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lmut: The forsaken RAW novel - Chapter 235
234
헬무트
234화
“오, 샤를로트. 대체 네가 왜 이런 꼴을.”
창백하게 질려 달려온 대공비가 샤를로트의 뺨을 어루만졌다.
샤를로트는 웃는 얼굴로 그녀를 맞이했다.
“어머니, 오셨어요?”
샤를로트는 굳이 자신의 정체를 들킬 위험성을 고려하지 않고 모습을 드러낸 어머니를 탓하지 않았다.
이미 어머니와는 여러 차례 교류했다. 아무리 조심했다지만, 누군가에게 들키고도 남았다. 대회가 막바지에 이른 시점이니 크게 문제가 되진 않으리라.
그레타 아카데미에까지 샤를로트가 리노사 대공녀라는 사실이 알려지면 곤란하겠지만.
샤를로트는 더 이상 생각하지 않기로 했다. 그녀는 가장 기쁘고 보람된 순간을 누리고 있었다.
결승전 진출을 확정 지었고, 어머니도 샤를로트에게 온전히 신경을 쏟고 있었다. 더 바랄 게 없다.
마그리트는 눈살을 찌푸렸다. 그녀의 눈빛에서 걱정이 배어났다.
“네가 이렇게 피를 흘리면서 검을 휘두르는 게 옳은 일인지 모르겠구나. 네 어깨가 칼에 베인 순간 심장이 떨어지는 줄 알았단다.”
“진검 대회이니 어쩔 수 없어요. 저는 제가 죽지 않을 걸 알았고, 이겼어요.”
“그래, 잘했구나. 하지만 나는 네가 또다시 그런 위험을 겪는 걸 바라지 않는단다. 도저히 눈 뜨고 볼 수가 없어. 다음 경기는 기권하면 안 되겠니?”
결승전을 앞둔 시점이다. 여기서 샤를로트가 기권하면 대회는 엉망이 된다.
미하엘이 준비한 대회가 엉망이 되는 것을 신경 쓰지 않고 마그리트는 샤를로트에게 기권을 권하고 있었다.
그것은 리노사 대공비로서 해서는 안 되는 말이었다.
어머니로서의 말. 마그리트가 그런 태도로 샤를로트에게 말한 것은 처음이었다.
샤를로트는 늘 어머니가 자신보다 미하엘을 좋아한다고 생각해 왔지만, 그녀가 미하엘을 편애해 온 이유가 제 생각과는 다를 수도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어쩌면 어머니는 자식을 잃을지도 모르는 상황을 두려워하는 것이 아닐까.’
마그리트의 반응을 보면서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기억을 되짚어 보면 마그리트는 항상 미하엘이 아플 때만 유독 신경을 썼다.
단지 미하엘이 워낙 자주 아팠기에 마그리트의 신경이 온통 그에게 쏠려 있었을 뿐이다.
마그리트는 귀족다운 여인으로 리노사 대공비로서 자신의 역할에 충실한 사람이었다.
그것은 자식에 대한 애정보다 우선했다.
미하엘의 상태가 나빠질까 걱정은 했지만, 그것과는 별개로 마그리트는 미하엘이 바소르로 갔을 때 따라나선다거나 하는 비이성적인 행동은 하지 않았다.
어릴 적부터 샤를로트는 건강했고, 미하엘처럼 아픈 일이 거의 없었다.
아프더라도 감기 정도로, 샤를로트가 드물게 아플 때는 미하엘이 대단히 아픈 경우가 많았다.
이번 검술 대회에서 샤를로트는, 진검으로 싸우며 몇 번이나 크게 다치거나 죽을 위험을 겪어야 했다.
마그리트는 거기에 무심할 수 없었으리라.
샤를로트는 차분하게 고개를 저었다.
“검사로서 감수해야 할 일이에요. 다만…… 다음 경기에서는 그럴 일 없을 거예요. 헬무트 선배는 저와 실력 차가 있거든요. 아주 많이.”
운이나 끈기가 통하지 않는 상대도 있었다.
헬무트가 고열로 비틀거리며 무대 위에 올라서더라도 샤를로트는 그를 이기지 못할 것이다. 그것이 격차였다.
그렇기에 헬무트가 의도하지 않는 한 샤를로트가 위험해질 일은 없었다.
헬무트는 샤를로트를 조금도 다치지 않게 하고도 우승할 수 있으니까.
