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lmut: The forsaken RAW novel - Chapter 188
187
헬무트
187화
“이게 무슨 소리지?”
웬 뜬구름 잡는 소리만 줄줄 적혀 있으니 무슨 뜻인지 당최 알 수가 없다. 아레아가 슬쩍 웃었다.
“잘 읽어 봐. 그게 던전의 입구 가 있는 장소를 암시하는 문구야.람피오네가 마법사 협회에 남기고 갔지.”
마법사 협회는 장기간 람피오네의 유언을 독점했다. 하지만 백여 년 가까이 투자해도 자신들이 람피오네의 던전을 찾아내지 못하자, 그제야 유언을 공개했다.
차라리 누구든 람피오네의 던전을 찾아내어 마법의 발전에 도움을 주길 바란 것이다.
헬무트는 다시 쪽지를 읽어 보았다.
‘나는 빛 한 점 들지 않는 뱃속에서 억겁의 열화를 겪고 우뚝 홀로 솟아 있도다. 푸르른 생명이 넘실대는 이 자리에서, 길을 시작한다. 내 몸처럼 검은 고적한 밤에, 문득 하늘을 바라보니 달이 빛나고 있다. 가장 깊은 암흑 속에서 만월이 빛나는 때, 여섯 개의 별이 길을 비추리라. 길을 걷기를 원하는 자, 자격을 보여라. 거짓과 진실을 교차할 때, 문을 열 수 있을지어다.’
마법사들이 비유를 좋아한다지만, 왜 이런 식으로 유언을 남기는 지 헬무트로서는 이해할 수 없었다.
하지만 주변을 둘러보니 짐작이 가는 게 있었다.
“푸르른 생명이면 물이고, 물이 넘실대는 자리면 바다 한가운데인가.”
“화산 활동으로 인해 솟아난 검은 바위 절벽. 바다에 둘러싸인 그 곳에 입구가 있어.”
자연스레 바다 쪽으로 시선이 향했다. 육지와 멀리 떨어지지 않은 거리에 우뚝 솟은 검은 절벽이 보인다.
자라난 나무와 풀로 상단이 녹색으로 덮여 있는 절벽의 모습은, 척 보기에도 수려했다.
“저런 곳이 저곳 하나만은 아닐 텐데. 넌 어떻게 찾았지?”
“람피오네의 일대기와 행적을 조사했지. 그는 이 해안을 거닐다가 그의 마법적 성취에 영향을 주는 중대한 깨달음을 얻은 적이 있어.”
“마법사 협회에서는 왜 못 찾았어?”
“람피오네는 오래 살았고 여행도 많이 했어. 그가 간 곳 중에는 비슷한 장소가 많아. 마법사 협회도 이곳을 찾았지만, 나만큼 확신이 없었던 거지. 그들은 좀 더 꼼꼼하게 둘러봤어야 했어. 람피오네는, 그렇게 친절한 자가 아니거든. 여기라고 확신해도 찾아내는 게 쉽진 않아.”
“……유산을 물려주기 싫었던 거 아닌가?”
“그럴지도? 람피오네는 독보적인 성취를 보인 대마법사였으니까. 그는 천재 중의 천재인 자신이 유한한 인간이라는 것을 한탄했지. 그의 눈에 차지 않는다는 이유로 후계자도 만들지 않았어. 그런 자가 사후에 자신의 업적을 물려주려고 하니 속이 쓰라릴 수는 있겠지.”
“그건.”
다리언과 비슷한 자다. 다리언은 아까워한다기보다는, 눈이 높은 쪽이었지만.
다리언은 뒤늦게야 헬무트를 만나 후계자로 삼았다. 반면 람피오네는 사후에 후계자를 정할 방법을 구축한 것 같다.
“람피오네는 수수께끼를 좋아해. 방대한 아공간으로 이루어진 그의 던전은 온갖 문제들로 가득하지. 머리로만 풀 수 없는 문제도 있어.”
“그 문제들을 모두 맞춰야 유산을 물려받을 수 있겠군.”
“그래, 이건 전승 마법사의 까다로운 후계자 시험인 거지.”
“안에…… 보물이 있나?”
이쯤 되면 수행 과제 수준이 아니다. 벌써 흥미가 돌긴 하지만, 보물찾기라면 더욱 흥미로울 것 같다.
“그럴걸. 명색이 대마법사의 던전인데. 아마 던전의 소유권을 넘겨주지 않을까? 그럼 보물도 자연히 따라오는 거겠지.”
마법사는 부자다. 람피오네쯤 되는 마법사의 유산이면 다리언의 유산을 넘어서고도 남으리라.
비록 그 유산을 얻기까지 과정은 순조롭지만은 않을 테지만. 어쩌면 바소르에서의 전투보다 험난할지도 모르겠다.
‘돈이야 충분하지. 그래도.’
더 생긴다면 마다할 이유가 없다. 아레아는 가볍게 덧붙였다.
“마법적 연구 성과를 제외하면 당연히 네 몫도 있는 거지.”
