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lmut: The forsaken RAW novel - Chapter 207
206
헬무트
206화
“어때, 헬무트. 자신은 있어? 선발전이야 뭐 너라면 무난히 통과할 테지만.”
아스카가 불만스러운 표정으로 떨어져 섰다. 헬무트는 가볍게 답했다.
“출전한다면 우승해야지.”
출전 자체가 약간 고민되는 부분도 있었다. 비록 아레아조차 출전을 부추긴다고 하더라도.
신전의 이목에 걸려들 위험성도 있었고, 시안의 행각이 경계심을 돋웠기에. 본인은 별생각 없는 것 같지만 말이다.
주변에서 박수를 쳤다.
“역시 헬무트!”
“그래야 검술 학부 2학년 수석답지! 확 밟아 주라고!”
환호성을 터트린 검술 학부 2학년생들은 시끌벅적하게 대화를 이어갔다.
“2학년에서 종합 검술 대회 우승자가 나오면 끝내주는 거 아니냐?”
“그럼 아주 끝내주겠지. 우리 학년 콧대가 엄청 올라갈걸!”
“우승자는 우리 아카데미뿐만 아니라 타 아카데미 통틀어서 최고의 실력자라는 거잖아!”
“그건 당연한 거지. 완전 공식 인정받는 거지. 엄청 짜릿할걸.”
틀림없이 각 아카데미에서는 명예를 위해서라도 최고의 실력자들만 엄선하여 참석시킬 것이다.
이런 검술 대회에서 실력을 감추고 적당히 몸을 뺀다는 일은 있을 수 없다.
출전이 확실히 되는 자들도 검술 대회에서 두각을 드러내기 위해 실력을 갈고닦았다.
자신의 실력을 모두의 앞에서 증명하는 건 검사다운 일이었다. 검술학생들은 그 때문에도 대회에 참석하기 위해서 혈안이었다.
짧은 순간에 리노사에 대한 정보를 확보한 헬무트는 귀를 기울였다.
대화는 끊임없이 이어졌다.
“야, 검술 대회에서 우승하면 졸업할 때쯤에는 다들 줄을 서겠다. 이번엔 규모가 커져서 다들 주목하는 모양이던데.”
“리노사에서도 눈독을 들일지도? 리노사는 기사들에게 대우가 좋기로 소문이 났잖아.”
“우리 아카데미에도 리노사 공국 출신이 좀 있지?”
“리노사 인들이 평균적으로 성적이 가장 우수한 편이라고 교관님들이 이야기하는 걸 들었어.”
“나도 그렇게 들었어. 전 학부 통틀어서.”
“리노사 대공녀도 우리 바덴의 아카데미에 다닌다는 소문이 있던데?”
“그래? 리노사에 황족이면 엄청 예쁠 것 같은데.”
“난 리노사 출신 녀석한테 그게 누군지 들었는데, 말 안 한다. 비밀로 하기로 약속했거든!”
웨슬리가 깐죽대며 자랑했다. 주변에서 야유가 쏟아졌다.
“이 자식 그러면 말을 하지 말던가!”
“그래서 예쁘냐? 그게 중요하지.”
“글쎄, 예쁠까 아닐까? 나는 그걸 알까 모를까?”
웨슬리는 한 대 때리고 싶은 뺀질뺀질한 면상으로 웃었다. 주변 분위기가 험악해졌다.
곧 검술 학부다운 응징이 이어졌다. 쪽수 앞에서는 대책이 없었다.
웨슬리는 곧 목 졸림을 당하며 비명을 내질렀다. 아무도 말리지 않았다.
그 모습을 무심히 지켜보는 헬무트의 뇌리에 불현듯 스치는 한 사람이 있었다.
‘설마.’
헬무트는 고개를 저었다. 이렇게 착착 흘러가지는 않을 거였다.
그리고 또 한 사람이 헬무트의 뇌리를 스쳤다. 바소르에서 만났던 소년, 미하엘.
그는 제국 출신이라고 했다. 리노사 공국으로 가려면 제국을 거쳐야 하니, 혹시 그와 마주칠 일이 생기지 않을까.
땡볕도 견디지 못하는 그 허약한 몸을 이끌고 바소르의 무투회까지 구경하겠다, 인재를 섭외하겠다, 하는 명목으로 찾아온 미하엘이다.
그라면 종합 검술 대회에 흥미가 있을 법했다. 바소르에 다녀오느라 앓아눕지 않았다면, 아카데미에 다니지도 않는 그이니 나타나도 이상하지 않다.
‘그는 나를 알아볼까.’
변장을 풀었다. 한동안 하이드로 활동할 일은 없을 것이다.
금발과 푸른 눈의 하이드는 헬무트와는 인상부터가 다소 달랐다. 검은 머리와 검은 눈의 헬무트의 모습이 훨씬 위압적이었다.
