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lmut: The forsaken RAW novel - Chapter 267
266
헬무트
266화
긴장감 속에서 그들은 말없이 나아갔다. 조용하고 한적해 보였으나, 이곳은 파헤의 숲. 뭐가 튀어나올지 모른다.
그들은 조급하지 않게, 신중하게 진행해 나갔다.
“으악, 이게 뭐야!”
어떤 순간, 시안이 호들갑을 떨면서 허공을 향해 발길질했다.
그의 신발을 물어뜯던 애벌레가 떨어져 나갔다.
애벌레가 물고 있던 부분에 파스스 하얀 연기가 일며 구멍이 뚫렸다.
아레아는 대수롭지 않다는 듯이 말했다.
“산성독을 품고 있는 벌레로군. 발밑 조심해.”
마법으로 그럭저럭 기척은 가렸지만, 직접적으로 접촉하는 것은 어쩔 수 없다.
반나절 정도 지나자 슬슬 마물이 등장하기 시작했다. 작고 약한 녀석들부터 시작이었다.
시안이 주변을 둘러보며 말했다.
“나무도 풀도 하나같이 마기를 품고 있어. 여기서 식량 수급은 대체 어떻게 하는 거지?”
“식량도 물도 충분히 가져왔어. 탐색만 한다고 보면 돼.”
파헤의 숲에서도 먹을 수 있는 건 있겠지만, 여기서 살 것도 아닌데 그런 걸 찾아 나설 필요는 없다.
‘신성 결계로부터 멀어질수록 마기가 점점 더 독해져. 마법을 쓰는 데 지장이 있을 정도야.’
쭉 뻗어 나가던 마법이 거름망에 걸린 것 같은 느낌이다.
신성력이 마력과 상충하듯 마기도 마력과 상충했다.
두 힘을 융합해 주는 흑마법을 쓰지 않는 한 파헤의 숲에서 마법을 쓰는 데는 약간의 제약이 따른다.
그건 아레아가 100퍼센트의 실력을 발휘할 수는 없다는 소리다.
‘감수해야겠지만.’
만반의 준비를 하고 온 이상, 아주 강적을 만나지 않는다면, 별문제는 없으리라.
아스카가 아레아를 향해 물었다.
“그나저나 어디로 가야 하는 거야? 최소한의 기준점 정도는 있을 거 아니야?”
정말 ‘최소한’ 정돈 있기는 했다. 아레아는 선뜻 답했다.
“일단 파헤의 숲 중앙으로.”
“왜 거기야?”
“헬무트가 거기서 자라났다고 했어. 정확한 위치는 모르지만 파헤의 숲에 돌아왔다면 고향을 찾아가지 않았을까.”
헬무트는 중앙 권역의 지배자, 표범 엘라가의 품에서 자라났다.
파헤의 숲에서의 중앙이라는 말의 의미가 바깥 세계와 다르지 않다면 그곳은 파헤의 숲 중앙 어딘가일 것이다.
‘엘라가는 아주 거대한 하얀 표범이라고 했지.’
집채처럼 큰 표범이라고 했던가. 말을 할 줄 안다고도 했다.
중앙 권역이 헬무트를 거두어 기른 엘라가라는 그 표범의 영역이니 헬무트도 아마 그곳에 있을 것이다.
검을 잃고 파헤의 숲에 떨어진 헬무트로서는 가장 믿음직한 상대를 찾게 되었을 테니까.
만약, 그가 그 표범을 찾아갈 수 있는 상태였다면 말이다.
‘그래, 살아 있겠지. 그래야만 해.’
아레아는 불시에 드는 불길한 감각을 뿌리치고 생각을 정리했다.
“확실히 너는 헬무트에 대해서 아는 게 많네.”
아스카는 왠지 불만스러운 표정으로 꿍시렁거렸다. 아레아가 말해주기 전까진 아스카도 시안도 헬무트에 대해서 까맣게 몰랐다.
‘여자 친구한테만 다 말했다 이거지.’
자기도 자신에 대해 숨긴 주제에 아스카는 헬무트를 때려주고야 말겠다고 이루어지기 힘든 결심을 품었다.
이 안에서는 마법에 지장을 주는 것들이 많아서 방향을 가늠하기 힘들다.
하늘도 늘 흐리고 잿빛이라 햇빛이 잘 들지도 않는다.
그러나 낮과 밤은 감지할 수 있고 해의 위치는 어렴풋이 알 수 있으니, 그것을 통해 방향을 가늠하면 되었다.
아레아는 가는 내내 방향을 놓치지 않기 위해 신경을 기울였다.
‘이쪽으로 쭉 가면 되겠군.’
중간에 절벽이든 뭐가 나오든 마법으로 건너뛰면 그만이다. 방향을 잃지 않고 그대로 중앙 권역에 도달한다. 생각대로만 되면 순탄하리라.