“의욕이 생기는군. 던전이 열리는 시간은 밤이겠지?”
“맞아. 그리고 던전은 동일한 인물에게 오직 일 년에 한 번, 6시간 동안만 열리거든. 그 안에 문제를 풀지 못하면 그다음 해를 기다려야지. 난 아카데미에 입학하기 전, 한 번 시도했고 중간에 멈추었어.”
그것은 현명한 선택이었다. 더 진행할 수 있을 것 같지 않았기에. “문제는 매번 동일한가?”
“그러길 바라지만, 그렇지 않을 수도 있어. 람피오네가 엄청나게 많은 문제를 등록해 놨고 거기서 불규칙하게 뽑아낸 문제를 푸는 식 이라면 말이지.”
“문제의 총 개수는?”
“모르겠어. 나는 100문제 정도로 예상해.”
아무리 똑똑하더라도 문제 수가 너무 많으면 시간 안에 푸는 것은 불가능하다.
람피오네가 유산을 물려줄 생각도 없으면서 그냥 골탕을 먹이려고 공략이 불가능한 던전을 만들어놨을 수도 있지 않은가?
헬무트는 일순 의심했다. 헬무트가 그 의심에 대해서 말하자 아레아는 고개를 저었다.
“나는 람피오네에 대해서 조사했어. 람피오네가 던전을 구축했다고 생각되는 기간으로 미루어 볼 때, 그렇게까지 많은 문제를 만들지는 못했을 거야. 끝이 있겠지. 이번에야말로 우리는 그 끝을 보게 될 거야!”
아레아의 보랏빛 눈동자가 자수정처럼 반짝였다. 헬무트는 빤히 그녀를 쳐다봤다. 이토록 신이 난 아레아를 보는 건 처음이었다.
바덴으로 놀러 가서도, 새로운 걸 봐도 늘 담담한 아레아였다. 축제 때 보여준 겁에 질린 모습이 의외일 정도다.
“그래, 언제쯤 저 절벽으로 이동할 생각이지?”
“아…… 일단 명상을 좀 하고. 마력을 회복시킨 뒤에.”
아레아가 재빨리 자세를 취하고 앉아 손을 무릎 위에 올렸다.
검사가 비스 수련법으로 비스를 회복하듯, 마법사는 명상을 통해서 마력을 회복한다.
하지만 명상에도 집중력과 체력을 요구된다. 상태가 나쁠 때 명상을 취해 봤자 소용없기에 일단 드러누워 있었던 것이다.
명상 시에 타격을 방지하기 위해서 몸 주위에 결계가 둘러졌다.
헬무트는 아레아에게로 빨려드는 대기의 기운을 느꼈다. 명상을 통해 대기의 기운을 자신의 마력으로 만드는 것이다.
은빛 머리카락이 흩날리고, 하얀빛이 아레아 주위를 후광처럼 밝혔다.
마법사의 마력은 심장에 있다. 마기와 같은 곳에.
헬무트는 심장으로 모여드는 힘의 흐름을 느꼈다. 그 모습은 신비로우면서도 신기했다.
하지만 금방 끝나지는 않을 것 같다. 헬무트는 그동안 처음 보는 바다를 탐방하기로 했다.
*
몇 시간 후, 명상을 마친 아레아는 자리에서 일어섰다. 마력이 온 몸에 가득하다.
마법사는 기운이 충만한 장소를 좋아하니, 이곳도 딱 그런 곳이었다.
해안에는 노을이 지고 있었다. 막 어둑어둑해지는 시간. 어차피 길이 열릴 때까지는 시간이 많이 남았다.
아레아는 문득 헬무트를 찾았다.
‘어디 있지? 저녁인데 배가 고프진 않을까.’
검술 학부 녀석이니 굶겨선 안 된다. 안 그래도 던전에 들어선 이 후의 과정이 얼마나 험난할지 모르는데.
하지만 헬무트는 굶을 생각도 없는 것 같았다. 그는 마침 저 바닷가에서 큼직한 바닷가재 두 마리를 잡아 오고 있었다. 바지를 걷고, 신발도 벗은 채였다.
그가 아레아 앞에 바닷가재를 턱하니 내려놨다. 살고 싶다고 버둥거린다.
“이건 먹을 수 있지? 바닷가재는 맛있잖아.”
그 물고기를 놔주라고 한 게 맛이 없는 고기라서 놔주라고 한 건 줄 알았나 보다.
아레아가 기가 차다는 듯이 눈썹을 올렸다.
“먹을 수 있지만…… 식량이 있는데 잡아 오는 이유가 뭐야.”
놀러 온 것도 아니지만. 여기서야 그냥 위장만 채우면 그만이고, 바덴에 돌아가면 뭐든 먹을 수 있다. 굳이 사냥까지 할 필요는 없었다.
“바다 사냥……? 바닷가재는 별로인가.”
헬무트라고 해서 사냥을 아주 좋아하는 건 아니다. 숲에서의 사냥은 질릴 만큼 익숙한 것이었으니까.
