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lmut: The forsaken RAW novel - Chapter 210
209
헬무트
209화
알란 교관이 미간을 좁혔다.
“그래서 종합 검술 대회에 참가하기 싫다는 소리냐? 참가하지 않기에는 네 실력이 아깝다고 생각한다만.”
그 말은 진실이었지만, 한편으로는 반갑기도 했다.
제가 알아서 빠져 준다면 알란 교관 입장에서는 사양할 것 없다.
그레타 아카데미의 대표로 나서기에 실력 하나는 충분했지만, 아스카는 다른 쪽에서 문제였다.
그 문제로 따로 대책 회의가 열릴 예정이었다. 이를테면 ‘아스카 억제책’이라는 주제로 말이다.
“음, 뭐 그렇죠. 다시 생각해 봐도 안 되겠어요. 내 황금 같은 방학을 그런 곳에서 보낼 수는 없지. 아무리 리노사가 풍경이 좋은 나라라도.”
아스카는 검술 학부의 거의 모두가 바라던 기회를 가볍게 뿌리쳤다.
관광으로 가는 목적이 아니라면 사양이다. 어차피 아스카는 별로 다른 아카데미 녀석들과 맞붙는 데 욕심이 없었다.
종합 검술 대회는 이번 한 번이 끝은 아닐 테고, 기회는 내년에도 있다. 그는 나름 계산을 해 봤다.
‘가고 싶은 녀석이 가는 게 맞겠지. 승자 승 원칙으로 그 녀석이 3등이 되려나.’
그가 포기하면 자연스레 3등에게 기회가 주어질 것이다.
샤를로트가 리노사 출신이라면, 어차피 리노사로 가야 할 녀석이다.
“좋아, 그렇다면 하는 수 없지.”
알란 교관은 고개를 끄덕였다. 또다시 선발전을 치르게 되진 않을 테니 샤를로트에게 공지만 하면 되었다.
“더 질문은?”
둘 모두 없다고 대답하고 나자, 알란 교관은 쉬라고 말하며 순순히 등을 돌렸다.
그 뒷모습을 바라보던 아스카에게 퍼뜩 다른 생각이 찾아들었다.
‘가만, 그렇게 되면 헬무트와 샤를로트 두 명이 함께 가게 되는 거잖아!’
왠지 싫은 기분이 든다. 아스카는 괜히 헬무트를 노려봤다가 스스로 이상하다는 걸 깨달았다.
저 둘이 함께든 아니든 자신이 싫어할 이유가 또 뭐가 있단 말인가.
‘그게 나와 무슨 상관이라고.’
아스카는 마음을 고쳐먹었다. 자신이 신경 쓰는 것도 우스운 노릇이다.
무엇보다 헬무트에게는 그 축제 때 같이 온 여자애가 있었다.
하지만 그대로 넘어갈 수 없었던 아스카는 참지 못하고 물었다.
“헬무트, 너 혹시 샤를로트한테 관심 있는 건 아니지? 뭐, 좋아한다거나?”
“아니라고 했을 텐데.”
“그렇지? 역시.”
아스카는 고개를 끄덕거렸다. 하지만 그는 곧 미심쩍은 듯이 질문을 더했다.
“뭐, 그래도 붙어서 행동하면 관심이 생길 수 있지 않냐?”
아스카가 떠보는 말을 헬무트는 주저 없이 끊었다.
“붙어서 행동할 일 없어.”
대화를 나눌 일이 아예 없지는 않겠지만 샤를로트도 소문에 신경 쓰고 있었다. 가까이 할 일이 많지도 않을 거다.
어차피 모든 선발 인원이 함께 종합 검술 대회를 위해 리노사로 이동한다. 같이 선발되었다고 해서 꼭 같이 행동하란 법은 없다. 숙소 때문에라도 일정 동안 서로 분리될 터였다.
그레타 아카데미 검술 학부에서는 여학생은 드물지만, 페트리샤 교관도 리노사까지 함께할 예정이라고 들었다.
‘그보다 집요하게 묻는데.’
헬무트는 아스카를 빤히 응시했다. 아스카는 헬무트의 시선을 느끼면서 굳이 변명했다.
“아니, 혹시 네가 괜히 샤를로트한테 마음이 생겨서 그녀를 귀찮게 할까 봐 그러지. 샤를로트는 소문에 불편해하는 것처럼 보였으니까.”
헬무트는 단칼에 끊었다.
“쓸데없는 걱정을.”
“아니면 됐어!”
손을 휘저으며 등을 돌리는 행태가 예사롭지 않았다. 꼭 찔리는 게 있는 것처럼.
‘역시 그런가.’
어쨌든 아스카가 함께 하지 않아도 헬무트로서는 상관없다. 아니, 훨씬 나았다.