하지만 헬무트는 미하엘이 자신이 알아볼 거라는 데 돈을 걸 수 있었다. 전 재산은 아니겠지만.
미하엘은 시안 이상으로 눈치가 비상하고 총명한 소년이다. 그리고 헬무트가 인상 깊게 기억할 만큼 색다른 유형이기도 했다.
‘미하엘이라…….’
거슬리는 구석이 없잖아 있긴 해도 나쁘지는 않았다.
헬무트의 자기 사람으로 만들고 싶다는 그의 제의는 아직도 유효할진 의문이나, 어쨌든 미하엘은 다음 만남을 기약했다.
헬무트는 그게 먼 미래는 아닐 것 같다는 예감에 사로잡혔다.
어쨌든 선발전은 이제 목전으로 다가와 있었다.
*
다음날 헬무트는 수련장을 벗어나다가 우연히 샤를로트와 마주쳤다.
“안녕하세요.”
막 수련을 하고 나온 참인지 땀에 젖어 있었다.
귀한 신분의 영애답지 않게 소탈하고 밋밋한 차림.
샤를로트는 최근 들어 다른 학생들보다 더욱 수련에 힘쓰고 있었다. 선발전에 나가고 싶은 열망은 다른 이들보다 그녀에게 유독 강했다.
검술 학부 1학년 수석 자리를 차지했지만, 차석과 엄청난 격차를 보이지 못했던 그녀다. 언제든 뒤집힐 수 있으니 정진해야 한다.
“수련은 잘 되고 있나?”
헬무트는 물었다. 샤를로트가 흠칫하며 그를 쳐다보았다.
헬무트는 누군가에게 안부를 물을 것 같지 않은 선배였다. 무뚝뚝한 정도를 떠나서 무심했다. 샤를로트의 평가는 맞았다.
하지만 헬무트에게 샤를로트는 특별한 의미를 가지는 소녀였다. 물론, 아레아와는 다른 의미로. 그래서 의식하게 되는 것이다.
“노력하고 있습니다. 저도, 선발전을 통과하고 싶으니까요.”
“그래.”
헬무트는 고개를 까닥하고 그녀를 지나쳤다. 더 할 말이 없었던 것이다.
그때 샤를로트가 그를 불렀다.
“선배.”
헬무트는 서서히 뒤를 돌았다. 샤를로트는 어디까지나 진지한 눈빛이었다.
“저, 어차피 아시게 될 테니까…… 말씀드릴까 해서요.”
헬무트는 의아하게 그녀를 쳐다봤다. 왠지 머뭇거린 샤를로트는 곧 결심한 얼굴로 말을 이었다.
“전에 말씀하신 그 사람, 그 사람도 리노사에 있어요. 그레타 아카데미 대표로 리노사에 가시면 만나 뵐 기회가 있을 거예요.”
일순 충격이 뇌리로 뻗어 올랐다. 몸이 얼어붙는 듯했다. 헬무트는 잠시 후에야 입을 움직였다.
“……너는.”
“저도 리노사 사람이에요. 선발전에 통과해서 리노사에 가고 싶으니까…….”
샤를로트는 말끝을 흐리며 제 손을 내려다봤다.
검술 대회는 일정상 방학초까지 이어진다. 어차피 리노사에 갈 거 가서 구경만 하는 것보다는 당당하게 그레타 아카데미 대표로서 가는 쪽이 나으리라.
샤를로트에게 의욕이 생긴 건 당연했다. 무엇보다도, 그녀에게는 자신의 성취를 보여 주고 싶은 사람이 있었다.
떳떳하게 고개를 들고 그 사람을 만나려면 선발전을 통과해야만 한다.
“그럼 이만.”
샤를로트는 고개를 숙여 보이곤 돌아섰다. 자리를 떠나가는 그녀의 뒷모습을 헬무트는 한동안 말없이 쳐다보고 있었다.
심장이 뜨겁게 뛰었다. 이렇게, 빨리. 목표가 눈앞에 다가와 있었다. 한없는 긴장감이 목을 조였다.
‘마그리트 이레인.’
어머니의 이름이었다. 그리움이라는 이름을 붙이기에는 막연한 감정.
그녀를 찾는 것은, 연어가 강물을 거슬러 올라가듯 자연스러웠다. 그 자연스러움은 절대적일 정도였다. 파헤의 숲을 나가야 한다고 생각한 것처럼.
그러나 너무도 순조로웠다. 이게 맞는 건지, 누군가가 이렇게 되라고 상황을 조작하는 건 아닌지 의심이 될 만큼.
놀랍게도, 헬무트는 자신이 마음의 준비가 되지 않았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 마음이라는 것 자체가 그에게 무디디무딘 것임에도.
이유 모를 선득함이 등골을 타고 흘렀다. 그것은 놀랍게도 두려움과도 유사했다.
헬무트는 이를 악물었다.
‘일단 선발전부터.’
종합 검술 대회에 참가할 그레타 아카데미 검술 학부 대표 자격을 확보하고 생각해도 늦지 않았다.