아마 이제껏 그가 흔히 그래왔듯이 단 한 번의 일격으로.
“그 아이가 올라올 거라고 확신하고 있구나.”
“네, 저는 선배를 이기지 못할 거예요. 자신감이 없어서가 아니라 그게 사실이에요.”
헬무트는 강하다. 이런 종합 검술 대회 따위는 우스울 만큼.
마그리트는 찬찬히 고개를 끄덕였다.
“다행이구나. 나는 네가 우승하기를 바랐지만, 그보다도 네가 위험하지 않은 쪽이 달갑구나.”
마그리트는 샤를로트의 손을 잡으며 신중한 목소리로 덧붙였다.
“몸조심하렴.”
“네, 어머니.”
*
다음날 헬무트는 어김없이 결승전 진출을 확정 지었다.
당연하리만치 간단하게. 일검에 적을 쓰러트리면서.
대회를 참관한 리노사 대공비의 시선 앞에서 헬무트는 여느 때보다 담담하게 경기를 매듭지었다. 이제 이틀 후 결승전만이 남았다.
그날 밤, 아레아는 헬무트에게 물었다.
“네 계획은 그대로지?”
“그래.”
헬무트는 결승전 직후, 이곳 라토나에서 이전과는 비할 수 없을 만큼 주목받게 될 것이다.
검술 대회 우승자이자 그레타 아카데미의 영예를 짊어진 자로서.
헬무트의 실력은 압도적이었다.
눈 있는 자들은 고학년 우승자보다 헬무트에게 더 주목할 것이다.
또래에서 그만큼 압도적이라면 앞으로 얼마나 더 성장할지 모르니까.
헬무트는 우승자라는 명함을 토대로 라토나에서 한동안 머무를 예정이었다.
리노사 대공가에서도 그에게 그만한 대우는 해 줄 테니까.
“잘하는 건지 모르겠네.”
아레아가 한숨을 내쉬었다. 그녀에게도 어떤 예감이 찾아들고 있었다. 헬무트가 어떤 흐름을 탔다는 예감. 마치 이대로 순탄하게 쭉 풀려 가지 않을 것 같다는 예감.
앞에서 어떤 거대한 사건이 기다리고 있는 듯한.
그러나 헬무트는, 그들은 아직 안개 속에 있었다. 결승전 이후의 어떤 상황도 상상하기 힘들었다.
헬무트는 고개를 모로 기울였다.
“소문으로 듣기로는 대신관들은 아직 리노사에 도착하지 않았다는군.”
“그렇다면 중간에 무슨 일이 생긴 걸 수도 있겠네.”
탈론을 통해서 그들의 행적을 추적하는 방법도 있었다. 하지만 좋지 않은 방법이다. 탈론에게 의문을 심어 줄 테니까.
왜 헬무트가 대신관들의 행적을 궁금해하는가에 대한 의문.
‘대체 어디로 간 거지? 요새 신전의 신경이 쏠릴 만한 일이 있었나?’
아레아 또한 의문을 품었다. 그녀는 곧 결심한 듯이 말했다.
“나도 가급적 빨리 리노사로 향할게.”
아레아의 눈빛이 깊어졌다. 한번 알아봐야겠다.
대마법사인 하이케라면 뭔가 알아낼 방법이 있을지도 모른다.
기말고사는 이제 끝났고 아레아는 방학을 맞이했다. 다시 만나게 될 때까지 멀지만은 않았다.
아레아는 미소를 띤 채 덧붙였다.
“결승전 잘 치러.”
*
이제 숙소는 휑했다.
한 명의 결승전 진출자는커녕 4강 진출자조차 내지 못한 로엔 아카데미는 이미 전원이 침통한 상태로 숙소를 떠났다.
아무런 인사도 남기지 않은 채.
이런 면에서 바덴의 아카데미들은 그다지 화합을 보이지 못했다.
경쟁심이 명확히 드러나는 것이다. 서로 우열을 가리는 의식이 있기에 선의의 경쟁을 하자며 악수를 나누는 일 같은 건 없었다.
그에 반해 그레타 아카데미의 성과는 괄목할 정도였다.
고학년 대회에서 레온은 결승전에 진출하는 데 성공했고, 닐스는 실패했다.
닐스는 숙소에 남아 아직 경기가 남은 레온과 대련해 주다가 어제부로 숙소를 떠났다.
방학이니까 마냥 라토나에 머물 수는 없는 것이다.
