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lmut: The forsaken RAW novel - Chapter 211
210
헬무트
210화
15장 종합 검술 대회
그레타 아카데미의 최종 선발전이 수월하게 종료되었다.
종합 검술 대회를 위해 추려진 선발 인원의 수는 총 4명.
헬무트와 샤를로트, 그리고 나머지 두 명의 후보는 각각 4학년과 6학년에서 선발되었다.
4학년의 레온과 6학년의 닐스.
이는 철저히 종합 검술 대회의 분류 기준에 따라 선발한 것으로, 저학년은 저학년끼리 고학년은 고학년끼리 맞붙게 될 것이다.
네 명의 선발 인원이 모인 자리에서, 이 같은 사실은 다시 한번 교관의 입으로 공지되었다.
“닐스와 레온, 헬무트와 샤를로트가 같은 분류에 속하겠지. 첫 경기에서는 붙지 않도록 대진표가 구성될 테지만, 윗 단계로 올라오면 같은 아카데미 출신끼리도 맞붙게 될 수 있어. 동지가 아닌 경쟁자라고 생각하도록.”
페트리샤 교관이 깔끔하게 설명했다.
샤를로트는 힐끗 헬무트를 바라봤다. 어머니의 처녀 적 이름을 아는 선배. 뒤늦게 깨달은 것이지만, 외모조차도 자신과 닮았다.
같은 저학년에 속한 헬무트와 샤를로트는 운이 나쁘면 낮은 단계에서 맞붙게 될지도 몰랐다.
헬무트 입장에선 전혀 나쁠 게 없는 일이지만, 그걸 맞이하게 될 샤를로트로서는 불운하기 짝이 없는 일.
헬무트는 이 대회의 유력한 우승 후보니까.
샤를로트도 은연중에 그것을 알았다.
하지만 그녀는 헬무트를 피하게 해달라고 빌지는 않았다. 단지 의지를 다졌다.
‘상대가 헬무트 선배라도 순순히 질 생각은 없어.’
미하엘이 바소르에 갔던 건, 종합 검술 대회를 진행하는 데 참고하기 위해서이기도 했다.
바소르의 무투회는 전통과 역사가 깊으니까.
아카데미의 무수한 수재들 사이에서, 샤를로트의 재능은 독보적이라고 말할 정도는 아니지만, 제법 두드러졌다.
그것은 일반적으로 천재라고 불릴 만한 재능이었다.
그녀가 신체적으로 불리한 여자라는 것을 감안하면 그 재능은 더욱 두드러진다.
거기에 노력이 더해졌다. 샤를로트 자신도 성실성 하나만큼은 누구에게도 지지 않는다고 자부하는 터였다.
리노사에서 벌어지는 대회다. 부모님이 보는 앞에서 자신의 성취를 보일 기회.
샤를로트는 그것으로 어머니의 시선이 제게 조금은 향하기를 바랐다.
제가 그레타 아카데미에서 쌓은 것을 보아 주기를 바랐다.
그러려면 아무리 어려운 상대라도 쉽사리 무릎 꿇어선 안 된다.
‘현실적으로 어려울지라도.’
헬무트는 잠시 제게 머물었던 그녀의 시선을 느꼈다. 샤를로트의 존재가 이상하게 생생했다.
피가 꿈틀거리고, 어딘지 모르게 본능을 자극하는 듯이.
누군가의 존재를 의식할 일은 헬무트에게 많지 않았다. 샤를로트에게 뭔가가 있었다. 그 느낌이 한층 더 강렬하게 다가왔다.
그것을 헬무트는 혈연이라고 생각했다. 먼 친척인지 사촌인지…… 친동생인지.
그것까지는 짐작이 가지 않았지만.
샤를로트와의 관계는 리노사를 방문하여 어머니를 만난 이후 정립될 것이다.
가슴 한곳이 움찔거렸다. 헬무트는 아마도 리노사에서 파헤의 숲으로 보내졌다. 그가 태어나 생이 지워진 자리.
‘리노사에 가면 그 갓난아기 적의 뭐든, 공기든 소리든 기억나는 것이 있을까?’
어둠의 싹은 본능을 깨운다. 리노사라는 이름은 그리 친숙하게 들리지 않았다.
하지만 헬무트는 만약 거기가 자신이 태어난 곳이라면, 그 땅에 발을 디딘 순간 뭔가를 느끼게 되리라는 걸 알았다.
가슴이 뛰었다. 검술 대회에 대한 것과는 다른 긴장감으로.
페트리샤 교관은 무표정에 가까운 네 명의 선발 인원을 보며 생각했다.
‘샤를로트는 1학년이라 크게 기대는 못 하겠지만…… 그래도 리노사 인이니 익숙한 환경에서 잘할지도 모르지.’
