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lmut: The forsaken RAW novel - Chapter 208
207
헬무트
207화
검술 학부에서는 그걸로 일단락되는 것 같았다. 하지만 끝은 아니었다.
기숙사로 돌아온 헬무트는 시안에게서 같은 질문을 받았다.
“여어, 헬무트. 너 샤를로트와 무슨 일 있었냐?”
몹시 궁금한 듯 호기심 어린 눈빛이었다. 헬무트는 슬슬 이 질문도 질린다고 생각했다.
아까부터 심기가 좋지 않은 듯이 보이는 아스카가 왠지 땅을 걷어찼다.
“난 먼저 들어가 본다.”
퉁명스럽게 말한 그가 사라지자 시안이 흐음, 소리를 냈다.
“삼각관계야?”
“그런 거 아니야.”
헬무트는 단호하게 잘랐다. 아스카가 샤를로트한테 관심이 있는지도 모르겠다.
그가 아는 한 아스카가 특별히 샤를로트 이야기를 한다거나 그녀에게 말을 붙이는 일도 없었다.
검술 학부 녀석들이야 샤를로트에 대해서 떠들어대곤 하지만 아스카가 거기에 동참한 적은 없다.
시안은 피식 웃으며 덧붙였다.
“넌 너무 눈에 띈다니까. 선발전이 가까워진 요즘은 더더욱. 네 이야기가 마법 학부에도 소문이 날 정도거든.”
“마법 학부에도.”
그 말을 곱씹어보던 헬무트는 미간을 찌푸렸다.
아레아는 의외로 소문에 밝았다. 들었을지도 모른다.
헬무트는 아레아에게 자신이 부모를 찾으려고 한다고 말했을 뿐, 샤를로트에 대해서는 말하지 않았다. 그녀가 자신의 혈연일지 모른다는 것을.
그건 추측일 뿐이었으니까.
‘상관없겠지.’
요즘 들어 던전에 푹 빠진 아레아가 그런 사소한 일에 신경 쓸 것 같지는 않다.
헬무트는 굳이 설명할 필요를 느끼지는 못했다.
오해라는 것은 그녀도 알리라. 샤를로트에 대해선, 전에도 그냥 후배라고 이야기한 적 있으니까.
그러나 그날 밤 방문 앞에서 마주한 아레아는 왠지 쌀쌀맞았다.
일단 안면에 차가움이 묻어나왔고, 대답도 단답식이었다.
헬무트는 무심코 오늘 안 좋은 일이 있었느냐고 물었다.
아레아는 살짝 웃었다. 한기가 흐르는 미소였다.
“아주 좋지 않은 일이 있었지.”
그러더니 묻는다.
“넌 나한테 할 이야기 없어?”
“할 이야기?”
아레아도 헬무트에 대해서 알았다. 영민하고 눈치가 없지도 않지만, 어떤 면에서는 아주 무디기 짝이 없다.
그 간극이 너무나 커서, 때로는 직설적으로 말해 줘야 할 필요가 있다.
“그래, 이를테면 네가 웬 여자 후배를 좋아한다고 소문이 났다는 이야기?”
‘신경 쓰고 있었군.’
헬무트는 짤막하게 부인했다.
“오해라는 거 알잖아.”
아레아는 팔짱을 꼈다.
“오해? 내가 어떻게 알아. 네가 말 안 하는데 오해인지 아닌지.”
말하지 않아도 알 거라고 생각했지만, 머리로 아는 것과는 별개로 말로 풀어야 하는 일이 있다는 것을 헬무트는 몰랐다.
단지 아레아가 화가 난 것 같길래 그는 부인했다.
“……오해야.”
“내가 왜 그런 오해가 빚어졌는지 일일이 물어봐야 말해 줄 거야?”
“대화를 나눴고, 쳐다봤고, 그래서 소문이 난 거지.”
헬무트는 아레아가 오늘 좀 날카롭다고 느꼈다.
오해라고 하면 끝난 것 아닌가. 기분이 좀 가라앉기도 했다. 자신을 믿지 못하는 건지. 그들이 그동안 나눈 비밀은 뭐였단 말인가.
믿음과 감정은 따로 논다는 사실을 헬무트는 이해하지 못했다. 반대의 상황에 직면해 본 적이 없었으니까.
“이유는 중요치 않아. 그런 소문이 났고, 나는 그 소문이 불쾌해.”
“소문이 사실이 아니라도?”
“사실이 아니라도. 다른 사람들은 다 너와 샤를로트 사이에 뭔가가 있다고 생각할 거잖아?”
막상 그 샤를로트 역시도 이런 소문에 휩쓸린 것에 대해 정색을 해 보일 터였다.
헬무트의 입가에 얕은 한숨이 고였다.
“내가 어떻게 하길 원해?”
