 찼는데 오죽 눈이 높겠냐.”
“…….”
뭔가 테레사 건으로 인해서 알아서 차단되고 있는 느낌이었다. 이것까지 아레아의 의도는 아니겠지만.
“넌 평소에 좀, 접근하기 어려운 분위기라고 해야 하나? 가게 같은 걸 하면 손님이 좀 꼬일걸. 이참에 여자 친구도 한 명 만들어 보는 게…….”
“너는 여자 친구 이전에 네 성적 걱정부터 해라, 자식아.”
옆에서 쑥 고개를 내민 아스카가 괜히 면박을 줬다. 미첼이 억울한 표정을 지었다.
“난 여자 친구 없거든! 웨슬리가 있다고.”
“넌 왜 없냐? 친구면서.”
“너도 없잖아. 그리고 나 성적 괜찮아. 30등 안에 드는데.”
“보기보다 제법이네.”
아스카는 정말 놀랐다는 듯이 눈을 동그랗게 떴다. 미첼이 표정을 구겼다.
“시비 걸지 말고, 아무튼 헬무트 어떻게 생각해? 너도 하지 않겠어?”
한정 판매 같은 느낌이다. 지금이 아니면 기회가 없다고 말하는 듯이.
그러나 고민할 새도 없이 아스카가 미첼을 떠밀었다.
“야, 가라. 헬무트는 안 한다잖아.”
“헬무트는 아무 말도…….”
“난 들었어. 마음의 소리를.”
“무슨 헛소리야? 야, 아스카, 이거 떠밀지 마. 뭐하는 거야! 헬무트! 생각해 봐!”
“생각은 개뿔. 빨리 안 가?”
결국 아스카한테 밀쳐진 미첼은 투덜거리면서 물러날 수밖에 없었다. 헬무트는 돌아온 아스카를 보며 눈썹을 올렸다.
“내가 언제 안 한다고 했지?”
“할 거였어?”
고민 중이었다. 돈이 아쉽지도 않은데, 축제 기간 동안 가게에 묶이고 싶지 않았으니 어차피 거절했을 테지만.
대답이 없자 아스카가 불만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의리 없이 너만 혼자 하려던 거 아니지?”
당연하지만 아스카한테 빈말이라도 같이하자고 제의할 리 없다. 장사 망치고 싶지 않다면야. 아스카가 가서 얌전하게 굴 리도 없다.
차단하는 것은 아레아 못지않게 이쪽도 만만치 않았다. 아스카 쪽 영향이 더 컸다. 그가 있을 때면 헬무트한테 말을 걸지도 않는 녀석들 천지였으니까.
“괜히 그런 거 하면 귀찮기만 하다고. 축제고 뭐고.”
어제만 해도 신나서 시안과 계획을 짜던 그답지 않은 소리였다. 아마 그의 계획에는 헬무트도 들어 있었던 것 같다.
헬무트는 아스카의 투덜거림을 대충 흘려 넘겼다.
“야, 웨슬리. 나도 끼워달라고. 너 아직 인원 안 찬 거 알아.”
“네가 어떻게 알아?”
“일일이 다 물어봤지. 헬무트와 아스카한테는 안 물어봤지만, 저 둘은 안 할 테고. 검술 학부 중에 미첼밖에 너네 가게에서 일한다는 녀석 없던데? 마법 학부 녀석들로만 다 채울 것도 아니잖아?”
“……집요한 자식.”
웨슬리가 혀를 내둘렀다. 저쪽에서 여전히 웨슬리는 학우들에게 시달리고 있었다. 다들 웨슬리를 재수 없는 녀석이라고 은연중에 생각하고 있었지만, 그는 축제 때만큼은 엄청난 인기를 자랑했다.
한 녀석이 환심을 살 생각인지 웨슬리한테 넌지시 말을 걸었다.
“아, 웨슬리 내가 이번에 굉장한 소문을 들었는데.”
“일단 듣고 나서 흥미로운 거면 너도 끼워준다.”
“정말이지?”
“그래.”
짧은 새에 피곤해진 웨슬리가 한숨을 내쉬었다. 검술 학부 녀석들 사람 볶는 건 알아줘야 한다. 아주 체력들이 넘쳤다. 아직 수업이 시작하기까지 시간이 좀 남았다.
“이번에 검술 대회 말이야. 바덴의 아카데미도 참가할 수 있게 되었잖아. 그거 신전이 허락한 거라던데?”
옆에서 듣고 있던 한 녀석이 코웃음 쳤다.
“신전? 지들이 뭔데 허락하고 말고 해. 여태까지 그렇게 콧대 세우더니.”