1학년이 선발된 경우는 아마 타 아카데미에서도 찾아보기 힘들 것이다. 선발되지 못한 3학년과 5학년 검술 학부 학생들의 자존심이 크게 상한 건 당연한 일이다.
심지어 아래 학년일수록 더욱 그랬다. 1학년이 선발되었는데 3학년이 선발되지 못했다니!
그에 반해 1학년과 2학년은 기세등등해졌다. 2학년에서는 사실상 2명의 선발 인원이 선출된 것이다. 아스카가 그 기회를 뿌리쳐서 그렇지.
하지만 아스카가 기회를 뿌리쳤건 어쨌건 샤를로트가 그 기회를 부여잡을 수 있는 위치에 오른 것도 사실이었다. 3순위.
‘참 묘하네.’
페트리샤 교관이 한데 모인 네 명을 번갈아 보았다.
졸업할 학년에 이르러 건장한 검사의 태를 갖춘 닐스가 시선에서 가장 넓게 자리 차지를 했다.
그러나 개중에서도 가장 눈에 띄는 건 역시 헬무트였다.
차가운 검은 눈과 검은 머리카락. 교관인 페트리샤조차도 종종 위압감을 느끼는 고요하면서도 확실한 존재감.
실력의 깊이를 알 수 없는 우물 같은 소년.
페트리샤 교관으로서도 여기 모인 네 명 중 우승 후보 한 명을 꼽자면 그것이 헬무트라고 장담할 수 있었다.
검사의 미덕이 침묵이라는 말도 있지만, 떠버리라도 실력이 있으면 그만이다.
하지만 여기 모인 네 명은 퍽 말이 없었다. 짠 것처럼 말이다.
‘말이 많은 것보다는 낫겠지. 아스카 녀석이 없어서 안심이로군.’
페트리샤 교관은 고개를 끄덕거렸다.
“앞으로 일주일 후에 리노사로 출발한다. 그때까지 다들 몸과 마음을 가다듬도록.”
“예!”
교관의 말과 함께 그들은 모두 집합장소를 빠져나왔다.
닐스가 먼저 떠나고, 샤를로트가 고개를 꾸벅 숙여 선배들에게 인사했다.
“그럼.”
헬무트도 뒤이어 떠나려고 했다. 하지만 등 뒤의 어떤 부름이 그의 발길을 붙잡았다.
“잠깐, 거기 너.”
헬무트는 뒤를 돌아보았다.
“너, 아레아의 친구라는 그 녀석이냐.”
레온이라는 4학년 선배가 팔짱을 낀 채 헬무트를 향해 턱짓했다.
귀족적인 인상의 레온에게선 거만함이 흘러나왔다. 헬무트가 평민이라서 무시한다기보다는, 그저 그런 성격인 듯이.
몸도 비스도 제법 다져진 상태다. 단지, 호의라곤 찾아볼 수 없는 저 시선. 어딘지 익숙한 이름이었다.
헬무트는 먼 기억 속에서 그의 이름을 끄집어냈다.
‘제니아?’
바덴으로 향하는 의뢰를 맡았을 때 호위한 제니아가 제 사촌 오빠의 이름이 레온이라고 말했다.
‘아카데미에서 두각을 드러내고 있다고 하지.’
헬무트야 검술 학부에 퍽 관심이 없어서 몰랐지만, 레온은 검술 학부 4학년 수석이었다. 그리고 레온은 6학년인 닐스를 상대했어도 그를 꺾었을 것이다.
레온이 불쾌한 얼굴로 입을 열었다.
“네 친구 때문에 내 사촌 동생이 눈물을 짜냈지.”
그리고 이제야 알게 된 것인데, 레온은 아레아한테 비호의적이었다.
아레아의 태도는 호불호가 갈릴 만했다.
매혹의 마력을 통제할 수 있게 된 지금은 그 호불호는 더욱 두드러지게 드러났다.
“그 계집애처럼 생긴 녀석이 그리 대단한 녀석이냐?”
아마 제니아의 말만 듣고 레온이라는 눈앞의 이 녀석을 떠버리라고 생각한 것 같은데, 그렇지는 않아 보였다.
귀여운 사촌 여동생을 아끼는 마음에 아카데미 생활에 대해서 이것저것 이야기해 주었던 모양이다.
“아레아는 마법 학부 2학년 수석이지요.”
“그게 한 소녀를 아는 척도 하지 않고 무시할 만큼 대단한 사실인가?”
마지막 만남에서 아레아는 제니아를 싸늘하게 무시하고 넘겼다. 그녀라면 눈물을 쏟아내며 자신의 사촌 오라비에게 호소하고도 남았으리라.