그래서 아레아가 화가 나 있는 이유는 알았다. 어떻게 해결해야 할지는 모르겠지만.
“심지어 네가 먼저 말을 걸었다면서?”
“인사를 그 애가 했으니까.”
“인사를 해서 말을 걸었다고? 너는 다른 누구에게도 그렇게 하지 않잖아. 왜 그 애한테만은 다른 거지?”
아레아의 눈에 의심이 서렸다. 다행인 것 하나는 상상력을 부풀리기에 그녀가 이런 쪽에서 인내심이 퍽 없다는 것이다.
아레아는 솔직하게 바로 입 밖에 내어 답을 들으려는 쪽이었다.
알아서 상대의 마음을 헤아리는데 재주가 없는 헬무트는 이게 더 편했다.
“샤를로트는 나와…….”
헬무트는 어떻게 말해야 할지 잠깐 망설였다.
“혈연관계야. 아마도.”
여동생이나 사촌이나 그 비슷한 것. 아레아가 당황하는 기색을 보였다.
“뭐? 그건 무슨 소리야. 나도 그녀를 본 적이 있는데…… 하긴 너와 닮긴 했지.”
곰곰이 샤를로트의 모습을 그려본 아레아도 긍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내가 전에, 펜던트에 대해서 말한 적 있지? 그녀는 어머니의 이름을 알고 있었어. 확실히 대답해 주지는 않았지만.”
“네 어머니와 가까운 사이 같다는 느낌을 받은 거야?”
“맞아.”
“뭐야, 그러면 그렇다고 이야기했어야지.”
아레아가 항의하듯 눈을 치떴다. 헬무트는 고개를 저었다.
“확신이 없었으니까.”
확실하지도 않은데 입밖에 섣불리 내놓을 수 없는 사실이 있다. 어머니에 관한 것이 그랬다.
아레아는 목소리를 낮춰 물었다.
“그럼 너는, 네 어머니가 어디 있는지 알 수 있는 거잖아. 왜 찾아가지 않았어?”
“……아직은.”
많은 것들이 혼재된 망설임이었다. 아레아는 그의 대답을 이해했다.
아까에 비해 한결 표정이 풀린 그녀는 중얼거리듯이 말했다.
“그래도, 기분 나빠. 다른 녀석들은 모르잖아.”
“대화를 나누지 말라는 뜻인가.”
대체로 본인은 아무래도 상관없어하는 편이었지만 헬무트도 그건 좀 심하지 않나 생각했다.
“인사 정도는 할 수 있지. 대신 앞으로 오해를 사지 않게 행동해. 알았지?”
아레아는 깍쟁이 같은 얼굴로 엄포를 뒀다. 오해를 사지 않게 행동하라니. 난제였다.
그냥 쳐다만 보고 있어도 오해를 사는 걸 어쩌란 말인가.
하지만 헬무트는 굳이 항변하지 않았다.
“그래.”
어쨌든 그건 헬무트에게 어려운 일은 아니었다.
이번처럼 샤를로트에게 말을 건 게 더 특수한 경우였을 뿐, 그는 원래 누구에게도 거의 말을 걸지 않는다.
“그래서 그 애와는 무슨 대화를 한 거야?”
“샤를로트가 내게 말했어. 리노사 공국에 어머니가 있을 거라고.”
이 이야기를 하려고 생각하고 있었다. 아레아의 얼굴에 놀람이 떠올랐다.
“그건…….”
“검술 대회가 시작되면 나는 리노사로 가서, 어머니를 만난다.”
무거운 기분이 밀려왔다. 양어깨를 묵직한 바위가 짓누르는 것처럼.
평생을 기다려온 일이었다. 그러나 그것이 닥쳐오는 것은 결코 가볍다거나 반갑기만 하지는 않았다. 운명의 물살에 휘말리는 듯이.
“내가 조사를 좀 해볼까?”
“아니.”
미리 알아두지 않는 편이, 나을 것 같았다. 아레아는 그제야 깨달았다는 듯이 말했다.
“가면 한동안 못 보겠네.”
“그렇겠지만, 너는 나보다 던전에 더 관심이 있는 줄 알았는데.”
헬무트의 지적에 아레아가 찔리는 표정을 지었다.
“꼭 그렇지는 않거든.”
“던전에 집중할 수 있겠지. 마음 편하게.”
헬무트 자신도 몰랐던 것이지만, 거기에 불만이 좀 있었던 모양이다.
“그런 거 아니라니까. 네 수련장도…… 생각해 보고 있어. 방학 전에는 그럴듯하게 만들어 보려고.”
아레아가 볼을 긁으며 말했다.
“네게 준 첫 번째 팔찌로 가서도 연락할 수 있을 거야. 아직 떠나기 전까지 시간이 남았으니까 기능을 보완해 볼게.”
언제 화가 났었냐는 듯이 아레아는 다시 원래의 태도로 돌아왔다.
