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lmut: The forsaken RAW novel - Chapter 287
286
헬무트
286화
크아앙! 크아악!
콰직, 콰지직!
격돌음과 함께 숲을 부수는 소음이 요란하게 울려 퍼졌다.
돌풍이 몰아치는 것 같았다. 마기의 돌풍.
마기로 가득한 파헤의 숲에서 마기의 충돌이 이토록 생생하고 강하게 느껴지는 건 흔치 않은 일이었다.
‘후, 이 정도면 안 휩쓸리겠지.’
어느 순간부터 그냥 존재를 숨기고 말고 할 것도 없이 전력으로 달려서 그 자리를 벗어난 아스카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두 마물의 덩치가 워낙 커서, 근처에 있다가 깔려 죽기라도 하면 말 그대로 개죽음이었다.
다행히 바하렉은 엘라가가 데려온 인간이 어디로 움직이건 전혀 상관하지 않았다.
그가 인간 따위는 하찮게 보는 성격이라 다행이었다.
물론, 엘라가는 그가 다른 데 한눈팔지 못할 만큼 강력한 상대이기도 했지만.
‘마물의 세계도 무진장 살벌하네.’
바깥 세상에선 마물을 거의 본 적 없는 아스카였다.
아카데미 시험에서 환상을 통해 비슷한 놈들을 본 적은 있지만, 실제로 본 마물은 상상을 초월했다.
전신이 긴장감으로 굳고, 심장이 저절로 빠르게 뛰었다.
아스카도 담이 센 편이라 공포심에 사로잡혀 꼼짝도 하지 못할 정도는 아니지만, 심리적인 압박감이 대단했다.
‘그러니 헬무트 녀석이 그렇게 간이 크지.’
아스카는 싸움이 벌어지는 뒤쪽을 흘깃거리곤 길을 서둘렀다.
이대로 서쪽으로 향한다.
최대한 빨리 신성 결계에 가까워지는 게 그에게도 나을 터였다. 이곳은 파헤의 숲이니까!
나오는 놈들을 다 때려잡겠다는 어린 시절의 객기는 이제 없었다.
‘엘라가라는 저 표범이 당연히 이기겠지? 설마 지기라도 하면 난 어떻게 하지?’
절대로 서쪽 권역을 다시 통과하여 돌아갈 수는 없다.
그럴 경우, 그는 서쪽 결계를 통해 파헤의 숲 바깥으로 나가야 할 것이다.
어둠의 싹을 가지고 있지 않은 데다가, 상당한 비스를 가진 검사인 아스카에게는 불가능한 일은 아니었다.
결론을 내린 아스카는 재빨리 다리를 움직였다.
근처에 마물이 있다고 한들 저 둘이 저렇게 싸우고 있다니 도망가 버렸을 것 같다. 만약 그렇지 않은 놈이 있다면…….
‘……뭐지.’
주변을 경계하며 빠르게 걷던 아스카는 불현듯 발을 멈추었다. 왠지 분위기가 이상했다.
벌레 우는 소리조차 들리지 않는 이 고요함. 뭔가가 도사리고 있는 듯, 대기에 가득한 마기가 잔디처럼 가볍게 술렁이고 있었다.
‘어떤 놈이냐.’
온몸에 소름이 싹 끼쳤다.
적어도 본능적인 영역에서는, 헬무트 못지않은 그다. 짐승적인 감각이 아스카에게 알려줬다. 적이 가까이 있다고!
쿵쿵쿵.
거대한 몸집 덕에 소리는 숨길 수 없었다. 저편에서 나무를 타고 이쪽으로 접근해 오는 마물이 보였다.
나뭇가지를 잡는다기보다는, 아예 나무 몸통을 잡고 건너뛰는 듯한 동작.
아스카는 검에 손을 가져갔다.
놈의 열 걸음 앞 정도 거리에서 바닥으로 뛰어내렸다.
쿵!
바닥이 패였다.
키르르르르.
놈은 기괴한 소리를 내며 고개를 비틀었다.
‘와, 정말 마물처럼 생겼네.’
태평하게 생각하면서도 오금이 저렸다. 머리가 세 개 달린 원숭이였다.
붉고 흉악한 얼굴엔 혈관이 도드라졌다. 실로 악몽에서나 출현할 모습이었다. 보는 즉시 소스라치며 잠에서 깨어나고야 말 악몽!
원숭이 마물은 아스카를 보면서 침을 질질 흘렸다.
인간이다. 먹이다. 맛있는 고깃덩이. 피식자에 불과한 존재.
그것은 파헤의 숲 마물들에게 자연스러운 사실이었다.