하지만 바다에서는 달랐다. 사냥꾼의 본능이 발동했는지, 잡아 보고 싶은 것들 천지였다.
학살극을 벌이려다가 마음을 바꿔서 개중 가장 좋은 놈을 골라잡아온 것이다.
아레아가 왠지 피식 웃었다.
‘나름대로 즐기고 있었나 보네. 이럴 때 보면 꼭 어린애 같다니까.’
“그래, 바닷가재 맛있겠다. 구워 먹을까?”
헬무트는 아레아의 표정을 봤다.
‘마음에 드나 보군.’
역시 바닷가재쯤은 되어야 하는가. 아레아는 까다롭다. 웬만한 사냥감은 눈에 차지 않는 것 같다고 헬무트는 엉뚱하게 생각했다.
헬무트가 바다 어딘가를 향해 손을 들었다.
“사실 저쪽에 큰 게 좀 있는데, 저건 맛있을지 모르겠고 손질도 힘들 것 같아서.”
‘큰 거…….’
그가 손가락질한 쪽을 보니, 뛰어오르고 있는 돌고래가 보였다. 아레아는 움찔거렸다.
사냥이랍시고 헬무트가 피 뚝뚝 떨어지는 돌고래를 잡아 오지 않은 게 다행이었다. 아레아에게도 비위가 있었다.
“넌 무인도에 혼자 떨어져도 잘 살 것 같아.”
한숨을 내쉬며 아레아는 마법으로 불을 피웠다. 두 마리의 바닷가재가 노릇노릇하게 구워졌다.
싱싱한 바닷가재의 맛은 훌륭했다. 가져온 음식을 곁들여 먹고 나자 배가 불렀다.
헬무트는 문득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어느덧 어두워진 하늘에 달이 빛나고 있었다.
‘보름달이로군.’
그래서 새벽부터 출발했던 건가. 오늘이 바로 길이 열리는 그때다.
“절벽까지는 어떻게 이동하지?”
여긴 배가 없다. 아레아의 대답은 명쾌했다.
“날아서.”
난다는 건, 마법을 쓴다는 뜻. 해안가에 남은 흔적을 지우고 아레아가 주문을 읊조리며 자신과 헬무트에게 마법을 걸었다.
“자유의 비상.”
아레아의 마력이 몸을 감싸는 것도 이젠 좀 익숙해졌다. 몸이 허공으로 붕 떠오른다.
둘은 파도가 철썩거리는 밤바다 위를 빠르게 날았다. 절벽은 까마득하게 높았다. 떨어져 수면에 충돌한 순간, 뼈가 부서질 만큼.
그 때문에 파도 소리가 희미하게 들릴 만큼 조용했고, 하늘과 더 가까웠다.
밤하늘에 박힌 무수한 별들이 절벽 위로 쏟아져 내리는 것 같았다.
대마법사의 길이 시작되기에 어울리는 고적하고 신비로운 장소.
절벽에 내려선 헬무트는 람피오네의 문구를 떠올렸다.
‘가장 깊은 암흑 속에서 만월이 빛나는 때, 여섯 개의 별이 길을 비추리라.’
“여섯 개의 별이 뭐지?”
아레아는 이미 절벽 위를 탐색 중이었다.
그는 땅에 울퉁불퉁하게 솟은 비슷비슷해 보이는 돌덩이 중에서 딱 여섯 개를 추려 냈다.
“잘 보면, 실금이 보여. 운석의 조각이 박혀 있어서 ‘별’이라는 거지. 이게 시간이 되면 길을 알려 줄 거야.”
자세히 들여다보니 검은 돌에 약간 은빛 실선 같은 게 보이기는 했다.
‘이걸 어떻게 찾아.’
람피오네라는 마법사는 역시 제 던전이 누군가에게 공략당하기를 원하지 않았던 것 같다. 아레아를 빼고는 아무도 찾아내지 못했다고 하니.
“람피오네의 마법은 정교하지. 때려 맞추는 것을 용납하지 않으니 조금도 실수해선 안 돼.”
아레아가 여섯 개의 돌덩이 간격을 품에서 꺼낸 줄자로 재는 것을 보고 헬무트는 질린 기분이 들었다.
마법의 이해를 공부할 때부터 느꼈던 것이지만 마법은 쓸데없이 꼬아 놓고, 생각을 많이 해야 하고, 섬세하다.
검 쪽이 훨씬 직관적이다. 몸에 익은 대로 싸우면 그뿐. 어설프게 머리를 굴러 봐야 힘으로 박살 낼 수 있다.
헬무트는 새삼 자신의 적성을 확인했다.
‘마법사가 되지 않기를 잘했군.’
재는 작업을 마친 아레아는 바닥에 선을 그었다. 각자의 돌덩이와 정확히 동일한 거리를 둔 바닥에 작은 원이 그려졌다.
“여기야. 이제 때가 되면, 자격을 보인다.”
어떤 식으로 자격을 보이면 될지, 헬무트는 묻지 않았다. 마법사가 자격을 보이는 방법은 뻔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