레온은 제니아를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만큼 아꼈다. 헬무트가 대답을 망설이자 레온이 재촉했다.
“대답해!”
헬무트는 여기서 어떻게 대답해야 하는지, 요령을 알았다.
하지만 굳이 그래야 할까?
왠지 모르게 싸늘한 기분이 일었다.
아레아에 대한 적의는 곧 헬무트에 대한 적의였다.
비록 제니아가 헬무트에게 많은 의뢰비를 안겨 준 괜찮은 의뢰인이었다고는 하나 그것도 옛날 일이다.
헬무트는 짤막하게 대꾸했다.
“그녀가 귀찮게 하더군요.”
레온이 미심쩍게 물었다.
“너도 그 자리에 있었다는 뜻인가?”
“네. 그리고 아레아는 자신을 쫓아다니는 이들을 불쾌해 합니다. 그녀도 그것을 알았으면 하군요.”
레온의 턱에 힘이 들어갔다. 명백한 도발이었다. 헬무트도 자신에게 내심 놀랐다.
아스카처럼 구는 건 아니라지만, 아카데미 내에서는 한 번도 이런 식으로 일부러 갈등을 빚어 본 적이 없었건만.
이상하도록 예민해졌다. 리노사 행을 앞두고 있기 때문인가. 왠지 모르게 호전성이 일어선다.
만약 레온이 덤빈다면, 꺾으면 그만이다. 벌레처럼 약한 상대.
그러나 레온은 덤벼들지 않았다. 그는 이를 부득 갈며 내뱉었다.
“좋아, 잘 알았다. 이번 리노사 행을 기대하지.”
레온은 그레타 아카데미에 입학한 이래로 져 본 적이 거의 없었다.
그의 거만함과 자신감은 그의 신분만이 아닌 확실한 실력에서 기인했다.
레온은 내심 그레타 아카데미 검술 학부에서 자신이 가장 강하다고 자부하고 있었다.
검술 학부 4학년에서는 수석인 레온의 권위적이고 거만한 성격 탓에 서열 관계가 명확했다.
모두가 그의 뒤를 따랐고, 그의 권위를 인정해 주었다. 레온은 우두머리였다.
제 친구의 무례를 적당히 사과하면 넘기려고 했건만, 감히 이런 식으로 대꾸하다니!
‘건방진 자식! 선배에 대한 예의가 글러 먹었군. 확실하게 손봐 주지!’
헬무트라고 했던가. 처음 봤을 때부터 어딘지 마음에 들지 않는 녀석이었다. 눈빛도, 생김새도.
2학년 주제에 고학년에 비견될 실력이라고 소문이 난 것도 마음에 들지 않는다.
그만한 명성을 저학년 때부터 입고 있는 건 레온 자신이면 충분하다.
비록 교관과 함께하는 여행이라지만, 기회는 올 것이다. 레온은 속으로 칼을 갈았다.
*
“열흘 후 출발이라고.”
아레아가 고개를 끄덕거렸다.
“시간이 빠듯하긴 하지만 뭐 괜찮네.”
“뭐가?”
“그런 게 있어.”
아레아가 얼버무렸다. 그녀의 얼굴에 그늘이 비쳤다. 열흘 후면 당분간 이별이다.
방학이 되면 아레아가 리노사로 갈 테지만, 어쨌든 다시 만나게 될 때까지는 떨어져 있게 될 것이다.
두 사람 모두 그 사실에 가슴 한구석이 허전해지는 건 마찬가지였다.
아레아가 넌지시 입을 열었다.
“그나저나 그 샤를로트…… 여행에 함께하잖아.”
“그렇겠지.”
페트리샤 교관이 함께한다지만, 어쨌든 같은 일행이니 그녀도 함께다. 대련도 하게 될지도 모른다.
아레아가 슬쩍 눈썹을 들었다.
“생각해 봤는데, 그 애가 너와 관련이 있다는 건 그냥 느낌일 뿐이잖아? 그러니 확실해질 때까지는 어떤 사이인지 모른다는 거지. 실제로는 전혀 관계가 없을 수도 있고.”
“……그렇지.”
“그러니까 너무 많이 말을 섞지 않는 게 좋겠어. 그 애가 오해할 수도 있잖아?”
무슨 이야기를 하는지는 알 것 같았다.
“어차피 말 거의 안 해.”
샤를로트나 이쪽이나 말이 없는 건 마찬가지다.
그리고 사실, 살가운 사이도 아니었다. 데면데면한데 신경 쓰이는, 딱 그 정도.
“그렇지? 그럼 잘됐네.”
아레아가 싱긋 웃었다. 헬무트는 잠시 그녀의 얼굴을 쳐다보고 설명할 수 없는 기분에 잠겨야만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