두 권역의 지배자 엘라가와 바하렉이 충돌을 빚은 지금 이 일대의 마물은 괜히 불똥이 튈까 봐 도망가고 없었다.
하지만 원숭이 마물은 아스카의 존재를 느끼고 역으로 이곳으로 접근해 왔다.
그것은 본능을 이길 만큼, 이 정도의 접근이 가능할 만큼 놈이 강하다는 뜻이다.
아스카는 알 수 없는 일이지만, 놈은 놀랍게도 헬무트가 예전에 상행 중 해치웠던 마물과 비슷했다.
원숭이라는 것도, 가진 마기도. 그때의 원숭이 마물은 2급 용병 세 명을 홀로 상대할 수 있을 만한 녀석이었다.
아스카도 상대가 강하다는 것은 바로 느꼈다.
하지만 그는 씨익 웃었다.
“내 상대로 괜찮겠어. 이 정도 마물은 잡아 줘야 파헤의 숲에 갔다 왔다고 할 만하지.”
강한 상대는 이미 질리도록 만나 봤다.
헬무트는 아스카에게 특별한 친구였다.
헬무트가 있을 당시, 아스카는 벽을 느꼈다. 도저히 무슨 수를 써서도 넘을 수 없는 벽.
그가 나타나기 이전 아카데미는 지루하고 따분한 녀석들 천지였다.
지금은 아스카보다 강할지라도, 약간만 수련하면 금세 따라잡을 것이다. 딱 그 정도 녀석들.
수재들만 모인 그레타 아카데미 검술학부에서도 아스카의 실력과 재능은 독보적이었다.
그런데 아스카가 평민이라는 이유로 무시하고 깔보고 달려드는 녀석들 천지였다. 아스카는 그럴 때마다 그들에게 실력으로서 증명해 줬다.
하지만 헬무트는 그들과 달랐다.
그를 처음 본 순간, 아스카는 오싹한 기분을 느꼈다.
일부러 시비를 걸어 봤지만, 헬무트는 덤덤했다. 자신보다 낮은 곳에 있는 하찮은 뭔가를 바라보는 듯한 무미건조한 눈.
분하게도 그것은 사실이었다.
죽도록 노력해도 헬무트를 따라잡을 수 있을 것 같지 않았다.
끊임없이 노력할 뿐 아니라, 재능 또한 자신을 능가하는 상대. 그러면서 이쪽을 짓누르려고 하지도 않고, 오히려 손을 내밀어 도와주기도 했다.
헬무트 그리고 친구들과 함께하는 아카데미 생활은 즐거웠다.
아스카의 무료함과 지루함은 씻은 듯이 사라졌다. 마치 삶이 달라진 것처럼. 모든 것이 의욕적이었다.
헬무트가 나타나 아스카는 강해질 동기를 얻었다. 그리고 그가 사라지고 난 뒤 그 동기는 오히려 더 강렬해졌다.
아레아가 헬무트의 사정을 이야기하면서, 그를 구하려면 강해져야 한다고 했으니까.
아스카는 지난 4년간, 강해져야 한다는 그 명제를 한순간도 잊지 않았다.
물론 그것은 파헤의 숲을 나오고자 한 헬무트의 것만큼 절대적이지는 않았다.
하지만 적어도 아스카라는 한 천재적인 검사를 개화시키기에는 충분했다.
아스카는 현재 1급 용병을 넘볼 만한 실력자였다. 그것은 2급 용병 3명보다 우월한 전력이라는 뜻이다.
힘이 세 개로 분산된 것보다는 하나로 뭉칠 때 더 강력하니까. 그것이 검사라면 더더욱.
‘이 원숭이 마물은 헬무트와는 다르지.’
그건 넘을 수 있는 벽이라는 뜻이다. 아무리 강한 상대라도, 넘을 수 있고 넘을 수 없고의 차이는 다르다.
그리고 놈은 제대로 된 인간 검사를 상대해 본 경험이 없을 거다.
베어 넘기고, 서쪽의 신성 결계로 향한다. 빠르게 결론이 내려졌다.
‘이 녀석이 권역의 지배자 아래 중간 관리자쯤 되나? 되겠지……?’
아무리 파헤의 숲이라도 설마 이 녀석보다 강한 녀석이 흔하지는 않을 터.
‘또 있다면 죽은 목숨이니, 없다고 생각하자.’
긍정왕스러운 생각을 하며 아스카는 검을 빼 들었다.
“원숭이 고기 맛은 어떨 거 같아? 너는 아냐? 넌 동족도 잡아먹었을 상인데.”
키르르.
세 개의 머리가 일제히 아스카를 직시했다.
묘하게 꼿꼿한 인간. 하지만 그래 봤자 먹이다. 먹이는 발버둥 쳐 봐야 뱃속에 들어가면 그만.
