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lmut: The forsaken RAW novel - Chapter 234
233
헬무트
233화
‘그 아이도 많은 노력을 했지.’
아카데미에 입학한 지 1년도 되지 않아 검술 대회 선발 인원이 된다는 게 얼마나 대단한 일인지 안다.
샤를로트는 언제나 부지런하고 꿋꿋한 아이였다. 마그리트의 입가에 언뜻 미소가 실렸다.
열 손가락 깨물어 아프지 않은 손가락이 없다. 하지만 모든 손가락이 동등하게 아픈 것은 아니다.
덜 아픈 손가락과 더 아픈 손가락이 있었다.
마그리트에게 미하엘은 더 아픈 손가락이었다. 그렇다고 해서 덜 아픈 손가락이 의미 없어진 건 아니다.
마그리트는 지금 이 순간 덜 아픈 손가락에 눈길을 주고 있었다.
그녀의 시선이 무대 위로 향했다. 두 명의 선발 인원이 거기에 올라서 있었다. 한 명은 샤를로트. 그리고 다른 한 명은…….
“뭘 신경 쓰는 건가? 다른 데 신경 쓸 정신이 있나?”
시선을 위로 향한 샤를로트를 향해 로빈이 비딱하게 물었다.
태런이 헬무트에게 무참히 패배하여 탈락한 이후 그는 마테시스 아카데미 검술 학부의 명예를 홀로 짊어졌다.
그도 헬무트와 태런의 경기를 보았다.
헬무트의 실력은 진짜였다. 소름 돋을 정도로 빠르고 가혹한 검. 로빈 자신이었대도 태런과 다른 경우를 맞이했을 것 같지는 않았다.
하지만 이 샤를로트라는 소녀는 다르다.
로빈은 헬무트란 녀석이 이상한 것이지, 다른 녀석들은 모두 평범한 수준이라고 판단했다.
우수하다고는 하나, 이곳 검술 대회에서는 압도적이지 않은 우수함.
그런 우수함 속에서라면 마테시스 아카데미 출신인 로빈이 가장 두드러지는 건 당연했다.
‘작은 몸집, 재빠른 몸놀림. 뭐 흔한 상대는 아니지. 게다가 예쁘고 약해 보이는 계집애니 머뭇거리다가 큰코다쳤겠지.
여기까지 올라온 걸 보니 실력이 없진 않겠지만 내가 질 리가 있나.’
샤를로트를 앞에 두면 누구나 방심하게 된다. 로빈은 아주 마음을 놓진 않았지만 샤를로트를 자신과 비슷한 위치에 두지도 않았다.
확실하게 가르쳐 줄 것이다. 한 명의 천재가 존재한다고 해도, 그 나머지는 결국 마테시스가 그레타 보다 우위라는 것을!
로빈은 승리를 확신하는 것처럼 씩 웃으며 말했다.
“리노사의 대공비 전하께서 지켜보시는 영광스러운 무대다. 함께 훌륭한 경기를 치르지.”
샤를로트는 그제야 대꾸했다.
“예, 그러지요.”
대공비를 향했던 시선은 다시 제자리로 돌아왔다. 어머니가 지켜보는 무대다. 가슴이 설렜다.
어쩐지 질 것 같은 느낌이 들지 않았다. 리노사의 라토나는 샤를로트의 본 무대였다.
모든 것이 그녀의 편인 것 같았다. 이곳을 휘도는 공기와 바람마저도.
샤를로트는 검 손잡이를 쥐었다. 전의와 자신감으로 충만한 마음은 오히려 고요하다.
오늘 새벽, 헬무트와 대련했다. 그가 자처한 터였다.
헬무트는 자처해서 누군가와 대련할 성격은 아니었다. 그에게 누군가와의 대련은 무의미했으니까.
어째서 자신을 도와주느냐고 물었을 때 헬무트는,
‘네가 결승전 무대에 올라오는 것이 내게도 좋은 일이니.’
라고 답했다.
그 말의 의미가 샤를로트가 로빈보다 만만한 상대라서 도왔다고는 해석되지 않는다.
헬무트에게는 샤를로트나 로빈이나 비슷한 상대일 테니까.
헬무트는 자신의 실력을 확 낮춘 것처럼 그녀를 적당한 수준으로 상대해 주었다.
그렇다 한들 샤를로트로서 상대하기 버거운 건 마찬가지였지만.