시안과 어울리기 전처럼 아스카는 그에게 달라붙으려고 할 테고, 헬무트가 뭔가 하려고 들면 혼자서 어딜 쏘다니냐고 투덜댈 것이다.
그러면 좀 귀찮아질 수 있으니 혼자 가는 쪽이 자유로웠다.
아스카가 샤를로트에게 어떤 감정을 품고 있는 듯이 보이더라도, 거기까지는 자신이 알 바 아니었다.
그리하여 그레타 아카데미 검술학부 1, 2, 3학년을 대표하는 두 명은 헬무트와 샤를로트로 정해졌다.
아스카가 참가하지 못한다는 소식에 교관을 비롯한 그레타 아카데미의 모든 사람들이 안도했다.
그가 종합 검술 대회에서 어떤 사고를 칠지 알 수 없었기 때문이다.
단지 한 명만큼은 모두가 넘어가는 그 사실에 대해서 의구심을 품었다. 리노사로 가게 된 샤를로트였다.
그녀는 아스카를 찾아와 물었다.
“혹시 저 때문입니까?”
“그게 무슨 소리야.”
멀찍이서 자신을 쳐다보는 검술 학부 녀석들의 시선을 의식한 아스카는 미간을 찌푸렸다.
샤를로트는 검술 학부답게 머뭇거리지 않고 직설적으로 물었다.
“혹시 제가 리노사 출신이라는 말을 해서 양보해 주신 거라면…….”
“무슨 소리야. 내가 네 말 따위를 신경 쓸 것 같아?”
아스카는 공격적으로 대꾸했다.
“그냥 내가 가기가 귀찮아서 그런 거야. 나도 방학 때 일이 있다고.”
이런 식으로 말하면 아무도 그에게 다른 의도가 있다고 의심하지 못할 거였다.
실제로 샤를로트도 그렇게 생각했는지 눈썹을 들었다.
“어떤 일인지는 모르겠지만…… 그만한 기회를 포기하시면 후회하지 않겠습니까?”
“그게 너한테나 대단한 기회지, 나한테는 아니야. 어차피 내년에도 기회는 또 올 거거든? 한 번 안 간다고 아무 문제 없다고.”
아스카는 자신만만하게 말했다. 현재 1, 2, 3학년 어중이떠중이들이 죽도록 노력한다고 해 봐야 내년에도 지금 그의 실력에 이르지 못할 것이다.
샤를로트가 미심쩍은 듯이 말했다.
“그렇다면 다행입니다만.”
아스카가 왠지 성을 냈다.
“착각하지 말라고, 난 검술 학부에 우글거리는 네 추종자 따위가 아니니까!”
샤를로트는 1학년뿐만 아니라 검술 학부 전체에서 대단한 인기를 누리고 있었다.
희귀한 여학생인 데다가 실력도 좋고 성격도 무던하다. 흔히 찾아볼 수 없는 유형이기도 했다.
그 때문에 그녀를 추종하는 무리도 있었는데, 그 녀석들 하나로 취급받는 건 아스카의 자존심이 용납하지 않았다.
“그렇게 생각한 적 없습니다. 잘 알겠습니다. 그럼.”
샤를로트는 꾸벅 인사하고 몸을 돌렸다. 그녀의 뒷모습을 바라보면서 아스카는 머리를 긁었다.
뭔가 과민반응한 것 같은데 왠지 모르겠다.
“아씨, 짜증 나네.”
그 무지가 아스카 스스로에게 답답함을 불러일으켰다.
그는 괜스레 바닥에 굴러다니는 돌을 걷어차고 그 자리를 떠났다.
주변의 녀석들은 그 모습을 보면서 고개를 갸우뚱했다.
“그래도 아스카 상대가 여자라고 패지는 않네.”
“요즘 조용하다더니 정말 성격 많이 죽었네.”
“샤를로트 저 애도 간이 크지, 미친 개한테 말을 걸다니.”
“아스카가 저리 난리를 치는 거 보면 뭔가 싸움이 있었던 것도 같은데.”
“뭐 샤를로트가 시비를 걸었겠냐. 저 녀석 성질머리에 그냥 제풀에 난리 치는 거지.”
이번만큼은 헬무트 때와 같은 오해가 없었다.
적어도 아스카의 의도는 성공적으로 먹혀든 것으로 보였다.
*
며칠 후, 샤를로트는 기숙사 앞에서 누군가의 부름을 들었다. 낯선 남자였다.
“샤를로트 님이시지요.”
“맞는데.”
“이것을.”
가문의 문장으로 밀봉한 편지를 받아든 순간, 샤를로트는 주변을 두리번거리며 그것을 재빨리 품으로 밀어 넣었다.
“그럼.”
고개를 꾸벅 숙이고 떠나는 남자는 가문의 사람이 아닌 단순한 심부름꾼으로 보였다.
샤를로트는 방으로 돌아가자마자 편지를 꺼내 들었다.