말과 같은 다른 이동수단이 없기에 그들은 오로지 도보로만 이동했다. 당연히 진행 속도는 빠르지 않았다.
시안이 슬쩍 뒤를 돌아보며 중얼거렸다.
“조금 더 가면 결계가 안 보이겠어.”
파헤의 숲은 시계가 좋지 않다. 신성 결계가 마기를 뿌리치는 속성이 있기에 그나마 먼 거리에서도 보이는 편이었다. 그조차 보이지 않게 된다는 것은.
“슬슬 본격적인 파헤의 숲이 시작되는 거지.”
그 말은, 뭔가의 조짐처럼 들렸다.
그리고 결계가 완전히 시야 밖으로 사라질 무렵, 그것이 등장했다. 처음에 나타난 것은 거대하고 새카만 그림자였다.
순식간에 시야가 어두워지고 하늘로부터 바람이 휘몰아쳤다. 휘이잉!
“뭐지? 먹구름인가?”
“하늘에…… 저길 봐!”
모두가 전신을 후려치는 바람을 맞으며 일제히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무지갯빛의 아름답고 현란한 깃털을 가진 새가 상공에서 날개를 퍼덕이며 내려오고 있었다.
천상에서 내려온 듯한 아름답고 압도적일 만큼 거대한 새였다.
그러나 이곳은 파헤의 숲. 저것은 마물이다. 자신의 모습을 자연의 색으로 위장하여 감출 필요가 없는 강력한 마물.
놈이 내려앉은 몸짓은 우아하고 가벼웠다. 하지만 놈이 고작 열 걸음 거리에 내려앉음과 동시에, 놈으로부터 바람이 일었다.
파아아!
아레아의 은신 마법과 어둠의 정령이 세운 막이 마기의 돌풍에 순식간에 깨쳐 나갔다.
그들은 날것 그대로 마물의 시선 앞에 노출되었다. 놈이 처음부터 그들을 목표로 했던 것처럼.
[이거 이거, 인간이 네 명? 내 생애 이렇게 복 터진 날이 올 줄은 몰랐는데.]낭랑한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으악! 새가 말을 한다!”
아스카가 손가락질하며 외쳤다. 시안이 옆구리를 쿡 찔러서 아스카의 입을 다물게 했다.
“그냥 새가 아니라 마물이잖아.”
‘말을 하는 마물. 마성을 깨달을 만큼 강한 마물에, 이 정도 마기라면 한 권역의 지배자인가?’
아레아의 의혹에 화답하듯 이그렐이 우아하게 인사를 건넸다.
[소개하지, 인간들. 이몸의 이름은 이그렐. 남쪽의 이그렐이라고 한단다.]“파헤의 숲, 남쪽 권역의 지배자.”
[그래, 인간 세상에도 내 이름이 알려진 건가?]이그렐은 꺄르르 웃었다. 맑고 영롱한, 귀를 현혹시키는 새소리였다.
겉모습뿐만 아니라 목소리조차도 아름다워 도저히 파헤의 숲과는 어울리지 않는 모습이었다.
그러나 그와는 별개로, 놈에게선 무시무시한 마기가 느껴졌다. 가히 압도적인, 숨기지 않고 폭사되는 마기. 피부가 저릿저릿했다.
놈의 난데없는 등장으로 혼란에 빠졌던 일행의 눈빛에 힘이 들어갔다. 아스카와 샤를로트는 모두 바짝 긴장하여 검에 손을 가져갔다.
‘이렇게 빨리, 이런 강력한 마물을 만나게 될 줄은.’
하지만 위기는 기회였다. 아레아는 앞으로 일행의 앞으로 나서서 정중하게 입을 열었다.
“아레아라고 합니다. 혹시 헬무트라는 이름의 인간을 알고 계십니까?”
[오, 인간! 지금 내게 말을 건 거야? 내 깃털만큼이나 아름다운 인간이로군. 이 몸의 이름을 어서 불러보도록.]거슬리는 말투였다. 하지만 눈앞의 마물은 강하다.
아레아는 강자 앞에서 오만하게 뻗댈 만큼 어리석지 않았다. 그녀는 어디까지나 실리적이고 상황 파악을 잘하는 성격이었다.
그녀는 차분하게 좀 더 상세한 질문을 꺼냈다.
“네, 이그렐 님. 혹시 이그렐 님은 헬무트라는 이름의 인간에 대해서 아시는 것이 있습니까?”
물어볼 데도 없는데, 마침 말도 통하니 잘됐다고 생각한 터였다.
[헬무트라…….]이그렐은 눈을 깜빡였다. 당연히 그는 그 이름의 주인에 대해서 기억하고 있었다. 이그렐의 생애에서 그렇게 인상적인 순간은 몇 없었으니까.