샤를로트는 헬무트에게 말했다.
‘도와주신 보람이 있도록 좋은 결과를 내겠습니다.’
그녀는 그 말을 지킬 셈이었다. 샤를로트의 눈빛이 또렷하게 상대를 향해 고정되었다.
곧 경기가 시작되었다.
와아아아아!
흥분한 함성이 무대 위를 때렸다. 경기는 30분 이상 이어졌다. 실력 차가 별로 나지 않는다는 소리다.
지구력이라면 로빈이 더 좋을 것 같지만 샤를로트의 지구력도 그 못지않았다.
좀처럼 갈리지 않던 승부는, 조바심이 인 로빈이 행동한 순간 나고 말았다.
로빈의 검이 샤를로트의 어깨를 스쳤다. 피할 수 없는 일격이었다.
붉은 피가 무대 위로 흩뿌려졌다.
차양이 드리워진 자리에서 여인이 벌떡 자리에서 일어섰다.
어깨가 화끈거리고 금세 머리가 어지러워진다.
하지만 샤를로트는 매처럼 날카로운 눈빛으로 검을 겨누고 있었다.
상대의 목에서 피가 비쳤다. 검 끝이 스친 흔적이다.
부상의 여파로 하마터면 검을 멈추지 못할 뻔했지만, 죽이지 않는 데 성공했다.
또한 이겼다. 자신이.
샤를로트의 눈빛이 그 순간 꿰뚫을 듯이 강렬했다.
와아아아아! 또다시 함성이 울려 퍼졌다. 로빈은 창백하게 질린 얼굴로 샤를로트를 쳐다보았다.
그의 턱에 힘이 들어갔다. 그러나 그가 어떤 반발심을 느끼건 승복할 수밖에 없는 결과였다.
샤를로트는 함정을 팠고, 처음부터 인내심 있게 함정을 분별하던 로빈은 결국 계속된 승부에서 인내심을 잃었다.
그는 샤를로트의 어깨를 공격했고 대신 자신의 목을 내줬다.
“어서 치료를 받아야 합니다.”
걱정스러운 얼굴로 올라온 수행 인원이 간단한 응급처치와 함께 샤를로트를 이끌었다.
잠시 고개를 올려 어머니가 있는 쪽을 바라본 샤를로트는 그를 따라 무대를 내려갔다. 마음이 홀가분했다.
그녀는 해냈다. 어머니 앞에서. 비록 그녀가 리노사 대공녀란 사실을 알지 못한다지만 모두의 앞에서.
샤를로트는 그렇게 아카데미 종합 검술 대회 결승 진출을 확정 지었다.
헬무트보다 먼저. 관중석에서 무대를 지켜보던 헬무트는 미간을 좁혔다.
‘결국 샤를로트와 맞붙게 되는군.’
어머니 앞에서 여동생과 맞붙게 되는 아이러니. 하지만 그가 샤를로트를 도와준 건 이런 걸 바란 까닭도 있었다.
샤를로트가 결승에 올라오길 바랐다. 어머니도 그것을 바랄 테니까.
또 한 가지 계산도 있었다. 어머니는 서로 빼닮은 한 쌍의 남녀가 검을 겨누고 서 있는 모습을 보면 무엇을 떠올릴까.
샤를로트와 닮은, 그녀보다 나이 많은 소년을 보면서 그녀의 잃은 아들을 떠올리게 되지 않을까.
아마 미하엘도 그 자리에 등장하리라. 상대적으로 고학년 경기에 관심이 쏠려 있다고 해도 결승전이 되면 이야기가 다른 법이다.
‘미하엘이 나를 알아볼까.’
헬무트는 그럴 가능성이 높다고 봤다.
만약 자신이 미하엘에게 관대했던 것이 본능적인 혈육에의 끌림 탓이라면, 미하엘도 헬무트에게 같은 걸 느꼈을지 모른다.
단순히 실력 좋은 검사에 대한 욕망 때문만이 아니라.
만약 헬무트를 본 그가 하이드를 느끼게 된다면, 미하엘은 헬무트와 하이드를 바로 연결지을 수 있으리라.
똑똑한 녀석이지만 똑똑할 뿐만이 아니었다. 미하엘에겐 직관력이 느껴졌다.