“방학 때면…… 나도 리노사에 갈 수 있을 거야. 네가 그곳에 머문다면 말이지만.”
아레아는 시간을 가늠했다. 아카데미에 입학하는 대신 방학 때는 자신에게로 와야 한다는 게 하이케의 조건이었다.
하지만 이제 아레아는 람피오네의 유산을 손에 넣었다. 제멋대로에 자기중심적인 스승일지라도, 그 사실을 염두에 둘 테니 조정해 볼 수 있을 거다.
하이케는 아레아와 헬무트의 사이를 눈치챈 터였다. 방학의 일부를 헬무트와 보내는 것도 괜찮으리라.
“뭐, 검술 대회가 끝나고 얼마 후의 이야기겠지.”
아레아가 격려하듯 헬무트의 어깨에 손을 올렸다.
“선발전, 잘 치러. 내일부터 시작이던가?”
헬무트는 조용히 그녀의 손등 위에 손을 올렸다. 이 알 수 없는 예감이 가라앉기를 바라면서.
*
선발전의 날이 밝았다. 사실상 기말고사를 치르는 것이기에, 말수 많은 검술 학부 2학년생들도 오늘만큼은 조용했다.
컨디션이 안 좋다거나 하는 핑계는 통하지 않는다. 컨디션 관리도 실력에 들어가는 거니까.
먼저 2학년에서 선발전을 치르고, 거기서 뽑힌 상위권 순위자와 1, 3학년의 상위권 순위자를 통해 1, 2, 3학년에서 최종 인원 두 명을 선발한다.
선발전은 검술 대회를 준비하는 격이라 형태가 실제 대회와 유사했다. 패자 부활전까지 존재한다.
상위권 순위자들을 맞붙이는 2차 선발전은 공개적으로 아카데미 부설 경기장에서 치러졌다. 관중들이 보는 앞에서 말이다.
외부의 관람도 가능하기에, 관람객들은 대개 바덴의 시민들이었다. 혹은 그레타 검술 학부 학생들의 실력을 보고자 하는 이들이던가.
공고는 진작부터 띄워져 있었다. 많은 이들이 거기에 흥미를 보였다.
무대에 선 긴장감은 학우들이 보는 앞에서 펼쳐지는 대련이나 교관들 앞에서 치르는 일반 실기와 비교할 바가 아니다.
그 긴장감의 압박을 이기지 못해서 제 실력을 내보이지 못하고 진다면, 그 또한 실력이다.
선발전은 수월했다.
헬무트는 이보다 더 큰 무대에서 비할 수 없이 강한 자들과 싸웠다. 그때도 어렵지 않았던 승리가 고작 아카데미 2학년생들을 상대로 어려워질 리 없다.
헬무트에게 컨디션이라는 단어는 거의 의미가 없었다. 그는 최적의 상태로 싸우는 데 익숙해져 있었으니까.
이제까지 치렀던 대련과는 달리, 선발전은 대회에 가깝다. 진검을 사용한다.
헬무트는 굳이 대련에서처럼 상대가 자신의 실력을 펼칠 수 있게 시간을 끌고 봐줄 필요가 없었다.
“헬무트, 승리!”
하이드가 아닌 자신의 이름 그대로 울려 퍼지는 승리의 판정은 짜릿했다.
바소르의 무투회와 비할 수 없이 보잘것없는 무대에 섰다고 해도.
헬무트는 단 일검에 경기를 끝냈다. 두 번 휘두를 필요도 없었다.
제 목 앞까지 뻗어오는 진검을 마주한 상대는 얼어붙었고, 막아내거나 피할 엄두도 내지 못했다. 무섭도록 빠른 검이었다.
‘너무 약하군.’
헬무트는 태연하게 생각했다. 같이 수업을 받는 학생이라면 어느 정도 같은 선상에 놓여 있어야 할 거였다.
하지만 격차는 나날이 커졌다. 마치 태생부터 다른 것처럼.
학우들은 초식동물이었고 그는 포식자였다. 토끼가 아무리 노력한다고 해 봤자 약한 호랑이보다 강해질 수 없는 것처럼 그들 간의 격차도 그랬다.
‘들개 비슷한 녀석이라면 다를까.’
헬무트는 기대를 품었다. 아스카. 결과는 바뀌지 않을 테지만, 적어도 일검에 시시하게 끝나는 사태는 피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가 2차 선발전을 결정짓기까지 아스카를 만나는 일은 없었다.
수석과 차석이 마주하지 않게끔 대진표가 분리되었던 것이다.
이건 우승자를 정하는 것이 아닌, 2차에서 대표를 뽑기 위해 일정 인원을 걸러내는 1차 선발전이니까.
당연히도 아스카는 헬무트에 뒤이어 2차 선발전 행을 결정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