방학 때는 모처럼 아카데미에서 벗어나 자유를 누릴 수 있다. 각자의 삶이 있으니까.
페트리샤 교관은 우스갯소리로 말했다.
“학생들의 성과가 워낙 좋으니 아카데미 입장에서는 좋은 일이지만, 우리로서는 방학 때까지 근무를 하게 되는군.”
“뭐, 좋은 게 좋은 거겠죠.”
룩센 교수가 웃으며 말을 받았다.
마테시스 아카데미 쪽에서는 그나마 거들먹거릴만하긴 했는지, 고학년 대회에서 한 명의 결승전 진출자를 남겼다.
그를 제외한 다른 학생 모두는 바로 숙소를 떠났다.
교수진은 남아 있었으나, 어쩐지 그레타 아카데미 교수진을 피하는 기색이었다.
그들도 인정하지 않을 수는 없으리라. 현재의 그레타 아카데미 검술 학부는 마테시스 아카데미 검술 학부보다 우위라는 것을.
이제 숙소는 고요해졌다. 결승전이 끝나면 완전히 고요해질 것이다. 모두가 이곳을 떠나게 될 테니까.
헬무트는 결승전 이후 어디서 머물게 될지를 생각했다. 여관에서 머물어도 되겠지만, 거기는 너무 행적이 노출된다.
이곳 숙소가 더 사적인 느낌이 강했다.
‘리노사 쪽에서 따로 숙소를 마련해 주거나 이곳을 내게 허용해 줬으면 좋겠군.’
우승자의 특권으로 한번 요구해 볼 셈이었다.
안 되면 샤를로트를 통해서라도.
헬무트는 무겁지도 가볍지도 않은 마음으로 결승전을 고대했다.
*
결승전 전날, 미하엘은 드디어 침대에서 몸을 일으킬 수 있었다.
그의 몸 상태는 여전히 썩 좋지 않았다. 나른하면서도 피곤하다.
무리 같은 건 절대 해선 안 되는 몸을 타고난 것이 짜증스러우면서도, 적응한 터였다.
‘이번엔 좀 길었지.’
열이 올라 머리가 제대로 돌아가지 않은 탓에 집무를 제대로 못 봤다.
아니, 사실상 요 며칠간 한 일이 아무것도 없었다. 대공이 이 사실을 안다면 그의 후계자로서의 결격 사유를 다시 생각하게 될 것이다.
미하엘은 대공이 자신의 자식들에게 점수를 매기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샤를로트에게는 미하엘에게 없는 절대적인 강점이 있었다. 검술과 건강.
‘적어도, 이렇게 앓아눕지 않을 정도만 되었어도.’
미하엘은 눈살을 찌푸렸다. 그건 모든 상황을 제 뜻대로 다루는 데 익숙한 미하엘이 통제할 수 없는 일이었다.
건강해지는 일.
그래도 침상 위를 떠날 수 없었던 어렸을 적보다는 확실히 좋아졌다. 마법과 비싸고 좋은 약재를 쏟아부은 탓이다.
미하엘은 몸을 일으켰다. 슬슬 상황을 파악해 볼 때가 되었다.
그의 머리맡에는 언제든 볼 수 있도록 잘 정리된 보고서가 놓여 있었다.
보고서를 훑어보며 미하엘은 눈살을 찌푸렸다.
자신이 의도하긴 했지만, 어머니는 꾸준히 샤를로트의 경기를 지켜봤다.
아프다는 핑계로 어머니를 붙잡는 자신을 뿌리치고서 험한 경기를 치르는 샤를로트에게 마음이 쓰인 모양이다.
그녀의 마음이 기울기라도 하면 곤란하다.
하지만 걱정하지는 않았다. 미하엘은 어떻게 하면 자신이 어머니의 마음을 끌 수 있는지 알고 있었으므로.
‘그나저나, 결승전이란 말이지.’
자신이 준비한 대회를 제대로 보지도 못하고 시간이 흘렀다.
미하엘의 눈길이 저학년 종합 검술 대회 결승전 진출자의 이름에 박혔다.
샤를로트와 헬무트.
‘헬무트라…….’
이상하게 시선이 가는 이름이다. 이유는 알 수 없지만. 고개를 갸웃한 미하엘은 차분하게 결심했다.
‘참석해야겠군.’
모든 건 그의 눈으로 확인했을 때 명확해지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