하지만 그는 혈육에의 끌림을 느꼈더라도, 정말 헬무트가 혈육이라는 것을 알게 되면 그 사실을 달갑게 받아들이진 못할 터.
미하엘 앞에서 헬무트가 모습을 드러내는 건 필연이다.
하지만 어머니뿐만 아니라 샤를로트와 닮은 헬무트의 모습을 보고, 그 역시 묘한 느낌을 받을 거란 생각은 있었다.
미하엘은 그 직감 속에서 그가 알지 못하는 사실을 알아채지 않을까?
미하엘은 어머니가 가장 아끼는 자식이니 샤를로트가 알지 못하는 진실에 대해서 알고 있지 않을까?
사산된 형의 존재를 알고 있다면, 혹여 그 형의 생존을 의심하고 조사한다면.
‘일단은 마주해야지.’
이제 4강, 그리고 결승이 남았다. 빛이 쏟아지는 무대 위에서 마무리를 완전하게 짓고 나서야 헬무트는 비로소 어머니와 미하엘을 마주하게 될 것이다.
헬무트에겐 아직 좀 더 안전하게 갈 방법이 있었다.
4강에서 탈락한다면 그는 상대적으로 덜 주목받을 테니까.
하지만 여전히 그렇게 할 마음은 들지 않는다. 자신을 드러내고 정면으로 부딪친다. 그의 결심은 변하지 않았다.
헬무트는 자리에서 일어섰다. 잠시 소란이 이는 듯했던 어머니가 있는 쪽은 이제 고요했다.
리노사 대공비가 자리를 비운 것이다. 그녀가 어디로 향했을지는 불 보듯 뻔했다.
‘숙소는 축제 분위기겠군.’
그레타 아카데미 선발 인원 두 명이 결승전에서 맞붙게 되었으니
그레타 아카데미 교수진이 무척 기뻐할 것이다.
아마 이것이 헬무트가 그들에게 안길 처음이자 마지막 선물이었다.
왠지 그런 느낌이 들었다.
*
“피는 멎었고, 상처도 금방 아물었습니다. 이 약을 드십시오. 살이 새로 나는 데 도움이 될 겁니다.”
샤를로트는 눈살을 찌푸리며 쓰디쓴 약물을 목구멍으로 넘겼다.
피를 좀 많이 흘린 탓에 빈혈 기가 돌았다. 머리가 어지러웠다.
하지만 샤를로트는 기분이 좋았다. 처음에 자신이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더 높이 올라왔다. 마치 행운이 따르는 것처럼.
일이 잘 되어 가고 있었다. 어머니도 이번 대회에서만큼은 샤를로트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녀의 걱정스러운 시선은 먼 거리에서도 느낄 수 있을 정도였다.
샤를로트의 노력은 보답 받고 있었다.
한숨 돌리는데, 갑자기 여러 사람이 걸어오는 인기척이 느껴졌다.
곧 샤를로트가 있는 치료실의 문이 열렸다. 금발의 기품 있는 귀부인이 거기 서 있었다. 하얗게 질린 얼굴로.
“대공비 전하! 어찌 이런 곳에.”
검술 대회 수행 인원들이 다급히 고개를 숙였다.
리노사 대공비가 우아하지만 빠른 걸음으로 대기 장소 안에 발을 들였다.
생각할 새도 없이 달려왔지만, 오면서 이성이 차츰 돌아왔다. 그녀가 샤를로트를 찾는 건 과한 일이다. 하지만 수습할 수는 있었다.
마그리트는 냉엄한 어조로 말했다.
“치료는 다 마쳤느냐? 내 저 어린 소녀가 다친 것을 보고 놀라 달려온 것을.”
마음 약한 귀부인이라면, 검술 대회에 출전한 보기 드문 어린 소녀가 다친 것을 보고 놀라 달려올 만도 했다.
고개를 갸웃거리면서도 모두가 그 사실을 순순히 받아들였다. 참으로 다정하신 분이라고 생각하면서.
“상태는 괜찮습니다. 조처했으니 곧 회복될 겁니다.”
“그래? 다행이로구나.”
리노사 대공비는 감정을 누른 눈으로 샤를로트 쪽을 쳐다보면서 명했다.
“이 아이와 이야기를 나누고 싶으니, 모두 물러가도록.”
“예, 대공비 전하.”
모두가 자리를 물린 자리에 마그리트와 샤를로트만이 남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