[뭐, 알긴 알지. 파헤의 숲을 나간 최초의 인간! 내 생애 그렇게 배짱 있는 인간은 처음이었다고. 쬐끄만 게 눈빛은 생생해서 말이지. 강렬한 삶의 느낌이랄까. 열망이 느껴졌지.]아레아는 이그렐의 말로부터 그가 헬무트와 마주한 적이 있다는 것을 파악했다.
헬무트가 결계를 나서기 전, 이 새와 마주쳤던가. 그리고 헬무트는 파헤의 숲을 나왔으니, 이 새는 그와 적대적인 관계가 아니었을 가능성이 높았다.
아레아는 넌지시 질문을 던졌다.
“그는 불의의 사태로 파헤의 숲으로 다시 돌아왔습니다. 돌아온 지 꽤 되었을 텐데, 그를 보신 적 있습니까?”
잠시 침묵이 흘렀다. 이그렐은 능청스럽게 고개를 까딱거렸다.
[다시 돌아왔다고? 글쎄, 그럴 수도 있겠지. 아는지 모르겠지만, 파헤의 숲은 꽤 넓어서 그렇게 금방금방 소식이 들리지 않는단 말이지.]안 넓더라도 마물끼리 제대로 된 교류 같은 걸 할 리가 없다.
이그렐은 고개를 살짝 낮추며 넌지시 물었다.
[그러면 너희는 인간 세상에서 헬무트가 사귄 인간들인가? 그래서 그 녀석을 찾으러 온 거야? 인간 주제에 겁도 없이 이 파헤의 숲으로?]“네.”
[신기하네. 그게 인간들의 우정? 애정? 뭐 그런 감정인가.]이그렐은 의미심장한 눈으로 아레아를 쳐다보았다.
‘헬무트 녀석의 짝인가.’
변장을 푼 아레아는 은빛 머리카락을 늘어뜨린 보랏빛 눈동자의 아름다운 소녀였다.
하얀 로브를 입은 그녀가 마법사라는 건 이그렐에게 중요하지 않았다.
미약한 인간, 그것도 마물의 성지인 이 파헤의 숲, 남쪽의 지배자 이그렐 앞에서 마법사가 무슨 소용이란 말인가.
‘눈동자가 정말 보석 같구나. 내 깃털만큼이나 아름다운 인간은 흔치 않은데.’
이그렐의 눈빛에 탐욕이 스쳤다. 아레아는 차분하게 질문을 이어갔다.
“혹시 이그렐 님은 엘라가라는 이름의 표범을 아십니까?”
[그 냄새 나고 포악한 표범 녀석? 알고말고. 날이 갈수록 더 냄새가 고약해져 가. 먼 곳에서도 놈의 냄새를 맡을 수 있지.]“곤욕스러우시겠군요.”
[그렇지, 그렇지. 뭐, 녀석과 내 사이가 나쁜 건 아니지만 말이야.]이그렐은 왠지 모르게 끝에 가서 말을 사렸다.
“그렇군요. 질문에 답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만약 엘라가를 만나게 되면 안부 전해 드리지요. 그럼 가자.”
아레아는 일행들을 이끌고 자연스럽게 그 자리를 벗어나려고 했다.
그러나 이그렐은 그렇게 녹록하지 않았다.
[그런데 내가 언제 보내준다고 했던가?]‘역시, 쉽게 보내줄 거였으면 그렇게 나타나지 않았겠지.’
아레아는 진지한 눈빛으로 물었따.
“저희한테 무엇을 바라시는지요?”
[으음, 나는 말이야.]이그렐은 날개를 퍼덕이면서 그들을 바라보며 뜸을 들였다.
[원래 인간을 먹지 않는단 말이야. 파헤의 숲에 있는 인간들은 어쩐지 불결한 느낌이거든. 쪼아먹기엔 내 고귀한 부리가 더럽혀지는 것 같다는 말이지.]그래서 어쩌라고. 아레아를 제외한 일행의 표정이 일제히 안 좋아졌다.
[그러니까, 인간은 원래 내 관심 영역 밖의 하등생물이었어. 하지만 그 헬무트란 녀석을 보면서, 인간에 대해서 어떤 생각을 하게 되었단 말이지.]“그게 어떤 생각입니까.”
[엘라가가 그 헬무트란 인간을 어린 시절부터 끼고 다니면서 길렀단 말이지. 그건 다른 마물을 수족으로 두는 것과 달랐어. 그러니까…….]고개를 갸웃대던 이그렐은, 날개를 펼치며 의기양양하게 선언했다.
[너희는 내 털을 손질하도록 해. 내 마음에 들게 손질하면 보내줄 수도 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