헬무트는 마음을 다잡았다.
*
샤를로트의 말을 들은 충격이 가시지 않는다.
헬무트는 그날 내내 멍한 상태였다. 주변에서 왠지 저를 보면서 수군거리는 것도 느끼지 못할 만큼.
그는 홀린 듯이 목검만을 휘둘렀다.
이상함을 감지한 건 아스카도 마찬가지였다. 아스카가 의심쩍게 검술 학부 2학년생들 쪽을 쳐다봤다.
“뭐야? 너 뭐했냐? 저 녀석들 왜 저러는 거지?”
답은 곧 알게 되었다. 점심시간, 학생 식당에 앉은 헬무트는 황당한 이야기를 들었다.
어느새 주변으로 몰려온 검술 학부 학생 중 한 명이 대놓고 질문을 던진 것이다. 저희들끼리 수군덕대다가 결국 참을 수 없어 당사자한테 묻기로 한 눈치였다.
“헬무트, 뭐 한 가지만 물어봐도 돼? 너 샤를로트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해?”
“어떻게…… 생각하느냐니.”
하도 뜬금없는 질문이라 대답이 느렸다.
“이봐 헬무트. 빼지 말고 말해 봐. 너 샤를로트한테 관심 있는 거지? 그 예쁜 여자 선배한테는 영 시큰둥했잖아.”
누군가가 옆에서 알려 주었다.
“테레사 선배.”
“그래, 테레사 선배가 싫은 이유가 샤를로트 때문이었냐? 여자 친구는 어쩌고. 이 녀석 난 녀석이네.”
“그새 헤어졌나? 그럴 수도 있지. 샤를로트는 예쁘잖냐. 성실하고. 말투가 좀 딱딱하긴 하지만, 귀여운 구석도 있지.”
“네가 좋아하는 거 아니야?”
“아니거든! 아무튼 헬무트 빨리 말해 봐. 다들 궁금해하고 있다는 말이지.”
헬무트는 검술 학부 2학년 수석이었다. 본인도 잊고 있는 것이지만, 모두가 그에게 관심을 가졌다.
심심할 정도로 반응이 없고 무심한 헬무트이기에 이렇게 시답지 않은 일조차도 의미가 되는 것이다.
“샤를로트한테…….”
관심이 없다고 말하려던 헬무트는 그런 의미는 아니지만 관심이 있는 건 사실이기에 입을 다물었다. 그는 곧 다른 말을 내뱉었다.
“왜 그런 소문이 난 건데.”
“너 수련장 앞에서 샤를로트 뒷모습을 애절하게 쳐다보고 있었다며?”
“안부도 물었다던데? 그래서 네가 샤를로트한테 관심이 있다고 검술 학부에 소문이 쫙 났어!”
“야, 네가 소문내고 다녔잖아.”
“내가 소문내기 전에도 이미 소문이 나 있었어! 지금쯤이면 다른 학부 녀석들도 다 알고 있을걸?”
‘이건 또 무슨 소리지.’
헬무트는 눈썹을 들어 올렸다. 헬무트가 샤를로트를 만난 건 아침의 일이다. 고작 몇 시간도 지나지 않았다.
그런데 무슨 소문이 벌써 그렇게까지 돈단 말인가. 아레아도 아니고 자신이 그렇게까지 입담에 올려질 만큼 유명 인사던가.
헬무트는 일단 부인하기로 했다.
“그런 거 아니야.”
“에이, 아니긴. 헬무트 네가 누구 안부를 묻고 그러는 성격이 아니잖아.”
“맞아, 왜 샤를로트만 예외인 건데?”
다들 헬무트한테 관심이 많았는지 파악도 잘했다.
“맞아, 이 녀석 나한테도 안부 같은 건 잘 안 묻는데.”
아스카가 의심스러운 눈초리로 헬무트를 노려보며 팔짱을 꼈다. 어딘지 날카로운 눈빛이었다.
“정말 아니야. 그냥 샤를로트가 한 이야기가 인상 깊어서.”
헬무트는 연달아 단호하게 부인해야만 했다. 비록 대화 내용을 밝힐 수 없었기에 의혹을 해소하는 것은 무리였지만.
“무슨 이야기인데?”
“리노사에 관한 이야기인가? 그러고 보니 샤를로트도 리노사 출신이라고 들은 것 같은데.”
뭔가를 말하려던 웨슬리가 재빨리 벌어지는 입을 틀어막았다.
다행히 그의 반응을 제대로 본 이는 없었다. 다들 헬무트 쪽을 쳐다보고 있었기 때문에.
“그건 말할 수 없어.”
헬무트는 이후 침묵으로 답변을 대신했다.
그에게서 뭔가를 캐내려던 녀석들은 결국 헬무트가 세운 침묵의 벽을 뚫지 못하고 투덜거리며 물러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여전히 의심의 시선은 지워지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