“야, 조용히 해. 여기 루멘의 신도들도 있어. 너 그러다가 찍힌다.”
“이야기나 계속해.”
“최근에 신전에서 바소르와 갈등을 크게 빚는 일이 있었다는데, 그것 때문에 그들도 사리고 있나 봐. 바소르는 강국이잖아?”
“거기 팔마 기사단은 아주 유명하지.”
“그래서 평소에 강경하게 나왔던 것들에 대해서 좀 누그러졌다고 해야 하나. 바소르와 사이가 급격하게 안 좋아지니까 바덴에 대한 규제를 푼 거지.”
“바소르? 거기와는 무슨 갈등이 있어. 신전 세우는 것 때문에 그런가?”
“그건 모르지. 바소르 1왕자와 결탁을 했느니 어쩌느니 그러던데 나도 자세한 건 못 들었어.”
헬무트는 저도 모르게 그들 쪽으로 시선을 주었다. 큰 소리는 아니지만, 충분히 잘 들렸다.
그레타 아카데미에 다니는 귀족 자제들은 정보력이 좋았다. 가문의 일에 대해서 종종 주워듣곤 하니까. 아마 저 말을 하는 녀석도 고위 귀족 가문의 자제일 거다.
“아무튼 그게 전부야?”
“전부는 아니지. 일단 바덴의 아카데미와 함께 검술 대회를 여는 것을 허가 자체는 해 줬는데, 신전에서 바덴에 대해 아는 거라곤 마법사들이 득실거린다는 것밖에 없잖아. 그래서 감시차 이번에 바덴에 대신관이 방문한다네. 성기사와 사제들을 거느리고.”
“바덴에서는 받아들였어?”
“받아들여야지. 바덴에서 신전 상대로 싸워 이길 수도 있는 것도 아닌데. 그쪽에서 명분을 대면 어쩌겠어.”
“아아, 그래서 어제 아카데미 교수진이 전원 소집돼서 회의를 열고 그랬구나. 저쪽 건물에서 우르르 나오시더라고. 그레타 아카데미에도 방문한다는 거겠지?”
“명분은 흑마법을 시도한다거나, 금지된 힘에 손대는 이들이 없나 둘러보는 거라고 해. 신전에서는 이 바덴은 언제든 금지된 쪽으로 빠져들 수 있는 위험한 도시라고 생각하고 있잖아.”
“뭐가 어찌 됐든, 검술 학부와는 상관없는 일이지 않나? 마법 학부 녀석들이나 괜히 좀 기분 나쁘고 말겠지.”
“혹시 수업 참관을 하러 올지도 몰라. 성기사를 뽑을 수도 있잖아. 여기 신실한 놈들 몇 명 있다고.”
“고학년들이나 보고 가겠지, 2학년을 보러 오겠냐.”
“하긴 그래.”
“어쨌든 웨슬리, 이 정도 이야기면 어때, 합격?”
“좋아, 합격! 내 팀에 들어온 것을 환영한다.”
“예에!”
웨슬리 쪽이 잠시 시끄러워졌다.
“헤에, 재미있는 이야기를 하고 있잖아. 대신관이 방문하다니. 콧대 높은 자들이라 일국의 왕도 얼굴 보기 힘들다고 들었는데.”
청각 좋은 그도 듣고 있었던 모양이다. 씩 웃은 아스카가 헬무트 쪽을 쳐다보곤 흠칫 놀랐다.
“너, 표정이 왜 그리 싸늘해. 대신관한테 유감이 있냐.”
“아니. 아무것도 아니야.”
‘우연일까, 아니면.’
두고 봐야 알 테지만, 혹시 자신에 대한 정보가 새어 나갔을지도 모른다. 대신관이 죽은 자리에 그가 있었다는 정보가.
헬무트는 바소르에서 하이드라는 16세 소년으로 위장했다. 외모도 바뀌었으니, 찾아내기 쉽지 않을 거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는 너무도 실력이 뛰어났다. 그 어린 나이에 바소르의 무투회에서 우승할 만큼.
아무리 재능이 넘쳐도 그 실력이 하늘에서 뚝 떨어지진 않았을 터.
대단한 스승이 있거나, 검가 출신이거나 아니면 명문 아카데미에서 교육을 받았거나. 경우의 수는 그리 많지 않았다.
미하엘이 그리 추측했듯 신전에서도 그가 아카데미 학생일 거라는 것을 추측했다면, 바덴의 아카데미에 다닐 거라고 의심할 수 있다.
바덴으로 오는 대신관은 그를 찾으러 오는 걸지도 모른다. 신전에서 대신관의 죽음과 관련된 하이드를 찾고 있는 거라면, 절대 좋은 의도는 아니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