“리노사에서 왜 편지가 온 거지? 그것도 이렇게 노골적인 방식으로.”
편지를 열어 본 순간, 샤를로트의 눈동자가 커졌다.
어머니일 거라고 생각했건만, 전혀 뜻밖의 인물에게서 온 편지였기 때문이다.
[사랑하는 내 누이, 경애하는 샤를로트에게.]서두를 본 순간 샤를로트는 입술을 달싹였다. 기가 찼다. 하지만 당황하지는 않았다. 미하엘은 항상 그러했으므로.
‘변덕스럽고 제멋대로지.’
그건 사람들에게서 쉽사리 호감을 얻어 내는 미하엘에게 샤를로트만이 내리는 평가였다.
그럴싸한 미사여구로 시작된 서두는 연인에게 보내는 것으로 착각할 만큼 부드럽고 애정 어린 말투로 쓰여 있었다.
미하엘이 이런 편지를 보내는 게 악의인지 아니면 새삼 누이에 대한 애정이 샘솟았는지는 알 수 없었다.
샤를로트가 미하엘이 자신을 싫어한다고 생각하면서도 때때로 헷갈렸으니까.
이란성 쌍둥이인 미하엘은 샤를로트에게 가까우면서도 멀었다.
모두가 미하엘이 자신을 특별하게 생각한다고 착각하지만, 미하엘은 유독 샤를로트에게는 그녀를 싫어한다는 인상을 서슴없이 안겨주었다.
빈정거리고 긁어대면서.
샤를로트는 그게 자신이 편해서, 하나뿐인 누이라서 일 거라고 생각하진 않았다.
미하엘은 샤를로트에게 열등감을 느끼고 있었으니까.
그 건강한 몸. 검에 대한 재능. 그가 가지 못한 두 가지를 모두 가지고 태어났다는 이유로.
샤를로트는 그의 열등감을 이해하고, 많은 것을 미하엘에게 양보해 왔다.
미하엘과의 관계를 개선하려고 애써 보았지만 제대로 되지 않았다.
미하엘은 다른 누구에게도 보이지 않는 태도를 샤를로트에게 거리낌 없이 내보였다.
또한 약한 몸을 구실로 어머니의 사랑을 독차지했다.
샤를로트는 아카데미에 입학할 쯤이 되고 나서야 그것이 열등감뿐만 아니라 가문의 다른 후계자에 대한 견제일 수도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미하엘은 자신의 것을 빼앗기는 걸 무척이나 싫어했다. 또한 남의 것을 빼앗거나 차지하는 것을 즐겼다.
천사 같은 외모에 가려진 것이지만, 그는 무척 욕심이 많고 경쟁적이었다.
샤를로트는 후계자 자리를 원하지 않았다. 다만…….
‘미하엘이 나를 누이로 생각하지 않는다면 어쩔 수 없지.’
어느 순간 샤를로트는 미하엘을 포기했다. 하지만 그럼에도 때때로 이는 기대감은 어쩔 수 없었다.
미하엘은 누구에게서나 호감을 이끌어 내는, 아주 강력한, 마법과 같은 흡인력을 가진 소년이었다.
누이인 샤를로트도 거기에서 예외일 수는 없었다.
잠시 눈을 감았다 뜬 샤를로트는 미하엘의 편지를 마저 읽어 내렸다.
그는 그레타 아카데미의 소식통을 통해, 샤를로트가 그레타 아카데미 검술 학부 대표로 선발되었다는 소식을 들었다고 했다.
아마 교수진을 통해서 연락이 갔으리라. 샤를로트는 리노사 출신이었으니까.
1학년으로서는 대단한 성과를 이루었다는 사실을 축하하는 내용과 함께, 미하엘은 지난 방학 때 만나지 못하여 아쉽다는 말을 덧붙였다.
‘리노사에서 만나게 될 날을 고대한다고.’
정말로 미하엘이 고대하고 있는 건지, 샤를로트가 아카데미에 입학하여 떨어져 지내는 동안 그의 마음이 바뀐 건지는 알 수 없었다.
또다시 기대를 주고, 기대를 짓밟으려는 속셈일지도 모른다. 미하엘에게는 잔혹한 일면도 있으니까.
잠자리의 날개를 찢는 천진한 어린아이처럼.
“……미하엘.”
샤를로트는 복잡한 눈길로 형제의 편지를 쳐다보았다.
그에게 보란 듯이 그레타 아카데미 대표가 되어 귀환하고 싶었다.
하지만 그게 이뤄진 지금, 기분이 편치 않은 것은 왜일까. 그녀는 고민에 잠겼다.
하지만 지금 샤를로트가 할 수 있는 건, 아스카가 내준 기회를 잡은 만큼 그레타 아카데미를 위하여 최선을 다하는 것뿐이었다.
편지를 내려놓은 그녀는 즉시 수련장으로 향하기로 결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