크와아앙!
곧 괴성과 함께 땅을 박찬 놈이 바로 아스카에게로 달려들었다.
*
동, 서, 남, 북, 각기 네 군데로 갈려서 향한 일행들은 공교롭게도 완전히 반대의 상황을 맞이하고 있었다.
동쪽의 시안과 남쪽의 샤를로트는 여유만만한 데 반해, 반대로 서쪽의 아스카와 북쪽의 아레아, 헬무트는 곤경에 빠진 터였다.
아니, 곤경이라는 표현은 약소했다. 목숨이 위험한 상황이니까.
아래로부터 미친 듯이 날아오는 얼음덩이를 피해 아레아와 헬무트가 탄 골렘이 곡예 하듯 비행하고 있었다.
아무리 그 둘이라도 거기에 매달려 있기란 쉽지 않았다. 한 손으로 손잡이를 잡은 헬무트가 다른 손으로 아레아의 어깨를 움켜쥔 채였다.
그야 어려움 없이 매달려 있을 수 있지만, 달랑거리는 그녀가 금방이라도 튕겨 나갈 것 같았기 때문이다.
‘람피오네, 그 음흉한 늙은이한테 감사해야겠군.’
천재는 천재다. 골렘이 이렇게 역동적인 움직임이 가능하다니.
아직 아레아의 수준으로는 이만한 골렘을 만들 수는 없었다.
골렘을 가져온 덕분에 파헤의 숲이란 위험한 장소가 다소 쉬워졌다.
한 가지 문제를 제외하고선.
‘멀미 나.’
아레아는 얼굴을 찡그렸다.
계속 몸을 틀어 대는 골렘 위에 매달려 있으려니 속이 울렁거렸다.
다행히 호수 위는 거의 통과했다. 이제 다시 빙판 위로 진입하면, 아래로부터 쏘아져 오는 것은 없을 터였다.
다시 평화롭게 비행할 수 있으리라.
하지만 그것은 지나치게 낙관적인 예상이었다.
잠시 잠잠해진 찰나, 세 개의 얼음덩이가 시차 없이 동시에 골렘을 향해 날아올랐다.
골렘은 몸을 급하게 틀었다. 두 개는 피했지만, 하나는 그렇지 못했다.
퍽!
날개 끄트머리가 무참히 꺾였다.
통증을 느낄 줄 모르는 골렘은 소리를 내지 않았지만, 아레아는 이변을 감지했다.
그쪽 날개가 그대로 마비된 것이다.
가속도 덕에 앞으로 날아가고는 있었지만, 골렘은 포물선을 그리며 고도를 낮추기 시작했다. 다른 쪽 날개를 아무리 퍼덕여 봐도 한계가 있다.
골렘의 몸이 빙글빙글 돌았다. 거기에 매달려 있으려니, 정신이 어지러웠다.
아레아가 경고를 던졌다.
“떨어진다!”
다행히 고도가 그리 높지는 않았다. 아레아는 비행 마법을 준비했다.
하지만 속이 울렁거리는 탓에 마법을 쓰기가 쉽지 않았다.
옆에서 헬무트가 빠르게 입을 열었다.
“어차피 날아 봤자 이번엔 골렘이 아닌 우리가 표적이 될 거야. 땅에 내려서는 쪽이 나아.”
공중에서 날아오는 뭔가에 대처하는 건 검사인 헬무트로서는 쉽지 않은 노릇이다.
그들이 너무 급속도로 떨어지는 터라 더 이상 공격이 없는 게 다행이었다.
아레아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착지만 안전하게.”
“잠깐 공중으로 떠오를 테니, 그때 주문을 외워 보지.”
이렇게 안정적이지 못한 상황에서 마법을 쓰는 게 쉽지 않다는 걸 알고 한 말이었다.
헬무트는 말하자마자 한쪽 팔로 아레아의 허리를 잡아챘다.
골렘의 몸이 돌아가 그들이 위에 있게 된 순간, 그는 골렘의 등을 박차고 뛰었다.
퍽!
다리에 비스를 싣고 뛰어오르니, 두 사람의 몸이 하늘을 가르고 위로 치솟았다. 그리고 이내 다시 아래로 떨어지기 시작했다.
아까보단 가까워졌다곤 해도 여전히 땅은 아득했다.
만약 이대로 떨어진다면, 헬무트는 괜찮겠지만, 아레아는 즉사를 피할 수 없을 거다.
온몸이 얼어붙을 만큼 고소공포증이 절로 생겨나는 높이.
멀미가 일어 정신이 혼미했다.
아레아는 그 와중에 간신히 집중하여 주문을 읊조렸다.
“바람의 비단.”